지난주 초등학교 동창모임겸 초, 중 고등학교를 다녔던 강원도 정선 고한엘 다녀왔다.
초등학교 졸업생 90여명중 연락이 되는 친구들은 40명 남짓,
그중 열 다섯명의 친구들이 모였는데, 토요일 저녁은 시내에서 식당하는 여고동창 친구네에서 먹고
저녁엔 강원랜드 근처 콘도에서 밤 늦게 까지 수다를 떨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우리가 다녔던 초등학교를 들러보고, 서울 오는길에 민둥산 억새풀을 보고 오려 했지만
아침에 일어나니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것이다.
민둥산은 포기하고 여유있게 학교를 둘러보기 위해 갔는데,
이미 폐교가 된건 알고 있었으나 이제는 학교 건물조차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너무나 작아보이는 운동장 한켠엔 누군가 밭을 만들어 푸성귀등을 심어놓았고,
미끄럼틀이랑, 시소, 그네가 있던 자리엔 차량 몇대가 주차되어 있을뿐,
그 어디에도 이곳이 한때 꽤 많은 아이들이 뛰어 놀았던 운동장이었던 흔적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다들 섭섭하고 쓸쓸함을 느끼며 잠시 서 있다가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떼었다.
서울로 오는길, 운치좋은 커피숍에 들러 잠시 기분전환을 하고
폐광이후 박물관으로 만든곳에 들렀다가 또 다시침울해졌다.
자료로 남아있는 옛 사진들을 보니 우리들의 아버지가 생각났다.
다들 같은 생각들을 했는지 좀전까지 하하호호 떠들던 친구들이 어느 순간 조용해 졌다.
어렸을땐 자세히 몰랐으나 어른이 되고나서 알았다.
우리들의 아버지들이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얼마나 깊고 무섭고 힘든 곳에서
목숨을 담보로 일하셨는지를....
어둡고, 길고 깊숙한 지하 갱내로 들어갈때마다 오늘도 무사히를 얼마나 간절히 바라셨을까
탄가루 묻은 검은 얼굴에 하얀이를 드러내고 웃으시는 어느 광부의 사진을 보니,
어렸을적 보았던 아빠의 모습이 스쳐 지나간다.
오늘은 아빠가 돌아가신지, 정확히 24년 되는날이다.
24년전 오늘, 위급하다는 소식을 듣고 강원도 동해, 아빠가 입원해 계시던 병원까지 청량리에서 기차를 타고
언니부부와 함께 갔던 그날이다.
도착했을땐 이미 저 세상으로 가버리시고...
내일 출근도 해야하고 남편도 아침일찍 지방 출장을 가야해서 오늘이 아빠의 기일이건만 가질 못했다.
아침에 엄마와 통화를 하고는 낮엔 그냥 잊고 지내다가 지금쯤 제사를 다 지내셨으려나 문득, 생각이 났다.
일주일전 침울하고 맘 아팠던 기억이 다시 난다.
자랄 땐 마냥 철없이 그저 평범하고 좋기만 한 시절이었다고 생각했는데,
그 행복이 그냥 이루어진게 아니었음을 이제사 중년이 넘어서 깨닫게 된다.
나는 아직까지도 아빠에겐 철이 덜든 딸이 분명하다.
아빠를 뵈러 가지도 못한 미안함에 괜히 몇 글자 끄적거려 본다.
한때 많은 광부들이 근무했지만 지금은 폐광이된 광업소 건물의 사훈,
탄가루 날리던 곳이라 사훈도 거무스름하다.
매일 저 글귀를 보면서 깊고 깊은 갱내로 들어가셨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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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0월 23일, 구양방 쉼터방에 올렸던 글
요 며칠, 출석방에서 엄마, 아버지 얘기를 하니 문득 생각이 나서 찾아봤어
이번주 금요일, 엄마 생신인데 올해부터는 요양원에서 생일을 맞이하시네
아빠는 하늘나라에서 잘 계시려나
첫댓글 부모님 글은
가슴이 먹먹해 진다
우린
잘 살고 있는 거겠지?
다른 사람은 몰라도 양금인 잘 살고 있는걸로 보여 ㅎㅎ
부모님에 대한 글은 안 먹먹할수가 없다 그치? ㅎ
와이프에게 내가 가끔 놀려먹을때 하는 말.
충청도 산골 촌구석 출신이 남편 잘 만나 서울특별시민으로 살아가고 있으니 출세했네 그랴 ~
전생에 나라를 구한게여 ~~ ㅋ
캐더린도 전생에 나라를 구하셨구만 ~??
울 와이프처럼 ㅎㅎ
남편도 고향은 강원도라 나에게 그렇게까지 말할정도는 아니었지 ㅎ
입사 초기에 회사동료들로 부터 그런 비슷한 얘기 좀 들었어
나보고 강원도 산골처녀가 출세했다고 ㅎㅎ
나도 요 몇일 계속 아빠가 생각나서 우울했는데
그래서 절에 다녀왔지 모야
미라, 참 반듯한 중년이야
아빠가.좋아 하실거야^^
그랬구나
클래식을 좋아하셨다던 그 아빠, 보나마나 참 멋지셨을꺼야
미리야말로 반듯하고 정의로운듯
난 알고보면 그정도는 아니야 ㅎ
이쁘게 살고있잖아
아빠가 흐믓 하실듯
그럴까?
한소리 말대로 그렇게 생각해주셨으면 참 좋겠다
아니, 내가 그렇게 살려고 더 노력해야하는데
ㅠㅠ 미라도 아부지 생각 많이 하는구나 난 다음주에나 갈수 있는데 보고싶은데 어쩌지?
생전에 계실때는 그리 살갑게 대해드리지는 못했어.
그냥 나이를 한살 두살 먹다보니 이제 쬐금은 알 것 같아
나이먹는게 이럴땐 좋은것 같아 ㅎㅎ
아빠께서 일찍 돌아가셨구나 ㅠ
미라 마음 많이 아프겠다.
예쁘게 잘 사는 미라 보시고 좋아 하실 거야.
시간 내서 엄마께 면회 다녀와
나 결혼하고 1년뒤, 1992년도에 돌아가셨어.
돌아가시기 전까지 병원에 계셔서 내 결혼생활은 한번도 못 보여드렸네
엄마한테는 생신 당일은 아니지만 이번 달에도 면회는 다녀와야지 ^^
내가 늘 감사하게 생각했던 직업 중 하나가
광부인데
아버님이 고마운 분이셨구나
토닥토닥~~~탁탁!! 1=2=
어째 마지막에
힘을 실어 때리는것 같은?
어쩐지
등짝이 아프더라
지촌, 일루 좀 와봐
@캐더린
석탄 박물관 시공 당시 편광 소재를 이용해 물 흐르는 연출... 시공하러 갔던 기억!
환절기 늘 건강 조심하시오
거기까지
작업하러 갔었구나
다음에 또 가면 찾아봐야겠다
병두도 환절기 건강 잘 챙겨
마음이 짠하네
가족만을 생각했던 부모님의 마음으로 모든 걸 희생하셨지
나도 어려서는 잘 몰랐는데
나중에 크고 나서 듣고 보고나니 정말 놀랐어
가족만을 생각하지 않았다면 정말 하기 힘든 일이었얼꺼야
부모란, 가장이란 그런건가봐
난 아직 멀었는데 ㅎ
우리네 나이 부모님들이 다비슷한거같아. 미라아빤 우리아빠보다 먼저 돌아가셨구나 맘이. 짠하네. 엄마한테 라도 잘해드리자^^^
돌아가신지가 32년이 넘었으니 오래 되긴했지. 그래도 내가 결혼 한건 보고 돌아가셨으니까 그건 다행이다 싶어.
아마 문희는 엄마한테도 잘 할꺼야. 난 더 분발해야겠다 ㅎ
찡하네
느끼는 바는 다 비슷할꺼야
사업차? 외국 왔다갔다 하는 모양이던데 건승하길~
나도 광부의 딸....
울 아버지는 탄광 안에서 일하시다 돌아가셨는데 그 일로 나는 악몽을 자주 꾸었지. 지금은 치유가 되었지만.....
아~ 그래? 어디일까? 혹시 나랑 같은 지역? ㅎㅎ
예전엔 갱 안에서 사고 나는 일이 더러 있었지. 에구 그랬었구나..
그래도 같은 광부의 딸이라니 급 친밀감 ^^
고향에 가면. 내가 놀던 국민학교 가 페교 참 씀쓸해.
내가 다니던 학교도 오래전에 폐교됐어
이젠 서울도 폐교 되는데가 많다더라
워낙 출생인구가 감소해서 말이지
자연스레 받아들일수 밖에 없는 현상이긴 한데 어쩐지 참 쓸쓸한것도 맞아
아버지가 엄청 좋아하시겠다~~~
잘 돌봐주실꺼야~~~효녀
생전에 잘 해드리지도 못하고 살가운 딸도 아니었어서 효녀는 아니야 ㅎ
군대 제대하자 마자 떠난
전국일주 할때..
강원도 광산촌들도 다녔었지..
잠시 지나는 청년이 멀 그리
깊이 보았겠냐만..
생각이 많았던 곳이었어..
힘들다는 표현으로 부족한
일상 이었겠지만 그 부모들은
자식들이 크게 느끼지 못할 정도로
내색을 안하며 살았겠지..
알아준다는것 만으로 큰 위안이다.
추억과.. 친구들과..
늦게나마 알게된 그분들의
뒷모습.. 모두.. 다시 돌아본
소중한 시간들이었네~^^
그때, 내가 살던 지역도 왔었겠네
전국일주도 하고 그때부터 방랑자의 기질이 좀 있었나보네 ㅋ
몇년전에 쓴 글이지만 다시 읽어보니 추억이고 새로운걸 알게 된, 너말대로 소중한 시간들이었던것 같아 나도 다시 끄집어 내봤어 ^^
@캐더린
아쉽군.. 그때 딱
만났어야 했는데~ㅋ
태어나 처음으로 떠난
여행이었지..
젊은청년이 세상과 처음으로
부딛쳐 보려던.. 무전여행으로..^^
너의 저 짧은 토막 시간이
좋은 시간 이었듯..
그런시간을 몇개월 합쳐놓은..
듯한 그런 시간 이었지..
나도 끄집어 내봐야겠다..ㅎ
@풍경 그래 한번 끄집어내봐
왠지 탄광지역을 여행했다고 하니
너가 여행 했다던 그때의 시간, 느낌이 어땠을지 궁굼하네
우리 캐더린
깊고 따뜻하다
부모님은 나의 우주였으니 마음이 저려오네
바쁜 지수가 한번씩 나타나 툭 던지고 가는 말이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알려나
지수의 부모님에 대한 마음도 알지 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