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6년 베를린올림픽 조직위원회 위원장이던 디엠은 1935년 올림픽부활 40년을 기념해 색다른 제안을 했다. 고대 올림픽 발상지인 그리스 올림피아에서 ‘올림픽의 불’을 채화해 육상 릴레이 방식으로 베를린 메인스타디움까지 운반하자는 것이었다. 올림피아에서 불가리아, 유고슬라비아, 헝가리, 오스트리아, 체코슬로바키아를 거쳐 베를린까지 총3705km를 3075명의 주자가 1인당 1km씩 운반하는 방식이었다. IOC는 디엠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사상 최초의 성화 봉송이 탄생했다.
최초로 남반구에서 열린 하계올림픽은?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ncc.phinf.naver.net%2Fncc01%2F2012%2F5%2F17%2F25%2F10px.jpg) 1956년에 열린 제16회 하계올림픽의 개최지는 1949년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린 IOC총회에서 결정됐다. 이 때 후보지로 최종 압축된 도시는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와 오스트레일리아의 멜버른이었다. 결국 멜버른이 21표, 부에노스아이레스가 20표를 얻어 멜버른이 사상 최초의 남반구 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됐다.
올림픽 사상 최초의 정치적 보이콧은?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ncc.phinf.naver.net%2Fncc01%2F2012%2F5%2F17%2F25%2F10px.jpg) 1956년 멜버른올림픽 1개월 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소련의 간섭에 대한 항의로 시민봉기가 일어나고, 부다페스트에는 소련의 탱크가 진입한다. 이 사건에 대한 항의로 스페인, 네덜란드, 스위스 등이 올림픽 불참 의사를 나타냈다. 이어 영국과 프랑스가 수에즈운하를 점령하자 이집트와 이라크, 레바논 등도 멜버른올림픽을 보이콧했다. 1980년 모스크바올림픽 때는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대한 반대로 미국 등 서방국가들이 대거 불참했다. 그리고 4년 뒤인 1984년 LA올림픽에서는 소련을 비롯한 동구권 국가들이 출전을 거부하면서 올림픽은 정치적 입김에 휘말렸다.
올림픽 최초의 선수사망은?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ncc.phinf.naver.net%2Fncc01%2F2012%2F5%2F17%2F25%2F10px.jpg) 1960년 로마에서 열린 제17회 하계올림픽 남자 사이클 100km 도로경기에서는 옌센(덴마크)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올림픽 사상 최초의 경기 중 선수 사망이었다. 옌센의 최초 사인은 일사병이었다. 하지만 이탈리아 경찰의 조사결과, 옌센의 체내에서는 혈관확장제 암페타민과 흥분제인 니코틴산이 검출됐다. 결국 덴마크 사이클 대표팀의 트레이너가 4명의 선수에게 로니콜(혈관순환촉진제)을 복용케 한 사실이 밝혀졌다. 약물의 과다복용이 결정적인 사인이었던 것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경기력 증강을 위한 약물복용이 세인의 관심을 끌었고, 철저한 도핑테스트가 시작됐다.
참고문헌: 방광일, [아테네에서 아테네까지], (홍경, 2005); MBC아나운서국, [2008올림픽총서], (MBC, 2008); 한국기네스협회, [기네스북1993], (김형선, 1993); 고두현, [재미있는 육상경기 이야기], (2011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조직위원회, 2008); 주디스 스와들링, [(The) ancient Olympic games], (UniversityofTexasPress, 2000) ; 김병화, [올림픽 2680년의 역사], (효형출판, 20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