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참맛은 직선보다는 곡선에 있다.
앞만 바라보며 가는 속도감보다는
휘어지고 에둘러가는 완만한 느림의 길이 더욱 좋다.
그래서 나는,
고속도로 보다는 국도, 국도 보다는 지방도로를 선호하고
궁극적으로는 두 발로 걷는 여행을 많이 즐긴다.
국도와 지방도를 호시탐탐 곁눈질하며
숨은 명승과 돌아앉은 맛집을 매의 눈으로 탐색하던 중
계속 반복하여 시야에 들어오는
이정표!
삼강주막?
이럴 수가~! 술집이다...!
국도(國道)...국가에서 지정하여 관리하는 국가의 도로라는 말이다.
그런 도로의 이정표에 주막 광고(?)가 버젓이 붙어 있다니!
휴게소도 아니고...
주막이라면 술을 파는 곳!
더군다나 우리나라는 술광고는 물론 술집광고도 공개적으로는 금지되어 있는데...
친절하게도 수십 킬로미터 전부터 촘촘히 인도하고 있다.
음주 운전이라도 하란 말인가?
머리가 복잡하다.
광고는 계속된다.
그것도 주막광고다...
주막의 실제 상황은 본 적이 없지만 범람하는 TV 사극의 영향으로
이미 주막의 전경은 어제 본듯 눈에 선하다. 그만큼 그립기도하고...
그 생생한 현장을 볼 수있는 기회이긴 한데...
주막에는 막걸리, 막걸리에는 파전...
그래도 지금은 점심시간도 훨씬 전인데...
두뇌속에서는 치열한 고뇌의 전투중~!
번뇌에서 벗어나고자 34번국도에서 59번 국도로 갈아 탔는데...
또 따라 왔다.
날 어쩌라고~ㅠㅠ
4.8Km...십리도 더 남았는데...
나는 막걸리라면 반쯤 목숨을 거는 사람이다.
심지어 산정에서 먹는 막걸리 맛으로 산에 가는 사람인데,
세상에 백두산에 가면서도 수만리 길에 한국 막걸리를 동반 했을까~
이건 시험에 드는개 아니라 차라리 고문이다.
함께 있던 벗의 몀쾌한 한마디!
일단, 우회전~!
그리고 잠시 시간을 벌어 다시 고민~!
국도에는 광고를 할 수없다.
지방국토관리청의 특별허가가 있어야한다.
개인이고 법인이고 불가능하다.
가능하다면 우리나라 국도가 이미 광고판으로 누더기가 되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막도 술집이고 유흥업소인데...
국가의 간큰 광고...
국가에서 하는 일인데...
돕는게 국민의 소명이다!
국가를 위해!
막걸리에 목숨거는 김작가를 위해!!
서너 시간 동안 낮술의 가장 큰 숙적인 조상님은 괄호 속으로!!
벗의 명쾌한 명분만들기에 하마터면 고함을 지를뻔 했다!
참으로 친절도 하지!
정신은 잃어도 주막가는 길 잃을 염려는 전~혀 없다.
국가 기관에서 이렇게 친절하게 일하는 것을 본 적이 있던가,
친서민 정책도 이만큼만 하면 대대손손 국회의원이 어려울까~
혹시 국가에서 홍보를 하는 술집이면 막걸리도 공짜?
여기 주막에서 일하는 사람도 공무원?
술값은, 먹고 집에가면 공과금 고지서로 납부하나?
예비지식 없이 옆길로 샌 여정이라서 소설도 다양하다.
어쨌건 막걸리가 기다린다는 생각에 입속에서는 벌써 대홍수다.
이윽고~!
삼강(三江)주막은...
안동댐을 휘돌아 나온 낙동강, 태백 준령에서 남상(濫觴)을 마련한 내성천,
그리고 죽월산을 거쳐온 금천, 이렇게 세 강이 만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경북 예천군 풍양면 삼강리에 소재한다.
낙동정맥 1,300릿길 물길에 산재했던 수백개의 주막들 중에서
현존하는 유일한 조선의 주막,
2005년 금세기 마지막 주모였던 유 옥련 할머니가 세상을 뜨고 이후로
폐가가 되었던 곳을 경상북도에서 2008년에
중요민속자료(134호)로 지정했단다.
주변의 고증을 바탕으로 부속건물들을 신축 혹은 복원하여
지금의 민속공원의 모습으로 만들었다고...
삼강주막의 주인이셨던 故 유 옥련 할머니는 십대 후반에 이곳으로 시집와서
청상(靑裳)이 되신 이후로도 70여년 동안 주막을 운영하셨다는데,
숫자와 글을 모르셨던 할머니는 흙벽에 줄을 그어
(긴 줄은 한되, 짧은 줄은 한잔으로 표시)
외상장부로 사용하셨다.
글을 몰라 외상손님의 이름은 비록 적지 못했지만
비상한 기억력으로 한 치의 착오도 없었다고...
할머니께서 거주도하고 음식도 만들고 그리고 주객도 받았던 본채.
뒤로 500여년 수령의 거대한 회화나무만이 할머니의 희로애락,
그리고 주막의 일희일비를 알고 있을듯...
지붕과 황토벽, 창문들은 모두 새단장을 거친 상태.
'70년대 까지만 하더라도
구포, 다대포에 이르는 부산으로, 대구로, 서울로, 동선과 유명세를 유지하면서
바다를 경유한 소금배가, 안동포를 실은 특산품이, 농산물과 생필품이,
선원들과 함께 저마다의 목적으로 무시로 드나들었던 곳.
세 강을 오고가는 과객들의 허기진 배와 선비들의 묵향을 술잔에 띄우던 곳.
그렇게 번성했던 삼강주막도...
문명의 껍질인 도로가 깔리고 삼강교가 하천 허리를 가르면서
인적 끊긴 외로운 주막으로 전락 했다니...
그러나 시대의 마지막 주모는
여전히 그 자리에서 나머지 세월을 지키다
결국 파란의 여생까지 여기 묻는다...
1900년에 주춧돌을 올린 이 집은...
그 규모는 작아도 시대적 건축구조를 충실히 보여주는
건축사전 자료로서 뿐만아니라 희소성 면에서도 그 가치가 크다고 한다.
최근에 복원된 보부상 사공 숙소...
전혀 낯선 사람들이 전혀 다른 목적으로 길을 가다가
휴식과 갈증, 그리고 외로움이라는 지극히 단순한 이유만으로
같이 담소하고 대작하며 때로는 같이 잠을 자던곳.
1934년 대홍수로 유실된것을 고증을 거쳐 복원했다고..
들돌...
오고가는 화물들이 많다보니 짐을 내리고 실어줘야하는 일꾼들도 많이 필요했을듯,
그때 일꾼의 등급을 매기기 위한 일종의 체력 시험기.
이 돌을 들어 올리는 정도에 따라 일당이 달라졌다고...
많이 배우고 머리 좋은 사람은 어디다 쓸까~!
요즘...참새는...
방앗간을 그냥 지나갈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결코 막걸리를 그냥 지나칠 수없다.
酒님에 대한 결례다.
어지간 하면 저 주막 표시등도 어르신들 조언을 받아 옛모습으로 복원하지.
술...
술의 음운학적 어원은 <수불>이다.
물이지만 불인 것.
마실 때는 물이지만 마시고나면 불이 된다고,
그래서 술은 불처럼 항상 매우 신중하게 다스려야 뒤탈이 없다.
술...조상님의 지혜가 보인다.
혹자는 말한다.
술~술 잘 넘어가서 술이라고.
혹자는 말한다.
닭(酉;17시~19시)시에 먹어야 제맛이라서 술<酒>이라고...
지금은 백주대낮...
하지만 조상님은 괄호속에서 잠시 낮잠중이시다.
예상한대로의 상차림표...
막걸리를 주연으로 한 당연한 메뉴들이 역시 선비스럽게 나열되어 있다.
그래 주막은 이래야지^^
이미 입속의 군침은 낙동강을 따라 다 흘러가버린지 오래.
막걸리를 향한 나의 포도청이 마중을 나올 판이다.
슬며시 좌중을 살펴 해치워야 할 적의 동태를 살펴보고...
모든 안주를 골고루 흡입할 수 있는 안주...
이름하여-주모 한 상 주이소-라는 세트 메뉴,
그런데 가격은 그대로다.
하지만 내겐 겨를이 없다.
눈에 더 이상 보이는 것도 없다.
이젠 대망의 흡입시간!
나의 벗님은 날렵한 동작으로 국밥도 한 그릇 추가!
그 또한 내 뜻과 사마티 아니함이 아니할쌔...
디지털 시대에 그토록 어렵다는 이심전심이 통하는 순간~!
누가 보면 한 사흘 밥굶은 난민인줄 알겠다.
하긴 막걸리 난민이나 밥난민이나~
주안상이 준비되는 동안 편안히 앉아 흡입할 공간을 확보하고.
여기는 모든게 이른바 셀프 서비스다.
선불내고 주안상 받아서 적당한 자리에 가서 먹고
다시 빈 상을 직접 돌려 줘야하는...
옛날에도 그랬단다. 주모 일손이 부족한 관계로...
적당히 바닥 따뜻하고 자연 채광 잘되어
막걸리 본연의 색감이 훼손되지 않을 공간 확보.
지금 지구의 종말이 와도 한 사발 막걸리가 절실한 순간,
지상에서 가장 편안한 흡입 자세로 신체의 모든 시스템 스탠바이~!
자~ 갑니다!
꾹꾹 눌러 담아서~!
한 방울도 대기중으로 날아가지 않도록 정성을 다해~!
진도 10의 지진이 와도 흔들리지 않게 가장 안전하게 한잔을 채워서~!
그리고,
감사합니다.지방국토 관리청 관계자 여러분!
오늘 일용할 막걸리를 주셔서~
피가 되고 살이 될 이 막걸리~
그리고...
막걸리가 아니라면 그 미모가 조금은 퇴색할
상큼한 향내의 배추전도 알맞게 나누어 양념장 찍고,
아울러...
이물질이라곤 할머니의 정성 외에는 전혀 들어가지 않아 보이는 손두부.
묵은지 살짝 얹어서 막걸리 옆에 살포시 준비시키고.
게다가...
시골 닷새장에서나 맛볼 수 있는 쇠고기 국밥.
술국의 이름으로 오늘은 안주 반열에 좌정!
원래 모든 여흥은 몰래하는게 제일 재미있는 법인데,
조상님을 괄호속에 모셔두고 몰래 먹는 우리의 백주대낮의 향연은
그렇게 두시간을 보내고...
다행히 조상님들은 끝까지 눈치채지 못하신듯...
시간을 뛰어넘어 국도에서 만난
그 시대로의 막걸리 만찬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뜻밖의 행운!
거나하게 차려진 주연을 파하고,
그윽한 막걸리 향을 온 몸으로 발산하며
마당으로 나오다 마주친 떡판. 인절미(引切米)다!
인절미는 끌어당겨 끊어서 먹는다고 해서 명명된 토종말.
아무리 배가 불러도 이런 장면을 그냥 지나친다면
선조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무엇보다도 저 불편한 자세로 인절미를 끊어내시는
어른에 대한 예의도 아니고.
착한 가격을 볼모로 콩고물 듬~뿍 섞어
아주 소박하게 두박스 구매!
남들 볼까봐 얼른 뒤로 감추고~
덤으로 몇개 찍어 먹은 온도 제대로인 인절미는 정말 별미였다는...
역시 인절미는 떡메로 쳐서 따뜻할 때 먹어야 제맛~!
나는 여행에 관한한 샛길 증후군 환자다.
가는 길에 혹은 오는 길에 마주친 우연
그게 장소건 인연이건 원래의 길을 벗어나서 만난
이른바 샛길, 옆길에서 더욱 귀한 감동을 받는다.
낯선 곳의 국도에서 안내해준 삼강주막도 샛길에서 발견한 소중한 보물이다.
조금은 어색했지만 옛것으로의 여행,
거기에는 내가 좋아하는 막걸리가 있었고
그의 영원한 동료들이 속살로 가식없이 누워 있어서 좋았다.
-삼강오륜은 몰라도 삼강주막은 잘 아는 김작가-
첫댓글 이른아침 출근하기전에 김작가님 여행기를 ..... 괜히 읽었네요. 출근하기 전부터 침이 고이고... 막걸리 생각나잖아요.죽겠네... 회사 안갈수도 없고, 그렇다고 막걸리 한사발 하고 갈수도 없고... 퇴근하고 마셔야겠어요..^^ 김작가님이 우리시대의 마지막 주모로 그곳을 지키는 것이 어떨지요?...^^.. 난 그럼 맨날 갈텐데...^^ 큰길보다 샛길을 더 좋아하시는 우리시대 최고의 여행작가 김작가님... 좋은 여행기, 그리고 무사히 여행 마치시고 오셔요.. 잘봤습니다.
저도 아침에 들어 왔다 범상치 않은 분위기에 흠칫 놀라 후다닥 나갔다가 야심한 시각에 다시 들어 왔답니다.
역시!! 막걸리 파는 주막집 얘기를 했더니, 막걸리님이 제일 먼저 달려오셨군요!! ^^
이 시대의 마지막 주모로 자리잡는 건 어떠냐구요?? ㅎㅎㅎ
막걸리님이 만날 오신다고 하니, 막걸리님의 건강을 생각해서 사양해야겠네요!! ^^
그나저나 덕무조아님은 글의 분위기에 따라 댓글 다는 시각이 다른가봐요~ ^^
처음 알았네!! ㅎㅎㅎ
저도 아직 저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답니다.^^
저도 괜히 읽었다고 엄청 후회하고 있답니다.
왜....?
가슴에 불을 지르은지.....
김작님 정말 못 되서요...
욕을 해도 침이 넘어 가고 있으니.....
술을 멀리 하고 있는 금주 기간에 이런 글을 쓰시다니......
고문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김작가님의 여행담 재미있게 잘 보고 읽고 있습니다...
가본듯 생생한 후기, 샛길에 대한 호기심이 있는 저에게 다음을 기대하게 합니다
감사합니다...건강하세요...^^
희망의이유님도 샛길 증후군이 있으시군요!! ^^
정해진 길로 가는 것보다, 옆길, 샛길로 빠지는 것이 여행의 진짜 묘미지요~^^
국도를 따라 술집에 가서 두시간 흡입모드로 막걸리를 주입했다면...
혈중 알콜농도는 측정하지 않아도 헤롱헤롱~~눈에는 온통 거미줄일 터...
더군다나 부모님까지 몰라본다는 그 전설의 낮술이라면...
대리 운전은 저~얼대로 없는 저기서 운전은 어떻게 하셨을까~?
노 코멘트!!!
???????
원래 여행의 묘미는 샛길로 빠지는 것인데 김작가님께서는 역시 여행의 고수이십니다. 벗이 있고 술이 있고 흥이 있는데 낮이면 어떻고 밤이면 어떴겠습니까? 사극을 볼 때 주모가 차려놓은 김이 무럭무럭 나는 국밥과 뽀오얀 막걸리를 보면서 군침을 흘리던 적이 여러번 있었는데 삼강주막에 가면 그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막걸리님은 김작가님께서 이 시대의 마지막 주모로 삼강주막을 지키시면 매일 가신다 하셨지만 덕무조아는 아예 거처를 그리로 옮길 참입니다. 알바로.^^
알바는.....비정규직인 관계로 권할만한 업종은 아닌 듯하고....그래서....
삼강주막 출구 언저리에 음주 단속 업종을 신설하면, 국가에는 세금을, 개인에겐 경각심을,
그리고 여당에겐 벌금을 , 야당에겐 향수를, 김작가에게는 이 시대의 마지막 주모자격증을....ㅎ~~^^
저곳의 모든 서비스는 '셀프' 이기 때문에 '알바'가 따로 필요없던데...어떡하죠? ㅎㅎㅎ
주방에서 일하실 수 있다면 기꺼이 스카웃 하겠습니다!! ^^
그나저나 해리슨로드님 말씀처럼 저곳에 음주단속업종을 신설하면,
손님이 절반으로 줄어들듯!! ㅎㅎㅎ
사극을 볼때....
주모 술 한상 차려주오,,,,,,,
그 그림이 영화처럼 지나가는 군요...
술 한잔 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 합니다
보면서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드네요..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기에 시간이 된다면 가보려고 합니다..
그곳을 지나갈 일이 있다면 한번 들러보세요~^^
옛정취를 한번 느껴볼 만합니다.
단, 막걸리를 좋아하셔야 하는데...
우와 정말 나라에서 주막 광고를 철저히 하는구나 싶었는데
ㅎㅎㅎ
이것 민속자료로 충분한 장소네요
저도 김작가님의 뒤를 따라서 저곳으로 가서 시원한 막걸리와 파전을 먹고 싶어집니다^^
주막집 광고!! 해도 해도 너무 해주고 있죠? ㅎㅎㅎ
정말 궁금해서라도 다들 핸들을 돌릴 것 같아요. ^^
술......
엄청 마시는 술....
일년에 한 천병 이상 마시는 술...
요 몇칠간 자제와 자제속에 술을 마시지 않은 조용한 나날들....
술 묘미.술 향기...술의 당김.술의 매력.브리태니커 사전도 김작가님의 마음을 못 따라 갈 것 같고
술의 맛을 기가 막히게 표현 하셔서 ,다시 술 마셔야 하나.말아야 하나 .엄청 고민 중입니다.
애간장이 타고 있어요.
일년에 천병 이상 마신다구요???
하루 평균 2~3병씩은 마셔야 가능한 일인데,
어라연님, 알고 보니 엄청난 '애주가'이셨군요~^^
정말 놀라운 사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