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맑혀 깨달으면 온갖 것이 뜻대로 이뤄져 / 통광 스님
명나라 때에 학해(學海)라는 분이 있었는데,
운곡선사를 만나 자기 호를 요범(了凡)이라고 바꾸었습니다.
그 분이 돌아가실 적에
자기 아들에게 네 가지 훈계(訓戒)를 했다고 그래요.
첫째는 세울 립(立) 자, 목숨 명(命) 자, 입명(立命)입니다.
즉, 자기 운명을 자기가 설립하라는 말입니다.
불교 말로 하면, 원(願)을 세우고 노력하면
그 원이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고,
사회적으로 말하면 자기 인생에 어떤 목표를 세우고 노력하면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있어서 어떤 원력(願力)을 세워야 된다는 거예요.
지금도 잘 살고 계시겠지만 이보다 더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크나큰 꿈과 목표가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개과(改過)입니다. 고칠 개(改) 자, 허물 과(過) 자.
자기의 허물을 자기가 고치라는 것입니다.
따지고 보면 우리의 생활은 허물 아닌 것이 없습니다.
허물이 많은데 어떤 것부터서 고쳐나가야 하느냐.
자기 원에 위배되는 행위부터서 과감하게 고쳐나가야
목표하는 바를 달성을 할 수 있다는 겁니다.
예를 들면 60대 이상 된 분이 내가 지금 다른 바람이 있겠느냐.
건강하게 사는 것이 남은 여생이라 이렇게 원을 세웠다면,
자신의 건강에 해치는 과음을 한다든지,
과로를 한다든지 이런 것을 줄이고 섭생을 잘 할 때에
건강하게 장수할 수 있다는 거예요.
▶福 짓지 않으면 福 받을 수 없어
세 번째 아주 중요한 것은 쌓일 적(積) 자, 착할 선(善) 자,
적선을 해야 된다는 거예요.
선행공덕(善行功德)을 많이 쌓아야 자기 원 세운 것이 성취된다.
복을 짓지 않으면 복을 받을 수가 없다는 겁니다.
유교의 주역에 보면, 적선지가(積善之家)에 필유여경(必有餘慶)이라.
적선한 집안에 반드시 많은 경사가 있기 마련이다. 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타행(利他行), 남에게 도움이 되는 그런 것을 많이 해야만
그 원이 이루어지지, 그냥 이루어지는 게 없다는 거예요.
보현행원품(普賢行願品)에 보면
법공양(法供養)이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어떤 것이 법공양이냐?
여설수행(如說修行), 부처님 말씀한 대로 수행을 잘 하는 것과
이익중생(利益衆生), 모든 중생에게 이익 되는 일을 많이 하는 거
그것이 법공양이라는 거예요.
그리고 그 다음 섭수중생(攝受衆生),
중생들을 껴안아서 받아들이는 것과
대일체중생고(代一切衆生苦), 일체중생의 고통을 자기가 대신해서
받아줄 정도로 선행공덕을 많이 쌓을 때에
자기 원 세운 것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냥 이루어지는 게 없어요. 그냥 이루어진다면
모두 그 좋은 일, 뭐 큰 좋은 거 다 성취하고 싶지요.
성취하고 싶다고 해 가지고 어디 그게 다 성취됩디까.
안 이루어지는 것은 적선을 하지 않아서,
선행공덕을 쌓지 않아서입니다.
그 다음 네 번째는 겸덕(謙德)이에요.
겸손할 겸(謙) 자, 덕 덕(德) 자, 겸손함 자체가 바로 덕입니다.
그래서 우리 절에 들어오면 처음으로 배우는
초발심자경(初發心自警)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거기의 범유하심자(凡有下心者)는, 무릇 하심을 하는 자는
만복(萬福)이 자귀의(自歸依)니라.
온갖 복이 그 사람한테로 모아든다는 거예요.
그래서 하심(下心)을 해야만 됩니다.
우리 지구상에 제일 큰 것이 바다 아닙니까?
그 바다가 지구의 삼분의 이 이상 된다고 그러거든요.
근데 왜 이렇게 클까요? 제일 밑바닥에 있기 때문에,
백천중류(百千衆流)를 다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내 몸을 낮추고 하심 할 때에 덕이 쌓이고,
덕이 쌓일 때에 온갖 것이 다 성취된다고 그래요.
덕 덕(德) 자는 주역에서 얻을 득(得) 자로 풀이합니다.
‘덕(德)은 득야(得也)라.’ 덕은 얻어지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자녀들을 낳을 때 득남했다,
혼자 사는 분이 배우자를 얻어갔다,
이렇게 하면 배우자를 만나는 것도 덕에 속한다는 거예요.
덕을 쌓을 때에 자기 마음에 맞는 배우자를 만날 수가 있다는 겁니다.
사회의 인간관계든지 그런 것들이 다 덕에 속한다는 거예요.
▶부처님 加被받으면 願 이뤄져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바라는 것은
따지고 보면 이 네 가지에 불과합니다.
토정 선생이 쓴 토정비결(土亭秘訣)에도 세상 사람의 원은
네 가지에 불과하다. 내원강령(內願强靈)입니다.
안으로는 몸이 강하고 마음이 신령스럽게 되고,
밖으로는 부귀를 원한다고 그랬어요.
이 모든 것도 덕을 쌓아야 얻어지는 것입니다.
좀 있으면 선거를 하는데, 그것도 평소에 덕을 쌓고,
자기 인격을 갖추고, 모든 것을 준비해 놓는다면
세상 사람들이 그 사람 놔두고 어느 사람 뽑겠어요.
갑자기 벼슬욕심이 생겨 어떻게 베풀다 보면 선거법에 걸리고,
그게 어디 하루아침에 됩니까?
평소에 적선을 많이 할 때에
그 원하는 것이 뜻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원을 세우고, 원에 위배되는 행위를 고치고,
적선을 하고, 겸손하더라도 원하는 것이
뜻대로 안 이루어지는 것은 전생에서 좋지 못한 일들을 많이 해서
전생의 숙업(宿業)이 지중(至重)하기 때문이지만
노력하면 늦게나마 이루어집니다.
전생의 업력(業力)을 녹여 없애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부처님에게 의지해 기도를 지극정성으로 하면
그 모든 업장(業障)이 소멸되는 동시에
우리 부처님의 가피(加被)를 받아 원하는 것이
뜻대로 다 이루어진다는 거예요.
기도하면 우리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것을
부처님의 불가사의한 힘을 빌려 되는 것입니다.
그걸 뭐라고 하느냐 하면, 중생감제불응(衆生感諸佛應)이라고 해요.
중생이 불보살을 감동시킬 때
불보살이 중생의 원하는 것을 응해 준다는 거예요.
들어준다는 거예요.
오늘 특히 여기의 친불회 회원님,
그리고 인터넷을 통해 듣는 여러분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원하는 것이 있고, 더 잘 살고 싶으면
요범(了凡)이 말한 이 네 가지를 실천하고,
또 이것으로써 잘 안 되면 부처님께 기도를 잘 하면 됩니다.
대한불교 조계종은 특히 선(禪)을 수행방법으로 소중하게 다루고 있는데,
이 선은 우리 심성을 깨치는 것이 목적입니다.
화엄경이나 육조단경(六祖壇經)을 보면 우리의 마음속에는 일체 지혜와 공덕,
신통묘용(神通妙用) 등 온갖 것이 본래 다 갖추어져 있다고 합니다.
이것들을 자기 원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것은 다겁생(多劫生)에 익힌
무명업식(無明業識), 탐진치 삼독(貪瞋痴 三毒)을 위시한
무명업식(無明業識)에 가려 드러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염불(念佛)을 하던 참선(參禪)을 하던 주력(呪力)을 하던
일념으로 자꾸 하다보면 내 마음이 맑아지고 밝아져서 확 통하게 됩니다.
본래 갖추어져 있는 그것이 내 생각 따라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하나도 없어요.
인간이 잘 사는 것을 오복이라고 합니다.
첫째는 장수, 두 번째는 부귀, 세 번째는 건강, 네 번째는 덕,
마지막 고종명(考終命) 즉, 잘 죽는 것입니다.
이 오복은 우리 마음속에 다 갖추어져있기 때문에
마음만 맑혀서 깨치면
내 생각대로 자유자재하게 살 수가 있다는 거예요.
▶불법 알고 실천하면 부처경지 도달
육조단경(六祖壇經)에 육조 스님이 하신 말씀이 있어요.
우리의 심성은 본래 청정(本來淸淨)입니다.
또 우리의 마음자리는 불생불멸(不生不滅)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일체구족(一切具足)입니다.
지혜와 신통묘용(神通妙用) 온갖 것이 본래 다 갖추어져 있습니다.
또 우리의 마음은 부동(不動)입니다.
예부터서 동하지 않아서 그대로 부처다, 부동이라고 합니다.
또 우리 마음은 능생만법(能生萬法)이라 그랬어요.
우리 마음에서부터서 우주만유가 다 벌여져 나왔다는 것입니다.
능엄경에 보면 무변허공각소행발(無邊虛空覺所行發)이라.
저 무변한 허공이 우리 그 본각(本覺),
진심자리에서부터서 벌어져 나왔다,
각성(覺性)에서 벌어져 나왔다고 합니다.
그러면 이 허공도 우리 마음에서부터서 벌어졌는데
허공에 의지해서 있는 온갖 것들이야 더 말 할 것이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우리 마음을 맑혀서 척 깨달을 것 같으면
온갖 것이 뜻대로 다 이루어지는데,
설령 깨치는 단계까지는 못 갔다 하더라도
마음이 맑아지는 단계만 해도 한 생각 일으키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없다는 겁니다.
‘요범사훈(了凡四訓)’을 통해 기도해서
부처님이 말씀하는 심성자리를 깨달을 때에
이 세간에서 행복하게 사는 것은 따지고 보면 별것 아니에요.
처음엔 세간에 잘 살려고 하다가 그것이 인연이 되어
불법을 알게 되는 거고, 그렇게 해서 우리 심성을 깨달을 때
시공을 초월한 자리에서 또 무한한 시간 공간을 전개해내어
자유자재한 큰 삶을 사는 것이 부처님의 불법입니다.
이 회의 이름이 참 좋네요. 친불회(親佛會)라.
처음에는 부처님과 가까이 하려고 이런 이름을 지었지만,
자꾸 수행하다보면 가까이 할 부처도 없고,
내 자신이 곧 부처가 되어 인연 따라 모든 중생을 교화하는
그런 경지에까지도 갈 겁니다. 아까 보니까 부부도 많은 것 같은데
친불 뒤에 쌍쌍을 붙이면 좋겠어요. ‘친불쌍쌍회’.
여하튼 이런 좋은 계기가 돼서 무비 큰스님을 모시고
또 이렇게 좋은 법문을 듣고 부처님에게 가까이하기 위해서,
또 모든 사람을 부처님에게 가까이하게 해 주기 위해서,
여기에서 인터넷으로 여러 불자들은 말 할 것도 없고,
외국에 계시는 여러 불자님에게도 이렇게 법문을 전하고 있으니
참으로 보는 저의 마음도 흐뭇합니다.
화엄경에 보면, ‘어둠속에 있는 보물도 등불이 없으면 볼 수가 없고,
또 부처님 법을 설하는 사람이 없으면 비록 지혜 있는 상근대지인(上根大智人)이라도
불법을 알 수 없다’는 구절이 있습니다.
우리 무비 스님께서 늘 부처님 법음을 전해줌으로 인해
여러분들은 불법을 알고 신심을 내어 실천하면
부처의 경지에 진득(眞得)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기를 바라면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모두 성불하십시오.
(녹취 및 정리: 김정호 기자)
출처: 지리산 천년 3암자길
제월통광(霽月通光)스님 약력
1959년 범어사에서 덕진(德眞) 여환(如幻)스님을 은사로 하고,
명허(明虛)스님을 계사로 하여 사미계를 수지했다.
1963년 범어사에서 동산 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했다.
1963년 범어사에서 수선안거 이래 10 하안거를 성만했다.
1975년 동국대학교 역경연수원을 수료했다.
1977년 탄허대종사로부터 강맥을 전해 받았다.
1978년 칠불사를 복원했다.
1998년 대한불교조계종 제13교구 쌍계사 주지를 역임했다.
1998년 쌍계사 승가대학장을 역임했다.
1998년 칠불사 회주 및 주지를 역임했다.
2007년 대한불교조계종 역경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