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운에세이] 우리말 소고(小考)
인간의 언어와 관련된 여러 현상을 과학적인 방법으로 연구하는 학문. 언어의 기능과 본질, 언어의 역사, 언어의 변천, 언어와 인간관계 따위를 연구하는 학문 이 언어학(言語學:linguistics)이다. 이런 의미로 보면 언어학이 소수의 언어학자 와만 관련이 있는 특별한 분야의 학문인 것으로 생각되기 쉬우나 반드시 그렇지 만은 않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다. 일상 생활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아름답고 우수한 우리말에 대해 애정과 관심을 가질 때 그 사람은 훌륭한 언어학자(?)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세상에는 다양한 이름의 학문이 존재한다. 예컨대 생물공학(生物工學:bionics)도 있고 현상학(現象學:phenomenology)이란 학문도 있다. 음악학(音樂學:musico logy)도 있고 조류학(鳥類學 :ornithology)도 있다. 생체조직의 기능을 전자공학 적으로 응용하는 기술을 연구하는 학문이 생체공학이요 생물전자공학이다. 세 가지 이름이 다 같은 말이다.
한여름 무더운 밤 바람이라도 쐬러 야외에 나가면 '왱'하는 소리로 우리를 긴장 시키는 모기란 놈은 정말 사람을 짜증나게 하는 귀찮은 존재다, 그런데 그 미물(微物)이 내는 가느다란 소리가 천둥이 칠 때라도 100m 밖에 있는 짝에게까지 전달이 된다고 한다. 여기서 물리학자들은 목표 물체를 향하여 마이크로파를 발사하고 그 반사파를 받아서 물체의 상태나 위치를 수상관(受像管)에 비춤으로 써 목표 물체를 찾아내는 군사장비, 전파탐지기 즉 레이더 장치의 원리를 찾아낸 것이다.
인간이 지각할 수 있는 사물의 모양과 상태를 연구하는 학문을 '현상학'이라 한다. 이것은 실제로 사실이거나 진실일 지도 모르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이 세상에 대해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는 것 등을 다루는 철학의 한 분야이다.
사물(事物)이란 무엇인가? 일과 물건을 아울러 이르는 말로서 물질 세계에 있는 모든 구체적이며 개별적인 존재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사물'의 '사(事)'는 일이다. 그러면 '일'은 무엇인가? 무엇을 이루려고 어떤 장소에서 일정한 시간 동안 몸을 움직이거나 머리를 쓰는 활동. 또는 그 활동의 대상이 일이다. 그밖에 어떤 계획과 의도에 따라 이루려고 하는 대상도 일이다.
그리고 사물에서 '물(物)'은 또 무엇인가? 인간의 감각으로 느낄 수 있는 실재적 사물. 또는 느낄 수 없어도 그 존재를 사유(思惟)할 수 있는 일체의 것이 물(物)이다. 이렇게 볼 때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 유형이나 무형의 것, 추상적이거나 구체적인 일체의 것을 통틀어 일컫는 적절한 말이 바로 '사물'이라는 단어일 것 이다. 인간이 지각할 수 있는, 사물의 모양과 상태 또는 본질이나 객체의 외면에 나타나는 '상(象)', 즉 모습, 형태가 '현상(現象)'이다. 현상에는 여러가지 자연현 상도 있고 사회적 현상도 있다.
우리말을 공부해보면 할수록 오묘하고 재미있는 현상을 발견할 수 있게 된다. 한 예로 ‘달다’는 말을 생각해본다. 맛이 달다. 꿀이나 설탕의 맛과 같다. 흡족하여 기분이 좋다가 모두 ‘달다’이다. 체중을 달다. 저울로 무게를 헤아리다는 의미도 일반적이다. 천장에 전등을 달다. 물건을 일정한 곳에 걸거나 매어 놓다. 어떤 기기(機器)를 설치하다. 물건을 일정한 곳에 붙여 놓다도 모두 ‘달다’이다.
냄비나 프라이 펜이 가스 레인지 위에서 뜨거워지는 것도 ‘달다’이다. 이 경우는 소리의 길이가, 정확히 말하면 음의 고저장단이 꼭같지 않음은 물론이다. ‘달’의 음이 길고 높다. 단것을 많이 먹어서 '속이 달다'. 시기심이나 질투심 등으로 마 음이 쓰여 속이 달아오르는 상태를 '애가 달다' 또는 '간이 달다' 등으로 말하 기도 하는데, 이때도 후자와 발음이 같아 ‘달’을 길게 소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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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기에 좀 더 생각해 보자고 했지. 그랬더라면 ‘자빡’을 맞지는 않았을 텐데.” 에서처럼 결정적이고 단호한 거절을 자빡이라 한다. 모두가 그의 의견을 ‘일축해 버렸다라는 의미로 '거절'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는 맞선을 본 뒤 ‘퇴짜’를 놓았 다 할 때 '퇴짜'의 의미도 가지고 있다. 바치는 물건을 물리치는 일을 원래 퇴짜(退字)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위의 예들에서 본 바와 같이 '자빡'이란 우리말을 나는 지금까지 들어본 적이 없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내게 생소한 우리말은 이들 외에도 한둘이 아니다. 그야 말로 부지기수(不知其數)다.
같은 땅에 한 가지 농작물만 연이어 지어서 땅이 메마르는 현상을 '흙주접’이라 한다. 일이 복잡하게 얼키고 설키어 ‘가리사니;를 잡을 수 없다. 사물을 분간하여 판단할 수 있는 실마리 또는 사물을 판단할 만한 지각(知覺)을 '가리사니'라 한다. 물결에 밀리어 한곳에 쌓인 보드라운 모래를 ‘목새’라 한다. 목새에서 모래찜질 을 한다. “ 집안이 워낙 ‘억판’이어서 그는 초등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다.” 여기서 이 말, '억판'은 딸깍발이, 가난, 빈털터리 등의 말과 관련이 있다. 신이 없어 맑은 날에도 막신을 신는다는 뜻으로,가난한 선비를 이르 는 말이 딸깍 발이다. 남산골 딸깍발이'는 가난한 선비를 놀림조로 이르는 말로서 옛날 서울 남산골에 살던 선비들이 가난하여 맑은 날에도 나막신을 신고 다닌 데 서 유래한 말이라고 한다.
타작마당에서 곡식에 섞인 티끌이나 쭉정이, 검부러기 따위를 날려 없애려 고 바람을 일으키는 데 쓰는 돗자리를‘부뚜'라 한다. 그리고 부뚜를 흔들 어서 바람을 일으키는 일을‘부뚜질’이라 한다. 두 가지 이상의 일을 한꺼 번에 하는 것이나 일을 얼렁뚱땅하여 넘기는 것을 '얼러방치다’라고 한 다. '지게코'는 짐승을 잡는 올가미의 하나로 짐승이 잘 다니는 길목의 두 나무 사이에 지게 가로대처럼 걸쳐 놓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짜빡, 흙주접, 가리사니, 목새, 억새, 부뚜, 얼러방치다, 지게코 등 위에 예로 든 말들은 모두가 순수한 우리말들이다. 물론 자주 쓰이는 말이 아니 긴 하나 나는 지금까지 이 단어들을 모르고 살아오고 있다. 몰랐으니 내 스스로가 이런 아름다운 말들을 능동적을로 사용한 적은 더구나 있을 수 없다. 이 말들은 모두 근자 KBS 1의 '우리말 겨루기'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우연히 들은 말들이다. 이들은 내게는 생경(生硬)할 뿐이다. 이런 우리말에 지금까지 그다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지나온 과거가 후회 막급하다.
어휘를 능동적 어휘와 수동적 어휘로 그 영역을 둘로 구분할 수가 있다. 자 기가 능동적으로 사용하는 범주에 속하는 말들과 그렇지 못한 말들로 나눌 수 있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본인이 일상 생활에서 말을 할 때나 글을 쓸 때 자주 활용하는 영역에 드는 말과 그렇지는 못하나 남의 말을 듣거나 글로 읽을 때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영역에 속하는 말들로 구분할 수 있다는 말이다. 능동적 어휘를 늘리는 일이 곧 성숙의 과정일 것이다.가을이 되어도 익지 않는 과일이 되어서야....
'어휘(語彙 :vocabulary)'라는 단어는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말이다. 낱말 즉 단어(單語:words)들을 집합적으로 뭉뚱그려 이르는 말이 어휘다. 그러므 로 단어는 수가 많다 적다로 이야기할 수 있으나, 어휘라는 말을 쓸 때는 그렇지가 않다. 어휘가 풍부하다 부족하다 등으로 말해야 한다. 수로보다는 양으로 말함이 옳다는 말이다. 사람이 태어나서부터 생이 다하는 날까지는 자기의 어휘를 늘려과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어휘가 풍부하지 못함은 깊이 있는 생각 즉 사유를 할 수 있는 바탕이 마련 되어 있지 않다는 속내를 드러내 보이는 것이다. 교육은 따지고 보면 그 사람 의 어휘를 풍부히 하는 활동이다. 평생교육의 길이 열려 있다.지금부터 라도 우리말 사랑에 열정을 쏟아야 겠다. 우리말을 사랑하는 것은 애국하는 길이요 겨레 사랑 실천의 장(場)이기도 할 것이다.
2011. 08. 18.
인천 송도에서/草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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