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송 지하차도 참사 우리 탓 아냐”...서로 책임 떠미는 관련 기관들
지난 15일 육군 특수전사령부 13특수임무여단 장병들이 소방요원들과 충북 청주시 오송읍 궁평리 지하차도에서 실종자 수색작전을 펼치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조선일보
충북 청주 오송 지하차도 침수 참사와 관련해 미리 교통통제가 이루어졌다면 막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충북도와 청주시 등이 서로 책임 회피에 급급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경찰은 사고의 원인과 책임을 규명하기 위해 관련 기관을 대상으로 철저히 조사를 진행한다는 입장이다.
◇청주시, 여러차례 통제 요청에도 ‘묵묵부답’
청주시의 한 관계자는 17일 “구청으로부터 홍수경보 위험 사실을 통보받아 관련부서와 상의한 결과 인근지대가 논밭이어서 주민대피 명령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청주시 흥덕구청은 사고 당일인 15일 오전 6시34분쯤 금강홍수통제소로부터 ‘미호천교가 심각 단계에 도달했다. 계획홍수위(제방이 버틸 수 있는 한계수위)를 대비해서 지자체 매뉴얼대로 통제해 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흥덕구청은 이 내용을 같은 날 오전 6시36분 청주시청 하천과에, 오전 6시39분쯤 청주시청 안전정책과에 각각 전달했다. 하지만 청주시청은 이 내용을 오송 지하차도를 관리하는 충북도로관리사업소에 전달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또 청주시는 소방당국의 요청에도 조치를 취하지 않은 사실도 드러났다. 소방당국에 따르면 사고 당일 오전 7시 51분쯤 “미호강 제방이 유실될 것 같다”는 민원인 신고가 접수됐다. 오전 8시 3분쯤 현장에 도착한 소방대원들은 “제방 둑이 무너져 미호강이 범람하고 있다”고 상황실에 보고했다. 상황실은 이 사실을 청주시 당직실에도 즉각 전달했지만, 청주시는 도로 관리주체인 충북도청에 통보하지 않았다.
오송 지하차도 침수사고 관련해 브리핑을 하는 이우종 충북도 행정부지사. /충북도© 제공: 조선일보
◇충북도와 행복청의 책임 공방
지하차도 관리를 맡은 충북도는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의 1차 책임을 주장하고 있다. 제방을 제대로 쌓지 않아 직접적인 사고원인을 제공했다는 것이다.
17일 행복청은 “설계빈도 100년 계획홍수위(28.78m)보다 0.96m 높게 교량 하부까지 최대한으로 축조했다”며 “유례 없는 폭우로 월류가 우려돼 보강작업을 한 것 뿐”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도로관리 주체인 충북도도 자유롭지 못하다. 행정안전부는 지난 2019년 전국의 위험지하차도 145곳을 세 등급으로 분류하고 ‘호우경보’ 등이 발령되면 통제하도록 했다. 궁평 2 지하차도는 3등급 지하차도로 당시 호우경보가 발령됐기 때문에 통제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이에 대해 충북도 관계자는 “도 매뉴얼에는 지하차도 중앙이 50㎝가 잠겨야 도로를 통제하게 돼 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충북도가 보유한 매뉴얼은 행안부가 관련기준을 내놓기 전인 2017년 5월 작성된 ‘지하공간 침수 방지를 위한 수방기준 실무 매뉴얼’로 파악됐다. 이 매뉴얼에는 ‘50㎝' 관련 내용은 없었다.
◇경찰 “철저 수사로 원인과 책임 규명”
경찰은 이들 관련 기관 모두를 수사 대상에 올릴 것으로 예상된다. 충북경찰청은 17일 송영호 수사부장(경무관)을 본부장으로 하는 ‘오송 지하차도 참사’ 전담 수사본부를 꾸렸다. 당초 전담수사팀 수준으로 편성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지만 규모 확대를 결정했다. 수사본부에는 88명의 수사관이 배치됐다.
경찰은 미호강 홍수 경보에도 불구하고 하천으로부터 300∼600m거리에 있는 궁평2지하차도에 대해 교통통제가 이뤄지지 않은 경위와 이유 등을 우선 조사할 것으로 보인다. 홍수경보를 발령한 금강홍수통제소, 지하도 관리책임이 있는 충북도, 통제 요구에도 조치하지 않은 청주시와 흥덕구청 등 관할 지방자치단체 모두 수사 대상이 될 전망이다.
경찰은 직접적인 사고 원인으로 지목되는 미호강 제방관리 부실에 대해서도 수사한다. 이 지역 주민들은 무너진 제방이 흙으로 만들어 제 역할을 못했고, 참사 당일에도 굴착기로 흙을 긁어 쌓아 올리는 모습을 목격했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행복청에 대해서도 수사하겠다는 방침이다.
지하차도와 제방관리 등을 소홀히 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이를 관리하는 기관 관계자들은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
17일 오전 궁평2지하차도 침수 사고의 직접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미호천 제방에서 합동감식이 진행되고 있다. /신정훈 기자© 제공: 조선일보
◇무너진 제방 현장감식
경찰은 이날 지하차도 수색과 함께 무너진 제방 일대에서 현장감식을 진행했다. 현장감식에는 충북도경찰청 과학수사계, 국립과학수사연구원, 토목 전공 교수, 금강유역환경청, 소방청 등 관계기관 20여명이 참여했다.
충북경찰청 관계자는 “현재 구조 작업이 마무리되지 않아 무너진 제방 일대에 대한 현장감식을 먼저 진행했다”며 “지하차도에 대해서는 수색이 마무리되는 대로 감식을 진행해 한 점의 의혹도 없이 엄정하게 수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무조정실도 이번 사고와 관련한 원인 규명을 위한 감찰에 착수했다. 국무조정실은 ‘오송읍 주민 긴급대피’와 ‘궁평지하차도 긴급통제’를 요청하는 112 신고가 각각 한 차례씩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한편 오송 지하차도에서 침수된 차량은 당초 알려졌던 15대에서 2대 늘어난 17대로 확인됐다. 또 밤샘 수색작업으로 17일 오전까지 시신 4구가 추가로 발견되면서 사망자는 13명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