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歲月)
藍的是天空-파란 것은 하늘이고
白的是雲彩-흰 것은 구름이라
看三角漢江-북한산 한강도 보이고
看四的草花-4월 풀꽃도 보이는데
借錢者杜絕-돈빌려간놈 소식 끊기듯
看不歲月啊-세월은 보이질 않네 !
脚重眼模糊-다리 무겁고 눈 침침하여
爲哪得病呢-어디 병들었나 했는데
庭園映山紅-정원에 영산홍 꽃몽오리
一年過再相-일년지나 다시 또보네
농월(弄月)
묘비(墓碑)에 백비(白碑)를 아는가? 부끄럼 모르니 알 리가 있나 !!
【故 박원순 묘 밤중에 이장, 묘소 직원 출근 전 새벽에 끝내
2023.04.01.조선일보
비서 성추행으로 피소 직후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의
묘 이장이 4월 1일 새벽 일찍 끝난 것으로 알려졌다.
유족들은 애초 이날 오후 3시 경남 창녕군에 있던 박 전 시장 묘를
“민주화 운동 열사들의 성지”로 불리는 경기 남양주 모란공원으로 이장하려 했지만,
관련 사실이 언론에 노출되고 자격 여부에 대한 시비 논란이 일자 주변 시선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성추행으로 자살한 공직자가 무슨 자랑이라고 저렇게 묘를 옮기면서
국민의 이목을 집중시키니 “부끄럼”이란 단어가 불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마다 생각이 참 묘하다는 감정이 든다.
만만한 게 죽은 귀신(鬼神)이다.
공자는 논어(論語)에서 “경원(敬遠)”이라하여 귀신(鬼神)에게 적당한 예(禮)는 갖추어도
너무 가까이 하지 말라고 하였다.
사람이 죽으면 묘비(墓碑)에 무슨 글을 쓰는가?
조선 왕릉은 총 42기(基)다.
그중 북한에 2기가 있다.
북한에 있는 조선왕릉 2기는
북한 개성(開城)에 태조 이성계의 첫째 부인 한씨(韓씨 신의왕후(神懿王后)의 제릉(齊陵),
개성(開城)에 조선 2대 임금 정종(定宗)과 정안왕후((定安王后)의 후릉(厚陵)이 있다.
필자는 조선왕릉 42기중 30기를 답사하였다.
조선 왕릉이 200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후에 출입이 통제되어 답사를
중단하였다.
왕릉 비(碑)에는 대부분 재임 시에 치적(治積)에 대한 기록이다.
필자는 기회 있는 대로 역사 속에 “이름을 난”인물들의 묘를 답사한다.
단종왕릉. 연산군 묘. 광해군묘. 퇴계 이황. 율곡이이. 우암송시열. 최영장군.
내시들의 묘. 이육사묘. 김천일장군묘. 논개묘~~~~~
등등 헤아릴 수 없다.
묘비에는 대부분 성(姓)씨의 본관과 가족계열 벼슬한 사람은 업적(業績)이
적혀있다.
왕릉이나 충무공 이순신 장군 묘를 가도 허무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묘를 아무리 호화롭게 장식해도 아무 말이 없고 정적(靜寂)만 감돈다!
죽으면 끝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성철스님이나 법정 스님 이름이 나올 때마다 불교인들을 종교인으로 보지 않는다.
두분다 생전에 내가 죽으면 “잊어라” 하셨는데
해인사 정문에 성철스님 부도가 너무 화려하다
법정스님 유언에 살아생전 자신의 글과 책을 전부 폐기하라고 히셨는데
지금 법정스님 생전의 말씀을 책으로 나오고 있다.
돈벌이가 되기 때문이다.
필자 동네에도 코로나 중에 신도가 없어 문 닫은 교회가 여럿이다
돈있면 흥하고 돈없으면 망하는 것이 종교인가?
남의 가정일이지만 서울시장을 했던 사람이기에 말하는데
불명예로 자살한 박원순 묘를 선영에 그대로 두면 되지 모란공원에 옮겨서
뭘 하겠다는 말인가?
죽으면 끝인데---
무(無)고 허(虛)고 공(空)이다.
특별한 묘비(墓碑)를 몇 가지 기록한다.
▶박수량(朴守良) 묘 백비(白碑)
전라남도 장성군 황룡면 금호리 호사마을 능선(稜線)에 박수량(朴守良)의 묘가 있다.
호조판서까지 벼슬을 하였다.
박수량(朴守良)은 공직생활 38년 치적(治積)이 많고 청백리(淸白吏) 유명하다
묘비에는 글자 한자 없는 백비(白碑)다
박수량(朴守良)죽은 뒤에도 양식이 없어 가족들이 장례조차 치를 수 없었을 정도였다.
박수량(朴守良) 유언은 “내가 죽은 뒤 묘비에 글자 한자도 쓰지 말라”고 했다.
박수량(朴守良)의 청렴(淸廉) 칭송하여 “백비(白碑)”라 부르고 있다.
▶고려충신 이오(李午)는 고려가 망하자
묘비(墓碑)에는 글 한자 쓰지 말라고 유언을 하였다.
백비(白碑)로 세워져 있다.
▶정약용 여유당(與猶堂) 자찬묘비명(自撰墓碑銘)
“임금의 총애 한 몸에 안고 궁궐에 들어가 곁에서 모셨네. 임금의 심복이 되어 아침저녁으로 가까이 섬겼네. 하늘의 총애 한 몸에 받아 어리석은 마음을 깨우쳤네. 육경(六經)을 정밀하게 연구해 미묘한 이치를 깨치고 통했네. 간사한 무리들이 기세를 떨쳤지만 하늘이 너를 사랑해 쓰셨으니 잘 거두어 간직하면 장차 멀리까지 날래고 사납게 떨치리라.”
▶측천무후 묘비 백비(白碑)
중국 최초의 여황제 측천무후(則天武后)는 세상을 떠날 무렵 자신이 이룩한 업적이
너무나 많았다.
비석 하나에는 다 기록할 수 없으므로 차라리 아무것도 새기지 말고 그냥 백비(白碑)로
세우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 유언을 충실히 지킨 후대인들은 글씨 한자 없는 백비(白碑)를세워 업적을 기렸다.
▶튀르키에 히에라폴리스에 엄청난 규모의 공동묘지가 있다
여기 한 묘지 비석에
-나 어제 너와 같았으나 너 내일 나와 같으리-
▶영국의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의 묘비명
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
-오래 살더니 내 이런 꼴 당할 줄 알았다-
▶생전에 “걸레스님”으로 불리던 중광 스님 묘비
에이 괜히 왔다 간다!
▶일본 선승(禪僧) 모리야 센얀의 묘비
내가 죽으면 술통 밑에 묻어줘. 운이 좋으면 술통 바닥이 샐지도 모르니까
▶미국의 코미디언 조지 칼린 묘비
-이런, 그 사람 조금 전까지도 여기 있었는데-
▶개그우먼 김미화 미리 써둔 묘비명
-웃기고 자빠졌네.-
▶김종필 전 국무총리
-年九十而知八十九非(연구십이지팔십구비)
나이 90이 되어 생각해보니 지난 89세까지가 모두 헛된 인생이었구나-
▶미국 시인겸 소설가 찰스 부코스키(Charles Bukowski)
-애쓰지 마라(Don't Try)-
▶독일 신학자 위르겐 몰트만(Jürgen Moltmann).
내가 죽은 날에 나는 부활할 것이다.
▶한국 사람이 부모 묘(墓)를 잘 쓰면 복이 온다는 말은 대부분 흥선대원군 아버지
남연군(南延君)의 묘를 가야사 절터에 이장한 뒤부터 더욱 유행하였다.
필자도 남연군 묘지를 답사한적있다.
사연은 이러하다.
“가문(家門)의 부흥을 염원하던 흥선군 이하응에게 정만인이라는 지관(地官)이
“가야산 가야사 석탑 자리에 묏자리를 쓰면 2대에 걸쳐 왕(王) 나온다”고
귀띔했다. 대원군은 전 재산을 털어 가야사 주지를 2만 냥으로 매수한 뒤
가야사를 불 질러버리고 석탑을 도끼로 부순 다음 그 자리에 묘를 옮겼다.
그 뒤로 고종(高宗)과 순종(純宗) 두 왕이 등극하였다.
농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