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익중의 '바른 자세, 많은 노력' - 소설가 정우련의 LA뉴욕 미술 기행

[세석평전]

일상의 예술 이미지 '밥 뜸들이 듯' 끊임없이 작품화,,,

 2009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산을 오르다: 멀티플/ 다이얼로그∞' 전의 모습.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작품 '다다익선'이 가운데에 있고 총 길이 200m에 이르는 나선형의 벽면에 강익중의 작품들이 설치됐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한국관에 전시돼 있는 강익중의 '25개의 달항아리'.

 강익중의 3인치 그림.

도화지 위에 '바른 마음, 많은 노력'이라고 적어서 작업실 문에 붙여 놓았다. 출근을 하면서, 잠깐 달걀을 사러 나가면서 한 번씩 쳐다본다. "형, 바른 마음이 도대체 어떤 마음이야? 많은 노력은 또 뭐고?" 가끔씩 작업실에 들리는 후배가 물어본다. "글쎄…. 나도 잘 모르겠다." 요즘 배운 자전거 실력으로 후배와 함께 작업실 동네를 한 바퀴 돌기로 했다. "형, 넘어지지 않으려면 먼저 자세를 바르게 하고 계속 폐달을 밟아줘야 돼." "알았어, 고맙다. 바른 자세, 많은 노력."(2004년 강익중)

"바른 자세, 많은 노력", 그 말의 재치 때문에 슬며시 웃음이 난다. 삶이든 예술이든 진실은 이렇게 단순한 데에 있는 것을. 그가 건넨 책을 몇 장 읽으면서 나는 그가 참 순수한 사람이구나 한다.

그를 만나기 며칠 전에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한국관에서 본 그의 작품 '달항아리'가 떠올랐다. 25개의 은은한 달항아리가 한국관의 이조백자며 상감청자들과 착 감기듯이 잘 어울렸다. 마침 동행한 조각가가 그의 고교 스승이었다. 그는 강익중이 깎은 밤처럼 깨끗한 얼굴에 남 앞에 잘 나서지 않고 말없이 뒤에 가만히 서 있는 신중한 학생이었다고 기억했다. 그를 한 번 만나고 싶었다.

지하철 안의 일상에서 시작된 '3인치 그림'

그의 작업장은 뉴욕 첼시 25번가의 빌딩 20층에 있었다. 온통 유리창으로 된 베란다 바깥으로, 허드슨강이 흐르고 빌딩숲이 즐비한 맨해튼 시가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야경이 기가 막혔다. 가만히 보니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한국관에서 본 그의 달항아리가 한쪽 벽면에 전시되어 있고 맞은 편 벽면에는 채색이 있는 작은 사이즈의 달항아리였다. 넓은 실내에는 재즈가 흐르고 탁자에는 우리를 위한 와인이 놓여 있었다.

자연스레 이야기는 타임머신을 타고 3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그가 가장 존경했던 은사님이 아홉 번 정학당한 주먹쟁이 미술부 선배의 재능을 어여삐 여겨서 빌다시피 하여 퇴학을 막은 이야기, 그 선배가 유학시절 방 한가운데에 그 은사님 사진 한 장만 딱 걸어두고 공부해서 교수가 된 이야기, 고3 때 공부 안하고 나이 속여서 국전에 출품한 이야기, 대학에 가서는 그림에 흥미를 잃고 방황했던 이야기, 엉뚱하게도 UFO 연구회를 만들어 놀다가 교환학생으로 온 아내를 만나 미국에 오게 된 이야기까지. 시종일관 웃음이 터졌다. 재즈 선율과 좋은 와인이 있어서 더욱 유쾌했다.

그가 뉴욕으로 간 해는 1984년이다. 학비를 벌기 위해 알바를 하느라 도무지 그림 그릴 시간이 나지 않는다. 낙담하다가 지하철과 버스 타는 시간이 일주일에 18시간이나 된다는 걸 알게 된다. 그 시간에 작업을 하자고 조그만 캔버스를 여러 개 만들어 흔들리는 지하철과 버스 안에서 일상의 단편적 풍경을 그린다. 지하철 안의 군상들의 모습, 삶의 희로애락, 영어단어공부 등 마치 하루의 일기 같은 것들이 문자나 기호그림으로 이 작은 캔버스 안에 담긴다. 이것이 그 유명한 강익중의 3×3인치(3인치는 7.62㎝) 그림이다. 그런 그림이 1년 만에 1천 개가 모인다. 이때만 해도 이 작은 그림들이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대형 모자이크 작품이 되어, 온 세계에 바이러스처럼 퍼져나가, 세상 사람들의 사랑을 받게 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단다.

"작가는 단순하고 유머러스해야"

그는 이제 더 이상 지하철 안에서 흔들리며 그림을 그리지 않아도 될 만큼 성공했다. 그가 좋아하는 전 세계 아이들 그림을 모아서 벽화를 만드는 어린이 병원 프로젝트를 재밌게 하고 있다.(2000년과 2002년에는 북한 어린이 그림을 모아서 남북통일을 기원하는 설치작품을 할 계획으로 평양을 방문했다.) 올 5월에 있을 상하이 비엔날레 한국관 건설이며, 현대화랑 개인전 준비까지, 3개월째 강행군 중이었다. 이 방대한 작업량을 소화하기 위한 작업장이 첼시 25가 외에도 2군데나 더 있고 그를 도와주는 스태프도 있다. 게다가 남편 뒷바라지를 위해서 자신의 미술을 포기한, 변호사이자 성공한 사업가인 헌신적인 아내가 있고, 아빠를 닮아 그림 잘 그리는 아들도 있다. 그의 작업 환경은 예전과 확연히 달라졌다. 하지만 유학 초기 3인치 그림을 그리면서 뉴욕 지하철에서 마음에 못질한 그 초심은 변함이 없어보였다. 그는 여전히 집에서 작업장까지 걸어 다니며 뉴요커로서의 일상속에서 자신의 예술적 이미지들을 건져올리고 있다.

그는 작가가 단순하고 유머러스해야 한다고 말한다. 미국에선 잔머리가 통하지 않는단다. 식당에서, 급하다고 뜸도 안 든 밥을 팔면 그걸로 끝이다. 저 집 밥은 뜸이 안 들었더라 하고 금방 소문이 난다고. 뜸을 들여야 된다. 밥에 뜸이 들면 냄새가 난다. 그러면 그 냄새를 맡고 식당에 사람이 찾아온다. 그의 삶과 작업의 원칙이기도 하다.

그가 1997년 베니스비엔날레에서 특별상을 받았을 때, 여기저기서 전시 초청이 왔지만 그는 모두 거절했다. 상 받고 그러는 게 그로서는 너무 상업적으로 보였고 자신의 체질에는 도무지 맞지 않았다. 첼시에 살지만 한 번도 화랑에 들어가 본 적이 없을 정도로 그는 의도적으로 10년 동안 화랑 전시를 안했다고 한다. 주위 친구들이 화랑 전시에 너무 소진을 많이 하는 것을 보고, 잘 나갈 때 자신은 화랑 전시를 딱 멈춘 거라고. 매너리즘에 빠진 작가에겐 사람들이 싫증을 낸다고. 이미 보여줄 걸 다 보여주고 나면, 작가로서는 끝이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우선은 많은 양의 작품을, 충분히 밥에 뜸을 들이듯이 만드는 게 그가 가진 작가로서의 순수성이다.

백남준이 말했다 "강익중은 전생의 내 아들"

2009년 2월 6일부터 1년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산을 오르다: 멀티플 다이얼로그∞' 전은 강익중의 1984년 유학시절부터 최근까지의 작품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전시였다. 그의 작품 '삼라만상'은 백남준의 '다다익선'을 중심으로 벽면 총길이 200m의 나선형 공간에 설치됐다. 여기에 3×3인치 작품들을 바탕으로 김구 선생의 글을 옮긴 문자그림들, 부처 그림들, 목각작업, 최근의 달항아리를 모티브로 한 큰 그림까지 그의 작품이 종합적으로 설치되었다. 바람소리, 물소리, 새소리까지 들리는 음향장치를 부착했고 관객들이 모니터에 실시간으로 비치도록 하는 작품도 설치도 했다. '우주비빔밥입니다'라고 적힌 찬장에 진열된 9그릇의 비빔밥도 강익중의 기발한 생각을 보여준다. 두 사람의 미술을 비빔밥에 비유한 모형이다. 6만여 개나 되는 이 작품들을 마치 등산을 하듯이 오르다 보면 그가 얼마나 스승에 대한 깊은 존경과 신뢰를 품고 있는지 절로 읽힌다. 이 전시는 스승 백남준에게 헌정하는 일종의 헌사이자 지난 1994년 휘트니 미술관에서 2인전 형식으로 열렸던 '멀티플/다이얼로그'의 후속 전시이기도 하다. 백남준은 1994년 휘트니 미술관 2인전에서 그에게 다음에는 서울에서 전시를 하자고 제안을 했는데 그로부터 15년 만에 생사를 넘은 약속이 지켜진 셈이다.

백남준은 무명작가인 그를 두고 전생에 내 아들이었다고, 나보다 훨씬 유명해질 거니까 두고보라고 만나는 사람들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그에게 직접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야기들은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 강익중에게 들려왔다. 어찌나 그를 띄웠던지 "강익중은 아주 저명한 홍보 에이전트를 두었다"는 농을 들을 정도였다.

마침내 1994년에 뉴욕의 휘트니 미술관에서 백남준(62세)과 강익중(34세)의 2인전이 기획되었을 때, 백남준은 독일에 있으면서 휘트니 미술관 관계자에게 강익중에게 좋은 자리를 주라는 팩스를 보내는데, 비록 거절되었지만 그의 후배 사랑에 모두들 놀란다. 오픈식 때 첫 대면에서 백남준의 순수한 에너지가 자신에게로 막 날아오더라고 강익중은 말한다.

30세기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 거라고 생각하느냐고 질문을 던지는 백남준. 아무도 20세기를 말하지 않았을 때 그가 30세기를 말한다. 혹시 21세기를 말씀하시는 거 아니에요? 강익중이 묻는다. 아니라고 30세기라고. 그때 쇼크를 먹었단다. 아 저 분은 무당은 무당인데 낮에 별을 보는 무당이구나 하고. 이번엔 진짜 무당이야기를 한다. 제주도에 칠성신을 모시는 무당이 있다. 이 양반이 굿을 하려고 보니까 칠성신 위패가 없었다. 둘러보니 칠성사이다가 한 병 보이는 거다. 칠성신 위패나 칠성사이다나 칠성은 칠성이다. 무당은 칠성사이다 하나를 딱 놔두고도 신나게 굿을 하더란다. 자기가 우주의 중심이란 걸 아는 사람에게 형식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거다. 칠성무당이 그렇고 백남준이 그렇고 강익중이 그렇다.

빛나는 많은 작품 수로 관람객 전율시켜

1994년에 휘트니 미술관에서 열린 2인전으로 강익중은 일취월장했다. 아트 스페이스 서울의 개관기념전에 초대되어 7천여 점의 회화, 목각, 드로잉, 초콜릿, 입체 등 모두 5만 점 가까이가 출품되었다. 사람들은 그 많은 작품 수에 압도당하고 빛나는 그의 작품에 전율을 느꼈다고 한다. 또한 목각 작품 중 상당수를 LA현대미술관(MOMA)에서 소장품으로 구입해갔다.

그는 자신이 정말 인덕이 많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가난한 유학생 시절 희한한 그림을 그리는 친구가 있다고 자기 학교 미술교수에게 소개한 룸메이트에서부터, 수화 김환기의 아내 고 김향안 여사, 친구 이주헌, 그 밖에도 많은 좋은 사람들을 만난 덕분에 오늘의 자신이 있는 거라고.

그의 작업장을 나서자 '달항아리' 같은 보름달이 첼시 25번가를 환히 밝히고 있었다. 그가 한사코 우리들의 숙소인 스타인웨이로 가는 R트레인까지 데려다 주겠다고 나서는 바람에 우리는 함께 걸었다. 달빛이 유난히 밝았다. 그의 스승인 작가 S는 그가 대견해서 어쩔 줄 몰라했다. 무언가 주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한참을 부시럭거리더니 30년 동안 품에 지니고 다니던 벼락 맞은 대추나무 부적을 건넸다. 이젠 내게 필요없는 거야. 네가 할 일이 더 많아. 부적이 그에게로 건너갔다. 그의 작업장에서 듣던 재즈가수의 노랫소리가 귓가에 맴돌고 있었다. 유 아 소 뷰티풀(You are so beautiful). 유 아 소 뷰티풀…. jul6090@hanmail.net

설치작가 강익중은

1960년 청주 출생. 홍익대 미대 졸업. 프랫 인스티튜드 대학원 졸업. 휘트니미술관에서 백남준과 2인전. 베니스비엔날레 특별상.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 벽화, 유엔본부벽화 작업. 백남준에 이어 두 번째로 엘리스 아일랜드 상 수상(미국사회에 공적을 남긴 이민자에게 수여하는 상). 세계어린이병원 25곳에 작품을 설치하는 프로젝트 진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