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行(산행)
-姜柏年(강백년)
十里無人響(십리무인향) : 산 길 십리 인기척 전혀 없고
山空春鳥啼(산공춘조제) : 산은 고요한데 새소리만 들리네
逢僧問前路(봉승문전로) : 스님 만나 갈 길 물었지만
僧去路還迷(승거노환미) : 스님 떠나자 도리어 길 모르겠네
조선 숙종 때의 문신(1603~1681). 자는 숙구(叔久). 호는 설봉(雪峰).
한계(閑溪)·청월헌(廳月軒). 문명(文名)이 높고 생활이 청백하여
청백리에 뽑혀 기록되었으며, 후에 좌참판·판중추부사를 지냈고
사후에 영의정의 품계를 받았다. 저서에 《한계만록(閑溪漫錄)이 있다.
蔥秀山(총수산)
-奇大升(기대승)
蔥秀溪山好(총수계산호) : 총수산 계곡은 아름다워
儒仙舊揭名(유선구게명) : 유선이 예부터 이름을 걸었네
?巖神所鑿(참암신소착) : 가파른 바위 신이 깎아 놓았고
澄澈鏡如明(징철경여명) : 맑은 물은 거울같이 밝도다.
暗竇寒泉冽(암두한천렬) : 어둑한 구멍에 차가운 샘물 맑고
陰崖細草榮(음애세초영) : 그늘진 벼랑에는 잔잔한 풀도 무성하다.
經過?幽賞(경과협유상) : 지나는 곳마다 그윽한 구경 흡족하니
一笑散塵纓(일소산진영) : 한번 웃으며 풍진의 갓끈 흩어버린다.
기대승(奇大升, 1527년~1572년)은 조선 중기의 성리학자이다.
자는 명언(明彦), 호는 고봉(高峰)·존재(存齋), 시호는 문헌,
본관은 행주이다. 1558년(명종 13년) 문과에 급제한 후 사관(史官)을
거쳐 사정(司正)이 되었으나, 훈구파에 의해 벼슬에서 물러났다가
선조 때 대사성이 되었다. 그 뒤 해직된 다음에 다시 부제학 등의 벼슬이
내려졌으나, 모두 사퇴하고 고향으로 가던 중 병을 얻어 전라북도 고부에서 죽었다.
어려서부터 독학하여 고전에 능통하였고 문학으로 이름을 떨쳤으며,
이황의 제자가 되어 김인후 등과 왕래하면서 새로운 학설을 많이 제시하였다.
특히, 이황과 사단칠정(四端七情)에 대해 8년 동안이나 논란을 편 것은 유명한 일이다.
이 일 이후로는 이황도 그의 이론을 많이 따르게 되었다. 그는 글씨에도
재주가 뛰어나 종계변무(宗系辨誣)의 주문(奏文)을 써서
광국공신3등(光國功臣三等)으로 덕원군(德原君)에 추봉되었다.
저서에 《고봉집》, 《주자 문록》, 《논사록》이 있다.
九月山(구월산)
-金炳淵(김병연)
去年九月過九月(거년구월과구월) : 지난 해 구월 구월산을 지났는데
今年九月過九月(금년구월과구월) : 금년 구월에도 구월산을 지나네
年年九月過九月(년년구월과구월) : 해마다 구월이면 구월산을 지나네
九月山光長九月(구월산광장구월) : 구월의 산 경치 언제나 구월이네
김삿갓(1807년 ~ 1863년)은 조선 후기의 풍자·방랑 시인이다. 본명은 김병연(金炳淵), 자는 성심((性深), 호는 난고(蘭皐)이며 본관은 (신)안동이다. 이름은 한자로는 김립(金笠)이다.[1]
할아버지 김익순이 홍경래의 난 때 선천 부사로 있다가 항복한 것을 두고 비난하는 시로 장원 급제한 것을 수치로 여겨, 일생을 삿갓으로 얼굴을 가리고 단장을 벗을 삼아 각지로 방랑을 했다. 도처에서 독특한 풍자와 해학 등으로 퇴폐하여 가는 세상을 개탄했다. 그의 수많은 한문시가 구전되고 있다.
馬耳山(마이산)
-김수동(金壽童)
馬耳雙尖揷太空(마이쌍첨삽태공) : 마이산 쌍 봉우리 공중에 꽃혀있고
雲開突兀露秋容(운개돌올로추용) :구름 걷히니 우뚝한 가을 모습드러난다
似聞絶頂神湫左(사문절정신추좌) : 절정에는 신령한 늪이 왼편에 있다는데
鼓角何能試老龍(고각하능시노룡) : 어찌 북소리 나팔소리로 늙은 용을 시험 할까.
조선 전기의 문신(1457(세조 3)~1512(중종 7)
중종의 즉위에 공을 세웠으며, 삼포왜란을 진압했다. 본관은 안동. 자는 미수(眉수), 호는 만보당(晩保堂).
1477년(성종 8)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검열·정자·사인 등을 지냈다. 연산군 초에 전라·경상·경기 도관찰사를 지내다가 1499년(연산군 5) 예조참판으로 성절사(聖節使)가 되어 명에 다녀왔다. 이조참판·형조판서 등을 거쳐 1503년 지춘추관사 겸 홍문관제학이 되고 1505년 우찬성·판의금부사, 이듬해 우의정에 이르렀다. 1504년 갑자사화 때 폐비 윤씨의 회릉추숭(懷陵追崇)을 주장, 시행함으로써 연산군의 신임을 받았다. 연산군 폭정 때에도 인재를 잘 쓰고 많은 문신들의 화를 면하게 했으며 청렴을 지켰다. 1506년 중종반정에 참여하여 정국공신 2등으로 좌의정이 되었고, 영가부원군(永嘉府院君)에 봉해졌다. 연산군에게 충실했다고 사림의 비난을 받기도 했다. 1510년(중종 5) 영의정으로 있을 때 일본인 거류민들이 삼포왜란을 일으키자 총지휘하여 이를 진압했다. 시호는 문경(文敬)이다. <백과사전>
망현등산(望懸燈山)<현등산 바라보며>
-김시습(金時習
懸燈山色碧參差(현등산색벽참치)
현등산 산 빛은 푸른빛이 어지럽고
白石蒼藤又一奇(백석창등우일기)
깨끗한 돌 푸른 등나무 그 또한 절묘하 다.
我欲?胸何處是(아욕탕흉하처시)
가슴을 씻고 싶은데 그곳이 어디인가
層崖絶壑玉虹飛(층애절학옥홍비)
층층 벼랑 깊은 골짝에 옥무지개 나는 곳이라.
등마니산강화(登摩尼山江華<마니산에 올라>
-김시습(金時習)
摩尼山色好(마니산색호) : 마니산 산색은 좋기도 한데
矗立海天隅(촉립해천우) : 바닷가 하늘가에 우뚝 솟아있다.
飛雁不能渡(비안불능도) : 기러기도 능이 건너지 못하고
晴嵐摠可圖(청람총가도) : 갠 남기가 모두 그림 같구나.
祭壇秋草老(제단추초노) : 제단에는 가을풀이 시들어가고
僧舍白雲孤(승사백운고) : 절간 숙소에는 흰 구름이 외롭다.
一望滄溟闊(일망창명활) : 한번 바라보니 푸른 바다는 넓고
煙波接有無(연파접유무) : 물안개가 있는 듯 없는 듯 닿아있다.
청평산(淸平山)
-김시습(金時習)
淸平山色映人衣(청평산색영인의)
청평산 맑은 산빛, 사람옷을 비추고
慘淡煙光送落暉(참담연광송낙휘)
참담한 연기 빛, 지는 햇빛 보냈구나
巖溜?空輕作霧(암류쇄공경작무)
바위에 떨어진 물 공중을 씻어안개 되고
春蘿拱木碧成?(춘라공목벽성위)
봄댕댕이는 나무를 둘러 푸른 장막이 되었구나
玉沙瑤草人間遠(옥사요초인간원)
옥 모래,진기한 풀에 인간세상 멀리하고
琪樹瓊花世慮微(기수경화세려미)
좋은나무,옥같은꽃에세상근심적어 진다
只好誅茅棲絶頂(지호주모서절정)
다만 띠풀 베어내고 높은 언덕에 집을 짓고
從今嘉遯莫相違(종금가둔막상위)
이제부터 숨어서 사는 기쁨을 어기지 않 으리라
조선 전기의 학자(1435~1493). 자는 열경(悅卿). 호는 매월당(梅月堂)·동봉(東峯). 생육신의 한 사람으로, 승려가 되어 방랑 생활을 하며 절개를 지켰다. 유·불(儒佛) 정신을 아울러 포섭한 사상과 탁월한 문장으로 일세를 풍미하였다. 한국 최초의 한문 소설 <금오신화>를 지었고, 저서에 《매월당집》이 있다.
(서문보 산수화)
총수산(蔥秀山)
-김육(金堉)
華館層巖下(화관층암하) : 층진 바위 아래, 화려한 객관
門開綠水濱(문개록수빈) : 푸른 물가 향해 문이 열렸구나
山川如有識(산천여유식) : 산과 시내 만약에 앎이 있다면
應笑我行頻(응소아행빈) : 잦은 나의 걸음 보고 응당 웃으리라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1580~1658). 자는 백후(伯厚). 호는 잠곡(潛谷). 한성부 우윤·도승지·우의정·영의정 등을 지냈으며, 효종 때에 대동법을 실시하게 하였고 실학자 유형원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저서에 《구황촬요》, 《잠곡필담》 따위가 있다. <국어사전>
再遊伽倻山(재유가야산)<다시 가야산에서>
-金長生(김장생)
古寺曾遊已十秋(고사증유이십추)
옛 절에 와서 논지 이미 십년
寒齋獨坐思悠悠(한재독좌사유유)
차가운 집에 홀로 앉으니 생각이 아득하 여
故山春色渾如舊(고산춘색혼여구)
고향의 산색은 옛날과 꼭 같은데
回首龜城雙涕流(회수구성쌍체류)
머리 돌려 귀성을 바라보니 두 줄기 눈 물이 흘러내린다.
조선 중기의 학자·문신(1548~1631). 자는 희원(希元). 호는 사계(沙溪). 이이의 제자이자 송시열의 스승으로, 조선 예학(禮 學)의 태두이다. 저서에 《의례문해》, 《근사록석의》, 《경서변의(經書辨疑)》 따위가 있다.
玉筍峯(옥순봉)
-金正喜(김정희)
照映空江月一丸(조영공강월일환) : 빈 강에 비치는 둥근 저 달
如聞萬?起蒼寒(여문만뢰기창한)천지는 차가운데 온갖 소리 들리는 듯
人間艸木元閒漫(인간초목원한만) : 인간들과 초목은 본래가 한가하여
不學芙蓉與牧丹(불학부용여목단) : 부용과 모란은 배우지 않았다네.
김정희(金正喜, 1786년 ~ 1856년)는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서예가·금석학자·고증학자이다. 본관은 경주, 호는 완당(阮堂)·추사(秋史)·예당(禮堂)·시암(詩庵)·과파(果坡)·노과(老果) 등이다. 한국 금석학의 개조(開祖)로 여겨지며, 한국과 중국의 옛 비문을 보고 만든 추사체가 있다. 그는 또한 난초를 잘 그렸다.
山行(산행)
-朴趾源(박지원)
叱牛聲出白雲邊(질우성출백운변)
소 부리는 소리 흰 구름까지 울려 퍼지 고
危?鱗?翠揷天(위장린승취삽천)
높은 산봉우리 계단식 밭, 푸르게 하늘 로 이어지네
牛女何須烏鵲橋(우녀하수오작교)
견우직녀 하필 오작교에서 만나는가
銀河西畔月如船(은하서반월여선)
은하수 서쪽에 나룻배 같은 조각달 두고 서
조선 정조 때의 문장가·실학자(1737~1805). 자는 중미(仲美). 호는 연암(燕巖). 정조 4년(1780)에 진하사(進賀使) 박명원(朴明源)의 수행원으로 청나라에 다녀와서 《열하일기》를 저술하여 유려한 문장과 진보적 사상으로 이름을 떨쳤다. 북학론을 주장하였고 이용후생(利用厚生)의 실학을 강조하였다. 문집에 《연암집》이 있다.
운산(雲山)<구름 낀 산>
-보우(普愚)
白雲雲裏靑山重(백운운리청산중)
흰 구름 구름 속엔 산이 첩첩
靑山山中白雲多(청산산중백운다)
푸른 산 산 중에는 흰 구름이 가득.
日與雲山長作伴(일여운산장작반)
해는 구름 산과 오래 벗 되니
安身無處不爲家(안신무처불위가)
어찌 이 한 몸 어느 곳인들 집 아닐까.
고려 말기의 중(1301~1382). 속성은 홍(洪). 호는 태고(太古). 우리나라 임제종(臨濟宗)의 시조로, 선교 일체론(禪敎一體論)을 주창하고 불교와 유교의 융합을 강조하였다.
-四溟大師(사명대사)
山接白頭天杳杳(산접백두천묘묘)
산은 백두에 접하고 하늘은 한없이 높고
水連靑海路茫茫(수연청해로망망)
물은 푸른 바다로 흐르고 길은 아득하기 만 하다
大鵬備盡西南闊(대붕비진서남활)
대붕이 갖추어 날아갈 만큼 서남은 광활 하니
何處山河是帝鄕(하처산하시제향)
산하의 어디쯤이 곧 천재의 사는 곳인 가.
사명대사 유정(四溟大師 惟政) (1544∼1610)
조선 중기의 고승. 풍천 임씨. 속명은 응규(應奎). 자는 이환(離幻), 호는 사명 당(四溟堂). 또는 송운(松雲), 별호는 종봉(鍾峯). 경상남도 밀양출신. 수성(守 成)의 아들이다. 1558년(명종 13)에 어머니가 죽고, 1559년에 아버지가 죽자 김천 직지사(直指寺)로 출가하여 신묵(信默)의 제자가 되었다. 그뒤 직지사의 주지를 지냈으며, 1575년(선조 8) 선종의 중망(衆望)에 의하여 선종수사찰(禪 宗首寺刹)인 봉은사(奉恩寺)의 주지로 천거되었으나 사양하고, 묘향산 보현사 (普賢寺)의 휴정(休靜)을 찾아가서 선리(禪理)를 참구하였다.
금강산(金剛山)
-성석린(成石璘)
一萬二千峰(일만이천봉) : 금강산 일만 이천 봉우리
高低自不同(고저자불동) : 높고 낮음이 각기 다르구나
君看初日出(군간초일출) : 그대는 보았는가! 금강산 처음 해돋이를
何處最先紅(하처최선홍) : 그 어느 곳이 가장 먼저 붉어지든가
고려 말기·조선 전기의 문신(1338~1423). 자는 자수(子修). 호는 독곡(獨谷). 고려 공민왕 때 양광도(楊廣道) 관찰사로서 각 고을에 의창(義倉)을 세워 빈민을 구제하였다.
금강산(金剛山)
- 송시열( 宋時烈)
山與雲俱白(산여운구백) : 산과 구름이 함께 희어
雲山不辨容(운산부변용) : 구름 낀 산 모양을 모르네
雲歸山獨立(운귀산독립) : 구름이 걷히고 산만 홀로 우뚝하니
一萬二千峰(일만이천봉) : 봉우리가 일만 이천 개로다
조선 숙종 때의 문신·학자(1607~1689). 아명은 성뢰(聖賚). 자는 영보(英甫). 호는 우암(尤庵). 효종의 장례 때 대왕대비의 복상(服喪) 문제로 남인과 대립하고, 후에는 노론의 영수(領袖)로서 숙종 15년(1689)에 왕세자의 책봉에 반대하다가 사사(賜死)되었다. 저서에 《우암집》, 《송자대전(宋子大全)》 따위가 있다.
산행(山行)
-송익필(宋翼弼)
山行忘坐坐忘行(산행망좌좌망행)
산길 가다가 앉기를 잊고, 앉았다가는 갈 일을 잊네
歇馬松陰聽水聲(헐마송음청수성)
소나무 그늘에 말을 세우고, 물소리를 듣는다.
後我幾人先我去(후아기인선아거)
나에 뒤져 오던 어떤 이 나를 앞서 떠나 니
各歸其止又何爭(각귀기지우하쟁)
각자 제 갈 곳을 가는데, 또 어찌 다투 려하는가
조선 선조 때의 학자(1534~1599). 자는 운장(雲長). 호는 귀봉(龜峯)·현승(玄繩).
성리학과 예학에 능하였다. 저서에 《귀봉집》이 있다.
유삼각산(遊三角山)<삼각산을 유람하며>
-윤두수(尹斗壽)
山向雲中露角牙(산향운중로각아)
산은 구름 속 향하여 모서리 드러내고
雲從山外漫橫斜(운종산외만횡사)
구름은 산 밖에서, 자유로이 비껴있도다
僧來定自槽巖下(승래정자조암하)
스님이 오니 조암 아래에서 자리잡고
試問春殘有幾花(시문춘잔유기화)
늦은 봄, 꽃은 멀마나 남아있는가를 묻 노라
東風十里野花香(동풍십리야화향)
십리 봄바람에 들꽃은 향기로운데
信馬閑行已夕陽(신마한행이석양)
말 가는대로 한가히 걸으니 이미 석양이 라
自是愛山心獨至(자시애산심독지)
이 때부터 산이 좋아 마음이 홀로 이르 러
却忘林逕一條長(각망림경일조장)
한 줄기 기나긴 , 숲 속 작은 길도 잊어
조선 선조 때의 문신(1533~1601). 자는 자앙(子仰). 호는 오음(梧陰). 문장이 뛰어났고, 글씨에도 문징명체(文徵明體)를 본떠 일가를 이루었다. 저서에 《연안지(延安志)》, 《평양지(平壤志)》, 《기자지(箕子志)》 따위가 있다.
尋伽倻山(심가야산)<가야산을 찾아서>
-李達(이달)
中天笙鶴下秋?(중천생학하추소)
중천 신선 타는 학이 하늘에서 내려오고
千載孤雲已寂寥(천재고운이적요)
천년을 고운의 자취 이미 쓸쓸하구나.
明月洞門流水在(명월동문류수재)
고을어귀 달은 밝고 물은 흘러만 가니
不知何處武陵橋(불지하처무릉교)
어느 곳이 무릉의 다리인지 알지 못하겠 도다
손곡(蓀谷) 이달은 조선 선조대에서 광해조때 살았던 조선 중기의 시인으로 생몰 연대가 정확하지 않다. 다만 양경우의 <제호시화(霽湖詩話)>에 언급된 내용에 따라 이달의 생년을 1539년 전후로 보고 있으며 이수광이 <서담집발(西潭集跋)>에 밝힌 내용에 따라 1612년 전후를 그의 졸년에 가까운 연대로 추정하고 있다. 이달의 본관은 신평(新平)이고 자는 익지(益之), 호는 손곡(蓀谷)· 서담(西潭)· 동리(東里) 등이 있다. 원주 손곡에 묻혀 살았기에 호를 손곡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金剛山(금강산)
-李滉(이황)
聞說金剛勝(문설김강승) : 금강산 좋은 경치 소문만 듣고
空懷二十年(공회이십년) : 이십년을 헛되이 생각해 왔었다네
玩來淸景地(완래청경지) : 맑고 고운경치 즐기니
況復好秋天(황부호추천) : 하물며 이 좋은 가을날
溪菊香初動(계국향초동) : 계곡의 국화, 이제 향기가 막 도는데
岩楓紅欲燃(암풍홍욕연) : 바위의 단풍나무 붉어져 불붙을 것 같아라
行吟岩壑底(행음암학저) : 바위 골짜기 아래를 거닐며 시를 읊으니
心慨覺蕭然(심개각소연) : 마음도 감탄하여 날아갈 듯 하구나
1501~1570) 학자(學者), 문신(文臣). 초명은 서홍(瑞鴻), 자는 경호(景浩), 호는 퇴계(退溪)ㆍ도옹(陶翁)ㆍ퇴도(退陶)ㆍ청량산인(淸凉山人), 본관(本貫)은 진보(眞寶), 진사(進士) 이식(李埴)의 아들. 예안(禮安) 출신(出身). 주자학(朱子學)을 집대성(集大成)한 대(大) 유학자(儒學者)로서 이이(李珥, 1536~1584)와 함께 유학계(儒學界)의 쌍벽을 이루었으며, 誠(성)을 기본(基本)으로 일생(一生) 동안 敬(경)을 실천(實踐)하고, 주자의 理氣二元論(이기이원론)을 발전(發展)시킴. 陶山書院(도산서원)을 창설(創設)하여 후진 양성(養成)과 학문(學問) 연구(硏究)에 전심을 기울임. 조선(朝鮮) 중기(中期)의 문신(文臣). 호는 退溪(퇴계). 저서(著書)로 『퇴계집』이 있고, 시조(詩調) 작품(作品)으로 『도산십이곡』이 전(傳)해짐
금강산잡영(金剛山雜詠)
-정철(鄭澈)
穴網峯前寺(혈망봉전사) : 혈망봉 앞에는 절
寒流對石門(한류대석문) : 차가운 물이 석문을 마주본다
秋風一聲笛(추풍일성적) : 가을 바람에 피리 소리 하나
吹破萬山雲(취파만산운) : 만산의 구름을 뚫고 펴져간다
(1536~1593) 조선(朝鮮)의 정치가(政治家), 문신(文臣), 시인(詩人). 호는 송강(松江) 시호(諡號)는 文淸(문청) 그는 정치가로서보다는 시인으로서 문명을 떨쳤으니 당대 歌辭文學(가사 문학)의 대가로서 時調(시조)의 尹善道(윤선도)와 더불어 한국 詩歌史上(시가 사상) 쌍벽을 이룬다. 思美人曲(사미인곡), 續美人曲(속미인곡), 星山別曲(성산별곡) 등 수많은 가사와 단가를 지었다. 저서(著書)에 『송강집(松江集)』, 『송강가사(松江歌辭)』, 『송강별추록유사(松江別追錄遺詞)』 등이 있다.
天王峰(천왕봉)
-曺植(조식)
請看千石鐘(청간천석종) : 천 석 되는 큰 종을 보고 싶다 하니
非大?無聲(비대구무성) : 큰 종채가 아니면 쳐도 울리지 않는다네
萬古天王峰(만고천왕봉) : 만고의 천왕봉은
天鳴猶不鳴(천명유불명) : 하늘이 울려도 울리지 않는구나
조선(朝鮮) 시대(時代) 중기(中期)의 학자(學者). 자는 건중(楗仲), 호는 남명(南冥). 본은 창녕(昌寧). 여러 차례(次例) 벼슬에 임명(任命)되었으나 모두 사퇴(辭退), 성리학(性理學)을 연구(硏究)하여 통달(通達)하고, 당시(當時) 이퇴계(李退溪)와 더불어 명망(名望)이 높았음. 『남명가(南冥歌)』 『왕롱가(王弄歌)』 『권선지로가(勸善指路歌)』 따위 작품(作品)과 시조(詩調)가 전(傳)함. 시호(諡號) 문정(文貞) 시문(詩文)에 뛰어났음
登香爐峯(등향로봉)<향로봉에 올라>
등향로봉(登香爐峯)<향로봉에 올라>
-휴정(休靜)
萬國都城如?蟻(만국도성여질의)
온 나라의 서울은 개미 언덕처럼 번화하 고
千家豪傑若醯鷄(천가호걸약혜계)
뭇 호걸들은 마치 초파리 같이 앵앵거린 다
一窓明月淸虛枕(일창명월청허침)
창에 비친 밝은 달은 나의 청허한 베개
無限松風韻不齊(무한송풍운불제)
무한한 솔바람은 그들과 운치가 다르구 나
1520(중종 15)~1604(선조 37). 조선 중기의 승려·승병장.
속명은 최여신(崔汝信). 본관은 완산(完山). 자는 현응(玄應), 호는 청허(淸虛). 묘향산에 오래 머물렀기 때문에 묘향산인(妙香山人) 또는 서산대사(西山大師)로 불린다. 휴정은 법명이다.
登淸凉頂(등 청량정) :< 청량산정상에 올라>
- 주세붕( 周世鵬)
我登淸凉頂(아등청량정): 청량산 꼭대기에 올라
兩手擎靑天(양수경청천): 두 손으로 푸른 하늘을 떠받치니
白日正臨頭(백일정임두): 햇빛은 머리위에 비추고
銀漢流耳邊(은한유이변): 은하수는 귓가에 흐르네
俯視大瀛海(부시대영해): 아래로 구름바다 굽어보니
省懷何綿綿(성회하면면): 돌아보는 감회가 끝이 없구나!
更思駕黃鶴(경사가황학): 다시 생각컨댄 황학을 타고
遊向三山?(유향삼산전)신선이 사는 삼산정상으로 놀려 가는 듯 하구나 !
조선 중종·명종 때의 문신·학자(1495~1554). 자는 경유(景游). 호는 신재(愼齋)·손옹(巽翁)·남고(南皐). 풍기(?基) 군수 때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인 백운동 서원을 세웠다. 저서로 《무릉잡고(武陵雜稿)》가 있고, 경기체가 <태평곡(太平曲)>, <도동곡(道東曲)> 따위와 <오륜가(五倫歌)>를 비롯한 시조 14수가 전한다.
淸凉山歌 (청량산가)
-이황
청량산(淸凉山) 육육봉(六六峯)을 아는 이 나와 백구(白鷗)
백구(白鷗)야 훤사(喧辭)하랴 못믿을손 도화(桃花)로다
도화(桃花)야 뜨지마라 어주자(魚舟子)알까 하노라
청량산 육,육봉(12봉)을 아는 이 나와 흰 기러기 너 뿐이니
백구 너야 의젓하니 소문 아니 낼 것이고 문제는 저놈의
도화 꽃 이로다.
저 도화 꽃이 강물에 떨어지면 어부(고깃배)가 그걸 보고
육육봉을 알까 하노라.
登峨眉山 (등아미산) <아미산에 올라>
- 李齊賢 (이제현)-
蒼雲浮地面 (창운부지면) 검푸른 구름 땅 위에 떠 있고
白日轉山腰 (백일전산요) 밝은 해는 산허리로 둘러간다
萬像歸無極 (만상귀무극) 萬像은 無極으로 돌아가니
長空自寂寥 (장공자적요) 허공은 스스로 고요하기만 하다
고려 말기의 문신·학자(1287~1367). 초명은 지공(之公). 자는 중사(仲思). 호는 역옹(?翁)·익재(益齋). 벼슬은 문하시중에 이르렀으며 당대의 명문장가로 정주학의 기초를 닦았다. 왕명으로 실록을 편찬하였고
원나라 조맹부의 서체를 고려에 도입하여 유행시켰으며 고려의 민간 가요 17수를 한시로 번역하였다.
저서에 《익재집》, 《역옹패설》, 《익재난고》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