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구름이 몰려온다 7-3
윤지충은 정약종의 외사촌이 된다.
그의 나이 25세에 진사에 급제하고 이듬해 서울에 갔다가 명례방 김범우의 집에서 새 학문과 처음으로 접촉하게 되었다.
3년 후에는 정약종 형제들에게 교리를 배워 입교하게 되었다. 그는 철저히 신앙을 지켰고, 교리대로 행하고 따랐다. 천주교 박해가 일어났을 때에도 비밀리에 신앙을 지켜나가던 중 1791년 여름 모친상을 당하게 되었다.
그는 외종형인 권상연과 상의를 했다.
「형님, 이번 기회에 우리가 모범을 보이는 것이 어떻습니까? 유교적인 허례허식은 교리에 어긋나지 않습니까?」
윤지충은 권상연을 설득했다.
「그건 자네 말이 맞네. 유교식 상례는 일종의 우상숭배와 일맥상통 하거든,」
「그럼, 제가 먼저 실천에 옮기겠습니다. 」
「집안 식구들이 가만있을까?」
「감수해야지요.」
「그럼 나도 자네 의견을 따르겠네.」
이렇게 해 유교식 상례를 아예 없애 버렸다. 종래의 관습대로 상복을 입고 통곡하며 바깥 예절은 모두 지켰으나 위패를 모시거나 제사는 지내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 사실은 곧 친척들의 입을 통해 격식을 생명보다 더 중히 여기는 유림에 알려졌고 이들은 지탄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끝내는 유림들에게 고발돼 그들은 한때 피신을 했다.
그러나 그의 외사촌이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윤지충은 자진해서 관아에 자수를 했다.
윤지충이 수감되자 진산 군수는 친히 감옥으로 그를 찾아갔다. 윤지충은 불효막심한 불효자로 취급되어 감옥 안에서 누구 하나 상대를 해주지 않았다.
「자네가 윤지충인가?」
「그렇습니다.」
「한때의 실수라고 봐 주겠네. 진사에 급제까지 한 촉망받는 선비가 그게 무슨 짓인가?」
「저는 제 행동이 옳다고 믿습니다.」
군수는 그를 잘 타일러 내보내고 싶었다. 아무리 뜯어봐도 아까운 젊은이였기 때문이다. 또 그의 선대와 가깝게 지낸 인연도 있었기 때문이다.
「부모의 위패를 불태우는 것이 잘못되지 않았다니 그게 무슨 말인가. 더구나 우리나라는 동방예의지국이 아닌가?」
「위패에는 영혼이 없습니다. 오직 목수의 손재주만이 있을 뿐입니다. 목수가 만든 위패에 절을 한다는 건 우상을 숭배하라는 것과 같습니다. 제가 믿는 천주교의 교리에 배치되는 것입니다.」
「교리에 배치되다니‥‥」
군수는 은근히 화가 났다. 천주교를 알면 얼마나 안다고 함부로 교리를 따지느냐면서 그에 대한 기대가 사라졌다.
윤지충은 곧 전주 감영으로 이송되어 이곳에서도 혹독한 고문을 받았다.
「천주교를 믿지 않는다고 한 마디만 하면 살려 주겠다. 생명이 아깝지 않은가?」
「저더러 천주교를 배신하라는 것은 곧 죽으라는 말과 같습니다. 그렇게는 못하겠습니다.」
그를 신문하는 가운데에도 많은 사람들이 천하의 불효자(?)를 구경 하기 위해서 구름같이 몰려왔다.
그들은 제각기 돌멩이와 몽둥이를 들고,
「저 불효막심한 불효자를 때려 죽여라!」
하며 아우성을 쳤다.
「천하의 고약한 것이 천주교이고 천주학쟁이다. 천주학쟁이들을 잡아 죽여라!」
하며 아우성을 치는 사람이 많았다.
한편 선비들은 부모의 제사를 지내지 않고 위패를 불태운 행위는 용납할 수 없고 나라의 근본을 어지럽힌다는 이유로 매일같이 임금에게 상소를 올렸다.
유학에 물든 백성들도 합세를 했다.
이 와중에서 교회의 지도자들은 어디로 숨었는지 보이질 않았다.
윤지충은 함께 동조를 한 권상연과 전주 풍남문 밖에서 처형 되었다. 그가 처형될 때 그는 조용히 기도를 드렸고 유교의식의 허점을 일일이 지적했다.
참수에 의한 첫 순교자가 된 것이다.
윤지충은 그의 공식문초에서 이렇게 대답했다.
『우연히 명례방의 역관 김범우의 집에 갔다가「천주실의」와「칠극(七克)」이라 제목으로한 책을 보았습니다.
이것을 읽고서 천주는 만민의 아버지시요 하늘과 땅과 천신과 사람과 기타 만물의 창조주이심을 알았습니다.
이가 바로 중국의 경서에 나오는 상제(上帝)라 일컫는 분입니다. 천지간에 사람이 생겨나는데 비록 부모로부터 혈육을 받았으나 근본인 즉 천주께서 주신 것입니다.
한 영혼이 육신에 결합되는데 이들을 결합시키는 것은 천주입니다. 중국 경서에 있는바 상제를 공경하라는 가르침과 천주교의 공경에 대 한 가르침을 서로 비교하면서 크게 일치함을 알았습니다.
제4계에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으니 만일 우리 부모가 참말로 그 위패 속에 계시다면 천주교 신자들은 다 그것을 공경해야 마땅합니다.
그렇지만 위패는 나무로 만든 것입니다. 나와 혈육의 관계도 없고 생명과의 관계도 없습니다. 그 목패는 나의 출생과 양육에 아무런 수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조상의 영혼이 한 번 이 세상에서 떠났으면 이런 유형의 물건에 결코 붙어 있을 수가 없습니다.
부모의 생명은 위대하여 존경할 바인데 한 목수가 만든 물건을 어찌 부모로 삼을 수가 있습니까?
목패는 바로 이치에 근거를 둔 것이 아니므로 내 양심이 복종할 수가 없습니다. 비록 귀관이 이로 인하여 내 양반 직을 박탈하더라도 나는 천주를 배신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내 손으로 목패를 땅속에 묻었습니다. 죽은 사람과 그 목패에게 술과 먹을 것을 드리는 것은 천주교에서 금하는 것인 바 그 법을 또한 지켜야 합니다.
덕행은 영혼의 양식이요 물리적 음식은 육신의 양식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술이 있고 맛있는 안주가 있을지라도 영혼을 생양할 수가 없습니다.
옛사람의 이른바「죽은이라도 산 사람처럼 마땅히 섬기라」는 말씀은 이 나라 경서의 근본 원칙이 되어 있음을 귀관이 인정할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살아 있는 동안에도 그 영혼이 술과 음식으로 생양 되지 못하거늘 하물며 죽은 다음의 영혼이 술과 음식으로 생양될 수 있겠습니까? 부모께 아무리 효성 있는 사람이라도 주무실 때 음식을 드리지 않으니 잠자는 동안은 음식을 먹을 만한 때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같은 이유로 사람이 죽음의 긴 잠에 들어 있을 때 음식을 드림은 더구나 헛된 일이요 거짓 행습입니다.
그런즉 죽은 부모를 자식이 어찌 헛된 일과 거짓 행습으로 섬길 수 있으리이까.」
윤지충은 그의 어머니 권씨가 죽자 상복을 입고 애통해했다. 그러나 신주를 만들거나 제사를 드리지 않았다.
양반집의 자손으로서는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일이었다. 조문을 온 일가친척들도 모두 양반들이었고 이런 윤지충의 괘씸한(?) 행동을 그냥 놔두지 않았다.
나이든 친척 어른이 신주가 보이지 않자 윤지충에게 물었다.
「신주는 왜 없는가? 신주를 어디다 치워놨나?」
하자 그는 태연하게,
「신주는 만들 필요가 없습니다. 천주의 교리에 어긋나는 일이기 때 문입니다. 」
하고 대답했다.
천주라는 말이 떨어지자 친척은 노발대발하면서 멱살을 잡았다.
「이놈이 천주학쟁이로구나. 이놈이 우리 윤씨 가문을 말아먹으려고 하는구나. 거기 누구 없느냐!」
하면서 사람을 불렀다.
그렇잖아도 천주교하면 이들에게 나쁜 인식이 심어져 있는 판에 신주까지 없앴으니 가만있을 리 없었다.
「저놈이 천주학에 미쳐서 이젠 머리가 돌았군!」
하며 멱살을 움켜잡고 귀싸대기를 훔쳐 갈겼다. 친척들이 보아하니 사당에 모셔져 있어야 할 신주가 하나도 없었다.
사람들이 윤지충에게,
「사당에 모신 신주는 또 어디다 두었느냐?」
묻자 윤지충은 친척들의 행패를 피해 멀리 도망치면서,
「모두 불태워 버렸습니다. 신주에 영혼이 묻어 있습니까?」
하고 태연히 대답했다.
대대로 벼슬을 하던 지체 높은 양반집에서 소란이 일어나자 마을 사람들이 몰려나와 구경을 했다.
「이젠 윤씨 문중도 망했군.」
하며 혀를 차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어떤 사람은 마치 제 일이나 되듯 온몸을 사시나무 떨 듯 흥분해,
「저 불효막심한 놈, 서양 오랑캐의 법을 따르는 저런 놈은 능지처참해야 마땅하다!」
하며 사람들을 선동하기도 했다.
계 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