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장의 공연 취소
러시아가 낳은 최고 지휘자 므라빈스키는 오케스트라 단원을 다그치기로 악명 높았다. 어느 해 브루크너 교향곡 7번을 연주할 때였다. 단원들은 지휘자의 깨알 같은 주문을 소화해 가며 수없이 리허설을 하느라 진이 빠졌다. 그 덕에 마지막 리허설은 완벽했다. 단원들 스스로 "이 세상 음악이 아닌 것 같다"고 할 정도였다. 그때 므라빈스키가 폭탄선언을 했다. "오늘 저녁 연주회는 취소한다." 그가 내세운 이유가 더 기가 막혔다. "연주회가 리허설만큼 잘될 것 같지 않다." 그는 리허설의 감동을 깨고 싶지 않았다.
독일 지휘자 카를로스 클라이버는 소심한 데다 신경과민이었다. 음악회 막이 올라가기 직전 구토를 한 일도 있었다. 그래서 그의 공연엔 늘 대체(代替) 지휘자를 준비해둬야 했다. 워낙 드문 공연이고 뛰어난 음악을 선사했기에 티켓은 항상 매진이었다. 알코올중독인 외국 성악가는 낮술에 취해 저녁 공연을 못 하기도 했다. 지휘자와 협연자가 서로 손발이 안 맞아 연주회가 무산되는 일도 있다.
2005년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정경화와 키로프 오케스트라 협연 때였다. 뒤늦게 무대에 오른 정경화는 연주 의상도 안 입고 바이올린도 들고 있지 않았다. 그는 오전 리허설 때 왼손 손가락을 다쳤다고 했다. "오늘은 최상의 연주를 할 수 있는 컨디션이 아니어서 협연 취소의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고 했다. 며칠 뒤 그가 진통제 주사를 맞고 퉁퉁 부은 손가락으로 브루흐 협주곡을 연주하자 관객은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그제 세계적 테너 호세 카레라스의 공연이 예정보다 30분 늦어진 끝에 취소됐다. 2000여 관객은 "지금 카레라스가 오고 있다"는 안내 방송을 여러 차례 듣고 기다렸으나 카레라스는 오지 않았다. 주최 측은 "카레라스가 바이러스성 후두염에 걸려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고 취소 이유를 말했다. 감기 일종인 후두염이었다.
몸이 곧 악기인 성악가가 건강 탓에 공연을 취소하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주최 측은 관객에게 입장료를 돌려주면 그만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공연 취소에도 납득할 수 있는 게 있고 아닌 게 있다. 체력이 필수인 테너로서 카레라스는 나이가 예순여덟이다. 전날 공연에서 몇 차례 몸이 안 좋은 모습을 보였다는 걸 보면 공연이 어려우리라고 내다볼 수도 있었다. 주최 측은 이번 공연이 "전설을 맞이할 마지막 기회"라며 비싼 자리는 44만원을 받았다. 거장(巨匠)의 이름을 내걸고 돈 벌 생각밖에 없었다는 의심을 살 만도 하다. - 조선일보 만물상 -
이케아(IKEA)
가구업체 이케아(IKEA)의 출발은 사소했다. 스웨덴 남부 시골 마을에 사는 10대 소년 잉그바르 캄프라드가 성냥갑과 면도날, 스타킹과 만년필 같은 잡화를 다루는 통신 판매업체를 연 게 시초다. 1956년 개발한 나뭇잎 모양 접는 테이블 '뢰베트'가 이케아의 운명을 바꿨다. '트럭에 공기(空氣)를 실어 나르는 것은 죄악'이라는 신념으로 조립식 가구의 혁명을 일으켰다. 엘름훌트에 1호 매장을 연 이래 43개국에 349개 매장을 거느리고 있다.
창업자 캄프라드의 고향 엘름훌트는 '스웨덴판 평양'으로 불린다. 선전 간판이 많은 평양처럼 엘름훌트 기차역에 내리면 온통 이케아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이케아 디자인본부, 이케아 박물관, 이케아 문화센터, 이케아 은행, 이케아 호텔까지. 주민 8000명 중 절반이 이케아 종업원이다. 이들의 국적과 인종도 다양하다. 홍보 담당 셀린 훌트는 "강렬한 개성, 새로운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케아 가족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지독한 불황에도 매년 10% 가깝게 성장하는 이케아의 경쟁력 핵심은 발랄한 디자인과 싼값이다. 1970년대 청바지 천으로 만든 데님 소파는 산뜻한 색상에 질기고 싸서 어린 자녀를 둔 부부들이 열광했다. '빌리 책장'은 30년간 4000만개가 팔려나갔다. 빌리 같은 6단 책장이 9만원, 의자가 3만원, 다리미판이 6000원 안팎이다. 더 싸고 더 견고하게 만드는 게 목표라고 한다.
한 해 매출 40조원 넘는 이케아가 한국에 온다. 12월 광명점 개점을 앞두고 벌써부터 말이 많다.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한 지도 논란은 가격 논쟁으로 번졌다. 같은 제품을 한국에서 더 비싸게 판다는 주장이 나오자 공정거래위원회까지 팔을 걷어붙였다. 조립·배송비를 합치면 국산 제품보다 싸지 않다고 국내 경쟁 업체들은 헐뜯는다.
이케아가 70년 신화를 한국에서도 이어갈까. 스톡홀름에 사는 40대 의사 페르 스코글룬드는 다섯 아이 아빠다. 주말이면 자동차 끌고 이케아 가는 게 일과다. 1000여 종이나 되는 나사 코너에서 페르는 자기가 원하는 못을 귀신같이 찾아낸다. 스웨덴 남자들은 페르처럼 집을 수리하고 가꾸는 데 주말을 바친다. 선배 기자는 독일 연수 시절 이케아 책상을 샀다가 조립에 실패해 아내에게 면박을 당한 뒤로 이케아라면 치가 떨린다고 했다. 이케아는 '불편을 파는' 기업이다. 이대로 물러설 이케아가 아니다. 주말이면 소파에서 뒹구는 한국 남자들을 일으켜 못과 망치를 쥐게 할 것인가. 이케아코리아의 성패는 여기에 달렸다. - 조선일보 만물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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