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운 최제우 선생의 최후
수운 최제우(1824~1864)는 대내・외의 혼란이 그 어느 때보다 극심했던 시기에 나타나 우리의 새로운 정체성의 중심을 찾으려 했던 인물이다.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초월적 차원의 혹은 종교적 차원으로부터 현실난국을 타개하는 해답을 모색하려고 했다. 그러나 조선의 왕실은 혹세무민, 좌도난정의 죄를 물어 체포 구금하면서 결국 처형하기에 이른다.
당시 경상도 관찰사 서헌순이 직접 최제우의 심문을 맡았다. 그는 사헌부 대사헌, 한성부판윤, 형조판서 등 요직을 거친 인물이었다. 그는 부패하고 썩어빠진 외척과 세도가들과 달리 청렴결백하며 옳고 그름을 잘 판단해 명성이 높았던 인물이었다. 그 일례로 부인이 사택에서 가지고 온 솥이 경상도 것임을 알고 그 솥은 경상감영으로 돌려보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수운 최제우는 허황된 사술을 퍼트려 민심을 혼란케 한다는 이유로 몽둥이로 볼기와 넓적다리를 치고, 정강이뼈가 부러지는 등 무려 20여 차례나 혹독한 고문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최제우는 심문을 받으면서도 이렇게 말했다.
“내 무극대도로써 천하를 건지고자 하노니 공은 오직 생각대로 하라”
최제우를 심문할 때 상주목사 조영화, 지례현감 정기화 등이 배석했다. 경상도 관찰사 서헌순은 ‘수운이 제자들에게 글을 써주고 돈을 받은 적은 있으나 토색질한 것은 없으며, 동학이란 나라를 왜적으로부터 막기 위한 학문이라고 한다’며 문초했던 내용 그대로 적어 조정에 보고했다. 하지만 조정에서는 ‘경상도는 추로지향이어서 음악 소리와 글 읽는 소리가 그치지 않았던 고장이었으나, 동학이라는 요사스러운 무리가 나타나 많은 도당을 결집시켰다’며 서학과 함께 혹세무민의 사교로 몰아갔다. 특히 검무와 검결은 모반의 뜻이 담긴 것으로 해석하면서 끝까지 최제우를 죽이고자 했다. 결국 최제우는 1864년 3월 10일 형조판서의 훈령에 따라 좌도난정의 죄목으로 참형을 언도받고 관덕정에서 최후를 마친다. 함께 체포된 나머지 12명은 유배 등 엄한 형벌을 받았다.
최제우가 처형을 당할 때에는
“청수를 가져오라”
하여 물을 마시고 난 뒤 기도를 드린 후
“내 이미 세상일을 다 마쳤으니 칼을 들어 나를 베라”
그는 목이 떨어지고 그의 목은 남문장대에 4일간이나 걸려있었다.
* 최제우 구금지 - 경상감영공원
최제우는 체포되자 서울로 압송길에 오른다. 그런데 문경새재를 넘을 때 철종이 승하하자 대구로 압송해 구금하라는 명이 떨어지고 대구로 온 최제우는 경상감영공원 원형옥에 갇힌다. 현재 대안성당 앞 옛 형구돌 앞에는 경상감영의 옥터였음을 알리는 표지석이 있다. 그리고 사형선고를 받았던 좌옥터는 현재 서문로교회 일대라고 한다.
좌옥터 ; 현재 서문로 교회가 있는 그 일대로 추정된다.
우옥터 : 대안성당
최제우 나무
현재 대구의 종로초등학교 앞에 있는 수령 400년의 회화나무는 서헌순이 최제우에게 효수하라는 명령을 내리자 회화나무 잎사귀에서 수액이 우수수 떨어져 내렸고, 이 모습을 본 옥졸들마저도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이를 기념하여 2012년 대구시가 ‘최제우 나무’로 명명한 것은 무척 다행한 일이다.
최제우 나무(대구 종로초등학교)
최제우 순도지 - 관덕정 터
당시 최제우를 형장으로 끌고 가기 위해 관아를 출발한 압송행렬은 지금의 국채보상로를 따라 대구중부경찰서네거리를 거쳐 종로를 지나 대구읍성 남문 밖 관덕당으로 향했다. 현재 동아쇼핑 북서편 주차장 입구와 그 인근 일대로, 옛 번지는 중구 계산동 245-1, 지금은 달구벌대로 2081-10~12다.
이곳에는 관덕당이라 쓰인 현판이 걸린, 군관과 별무사를 선발하는 도시소都試所가 있었다. 즉 영남제일문 밖 서남쪽 관덕당은 조선 영조 25년(1749)에 무과의 하나인 도시道試를 행하던 곳이었다.
관덕당 앞 달구벌대로는 지금은 대구도심 한복판에 위치하지만 당시에는 아미산 언덕바지 땅이었다. 성 밖이라 집도 절도 없었고 사람의 왕래도 매우 드문 곳이었다. 천주교 신자들도 이곳에서 처형되었는데 최제우역시 이곳에서 처형당했다. 《일성록》에 기록된 바에 의하면 처형당시 조정에서는 ‘많은 군민을 모아 놓고 효수해 우둔한 백성에게 경고케 하라’는 명령까지 내려져 강제동원이 이루어져 인산인해를 이루었을 것으로 추측이 된다. 천주교도들 역시 최제우 처형을 전후로 하여 이루어 졌는데 천주교성지로도 의미가 있다.
당시 구암 김연국이 백방으로 고증한 뒤에 이곳을 성지로 기념코자 사들였다. 그의 아들이 ‘상제교’라는 간판을 달았고, 해방 후에는 시천교 대구지부 사무실로 사용되다가 1960년대 말이 완전히 헐려버리고 만다. 그 후 1991년 현 남산2동 938-19에 천주교관덕정순교기념관이 세워진다. 이렇게 본다면 최제우가 처형당했던 자리는 현재 관덕정 자리가 아니라 동아쇼핑 과 현대백화점 사이 그 일대라고 볼 수 있다.
불교나 기독교 등 일반적으로 종교의 성지는 태어난 곳과 깨달음을 얻은 곳, 그리고 죽음을 당한 곳이다. 수운은 경주에서 태어나 울산과 경주 등지서 수도를 하다 득도한 뒤 대구읍성 남문 밖 관덕당에서 처형을 당했다. 비록 늦은 감이 있지만 그가 처형을 당하기 위해 고난의 길을 걸어왔던 근대골목과 처형당했던 관덕당 터에 작은 포지석이라도 세우면 어떨까? 더불어 신분차별철폐와 만민평등, 반봉건제를 주장했던 최제우와 관련해 순도비와 순도기념관이 건립해 동학의 성지를 기념하는 것은 종교의 유무를 떠나 후손들이 당연시해야할 일은 아닐까.
* 답사배움 님들이 대구에 오신다기에 옛 글 하나 찾아 올려놓습니다.
첫댓글 늦게나마 뵙게되어 반가웠습니다.
다음 대구에 가서는
수운 관련하여 꼭 둘러봐야겠네요.
고생하셨습니다.
에너자이저의 도깨비님!
담에 자주 뵙시다^^*..
토요일 달림... 일요일 펑크.
그래도 얼굴 보고, 한 잔 하니 기분 좋았음.
담에는 편하게 한 번 뵙지요.
회원들 책자 제공... 제가 대표로 감사의 말씀을 올리며,
근디 저한데 실크로드 공부를 하라는 것인지. ㅎㅎㅎ
토욜날 멀리서 친구가 달려와 술사달라고... ㅎㅎ
오랜만에 얼굴 볼 수 있어서 참 좋았다.
자주 만나 한 잔 기울여야 하는데^^*..
아, 실크로드?
그려 시각을 세계로 넓히는 것도 즣지럴!!!
아마도 자제분들이 조금 더 크면 참 좋아할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