回想
서로에게 기대어 한곳을 바라보는 눈사람은 어찌 그리도 내어머니와 날 닮아 있을까... 하는 생각중
눈은 내려 쌓여 돌덩이 처럼 굳어진 신작로엔 잘 다듬어진 회칠을 방불케 하는 얼음길이 나 여차직 하면 엉덩방아를 찧게 생기고 저 뒤에서 군용 제무시라도 한대 달려오면 한 걸음 옆으로 비켜 차에게 길을 내주고 내발은 한자도 넘는 눈밭속에 파묻혀 오도마니 서 있자면 제무시가 흘리고 간 바람은 왜 또 그리 세고 시린지
코끝이 달아 오르는 칼바람을 이마로 쳐내고 동동거리며 집을 향해 가던 십리치고도 꽤 먼- 십리길 그래도 요행히 벌말 혁구오빠의 새각시 시집온지 얼마 안되는 꽃새댁을 만나 그 십리길이 덜 멀고 덜 무섭고 덜 외로웠고 덜 추웠었다
동짓달 열아흐레가 엄마의 생신 날이니 올해 엄마의 생신 상은 내가 보리라는 야무진 계획을 꾸려 갖고 있던 나는 그때 나이 열두살 국민학교 5학년 겨울 방학 하루전 날의 기억을 더듬는 일이다
낼이 엄마의 생신이라 엄마의 생일 선물을 준비하려고 학교가 파한뒤 친구들과 헤어져 내촌 5일장이 서는 비석거리 장터로 들어섰고 혼자 이리기웃 저리기웃 장마당을 헤매니 동짓달의 짧은 해는 벌써 내촌 양조장집 기와 지붕을 넘어 고장촌 양회다리를 건너고 있었다 한바퀴 휘돌며 보아둔 잡화가게 천막앞에서 섰자니 장사꾼 아주머니는 무얼 주랴고 묻는다 나는 가마니와 비닐을 깔고 그위에 진열된 황금색 노오란 덧버선에 눈길을 주다 두 무릎을 가마니 전에 대고 엉거주춤 엎드려 덧버선을 집어 들었다
생일날에 미역국은 꼭 있어야 겠기에 미역 한닢을 건어물 전에서 이미 샀고 반씩 뚝뚝 접어 두번을 꺾으니 네동강이난 미역을 시커먼 비닐 봉지에 담아준채로 들고 섰던 나는 황금반지 보다 더 반짝반짝 윤이 나는 이 나이론 노랑 덧버선에 내마음을 모두 주고 있었다 " 이거 얼마에요 ?" 하고 값을 물으니 지금 기억으로는 그당시 오십원 이라고 했던것 같다 눈처럼 새하얀 데트론 버선도 한켤레 더 집어드니 합이 팔십원쯤 되었고 전재산이 120원이었는데 미역 사고 남은 돈을 재빠르게 계산해내니 칠십원 밖에 없어서 오도가도 못하고 망설이는데 혁구 오빠의 새각시가 얼굴 분화장도 화사하니 이쪽으로 다가 오다가 날 보고는 " 아니 애기씨 혼자 여기서 뭘 하고 있어요?" 하고 묻는다
난 예기치 않게 만나진 새언니가 정말 반가웠고 왠지 모를 안도감에 싸여 길어만 지던 내그림자가 갑자기 짦게 느껴지고 있었다. 좀전까지 불안하던 생각들도 구름속에서 해가 얼굴을 내밀듯 환해졌다 ' 낼이 엄마의 생신이라 선물 사려구요, 근데 이거랑 이걸 사면 돈이 모자라요" 하니 " 낼이 아주머니의 생신날이란 말이에요?" 되묻더니 쬐그만 애기씨가 파장이 다된 시간에 왜 거기 서있었는지를 이제 알겠다는 표정으로 끼어 들어 그때 부터 새언니의 화려한 언변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난 주머니에 있는 돈은 탈탈 털어 다 끄집어 냈고 내 외팔촌 새언니는 장사꾼 아주머니를 향해 "아, 이 꼬마 아가씨가 엄마 생일 선물을 사는거니까 좀 깎아 주셔요 그리고 이돈 70원이 우리 애기씨 전 재산이라니까 이것만 받아요." 하고 중간 다리를 놓았다
이렇게 팔면 미찌는 장산데 꼬마가 신퉁해서 깍아 준다느니 뉘집 딸래미인지 똘똘 하다느니 어린게 아주 효녀라는둥 해가며 누가 보면 거저 주는줄 알게끔 선심은 혼자 다 쓰며 내가 몽땅 털어 내민 칠십원을 받아 국방색 천으로 만들어 찬 전대에 얼른 집어 넣고는 노오란 덧버선과 버선 한 켤레를 싸 주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물건을 받아든 순간 또 걱정이 생기기 시작했다 집에갈 차비 오원도 남기지 않고 다 써버린 것이다 학교 끝난 바로 같으면 친구들이랑 신나게 뛰어가면 그만이지만 지금은 짧은 해가 많이 기울었고 해가 떨어질때 쯤이면 바람도 더 세차고 추위도 모질어지는데 난 차비도 없다는 사실 과 십리를 걸으면 해가 다 떨어져 어두워질테고 기장대 후미진 길을 돌일이 걱정이고 차 사고만 났다하면 제비 바윈데 거긴 노랑 저고리를 입은 여자귀신이 가끔 출몰해 운전하는 사람을 홀리기 때문이라고 날만 저물면 어른들도 꺼려하는 곳이라 거길 나 혼자 가야할 생각에 걱정이 태산 이었다
더군다나 새언니가 혼자 버스를 타고 간다고 하면 어쩌나 싶어 애가 타 슬그머니 눈치를 보다 " 언니 버스타고 갈 거에요?" 하고 물으니 ' 아니 난 걸어 갈 거라우 애기씨!" 한다 세상에 이렇게 고마울데가... 만세라도 부르고 싶을 만큼 그 상황이 고마웠다 좀전에 칠십원이 전 재산이라고 다 내놨으니 눈치를 챈건지 아니면 언니도 버스비를 애낄 참인지 걸어서 갈거란 얘기다
그 순간 부터 혼자가 아닌 둘이 라는 사실이 얼마나 든든하고 좋던지 세상을 다 얻은것만 같았었다 하기사 그당시 십리길은 어른들은 당연하게 걸어다녔다 우리 애들도 웬만하면 걸어 다녔고 눈비가 심하게 올 때에만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가긴 했다 그땐 정말 돈이 귀하던 시절이었다 혁구오빠의 새언니와 나 우리 둘이는 장터를 빠져나와 커다란 아름드리 향나무가 버티고선 삼거리를 지나고 우체국 앞도 지나고 나다니는 내촌 국민학교 후문쪽 울타리를 끼고 돌아 기장대를 향해 부지런히 걷기 시작했다
아주 잰 걸음으로 걸어도 족히 한시간은 걸리는 거리를 오면서 언니와 난 쉴새 없이 얘기를 주고 받았는데 새 언니가 이것 저것 많이 물어보고 내가 대답을 하지 않았나 싶다 어쨌거나 조씨네 가문에 대해선 갓 시집온 새색시 보단 내가 더 훤히 꿰고 있었을 테니까 말이다 그 추운 눈밭길을 서로 길동무 삼아 걸었고 우리 동네 새말 보다 앞서 있는 벌말인지라 언니와 헤어지고 나서 후미진 산 모랭이를 하나 더 돌고 상여독이 있는 말무데미는 또 얼마나 무서운지 뒷 꼭지를 누가 잡아다니는 것만 같아 있는 목청을 다 뽑아내서 악을 쓰듯 노래를 부르며 숨이 턱에 닿도록 뛰어 서낭당을 지나니 우리 동네 집집마다 굴뚝에선 저녁 연기가 하얗게 피어올랐다
행길 저만치에서 부터 엄마를 부르며 곤두박질 치듯 문을 차고 뛰어드는 날 엄마도 걱정반 반가움 반으로 맞으시며 왜 애들하고 같이 안오고 이렇게 늦었느냐고 물으신다 밥짓는 아궁이 앞에 앉아 불을 꺼내 아궁이 전에 놓고 잔뜩 언 손발을 녹이고는 난 이제 집에도 왔겠다 추위도 녹였겠다 한껏 의기양양 해져서 오늘 학교 파하고 난 뒤부터의 일을 시시콜콜 다 늘어 놓고 내가 사온 물건들을 호기롭게 펼쳐 보이니 엄마의 눈이 커지고 감동으로 말을 잇지 못하셨다 내가 고른 나이론 덧버선이 엄마도 맘에 드셨나 보다
화롯불에 양은 냄비를 올리고 김치에 청국장을 한 숟가락 떠 넣고 보글보글 끓어 오르는 국물을 후후 불어가며 저녁을 먹고 나자 엄마는 내가 사온 미역도 반토막을 담가 불리고 흐뭇해 하시며 이 말씀을 수 도 없이 하셨다 " 어이구 우리 딸 다컸네 철도 다들어 이렇게 엄마 생일도 챙길줄 알고 .." 듣기 좋은 소리도 세번 이상이면 아니라는데 난 들을때 마다 마냥 좋기만 했지..
해마다 엄마의 생일때가 가까우면 유난히도 바람이 세차고 추웠다 예전엔 눈도 어찌 그리 잘오고 많이도 오던지 눈길이 닿는 곳 어느 한군데도 뾘한 구석이 없이 둥둥산(둔덕) 처럼 쌔인 눈 밭이었다 넉가래로 집어던진 눈들은 마당가에 쌓여 허벅지까지 차오르고 동짓달의 삭풍이 창호를 때리면 문풍지의 드센 울음은 체온을 내리기 이전에 이미 세상 모두를 시리게 했다
우스갯 소리로 어른들은 한마디씩 하시곤 했다 " 여보게 동상(동생) 아니 자네가 을매나 독하면 날씨가 이리 매운가 그래?..." 엄마의 6촌 오라버니 동우 동훈 동완 동섭 이 4형제 분들은 공기도 얼어붙어 크게 숨을 들이마시면 폐까지도 얼음이 박힐것 같은 동짓달의 바람 찬 날씨와 엄마를 늘 걸고 넘어지시며 껄껄 웃으시곤 했다 우리 엄마의 대찬 성격과 단단함과 꼿꼿함과 때론 억척스러우리 만치 강인한 생활력을 차디찬 겨울의 혹독한 추위와 눈보라와 견주는 말씀이기도 했네 그럴 때마다 우리 엄마는 당연지사 아니냐는 투로 담담허니 " 내 생일날 춥질 않으면 동짓달 열아흐레가 아니게요 오라버니!" 하고 받아 넘기시곤 했네 그래 늘 그렇게 매서운 추위가 북쪽으로 부터 오곤했다사나흘전 까지도 따듯하던 날씨가 울어머니의 생신 전날만 되면 유독 추워져 얼음위에 얼음이 얼고 외양간의 매둔 소들도 덕석을 이불삼아 두루고 서서 여물을 되새김질 할라치면 코와 입에선 허연 김이 쏟아져 누렁이의 선한 두눈의 긴 속눈섭엔 성에가 이끼처럼 앉기도 했지 그런 추위와 엄마의 생일은 언제나 같이 왔고 엄마의 생신을 쇠자면 그런 추위쯤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스물아홉이란 무얼 의미 한다고 하면 가장 적절한 표현이 될려나... 내 어머니 조동임 여사는 그 나이 스물아홉 유월 열 아흐레에 남편을 여의고 그 이듬해 딸래미 하나 유복녀로 낳아 기르시며 혼자 몸으로 그 녹녹치 않은 세월을 살아내고 계셨으니 추위가 얼마나 맵다한들 내어머니의 인생역정에다 비할가 보냐 이런 엄마를 외삼촌이나 이모도 대단하게 생각하셨고 외할머니나 동생들에게도 엄마는외갓집의 대들보이기도 했다
너 나 없이 그어려운 시절에 엄마는 외할머니 외갓집 식구들 배 곯지 말라고 전답을 사서 부치게 했고 농사 짓는데 소가 필요하다며 차멀미땜에 차도 못타시는 외할머니가 성문이 고개를 넘고 송우리 궁말을 거쳐 가산으로 해서 오링개 고장촌 내촌을 잇는 긴 행보 육칠십리 길을 진죙일 걸어 오시면 닭한마리를 사다 고아 드리곤 며칠 묶어 가시라고 하지만 우리 엄마의 대단한 기개와 칼 같은 성격을 우리 할머니도 못지 않으셔서 사흘을 못넘기고 그먼길을 또 휘적휘적 걸어서 되돌아 가시곤 했네
이러니 아무리 날씨가 추운 오동지 섣달이라도 엄마의 생신날은 인천에 사는 이모도 오시고 양주에 사는 외삼촌도 꼭 오시곤 했지 그리하여 엄마의 생신은 시골 다른 아녀자들의 생일과는 사뭇다르게 치러지곤 했다 엄마의 생일날 아침이면 난 사람들 불러 모으는 일이 좋아서 그 추운데도 토끼 모양 귀가 빨갛도록 뛰어다니며 채 서방네 명숙이 할머니를 비롯해 조서방네 흥구 오빠네 덕구 오빠네 종구 오빠네 항구네 아주머니 아저씨들을 그리고 숨분 엄니 은자네 아줌니까지 모두 찾아 다니며 '우리 엄마가 아침 잡수러 오시래요." 하고 청하고 다녔네
그리고 그날 아침에 난 온동네에 효녀가 되어 있었지 울 엄마가 내가 사온 노랑 덧버선과 흰 버선 한켤레를 꺼내 보이시며 우리 연욱이가 미역까지 사왔노라고 자랑을 하셨기 때문이네.. 그 나이롱 덧버선은 질기기도 정말 질겨서 울 엄마 겨울만 되면 신기를 사오년은 하셨나 보다 나 중에는 발 뒤꿈치가 닳고 솔기가 다 터져도 다시 꿰매기를 반복하셨고 노랑 색깔 바탕이 남색빛이 돌아 이상하게 생각 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믄 하도 오래 신고 빨아대니 노랑염색이 탈색이 된게 아니었나 싶다
뭐든지 근검 절약 하시고 부지런하게 사시며 경제 관념도 엄청 뛰어나 큰 부는 아니더라도 지금까지 형제들에게나 자식에게도 보탬이 되는 삶을 살고 계신다 예전 그렇게 젊은날 김지미 보다 몇배는 더 이쁘셨던 우리 어머니신데 세월엔 장사 없다고 이젠 많이 연로 하셨고 여든 여섯번째 생신을 맞으셨다 ,오늘. 작년 추석 이튿날 뇌경색으로 쓰러지셔서 119에 실려 길 병원 응급실로 가셨고 열흘간 신경외과 에서 집중치료를 받으시고 퇴원 하셨지만 강한 정신력으로 지금도 당신의 건강을 꼿꼿하게 잘 붙들고 계시니 여간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누가 건강은 좀 어떠시냐고 물으면 억지로 건강하다고 받아 넘기시는데 그 말씀을 들을때 마다 가슴이 저리다 소도 언덕이 있어야 비빈다고 여식 하나 있는게 당신 보다도 더 비실 거리니 당신 건강은 당신이 죽으나 사나 챙겨야 된다고 생각 하시는 거다 이젠 그 대쪽 같은 성격은 조금 내려 놓으시고 웬만하면 누그럽게 못난 자식한테라도 기대시면 좋으련만 그 일도 맘대로 안되시는 모양이다
오늘이 생신 날이지만 그끄제 토요일에 당신과 이모님 그리고 친구분들 여남은이 모이셔서 문학 체육관 앞 창덕궁에 가셔서 삼만원 짜리 한정식으로 점심을 드시고 오셨댄다 나는 일이 있어 못가고 혜영이 간다하니 안 와도 내가 혼자 다 할 수 있으니 걱정도 말고 오지도 말라고 몇번씩 전화 하시더니 헤영과 애린 외손녀 둘이 가서 수발을 들고 식대도 혜영이 계산을 하고 어른들 대접을 마치니 우리 어머니 기분이 많이 흡족 하셨나 보다
저녁때 전화 드리니 오늘 혜영이가 애 많이 썼노라시며 지가 계산한걸 내주니 안 받더라고 하시는데 말씀은 그래도 아주 기분 좋아 하시는게 보인다 난 " 아니 할머니가 즤들한테 얼마나 공을 들이고 어떻게 키우셨는데 즈이가 그것도 안하면 돼요? 엄마는 당연히 받으실걸 받으신거에요!" 하고 큰소리는 쳤지만 엄마께 미안하고 자식에겐 고맙고 그렇다 중간에서 자식으로써 참석 해야할 일을 빼먹은 죄가 크다 그리하여 오늘은 내손으로 집에서 미역국을 끓여 조촐하게 생신상을 보고 이모네 식구와 밥을 먹었다
그리곤 돌아 오는 차속에서 옛날 일을 끄집어 생각해 냈고 그시절의 소회를 풀어 내었다 내 어머니 더도 덜도 말고 건강하게 백수만 하소서!!~~~~~
하나님 감사합니다 저의 어머니 연로하신 가운데에도 주위엔 많은 분들이 관심 갖고 친구되어 주시고 함께 하시니 이또한 얼마나 감사 한지요 모두 주님의 은혜 이옵니다 앞으로도 주님께서 크신 눈으로 낮밤 없이 저의 어머니를 지켜 주시고 혼자 계시는 외로움이 병이 되지 않도록 주님의 사랑이 넘치게 하소서 그리고 저의 어머니께서 이 모든것이 주님의 은혜가운데 이루어지는 일임도 아시게 하소서 낮은 곳으로 임하시는 주님의 크신 사랑과 은혜의 강물이 이세상에 차고 넘치시기를 그리하여 이 세상이 아름다움을 서로가 알게 되는 지혜의 눈을 뜨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 합니다 Amen!!
2011.12.13.화 (음력 11월 19일)
Pavane - Tol & T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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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친구들 그동안 안녕 하셨는가?
오랫만일세..
떡국도 서너그릇씩은 드셨겄지 모두들
날씨가 많이 춥구먼 그랴!
다들 낙상 조심하고
올한해 돈들 많이 버시게....
늘 궁금타 걱정해준 승임 정말 고마우이.
내가 많이 게으른 탓일세, 자숙하겠네~~~~~~~~~^^*
늘궁금했어 연욱아 잘지내고있은니 감사~난오늘구미내려간다
내려갔다 이달말에다시 올라온다 이래산다 ㅎㅎㅎ추운데감기조심해고
감동을 느끼며 효성 깊은글을 잘 읽었네.
어머니 조동임(?)여사님께서 오래오래 건강하시길
나도 기도드리겠네.
조동임여사님 맞습니다 맞구요!~~~ㅎㅎ
정일 땡큐!!
울 오마니 이름도 기억해 주고....^&^
하도 날씨가 매워 겨울잠이라도 자나 했지...
다시 만나 반가우이~
그려, 이제 입춘도 지났으니 동면에서 깨어나 볼려구~~~~~~~~
친구에 작문을 읽고나니!!!
제작년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이난다!!!
세상에 단하나 밖에 없는 소중하고 눈물이 나올 만큼 가숨 뭉쿨한 그이름 어머니!!!
항상 자식 위해 꼬부라진 손으로 궂은일 마다않으시며 추우면 춥다 말 한마디 없으셨던 어머니!!!
밤새얼었던 손가락이 아려도 혼자서 소리없이 고통을 느끼시며 자식 위해 한편생 다하신 우리들에 어머니!!!
효도가 따로없더라 어머니 살아 생전에 얼굴 한번이라도 더 보여드리는것이 효도고 돈보다 더좋은 선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친구가 건강해야지!!! 홍연욱 뭔말인지 알지!!! 사랑하는 어머니 오래오래 건강하시길 기도할께!!!
희영이의 사모곡은 언제나 가슴이 저리다
친구의 말을 귀담아 듣고 새겨야 하는데
늘 살아간다는 핑계로 나 할 도리를 다 못하고 산다
그러고 보면 정일에게는 나라에서 孝子 賞 이라도 내려야 하지 않을까?~~~
위의 더보기 를 클릭 하시오~~~~~~~~~~~~
난이글에서 난너무 죄인이라는생각이든다 울엄마는아직도 자식들이고통을주니 말이다 ....연욱아 엄마는딸이하나라도
너의고운마음이엄마에게행복이지... 그래 잘하고 살자 마음만이라도 ...엄마나도한번보고싶네..눈에선하다 늘건강하시길 기원할께 ...너도 감기조심하고 늘좋은날 만가득하길..
씩씩한 승임여사 왜 또 엄살이시오
승임이만큼 어머니 생각하면 되지 뭘 그려!
자식은 칠십이 되어도 자식인걸 어쩌겠나....
나 같은 사람도 있는데...ㅠㅠ
누가 건강은 좀 어떠시냐고 물으면 억지로 건강하다고 받아 넘기신다는 어머니의 말씀만으로도 너는 행복한 사람이다. 그러한 말을 들을 때 마다 가슴이 저리다 했는데 가슴저릴 일이 아닌 것 같다. 소도 언덕이 있어야 비빈다고 여식 하나 있는게 당신 보다도 더 비실 거리니 당신 건강은 당신이 죽으나 사나 챙겨야 된다고 하시는 어머니의 모습안에서 눈물이 필요할 듯하다. 그래도 친구야, 너는 그런 어머니라도 계시지 않니? 하기사 가끔씩은 나도 너무도 어린 날에 돌아가신 울 엄니가 오히려 자랑스럽다는 생각을 안해본 것은 아니다만 그래도 천수하심은 얼마나 축복이더냐? 참 많이 미안하고 참 많이 바보스러운 지난 세월이다....
5학년 그때를 필름으로 봐도 이만큼 선명하진 않을꺼야. 놀랍다...
생신날 하루가 이렇게 長文의 글이 되어 감동을 줄 줄이야...
어린소녀의 천사같은 효심을 추억의 영화로 본것 같다. 뭉클~~했다.
어머님 건강하시고 백수하시길...
연욱이도 건강하고 좋은일로 축복받길... 두손모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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