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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훈련학교 스크랩 떡 상
예닮선비 추천 0 조회 12 10.10.16 00:17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떡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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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 4장 8절

주요 요점
떡상의 진설병은 생명의 떡이신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한다. 그러나 떡상이 낮았듯이 겸손한 마음으로 먹어야 하며, 제사장이 성전에서 봉사하면서 먹었듯이 하나님을 섬기는 자에게 영의 배부름이 있다.

오늘은 떡상에 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성전은 성소와 지성소로 되어 있는데 성소 안에는 등대와 떡상과 분향단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 이 성소 안의 떡상을 함께 공부하도록 하겠습니다. 성전의 떡상에 관한 기록도 성막의 떡상과 같았기 때문에 성전에 대한 기록은 대단히 간단합니다. 대상28:16절에 상은 금으로 되었다는 내용과 본문에 상이 열 개인데 외소 즉 성소의 좌우편에 다섯씩 두었다는 내용밖에는 더 추가된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강해도 대부분 모세의 성막을 기초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그럼 성경에 떡은 무엇일까요? 떡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뜻합니다. 그런데 말씀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기록된 말씀이고, 하나는 살아있는 말씀입니다. 기록된 말씀은 성경이고, 살아있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 두 가지가 종합되어 있는 성경 구절이 요1:1입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혹은 구분 되어 있는 곳을 보면 요6:35에 예수님께서 “나는 생명의 떡이니” 라고 하셨고, 렘15:16에 “내가 주의 말씀을 얻어 먹었사오니” 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기 떡상의 떡을 이 두 가지의 관점에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다루고자 하는 부분은 떡 즉 진설병에 관하여, 이 진설병을 진열해 놓은 떡상에 관하여, 그리고 우리가 이 떡을 먹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에 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1.진설병에 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레24:5-7에 “너는 고운 가루를 취하여 떡 열 둘을 굽되 매 덩이를 에바 십분 이로하여 여호와 앞 순결한 상 위에 두 줄로 한 줄에 여섯씩 진설하고 너는 또 정결한 유향을 그 매 줄 위에 두어 기념물로 여호와께 화제를 삼을 것이며” 했습니다.
진설병에 관하여 성경에는 몇 가지의 원칙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면 고운 가루로 만들어라, 진설병은 기름을 부어 반죽한다, 열 둘을 만들어라, 반드시 구워서 만들어야 한다, 떡 하나 하나의 크기는 에바 십분의 이 4.4리터 그러니까 대승 두되가 넘는 떡덩입니다, 그리고 두 줄로 쌓아라, 다른 떡을 올려서는 안된다, 매 안식일마다 새 떡을 진설하라, 항상 진설되어 있어야 한다, 진설병 위에 유향을 놓아라 등의 규칙입니다.


이 진설병을 예수님의 관점에서 살펴보면 진설병이 고운 가루이듯 예수님은 무흠하신 분이시고, 열 둘이듯 하나님의 백성들 모두를 위해서 오셨고, 구워서 만들 듯 고난을 통하여 우리의 떡이 되셨고, 기름으로 만들었듯 예수 안에 성령이 계시며, 항상 떡이 있었듯이 예수님은 우리의 영원한 생명의 양식이 되시고, 떡 위에 유향이 있었듯이 우리를 위해 지금도 중보자가 되시는 분이심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이 진설병을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생각해 보면 이 고운 가루의 떡은 바로 일점 일획도 틀림이 없는 하나님의 말씀임을 뜻하며, 이 떡들은 기름과 함께 반죽했는데 성경은 성령으로 영감된 말씀임을 보여주고, 12개의 12는 선택수로 하나님 백성들을 가리키고, 성전의 10개의 떡상은 10은 전체를, 120개의 떡은 세상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의 양식이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 떡을 두 군데에 여섯 개씩 포개서 진설함은 둘은 증거의 수로서 하나님의 말씀은 틀림없는 진리임과 동시에 반드시 널리 전파되어야 함을 보여주며, 진설된 떡 위에 유향을 놓았는데 유향은 기도로서 성경은 반드시 성령의 감동으로 이해됨을 암시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생명의 떡도 먹지 않으면 안됩니다. 예수는 믿어야 하고, 말씀은 날마다 상고해야 합니다. 욥23:12에 “내가 그의 입술의 명령을 어기지 아니하고 일정한 음식보다 그 입의 말씀을 귀히 여겼구나” 했습니다. 이 욥의 말씀 신앙을 그대로 실천한 사람이 무디 선생입니다. 그는 말씀을 대하기 전에는 결코 식사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가지고 식사 전에 말씀을 묵상하고 취하는 생활을 일생 동안 지켜 나갔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는 역사 속에 몇 사람이 나올까 말까한 귀한 전도자였던 것입니다. 크고 귀한 종이 되고 싶으싶니까? 방법이 있어요. 성경을 많이 보십시오. 그러나 반드시 성령의 조명을 받아 보십시오. 그러면 어던 방향에서든지 반드시 세상을 바꿀 귀한 일군이 될 것입니다.
애굽에 흉년으로 애굽 사람들이 모두 자기의 재산을 바로에게 바치고 주변 모든 나라 사람들까지 바로왕의 지배를 받게 된 것도 바로 애굽에 양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바로왕은 애굽 본토인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요셉의 도움으로 양식을 백성에게 팔아 애굽을 합법적으로 접수한 바 되었습니다. 양식이 없으면 죽습니다. 식량은 원자탄보다 귀한 무기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을 연구하고 더욱 풍성한 말씀을 성도들에게 공급해야 하겠습니다.


구약의 주석서라는 유대의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인데 이 떡을 맡는 것은 가르모 가문에서 맡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떡은 일 주일 내내 부패하지 않고 신선했으며, 일 주일 내내 뜨끈 뜨끈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놀라운 것은 그 떡을 나눌 때 콩알만하게 나누어 주어도 먹는 이들이 배가 불렀다고 합니다. 그래서 진설병에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증거가 확실히 나타났다고 합니다. 사람의 생각으로 어떻게 그럴 수가 있겠느냐 하겠지만 이런 이적들이 성막과 성전에서는 비일비재했다고 합니다. 마치 호렙산에서 가시떨기에 불이 붙었으나 타지 않고 있었던 것처럼 사람들은 여호와의 성전에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수없이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바로 거기 계시겠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가르모 가문에서는 이 떡을 만드는 비결을 철저한 비밀에 붙였고 개인적으로도 이 떡을 만들어 먹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이적의 덕이 되게 하심은 바로 이 떡이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는 것을 확신시키기 위해서였습니다.


2.이제는 떡상에 대해서 알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출25:23-29에 “너는 조각목으로 상을 만들되 장이 이 규빗, 광이 일 규빗, 고가 일 규빗 반이 되게 하고 정금으로 싸고 주위에 금테를 두르고 그 사면에 손바닥 넓이만한 턱을 만들고 그 턱 주위에 금으로 테를 만들고 그것을 위하여 금고리 넷을 만들어 네 발위 네 모퉁이에 달되 턱 곁에 달라 이는 상 멜 채를 꿸 곳이며 또 조각목으로 그 채를 만들고 금으로 싸라 상을 이것으로 멜 것이니라” 했습니다.
여기 떡상은 넓이 90, 폭 45, 높이 70cm밖에 안되는 낮고 작은 금상이었습니다. 재료는 조각목으로 금으로 쌌습니다. 이렇게 귀하지 않는 조각목에 작고 낮은 것은 무엇일까요? 이것은 제 삼위의 하나님이신 예수께서 육신을 입으시고 낮고 천하게 떡집이라는 뜻의 베들레헴에 오신 것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은 아주 우리의 생명의 떡이시라는 것을 보여 주시기 위해서 말의 밥그릇인 구유에 오셨습니다.


또 이 낮고 작은 떡상은 우리가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대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성전에서 일하는 제사장들의 금기사항이 있었는데 그것은 앉아서 일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떡을 먹을 때마다 낮은 상 연고로 언제나 허리를 굽혀서 먹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의 고대 문서에 “내가 허리를 굽혀 주의 떡을 먹을 때에 내가 나를 낮추었더니 주께서 내 영혼을 만족케 하시고” 라는 표현이 많이 나타납니다. 여기에는 귀한 진리가 숨어 있습니다. 우리가 겸손해야 영생의 떡을 먹습니다. 겸손해야 예수도 믿게 되고 겸손해야 하나님의 말씀도 은혜가 있습니다. 그래서 베다니의 마리아가 예수의 발 아래서 말씀을 들었던 것도 그녀의 겸손을 의미합니다. 그런 사람에게 역사가 나타납니다(살전2:13).


또 떡상의 특징은 손바닥 높이의 테두리가 있어 떡이 떨어지는 것을 방지 했습니다. 출25:25 “그 사면에 손바닥 넓이만한 턱을 만들고 그 턱 주위에 금으로 테를 만들고” 라고 했습니다. 왜 하필이면 손바닥이라는 표현을 썼을까요? 손은 행함입니다. 말씀을 들었으면 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떡이 땅에 떨어져서야 되겠습니까? 이와 같이 말씀이 땅에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그 말씀대로 행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할 때도 무교병을 먹었는데 출12:11에 “너희는 그것을 이렇게 먹을지니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이제는 여행자가 급히 먼 여행을 떠나기 위해 행장을 갖추듯 말씀의 떡을 순종과 행함의 자세로 먹도록 하십시다. 가장 복있는 사람은 말씀을 듣고 행하는 사람입니다.

 


3.이 떡은 누가 먹을 수 있을까요?
요6:51에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하신대로 이 떡은 우리가 반드시 먹어야 할 떡인데 그럼 과연 누가 먹을 자격이 있느냐는 말씀입니다. 이 떡에 대한 구약의 규례를 보면 레24:9에 “이 떡은 아론과 그 자손에게 돌리고 그들은 그것을 거룩한 곳에서 먹을지니” 했습니다. 눅6:4에 “그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다만 제사장 외에는 먹지 못하는 진설병”이라고 라는 말씀도 있습니다. 이와 같이 진설병은 제사장들의 양식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문제입니다. 이 떡은 제사장밖에는 먹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실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벧전2:9에 우리 성도들을 왕같은 제사장들이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모두 다 이 영의 진설병을 먹을 자격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제사장이라고 다 이 떡을 먹을 수 있는 것은 아니란 점입니다. 이 떡은 레24:9처럼 오직 거룩한 곳 즉 성전에서 먹게 되어 있습니다. 즉 제사장이 번제단과 물두멍의 과정을 거쳐서 성전에 들어와서 제사장의 직무를 수고할 때만이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사장들은 지난 한 주간 동안 진설해 놓았던 떡을 이 한 주간 동안 성전에서 수고하면서 먹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무엇보다 매일 예배하고 기도하고 남을 섬기는 제사장의 직무를 감당해야 합니다. 그래서 벧전2:5에 “너희도 산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했습니다. 우리의 체험도 그렇습니다. 우리도 이 신령한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할 때 영혼의 양식을 얻습니다. 그러므로 예배하고 기도하고 찬송하고 전도와 봉사와 겸손 등 등의 제사장 직무를 수행할 때 은혜를 받습니다. 그러므로 제사장의 신분만 가지고는 안됩니다. 그 직무를 수행해야 합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생명의 양식으로 배부르게 채워 주실 것입니다.

 
그런데 안식일마다 진설했다는 사실입니다. 안식일이 무엇입니까? 새 떡이 진설되는 날입니다. 일반적인 의미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 주일성수 잘 해야 함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신령한 측면으로 보면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안식할 때 심령에 공급되는 영의 양식으로 충만케 됨을 보여줍니다. 즉 가나안 땅의 안식은 곧 이스라엘의 배부름이었던 것과 같습니다(신8:8:8-10). 그러므로 내가 주가 되어 염려하지 말고 예수님을 주로 삼고 평안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항상 떡이 있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사장들은 이 말씀을 지키기 위해서 새 떡으로 옛 떡을 밀어서 진설했습니다. 그 만큼 제사장들은 말씀을 철저히 준수했습니다. 이와 같이 말씀이 고갈되면 심령이 죽습니다. 사람은 먹지 않으면 죽게 되어 있습니다. 이와 같이 영혼도 말씀을 먹지 않으면 죽습니다. 천하장사도 먹어야 장사입니다. 성경은 가장 복있는 사람은 말씀을 사모하여 그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라고 증거합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리라고 하셨습니다. 주님께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도 목마르지도 않습니다. 우리 영혼의 생사 건강 형통의 여부가 이 말씀에 달렸습니다. 우리 심령에 말씀이 항상 잘 진설되어 있는지 살펴 보십시다. 신령한 제사장의 직분을 잘 감당하십시다. 그래서 말씀충만하여 영육간의 축복이 넘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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