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동안 수천명의 커플을 봤어요. 숍에 들어오는 순간 느낌이 와요. 당신들은 정말 잘 살 것 같네요, 아 당신들은 좀 힘들 것 같아.. 하는. 많은 사람들을 보았고, 또 제 결혼생활을 통해 결혼은 ‘배려’ 그 자체라는 걸 깨달았어요.
정소연 루이즈블랑 대표. <사진 이승수(707스튜디오) 제공>
정소연 웨딩드레스 디자이너를 만났다. 드레스숍 루이즈블랑을 이끌고 있는 정 디자이너는 결혼생활과 디자이너로서의 삶이 거의 맞물려 있다. 내년이면 정소연웨딩루이즈가 탄생한지 20년째 되고, 올해 큰 아들이 고3이 됐다. 열심히 일 하고, 열심히 자녀들을 키웠고, 열심히 공부하고, 학생들을 가르쳤다(모교인 성신여대 의류학과에서 7년간 강의를 했다). 가족들의 배려가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거다. 그러니 '배려'의 결혼관이 생겨난 것도 당연하다. 그렇다면 그녀가 생각하는 웨딩드레스는 어떤 의미일까. 인기 웨딩드레스 브랜드 루이즈블랑과 함께 정 디자이너의 생각을 파헤쳐본다.
웨딩드레스는 행복 그 자체랍니다.
정소연 디자이너의 웨딩드레스론은 한 마디로 정리된다. 행복 그 자체다. 그건 예비 신부들의 마음이기도 하고, 정 디자이너가 숍 운영을 하며 느낀 모든 것이기도 하다. 대학 졸업 후 유명 패션 기업 디자인실에서 일을 했다. 당시 동료, 선후배들은 지금 유수의 패션 업체 디자인실장이 됐다. 처음 웨딩드레스를 하겠다고 회사를 나와 이대 앞 아현동의 한 드레스숍에 들어가 유리창을 닦고 있을 때, 친구들이 “왜 그렇게 어려운 길을 가느냐”고 했다.
1990년대 중반 처음 파리를 갔어요. 그때 웨딩드레스숍 거리를 봤어요. 그냥 운명처럼 끌린 거 같아요. 아, 나도 언젠가 내 이름으로 된 숍을 갖고 싶다... 의류학을 전공하고, 자연스럽게 패션회사에 취직했지만 아쉬움이 있었어요. 당시 제 월급이 85만원이었는데, 이대 앞 웨딩숍에 40만원을 받고 거울 닦으며 일을 배웠어요. 브랜드 론칭 후 당시 한 잡지에서 신진 웨딩드레스 디자이너 10인을 인터뷰 했는데 , 그 중 지금까지 이 업계에 남은 건 저 밖에 없죠.
루이즈 블랑의 피팅룸.
최근 정소연웨딩루이즈는 브랜드 리뉴얼을 단행했다. 기존 더 루이즈 블랙(오튀 쿠튀르), 루이즈 블루(맞춤 대여), 루이즈 브라이드(수입), 루이즈 베베(어린이) 4개의 라인을 보다 심플하게 정리한 것. “젊어지기 위해서”다. 정 디자이너는 “브랜드가 20년이나 되다보니 다들 나이 많은 원장님이 앉아계신줄 안다”며 “숍에 와서 '어머 젊은 분이시네요'하는 경우가 생기다보니, '아 내 브랜드가 오래됐구나' '뭔가 이제 새로워져야 할 때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라고 했다.
인생에 계단이 많아요. 오르고 쉬다 오르고 쉬다, 혹은 내려갈 때도 있고요. 저는 이제 다시 뛰어오를 때 인거 같아요. 아이들 키우느라, 학교에서 강의하느라, 웨딩드레스숍 경영자 혹은 드레스 디자이너로서는 완전히 올인하지 못한 부분이 있어요. 이제 다시 한번 도약할 때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어요.
루이즈블랑의 론칭 쇼에 참석한 웨딩업계 관계자들.
루이즈 블랑의 상담실.
리뉴얼을 하면서 가장 눈에 띄는 건, 수입 드레스의 리디자인이다. 서양 사람과 체형이 다른 한국인에 맞춰서, 수입 드레스를 그대로 대여하는게 아니라, 리폼 내지 리디자인해 몸에 꼭 맞게 다시 만든다. 예신들 사이에서, 이런 부분이 널리 알려져 최근 인기를 끌고 있다.
몇 년 전부터 뉴욕, 헐리우드에 가서 고가의 드레스를 사오고 있어요. 그런데 한국 신부들에게 맞는 핏이 아니었어요. 바이어라면 괜찮다고 여기겠지만, 디자이너인 저는 정말 거슬렸거든요.
20년 간 웨딩업계도, 웨딩드레스 트렌드도 급격하게 바뀌었다. 최근 정 디자이너가 가장 주목하고 있는 건, 따라가는 게 아니라 끌고 가야 살아남는 다는 거다. 웨딩드레스는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식으로 고집하다간 시대에 뒤쳐진다. 고객의 니즈를 충족시키고, 끌고 나가는 패션 리더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루이즈블랑 본사에서 2018 신상품 디자인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정소연 디자이너.
과거엔 드레스가 많이 파여서 가슴골이 보이면 어머니한테 결혼식 날 등짝을 맞는 신부도 있었죠. 그런데 요즘 어머니들은 가슴 좀 보이고 배꼽이 나와도 '얘, 너무 예쁘다' 하세요. 시대가 바뀌었으니 디자인도 좀 더 앞서가야죠.
루이즈블랑은 최근 도산공원 골목에서, 청담동 대로변으로 이전을 했다. 어려운 시기라지만, 좀 더 앞서 나가기 위해 과감한 도전을 한 것. 고인 물이 되지 않으려면, 한번 쯤은 시도해야 할 일이었다고 정 디자이너는 말한다. 그동안 특별한 마케팅 없이 20년을 이어온 것에 대해서는 오로지 '사람'만 보고 일했기 때문이라고. 요즘 300개가 넘는 컨설팅 업체가 있지만, 루이즈블랑은 단 두군데만 거래한다.
업체나 마케팅을 통해 오는게 아니라, 고객들이 온전히 저를 보고 찾아오시거든요. 어떤 집은 세 자매가 전부 저희 집에서 웨딩드레스를 맞췄어요. 중국으로 이주하신 분들인데, 거기서부터 오셔서 결혼식을 올리셨죠.
드레스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원가 절감을 하지 않았는데, 드레스 가격은 20년 전과 크게 차이가 없다. 그런데도 정 디자이너는 가격을 인상하지 않고 있다. 경영자보다 디자이너로서의 마인드가 아직은 더 커서다. 특별히 광고, 마케팅이 없이 대부분 소개로 오기 때문이기도 하다.
웨딩업도 결국 사람이 답이에요. 어떤 신부에게는 비즈 장식을 하면서 스왈롭스키 10개라도 더 달아주고 싶은 그런 마음이 생겨요. 사람이니까 나오는 거잖아요. 평생에 한번 입는 옷, 서로 좋은 사람으로 연을 맺어야죠. 한 집은 자매가 다 와서 저희 숍에서 드레스를 했는데, 언니랑 동생이랑 다른 가격을 받기는 힘들어요. ‘물가가 올라서, 드레스 가격도 올랐어요’라는 말 한마디를 저는 못하겠더라고요. 그런 경영 방식을 후회하지 않아요. 그게 정소연의 힘이니까요.
정소연 루이즈 블랑의 2018 신상 드레스 중 하나. 샴페인 빛이 살짝 감돈다.
강단을 떠난지 오래지만, 이제는 제자들이 결혼을 한다며 웨딩드레스를 맞추려고 숍을 찾아온다. 현장에서 일하면서, 그걸 활용해 패션마케팅 수업을 할 수 있었던 게 너무 재미있고 보람됐는데, 이렇게 인연이 이어지니 너무 고맙다. 정 디자이너는 마지막으로 “사랑을 하세요” 라고 말했다. 제자들에게, 또 인생의 후배들에게, 모든 여성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라고 한다.
사랑을 하세요. 결혼은 천천히 해도 좋지만, 늘 사랑을 하고 있으셔야죠. 또, 결혼을 해도 계속 자기 일을 하라는게 제 지론이에요. 결혼을 하면 내 몸만 챙기던 삶에서 배려하는 삶으로 바뀌죠. 물론, 다 내 맘 같지는 않겠지만, 더불어 사는 세상이니까, 조금 손해 보면서 살아도 괜찮아요. 그러니까, 꼭 사랑하고, 결혼하고, 일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