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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훈련학교 스크랩 진설병 상
예닮선비 추천 0 조회 51 10.10.16 00:18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제 9 강 떡상

성경본문 : 출25:23-30, 민4:7-8

주요내용 :


오늘 우리 함께 공부할 말씀은 [떡상]입니다. 성막의 성소에는 세 가지 성구가 있었는데 그것은 등대와 분향단과 떡상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떡상이 무엇을 가리키는가? 그리고 어떤 마음으로 먹어야 되는가? 그리고 어떤 사람만이 이 떡을 먹을 수 있는가? 에 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먼저, 떡상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출 25:23-28 “너는 조각목으로 상을 만들되 장이 이 규빗, 광이 일 규빗, 고가 일 규빗 반이 되게 하고 정금으로 싸고 주위에 금테를 두르고 그 사면에 손바닥 넓이만한 턱을 만들고 그 턱 주위에 금으로 테를 만들고 그것을 위하여 금고리 넷을 만들어 네 발위 네 모퉁이에 달되 턱 곁에 달라 이는 상 멜 채를 꿸 곳이며 또 조각목으로 그 채를 만들고 금으로 싸라 상을 이것으로 멜 것이니라”

간략히 말하면 여기 떡상은 떡을 진설하는 상입니다. 크기는 넓이 100, 폭 50, 높이 70cm의 낮고 작은 금상입니다. 재료는 조각목으로 만들어 금으로 쌌습니다.


1. 이렇게 귀하지 않는 조각목에 작고 낮은 것은 무엇일까요?

여기에 약 두 가지의 의미가 있습니다.
먼저는, 우리 예수님에 대한 예표입니다.
하나님의 본체이신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으시고 낮고 천하게 세상에 오실 것을 예표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베들레헴에 오셨는데 베들레헴의 뜻이 무엇입니까? 떡집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아주 우리의 생명의 떡이시라는 것을 보여 주시기 위해서 말의 밥그릇인 구유에 오셨습니다.

다음은, 우리들에 대한 교훈적인 의미입니다.
즉 이 낮고 작은 떡상은 우리가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전에서 일하는 제사장들의 금기사항이 있었는데 그것은 앉아서 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떡을 먹을 때마다 낮은 상 연고로 언제나 허리를 굽혀서 먹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의 고대 문서에 “내가 허리를 굽혀 주의 떡을 먹을 때에 내가 나를 낮추었더니 주께서 내 영혼을 만족케 하시고” 라는 표현이 많이 나타납니다.

여기에는 귀한 진리가 숨어 있습니다. 우리가 겸손해야 영생의 떡을 먹습니다. 겸손해야 예수도 믿게 되고 겸손해야 하나님의 말씀도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베다니의 마리아도 예수님의 발아래서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것이 말씀 듣는 자세입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역사가 나타납니다(살전2:13).


2. 또 떡상의 특징은 손바닥 높이의 태도리가 있는 것입니다.

출 25:25 “그 사면에 손바닥 넓이만한 턱을 만들고”

이렇게 떡상의 턱을 높게 만든 것은 무엇일까요?
떡이 떨어짐을 방지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손바닥이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알아야 합니다.
손은 행함입니다. 말씀을 들었으면 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떡이 땅에 떨어져서야 되겠습니까?
이와 같이 말씀이 땅에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그 말씀대로 행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할 때도 무교병을 먹었는데 그 자세가 아주 중요합니다.

출 12:11에 “너희는 그것을 이렇게 먹을지니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이제는 여행자가 급히 먼 여행을 떠나기 위해 행장을 갖추듯 말씀의 떡을 순종의 자세로 먹도록 하십시다. 가장 복 있는 사람은 말씀을 듣고 행하는 사람입니다.


다음은, 진설병에 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레 24:5-7에 “너는 고운 가루를 취하여 떡 열둘을 굽되 매 덩이를 에바 십분 이로 하여 여호와 앞 순결한 상 위에 두 줄로 한 줄에 여섯씩 진설하고 너는 또 정결한 유향을 그 매 줄 위에 두어 기념물로 여호와께 화제를 삼을 것이며” 했습니다.

진설병에 관하여 성경에 지시한 말씀을 보면 “고운 가루로 만들어라, 진설병은 기름을 부어 반죽한다, 열둘을 만들어라, 반드시 구워서 만들어야 한다.” 라는 것이었습니다.
떡 하나의 크기는 에바 십분의 이 즉 4.4리터 그러니까 대승 두되가 넘는 떡덩입니다,
그리고 “두 줄로 쌓아라, 다른 떡을 올려서는 안 된다, 매 안식일마다 새 떡을 진설하라, 항상 진설되어 있어야 한다, 진설병 위에 유향을 놓아라. 성소에 봉사하는 제사장만이 먹을 수 있고, 물린 후에 먹어라” 등의 규칙입니다.

이 진설병을 예수님의 관점에서 살펴보면 진설병이 고운 가루이듯 예수님은 무흠하신 분이시고, 열둘이듯 하나님의 백성들 모두를 위해서 오셨고, 구워서 만들 듯 고난을 통하여 우리의 떡이 되셨고, 기름으로 만들었듯 예수 안에 성령이 계시며, 항상 떡이 있었듯이 예수님은 우리의 영원한 생명의 양식이 되시고, 떡 위에 유향이 있었듯이 우리를 위해 지금도 중보자가 되시는 분이심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이 진설병을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생각해 보면 이 고운 가루의 떡은 바로 일점일획도 틀림이 없는 하나님의 말씀임을 뜻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대충 대충의 말씀이 아닙니다. 또 이 떡들은 기름과 함께 반죽했는데 기름은 성령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성령으로 영감된 말씀임을 보여줍니다. 또 12개의 12는 선택수로 하나님 백성들을 가리킵니다.
즉 이 떡은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이 반드시 먹어야 할 영의 양식입니다.
또 떡을 두 줄로 여섯 개씩 진설함은 둘은 증거의 수로서 하나님의 말씀은 틀림없는 진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진설된 떡 위에 유향을 놓았는데 유향은 기도로서 성경은 반드시 성령의 감동으로 이해됨을 암시합니다.
그리고 7일 후에 먹었듯이 충분히 말씀이 묵상된 후에 먹어야 합니다. 어쩌면 이렇게 진설병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 비유하고 있는지 감탄스럽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생명의 떡도 먹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예수는 믿어야 하고, 말씀은 날마다 상고해야 합니다.
욥23:12에 “내가 그의 입술의 명령을 어기지 아니하고 일정한 음식보다 그 입의 말씀을 귀히 여겼구나” 했습니다.

이 욥의 말씀 신앙을 그대로 실천한 사람이 무디 선생입니다. 그는 말씀을 대하기 전에는 결코 식사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가지고 식사 전에 말씀을 묵상하고 취하는 생활을 일생 동안 지켜 나갔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는 역사 속에 몇 사람이 나올까 말까한 귀한 전도자였던 것입니다.
크고 귀한 종이 되고 싶으십니까? 방법이 있어요. 성경을 많이 보십시오. 그러나 반드시 성령의 조명을 받아 보십시오. 그러면 어떤 방향에서든지 반드시 세상을 바꿀 귀한 일군이 될 것입니다.

애굽에 흉년으로 애굽 사람들이 모두 자기의 재산을 바로에게 바치고 주변 모든 나라 사람들까지 바로왕의 지배를 받게 된 것도 바로 애굽에 양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바로왕은 애굽 본토인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요셉의 도움으로 양식을 백성에게 팔아 애굽을 합법적으로 접수한바 되었습니다.
양식이 없으면 죽습니다. 식량은 원자탄보다 귀한 무기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을 연구하고 더욱 풍성한 말씀을 성도들에게 공급해야 하겠습니다.


그럼, 이 떡은 누가 먹을 수 있을까요?

요6:51에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하셨습니다.

그럼 과연 누가 먹을 자격이 있을까요?
1.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이 먹습니다.

레24:9 “이 떡은 아론과 그 자손에게 돌리고”
눅6:4 “제사장 외에는 먹지 못하는 진설병” 이라는 말씀도 있습니다.

이와 같이 진설병은 제사장들의 양식이었습니다. 제사장이 성소에 들어와서 제사장의 직무를 수고할 때만이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 떡은 지난 한 주간 동안 진설해 놓았던 물려 낸 떡으로 이 떡을 한 주간 동안 성전에서 수고하면서 먹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떡은 제사장밖에는 먹지 못하는 떡입니다.

그러나 실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벧전2:9에 우리 성도들을 왕 같은 제사장들이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모두 하나님을 예배하는 제사장 역할을 잘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무엇보다 매일 예배하고 기도하고 남을 섬기는 제사장의 직무를 감당해야 합니다.
그래야 벧전2:5에 말씀한 것처럼 “너희도 산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섬기는 생활이 부족하면 영혼이 주릴 수밖에 없습니다.


2. 주 안에서 참 안식을 가진 자가 먹습니다.

레24:8 “항상 매 안식일에 이 떡을 여호와 앞에 진설할지니 이는 이스라엘을 위한 것이요 영원한 언약이니라”

진설병을 매 안식일마다 진설한 것은 주일마다 선포 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예표하기도 하지만, 신령한 측면에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안식할 때 진정한 영혼에 만족을 얻게 됨을 시사합니다.
즉 가나안 땅의 안식은 곧 이스라엘의 배부름이었던 것과 같습니다(신8:8-10).
그러므로 내가 주가 되어 염려하지 말고 예수님을 주로 삼고 평안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영생의 떡이 되시기 위해서 낮고 천하게 오신 주님을 기억하십시다.
주님께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도 목마르지도 않습니다. 그러므로 겸손히 믿고 순종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진실로 경와하고 안식을 가집시다. 그래서 영생의 양식으로 충만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또한 민4:7-8에 근거하여 [떡상] 에 관하여 계속하여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앞에서 떡은 예수님이요, 나아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떡상을 운반할 때 율법의 규칙이 있습니다. 그것이 민4:7~8의 본문입니다.

민4:7-8 “또 진설병의 상에 청색 보자기를 펴고 대접들과 숟가락들과 주발들과 붓는 잔들을 그 위에 두고 또 항상 진설하는 떡을 그 위에 두고 홍색 보자기를 그 위에 펴고 그것을 해달의 가죽 덮개로 덮은 후에 그 채를 꿰고”

그러니까 먼저 진설병 상에 청색 보자기를 펴야합니다. 그 위에 떡상과 부속 기구들을 놓고, 홍색 보자기로 덮습니다.
그 위에 해달의 가죽으로 또 덮습니다. 그 후에 채를 꿰고 어께로 메고 갑니다.
이 떡상 운반법을 통하여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란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그럼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일까요?


1.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의 말씀입니다.

7절 “또 진설병의 상에 청색 보자기를 펴고”

떡상 위에 보자기를 펴라! 떡상과 그 위의 진설병과 기구들을 이렇게 취급하라 하신 이유는 청색이 생명의 색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 곧 생명의 말씀임을 보여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내가 내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나의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아노라”(요12:49-50) 하셨습니다.

그리고 행5:20에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 했고, 빌2:16에도 “생명의 말씀” 이라 했고, 요일1:1에도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 이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영생을 얻습니다. 구원도 복음의 말씀을 받음으로 받습니다(롬10:8).
그래서 우리를 거듭나게 한 것이 하나님의 세세토록 있는 말씀이라 한 것입니다.
롬10:9에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복음의 말씀을 받느냐 받지 않느냐는 생사가 달리 문제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필립 브룩스(1835-1893년)라는 목사님이 계셨는데 유명하신 분이라 그가 임종할 때 많은 사람들이 그의 임종을 보려고 몰려들었습니다.
그러나 일절 한 사람도 그를 만나 주지 않았는데 딱 한 사람만 만나게 해주었습니다.
그 사람은 법률가 잉거솔인데 잉거솔이 “목사님 만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때 브룩스 목사님은 “여보게 다른 사람들은 다 천국에서 만날 수 있으니 특별히 시간 내서 만날 필요가 없었네. 그러나 자네와는 아무래도 천국에서 못 만날 것 같아서 만나 주는 것일세. 예수 믿게 예수 믿어야 영생이 있다네”
이 말을 들은 잉거솔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가 이 전하는 말씀을 믿었기에 영생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2. 하나님의 말씀은 한 순간도 잊어서는 안 될 말씀입니다.

다시 7절 “대접들과 숟가락들과 주발들과 붓는 잔들을 그 위에 두고 또 항상 진설하는 떡을 그 위에 두고”

여기 항상 진설하는 떡을 그 위에 두라고 했습니다. 지난번에 떡상 위에 진설병은 항상 놓여져야 한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보자기에 싸서 옮길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떡을 조금 든 상태에서 보자기를 밀어 넣어야 합니다. 그래서 옮길 때도 항상 떡상 위에 진설병이 진설되어야 합니다.
왜 항상 진설하라고 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한 순간도 잊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멀리 할 것이 따로 있지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가까이 해야 합니다.
그래서 신6:6-9에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할지니라” 했습니다.
시편 1:1-2에도 “복 있는 사람은 -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했습니다.

이렇게 성막을 연구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까지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 전도도 역시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데모데에게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딤후4:2) 했습니다.
그래서 설교를 듣든 방송을 듣든 간증을 듣든 늘 말씀의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의 말을 더 듣느냐에 따라 그렇게 변합니다.


3.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불변 진리의 말씀입니다.

8절 “홍색 보자기를 그 위에 펴고”

여기 홍색 보자기는 피의 색깔입니다. 그러니까 성경은 피로 쓰여진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없었다면 쓰일 수가 없는 거지요. 이 피로 쓰였다는 것은 죄인을 구원하신 복음의 말씀이라는 뜻도 있지만 또 달리는 피로서 확증하신 진리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언약이란 피로써 맺어진 약정을 가리킵니다.

고전11:25에도 그런 말씀이 있습니다. “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그리고 롬5:8에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하셨습니다 . 이처럼 성경은 진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경을 볼 때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믿음으로 들어야 합니다. 마음 문 열고 온전히 받아야 합니다. 아멘으로 받아야 합니다. 조금도 의심 없이 받아야 합니다. 다른 생각을 물리치며 받아야 합니다. 성경을 의심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입니다. 참새도 하나님 아버지께서 먹이신다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야 더 말할 나위가 있겠습니까?

출애굽할 당시 “라바” 라는 랍비 선생이 있었는데 거지가 찾아 왔습니다.
“먹을 것을 주세요. 배가 고픕니다” “어떤 음식을 좋아하십니까?” 그러니까 거지가 “저는 늘 살진 닭고기와 오래된 좋은 포도주를 먹습니다. 그것을 주십시오” 이 말을 들은 라바 랍비는 어이가 없어서 “아니 이런 것은 보통 사람도 못 먹는 음식 아닙니까? 당신은 구걸하면서도 이런 비싼 음식을 먹고 살아 왔습니까?” “예 하나님이 주셔서 항상 그런 음식만 먹고 살아 왔지요. 하나님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모든 것을 주시는 하나님임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런 음식을 먹을 수 있었고 달라고 할 권리가 있지요”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바로 그 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문을 열어 보니 지난 13년간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던 랍비의 누나가 음식 바구니를 들고 찾아 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바구니를 자세히 보니 그 바구니에는 살진 닭고기와 좋은 포도주가 담겨 있었습니다.
그래서 랍비는 “당신 말이 맞습니다. 이 음식은 틀림없이 하나님이 보내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늘 필요한 사람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하시는 분이심을 알았습니다. 우리 함께 드십시다”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예수님의 보혈로 기록된 진리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조금도 의심하거나 가감하지 말고 믿고 순종해야 합니다.


4. 하나님의 말씀은 어떤 가운데서도 증거 되어야 할 말씀입니다.

8절 “그것을 해달의 가죽 덮개로 덮은 후에 그 채를 꿰고”

이미 말씀드린 대로 해달의 가죽은 승리의 상징이라 했습니다. 이 물개의 가죽으로 덮어서 어께에 메고 날랐습니다.
마차가 여섯 대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떡상은 마차에 실어서는 안 됩니다.
고핫 자손들이 힘을 써서 메어야 합니다. 이처럼 복음이 승리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힘을 다해 날라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복음을 힘써 전해야 합니다. 어느 곳이든지 어떤 희생이 따르든지 물질을 드려서라도 증거 되어야 합니다. 복음을 안 사람이 전하지 않으면 화가 있습니다.
그래서 고전9:16에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 했습니다. 좋은 소식을 가진 자가 잠잠하는 것은 죽으라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전도와 선교의 사역에 많은 것을 투자해야 합니다. 희생 없이 투자 없이 수고 없이는 되지 않습니다.
고후 11장을 보면 바울이 얼마나 복음 증거 하다가 많은 고난을 받았는지 나와 있습니다. 사도들은 매를 맞고 감옥에 갇혀도 말씀을 전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항상 가까이해야 할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전해야 할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사랑합시다. 믿으십시다. 전하십시다. 그래서 우리 하나님께 칭찬 받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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