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딩동"
현관문이 부산하다. 택배가 왔다. 주문도 안한 손목시계이다. 보낸 이는 SBS이다.
방송국에서 내게 거저 시계를 보낼 일이 없다. 왜 보냈을까. 무슨 착오는 아닌지.
우편함에 우편물이 왔다. 손 글씨로 우리 집 주소가 적혀있다. 또 SBS이다. 잡지책 한권으로 SBS 라디오의 아름다운 세상 8월호이다.
갑자기 방송국과 내가 왜 이렇게 친해졌을까.
나는 잘 모른다. 잡지 목차를 본다. 혹시나 하던 내 이름이 목차에 없다. 공연히 보는 것이지 이름이 나왔으려니하고 보지는 않았다. 건성으로 책을 넘겨본다. 손이 멈춘다. 목차에는 없던 이름들이 나란히 나오기 시작한다. 청취자가 보낸 편지 중에서 뽑아서 책에 내준 이름과 글이다. 그 속에 내 글이 있다.
' 일만 송이의 장미' 라는 제목이다. 우리 내외의 결혼기념일에 때 맞춰 장미 꽃 바구니를 들고 오시던 장인어른의 이야기이다. 지난 6월에 방송을 타고 원고료로 5만원을 타고는 잊고 살았다.
그 달의 우수 편지로 뽑혀서 이제 그 상품으로 시계가 오고 글이 나간 책을 보내주었구나.
이제야 알겠다.
8월호 책이니 이미 세상에 몇 부나 뿌려졌는지 몰라도 내가 아는 사람 중 아무도 안 보았기에 내게 전화 한 통도 없었나보다. 어떤 때는 글을 보았다고, 또는 방송을 들었다고 전화를 오기도 했지만…….
조금씩 기쁨이 온다.
요즘 글을 쓴다고 누가 칭찬을 해주지 않는다. 집에서 아내도 무심하고, 아이들도 무심하다. 내가 내 홈페이지에 사이에 글을 올려도 찾아와서 보는 이가 거의 없다. 찾아오는 손님은 없어도 물건을 계속 채워놓는 가게처럼 나는 매일 하루에 하나씩 글을 올린다. 마치 그것은 손님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의 일기장이나 같다.
조금씩 오는 기쁨은 세상에 내 글을 본 사람은 없어도 들은 사람이 있었다는 기쁨이다.
인터넷에 글을 올려보았자 보는 사람이 손가락을 셀 수 있을 따름. 그러나 방송으로 글이 나가면 그 수는 수 만, 수십만이 된다. 내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 리 없으나, 내 글이 전하는 세상사는 이야기에 대한 따뜻한 공감으로 나는 기쁘다.
생각하니 많은 글이 방송에 나갔다.
MBC여성시대와 신혼일기. 라디오 시대. SBS 아름다운 세상에 나간 글이 이제 오십 여회째 되니, 내 나이에 대단하다. 아내는 내가 으쓱대면 자화자찬을 말라고 하나, 누가 추어주지 않으니 마치 내 이력서를 쓰듯 스스로 따져본다.
방송에 글이 나가면 상품 받는다. 글을 써도 제대로 된 상품 하나 못 받았다고 아내가 가끔 타박을 하고는 했다.
MBC에서 받은 선물들……. 상품권, 여행권, 청소기, 오디오세트. 침대. 식칼, 지갑, 비디오, 디지털 카메라 그리고 김치 냉장고등.
SBS에서 받은 선물들……. 발맛사지기와 생수기 두 개와 각 연극 관람권 등
어쩌면 이제는 아마추어가 아니라 방송국 상대의 프로 글쟁이가 되었다.
학창 시절 내내 초등학교에서 대학시절까지 나는 글을 써서 상을 받아본 일이 한 번도 없다.
그 글을 지금 생각하면 나의 진실과 생활이 없었다. 다만 감상만 있을 뿐.
나는 유명한 작가가 되려는 마음은 없었다. 자신의 재능이 없기에.
그러나 나는 자신의 이야기를 쓰는 데는 아주 강했다. 그것은 꾸준한 글쓰기였다. 일기쓰기였다.
하루에 일기를 쓰는 시간이 내게는 한 시간, 두 시간이다.
사실 세상에서 제일 쓰기 싫고 따분한 이야기가 따지고 보면 일기가 아니고 무엇이랴.
또한 세상에서 가장 세상사는 이야기가 또한 일기가 아니고 무엇이랴.
직장을 그만두고 MBC 여성 시대의 신춘 편지 쇼에 두 번 입상을 하고, 한길사에서 하는 혼불 독후감에 우수상을 받은 저력은 일기에서 온 것이다.
한 달에 방송국에서 3번 씩 줄지어 내 글이 방송을 탈 때도 있다.
물론 방송국에서 원고 청탁이 오지는 않는다. 방송국 게시판에 올린 글이 뽑혀서 방송이 나갈 따름이다.
그 일도 노력이 필요하다. 꾸준히 계속적으로.
그 일을 왜 하는가.
이제 세상을 사는 일이 조금씩 무디어가는 자신을 향한 일침이며 자극이다.
세상을 향하여 나직이 말하는 내 육성의 유언이다. 시대를 살아가는 민초의 즐거움과 슬픔이다.
한동안 방송국 게시판에 내 글을 올리는 일에 뜸했다.
빈대도 낯짝이 있다고 내 글을 계속 올리는 일이 미안했다.
따지면 세상의 청취자 중에서 어느 한 명이 내 이름을 기억하며 자주 나온다고 항의를 하는 일은 없다. 방송국의 해당 시간 작가만이 알 따름이지.
집안 식구들마저 관심이 없는 내 글을 세상에 띄우는 이유는 이 나이에도 칭찬 받고 싶은 어린 마음 때문이다.
자신의 존재가 아직은 세상에 있다는 확인이다.
방송국에서 온 시계와 잡지 한 권을 만지며 나는 칭찬과 격려로 알고 슬며시 미소를 짓는다.
때로는 이런 일로 세상을 살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