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초 편지] 08. 달개비 – 참으로 희한한 꽃
낯익은 풀꽃이지? 그래, 달개비야, 혹은 ‘닭의장풀’이라고도 하지. 우리나라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한해살이풀. 요즈음 운동시간이 되면 제일 먼저 운동장 구석으로 달려가 한창 꽃을 피우고 있는 요 녀석들을 들여다본다. 들여다볼수록 귀엽고 재미있는 놈. 귀가 큰 미키마우스를 닮은 놈. 마구 뻗어나가다가 마디가 땅에 닿기만 하면 금방 뿌리를 내리고 계속 뻗어나가는 생명력. 담백하고 맛이 좋아 풍뎅이들에게 아주 인기가 좋은 놈.
나는 처음에 커다란 두 개의 꽃잎이 꽃받침이고, 가운데 노란색의 쬐고만 십자화 세 개가 꽃인 줄 알았더니, 그게 모두 수술이라고 하더구나. 참으로 희한한 꽃이다. 암술 한 개에 수술이 여섯 개인데 수술 모양이 각기 다른 것은 아마 이 꽃밭에 없을 거야. 그중에 꽃가루가 있는 것은 암술을 호위하고 있는 보리밥알 같은 수술 두 개뿐이다. 그렇담 마치 꽃 모양으로 벌려 있는 나머지 수술 네 개가 하는 일은 무얼까? 창조주가 쓸데없는 것은 결코 만들어 내지 않았을 텐데……. 그렇다! 밋밋한 꽃잎 두 장만으로는 벌과 나비를 유인하기가 힘들다고 생각되어 그런 변화를 준 게 틀림없어.
이놈이 어떨 때는 꽃받침 하나에 꽃 두 송이를 한꺼번에 피우기도 하는데(보통은 하나가 지고 나서 다른 하나가 핌), 이렇게 층을 지어 한꺼번에 피어 있는 모습이 마치 생쥐 두 마리가 담장 밖을 내다보고 있는 것 같다.
2년 전 원예부에서 여러 종류의 열대산 관엽식물들을 키워 본 적이 있는데 그중에는 열대 달개비도 있었지. 자줏빛에다 다육질인데 그놈도 자라기는 참 잘도 자라더구나. 헌데 꽃이 우리 달개비에 비하면 별로인 데다 다육질이라서 마구 자라면 징그러운 느낌마저 들더라. 그것뿐이야? 먹을 수도 없고, 그에 비하면 우리 달개비는 훨씬 청초하고 꽃도 희한하지. 또 나물로 무쳐 먹을 수도 있고. 그런데 그놈은 물 건너왔다고 멋진 화분에 담겨 호강하는데, 우리 달개비는 뒤꼍에 제멋대로 뻗어나가다 함부로 짓밟히는구나. 그 꼴을 보고 있자니 슬그머니 심통이 나더구나.
이곳에서는 운동장에서 달개비를 꺾어다 사이다병에 담아서 방에 놓아둔 사람들도 있단다.
황대권. 야생초 편지. 도솔.
황대권은 1955년 서울에서 출생했으며, 서울농대를 졸업하고 뉴욕에 있는 사회과학대학원(New School for Social Research)에서 제3세계 정치학을 공부하던 중, 학원 간첩단 사건에 연루되어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2001년 6월 8일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를 통해 국가기관에 의한 조작극이었다고 사건의 진상이 세상에 널리 밝혀졌다. 동생에게 쓰는 편지 형식으로 이어지는 《야생초 편지》는 풀 향기 가득한 식물 일기이고 생명 일기이며, 감옥에서도 자유로운 한 구도자의 사색 일기이고 수련 일기이다. 야생초에 대한 그의 관찰과 연구는 전문가 수준이며, 이 관찰은 식물적인 견해를 넘어 자신의 삶에 대한 성찰, 인간관계에 대한 묵상으로까지 확산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