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8일 일요일 맑음. (추가) 뉴욕에 사는 한의사가 된 제자가 찾아왔다.
점심때는 뉴욕에 살면서 한의원을 하고 있는 영대 중문과 졸업생 조갑제 군이 차를 운전하여 찾아왔다. 17년 전에 여기 와서 있을 때에도 이렇게 찾아 주었는데, 그 사이에 사뭇 백발이 되었다. 더구나 턱 수염까지 조금 기르고 있는데 그것까지 사뭇 허였다. 모발이 흰 수준으로 말하면 나와 같은 수준이지만, 나와 같이 앞 머리가 많이 빠지지는 않았다.
전화로 귀가 나빠졌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마실 수 있는 약을 한통 지어오고, 또 청진기, 혈압기 같은 것이 든 가방을 내어 놓더니, 양쪽 손목을 잡고서 진맥을 하여 가면서 이러한 기계로 측정을 하여 보기도 하였다. 우리 내외가 모두 나이에 걸맞게 조금씩 건강이 부실하여 진다고 하면서, 돌아가서 또 약을 지어 보내겠다고 하였다. 이전에는 집 사람이 부정맥이 있다고 하면서 약을 보내어 주어 나았는데, 이번에는 나에게도 약간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도 하였다.
거의 40년 전에 가르친 제자가 이제는 한갑, 진갑을 다 지낸 노련한 한의원 원장으로 변신하여 외국에서 다시 찾아왔으니 참 생각할 할수록 놀랍고, 또 대견하고도 고맙다. 이런 사람만 가까이 있으면 이러한 외국에 나와 살아도 건강에는 큰 걱정이 없을 듯하다.
6월 20일 화요일 맑음. 하버드대학의 중국 전문도서관인 페어뱅크센터 도서관에 가보다.
하버드대학의 중국 전문도서관인 페어뱅크센터 도서관에 가 보았다. 우리 보다 한 세대 이전의 저명한 중국역사 학자로 이 대학의 이름 있는 교수였던 페어뱅크Fairbank 박사의 이름을 따서 세운 연구소에 부속된 도서관이다. 그 분은 중국 대륙과의 수교를 진작부터 강조하여, 대만에서는 그를 국제 공산당의 첩자라고까지 욕을 하였지만 그럴 리는 없었을 것이고, 그 분이 지은(공저) 명저 《동양문화사》는 우리나라에서도 번역되어 나온 것이 있다.
러시아어, 중국어, 일본어로 된 여러 가지 신문과 잡지들이 많이 보이는 게 특색이고, 또 이러한 3종의 언어 이외에 영어로 된 것 까지 4종의 언어로 된 현대 중국의 역사와 정치, 문화에 대한 책을 집중하여 모아 놓은 게, 같은 이 대학의 동양학 도서관인 옌칭도서관과 차이점인 것 같다. 또 여기는 한국 책과 베트남 책이 없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이 도서관에는 "페어뱅크 문고"가 자랑인 것 같다. 영어로 된 중국에 관련된 책이 이렇게 많은 것을 여기서 처음 알게 되었고, 또 놀라게 되었다. 아마 수 천 권이 될 것 같았다. 그 학자가 소장하고 있던 책만 있는가 하였더니, 최근에 나온 이 분야의 신간까지도 자꾸 사서 보충을 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하니 어찌 서양 사람들이 중국, 또는 동양을 모른다고 할 수 있겠는가? 강대국이 되는 것은 단순한 경제력, 또는 군사력 많이 아님을 다시 실감하겠다.
오늘도 또 하나의 보고를 찾아내었다. 그러나 한국어 책은 없으니 좀 섭섭하고, 러시아 말은 모르니 참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옌칭도서관에서 못 보던 중국어, 일본어 신문 잡지가 많으니, 진작 여기에 와 보지 않은게 좀 아쉽게 생각되었다.
21일 수요일 맑음. 90노인이 차를 몰고 다시 찾아오시다.
한국 교포가 거의 없는 조그마한 항구 뉴포트라는 곳에 외롭게 살고 계시는 나의 동향 선배 남석철 선생이 한 열흘 전에도 한번 찾아 오셨더니, 오늘 또 차를 몰고 찾아 오셨다. 전번에 오셨을 때 우리가 점심을 사 드렸더니, 오늘은 기필코 그것을 갚으려고 오신 것 같았다.
원 고향은 영해 괴시[호지말]마을이며, 나의 외가 일족으로 젊을 때 직업은 그곳 병원의 검사실 요원이셨는데, 금년에 만 85세이다. 1시간 남짓하면 운전하여 올 수 있는 길을 두 시간 가까이 걸려서 운전하며 오시는 것을 보니 아직 그 정도의 자신은 있는 것 같으나, 양쪽 귀에는 보청기를 꽂고, 키도 이전보다 많이 줄어든 것 같으니, 앉아서 맞이하기가 참 불안하나 기어이 다시 한번 더 다녀가시겠다고 하셨다.
6월 22일 목요일 맑음. 다시 뉴 햄퍼셔의 친구 집에 오다.
4박 5일 예정으로 다시 친구 이민용 형의 뉴 햄퍼셔 별장에 왔다.
다음과 같이 한시 1수를 지어 보았다.
〈丁酉夏至後一日, 訪珉容同志別墅〉
정유년 하지 하루 뒷날에 민용 동지의 별장을 방문하다.
摯友誠心似屬陽 지우성심 사속양 하여
진지한 벗 정성스러운 마음은
본래 양명한 것 같아서,
時時喚我副相望 시시환아 부상망 이라
때때로 나에게 전화하여 안부를 물으니
서로 아끼는 뜻에 잘 어울린다네.
能全每日疏通圓 능전매일 소통원 하니
날이면 날마다 의사 소통
원만하게 이루어 가고 있으니,
何謂如今獨外方 하위여금 독외방 가
어떻게 지금 이러한 외국에 나와서
고독하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晝長長眄雲奇態 주장장면 운기태 하고
낮 길이 길고 보니 구름의 기이한 봉우리 모습
마음껏 살펴볼 수 있고,
湖廣廣探影變光 호광광탐 영변광 라
집 앞 호수 넓디넓어 비친 그림자 변하는 것
놀랍게 둘러볼 수가 있다네.
轉轉西東多勝地 전전서동 다승지 나
내 지금까지 동서양의 허다한 명승지
대개 다 둘러보았다고 큰소리 치고 있지만
嗚呼初見順天鄕 오호초견 순천향 이라
아아! 이제야 처음으로 보게 되었구나!
순천향이라고 말할 수 있는 마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