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사상에서 가져온 수원한민교회 김윤식 목사님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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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기 저자가 전하는 요시야 개혁의 ‘개혁’
"역대하 34-35장(요시야 본문)의 수사비평적 연구: 환유를 중심으로”1
한신대학교, 2021
역대기는 오랫동안 학계의 주요한 관심을 받지 못했다. 그 이유는 연구의 관심이 주로 신명기 역사에 치우쳐 있었고, 역사의 객관적 신빙성을 물어왔기 때문이다. 특히 요시야 이야기를 담고 있는 열왕기 본문(왕하 22-23장)은 신명기 역사의 절정으로 이해되어 학계의 오랜 관심을 받아온 반면, 유사한 내용을 다룬 역대기 본문(대하 34-35장)은 그렇지 못했다. 역대기의 요시야 본문을 다룬다고 하여도 신명기 역사의 보조적 연구로 이해되어 왔을 뿐이다. 그 보충 연구에서도 학자들은 오랜 시간 동안 이질적인 두 본문을 조화시켜 이해하려고 했지만 불가능했다. 왜냐하면 역대기의 요시야 본문에는 열왕기의 요시야 본문과 조화를 이룰 수 없는 뚜렷한 차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성서 안에 있는 두 가지의 다른 역사에 대한 적확한 연구와 해석은 성서의 다양한 목소리를 이해하는 중요한 기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눈에 띄는 차이점은 열왕기 본문에서는 요시야 왕이 성전에서 율법서를 발견한 뒤 정화 운동을 하지만, 역대하 본문에서는 요시야가 정화 운동을 한 뒤 율법서를 발견하는 구조에 있다. 또한 열왕기에서는 요시야의 죽음에 관한 보도가 종결구(왕하 23:28) 이후에 삽입된 부록처럼 기술되어 있지만, 역대기에는 종결구(대하 35:26-27) 이전, 곧 본문의 이야기 단위 안에 서술되어 있다.
그렇다면 역대기 저자2는 왜 요시야의 개혁 이야기를 다시 썼을까? 그것은 바로 과거의 개혁을 ‘개혁’하기 위해서다. 역대기 저자는 원자료인 열왕기 본문에 있는 요시야의 배타적인 개혁을 포괄적인(inclusive) 개혁으로 ‘개혁’한다. 또한 역대기 저자는 신학적 난제인 선한 왕의 이른 죽음에 대하여 새로이 설명하고 있다.
역대기의 요시야 본문이 지닌 특징
열왕기의 요시야 본문은 요시야 왕의 통치를 개괄하는 형식적인 시작구(왕하 22:1-2)와 힐기야의 율법서 발견(왕하 22:3-20)으로 시작한다. 힐기야가 율법서를 발견한 후 요시야는 율법서를 함께 읽고, 언약을 갱신한다.(왕하 23:1-3) 이후 요시야는 우상 숭배에 관한 기구와 제사장들을 몰아내고(4-7절) 유다 전역에 세워진 산당을 철폐(8-10절)하는 종교적 조치를 내린다. 또한 예루살렘 주위를 정결하게 하고(12-14절), 벧엘의 제단과 사마리아의 산당을 철저하게 파괴한다(15-20절). 열왕기의 보도에 따르면, 요시야의 조치에 따라 유다에 있었던 산당의 제사장들은 예루살렘의 제단에 올라가지 못하였고(왕하 23:9), 사마리아와 벧엘의 제사장들은 살해되어 태워졌다(왕하 23:19-20). 그리고 요시야는 유월절 제의를 행한다.(왕하 23:21-27) 열왕기하 본문은 결론구(왕하 23:28) 뒤에 요시야의 죽음 이야기를 배치하면서 그의 죽음을 별개의 부록처럼 배치해 놓았다. 요컨대 열왕기의 요시야 본문의 배열에 따른 인과관계는 책(율법서)의 발견에 따른 이른바 개혁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역대기의 요시야 본문은 인과 순서가 바뀌어 있다. 역대기는 책의 발견 이전에 이미 성전 정화가 이루어졌다고 보도한다.(대하 34:3-7) 또한 본문 내용에서도 벧엘의 제사장을 살해한 이야기는 삭제하고 우상 철폐에 관한 내용은 간략하게 보도하는 반면, 유월절을 어떻게 지켰는가를 확대하여 상세하게 전하고 있다. 그리고 요시야의 죽음 이야기를 결론구 이후의 부록 형태가 아니라 본문 이야기 안에 배치했다.
이와 같이 역대기 저자가 재구성한 인과관계는 독자에게 다음과 같은 세 가지의 질문을 제기한다. 첫째, 율법서 발견 전에 이루어진 운동의 의미는 무엇인가? 둘째, 유월절 이야기는 어떻게/왜 확대되었는가? 셋째, 요시야의 죽음이 본문 이야기의 구성 안으로 들어온 구조적 변형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첫째, 책의 발견 이전에 행해진 정화 운동은 점진적이고 포괄적인 개혁을 의미한다.(대하 34:3-7) 역대기 본문은 요시야가 비록 젊은 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유다와 예루살렘을 장악하게 되었으며, 자신의 명령을 북왕국 영토까지 확장했음을 보여준다. 역대기 저자의 관심은 예루살렘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북쪽 지역을 포함하는 온 이스라엘에 있으며 진정한 개혁을 위해서는 모든 지역과 계층이 포함되어야 함을 암시하는 것이다. 또한 역대기 저자는 개혁의 범위뿐 아니라 참여자와 대상을 확대한다. 요시야는 율법서 발견 이전에 북이스라엘 지역인 므낫세와 에브라임과 납달리까지 황폐한 ‘그 집들’, 곧 성전들을 정결하게 하였고(대하 34:6),3 예루살렘 성전 수리를 위해 돈을 거두어들일 때에도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포함한 북이스라엘 백성들이 참여하도록 했다(대하 34:9).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역대기 저자의 시대에 그리심산, 이두메, 베델, 엘레판틴과 같은 곳에도 하나님을 섬기는 성전이 존재했다. 특히 최근의 고고학적 발견은 예루살렘 성전에 대한 사마리아인들의 경쟁 성전(rival temple)이 그리심산에 존재하고 있었음을 증명한다.4 따라서 역대기 저자가 요시야 본문 가운데 사마리아와 벧엘의 제사장들을 살해하는 본문을 삭제하고, 북쪽 지역을 포함한 성전들의 정화와 더불어 예루살렘의 개혁을 강조한 것은 외부에 대한 공격이 아니라, 외부에 대한 포용과 내부에 대한 철저한 개혁을 요청하는 의도로 볼 수 있다.
둘째, 역대기 저자가 확대하여 서술한 유월절 기사(대하 35:1-17)에서 제사장에 대한 이상화(idealization)는 나타나지 않지만(대하 35:2), ‘레위’는 특별하게 묘사된다. 역대기 저자는 ‘레위’로 불리는 집단에 관심이 많다. 역대기 저자는 성전 주변의 일을 담당하고, 다양한 역할을 하는 모든 이들을 ‘레위’라고 부른다. 다시 말해, 역대기 저자는 대제사장 및 제사를 감당하는 이들을 ‘아론의 자손’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이, 제사장을 포함한 다양한 성직 집단과 지도자들을 모두 ‘레위’로 지칭한다.(대상 6) 레위는 역대기의 유월절 본문에서 실무적인 일 대부분을 감당하여 다양한 지역과 계층의 사람들이 유월절에 참여하도록 한다.(대하 35:18) 레위의 개념과 역할에 관한 가장 중요한 변화가 역대기의 요시야 본문에서 일어난다. 레위는 유월절 행사에서 제사장이 독점하던 희생제물의 도살을 담당하며, 제사장들은 레위로부터 제물의 피를 받아 뿌린다.(대하 35:11) 이에 대하여 역대기 저자는 규례(대하 35:12-13)를 언급하면서 일손 부족으로 히스기야가 행했던 임시 조치(대하 29:24, 34)가 요시야 시대에 이르러서는 합법적인 절차가 된 것으로 설명한다. 이와 같은 레위인의 역할과 지위의 확대는 제사장 중심의 독점적 성직이 민주화되었다는 해석학적 효과를 가져온다.
셋째, 역대기 저자는 요시야의 죽음 본문을 결론부에 있는 공식구(대하 35:26-27) 앞에 배치하여 본문의 이야기 단위 안으로 포함한다. 이는 요시야의 이른 죽음의 사건을 요시야 전체 본문 안에서 읽도록 한다. 요시야가 전장에서 사망했다고 보도하는 열왕기와 달리, 역대기에서는 요시야가 이미 멸망한 북왕국 지역인 므깃도에서 싸우다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죽음을 맞이하는 것으로 보도한다.(대하 35:20-24) 이러한 묘사는 요시야의 포괄적인 개혁 조치가 일단락된 후(대하 35:20)에도 그의 관심이 북왕국을 벗어나지 않았음을 나타낸다.
또한 역대기는 원자료가 지닌 구조를 변경했지만, 여선지자 훌다의 예언은 중심부에 그대로 위치해 두었다. 힐기야는 율법서를 발견하고 왕 앞에서 그 말씀을 읽은 후 여선지자 훌다에게 갔는데, 훌다는 ‘예루살렘의 둘째 구역’에 살고 있었다.(대하 34:22) 이 장소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학자들은 이곳이 멸망한 북쪽 지역으로부터 기원한 사람들과 관련이 있다고 이해하며, 훌다를 북이스라엘 난민으로 본다.5 최근 고고학 연구의 결과 역시 이곳이 북부 난민들이 모여 살던 주거지라는 주장을 뒷받침한다.6 즉, ‘예루살렘 둘째 지역’이라는 표현은 장소를 나타내는 표현이지만, 그 의미는 북부 난민들이 모여 살았던 주거 지역을 가리키는 표현임을 개연적으로 알 수 있다.
본 논문에서는 위와 같은 역대기 저자의 주요한 특징과 수사 전략을 ‘환유’라는 수사학적 용어로 요약했다. 역대기 저자는 당시의 성전들을 가리킬 때 ‘그 집들’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으며, 성전 주변에서 일하며 중재자의 역할을 감당하는 이들을 ‘레위’로 부르며, 북부 난민들이 모여 살았던 주거 지역으로 지칭되는 ‘예루살렘 둘째 지역’을 서술했다. 이러한 역대기 저자의 환유적 서술은 모두 역대기 저자의 포괄적인 신학을 나타낸다.
정리하자면, 역대기의 요시야 본문은 요시야가 통치 초기부터 성전들을 정화하고 북왕국까지 가서 우상을 타파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단락(대하 34:1-7)으로 시작하여, 그가 성전 정화를 마친 후에 북왕국 지역인 므깃도에 가서 느고와 싸우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죽음을 맞이하는 단락(대하 35:20-27)으로 끝이 난다. 또한 요시야가 성전들을 보강하는 단락(대하 34:8-13)과 역대기 저자가 확대한 유월절 행사를 담고 있는 단락(대하 35:1-19)은 레위의 주요한 역할과 북왕국 지파의 참가를 공통으로 서술하여 대칭을 이루고 있다. 율법서의 발견을 담고 있는 단락(대하 34:14-21)과 율법을 읽고 언약을 맺는 사건을 담은 단락(대하 34:29-33)도 서로 대칭을 이루고 있으며, 요시야 본문의 중심에는 북쪽 출신 예언자 훌다의 메시지를 담은 단락(대하 34:22-28)이 있다. 이러한 교차대구적 구조는 역대기의 요시야 본문을 북쪽 지역에 대한 배타와 공격이 아닌 포괄적인 개혁이라는 주제 아래 하나의 이야기로 읽을 수 있도록 한다.
요시야가 맞이한 이른 죽음의 의미
선한 왕인 요시야의 이른 죽음은 오랜 기간 답하기 어려운 문제로 인식되었다. 훌다의 심판 경고는 요시야에게 전해졌고, 요시야가 슬퍼하며 철저히 회개함으로 재난은 유보되었다.(대하 34:24-28) 그런데 이러한 요시야의 회개와 재난의 유보에도 불구하고, 선한 왕 요시야는 왜 이른 죽음을 맞이했는가?
역대기 저자는 ‘선한 왕의 이른 죽음’이라는 신학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열왕기 본문을 다양하게 수정한다. 먼저 “평화롭게 묘실로 들어가리라”는 훌다의 예언은(대하 34:28) 평화의 도시인 ‘예루살렘’에 이르러 요시야가 죽음을 맞이하고, 조상의 묘지에 들어감으로써 성취된 것으로 변경되었다. 이는 평화를 의미하는 ‘샬롬’의 수사학적 반복인 동시에 훌다의 예언에도 불구하고 이른 죽음을 맞이한 요시야에 대한 역대기 저자의 신학적 해결이다. 한편 역대기 저자는 열왕기하 22장 19절에 있는 훌다의 예언 가운데 “빈 터(황폐한 땅)가 되리라는 저주”를 삭제하였다. 이스라엘 땅은 여러 번의 정복 이후에도 완전히 ‘빈 땅’이 된 것이 아니라 남은 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왕하 17:18, 24:14)
또한 역대기 저자는 이집트 왕 느고의 발언과 요시야의 변장 및 활 쏘는 자의 주제도 추가했다. 역대기 저자는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느고의 명령을 요시야가 거부한 것으로 묘사한다.(대하 35:21-22) 느고의 발언은 그가 비록 이방인이지만 역대기의 결말에 있는 고레스의 칙령과 같이 신의 뜻을 나타내는 역할을 한다. 느고와 고레스의 발언은 역대기 저자의 시대에 강력한 영향력이 있는 두 제국을 간접적으로 표현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요시야의 ‘변장’은 신의 명령에 대한 거부 의사를 강화한다. 신의 명령을 거부하는 요시야의 행위는 활 쏘는 자의 활에 맞는 결과를 만든다. 변장과 활 쏘는 자의 주제는 사울과 아합 이야기에서 나오는 주제의 반복이다. 사울은 신접하는 자를 찾기 위해 변장했으며 아합은 전장에 나가면 죽을 것이라는 예언을 거부하는 행위로서 변장을 하여 활에 맞았다.(삼상 28:8, 대하 18:29) 역대기 저자는 요시야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죽음을 맞이한 것으로 비극을 완화하고 있지만, 그가 느고를 통한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한 일과 변장의 결과로 활 쏘는 자에게 활을 맞은 기사를 통해 인간의 행위에 대한 신적인 결과라는 자신의 신학에 따른 종합적인 결말을 만든다.
더 나아가, 우리는 요시야의 이른 죽음을 역대기의 결론에 있는 구절과 함께 이해할 수 있다. 역대기의 결론부인 36장 21절은 “토지가 황폐하여 땅이 안식년을 누림같이 안식하여 칠십년을 지냈다”고 말한다. 이 구절은 구약성서의 다양한 전승을 종합하고 있다. 첫째는 70년을 안식하리라는 예레미야의 예언(렘 25:11, 29:10)이고, 둘째는 일곱째 해에는 땅이 쉬어야 한다는 안식년 규정(레 25:4)이다. 그리고 셋째는 레위기의 땅의 거주민이 가증한 일을 하면 그 땅도 더러워지며, 그 땅이 주민을 토할 수 있다는 경고(레 18:27-28)와 “너희가 원수의 땅에 살 동안에 너희의 본토가 황무할 것이므로 땅이 안식을 누릴 것이라 그 때에 땅이 안식을 누리리니”라는 기록이다(레 26:34). 앞선 전승들에서 포로 생활의 기한과 토지와 안식년이 연결되어 있지만, 역대기 저자는 포로 사건의 의미를 ‘긴 안식’이라는 다른 차원으로 만들어 낸다. 즉, 칠 년에 한 번씩 쉬어야 하는 안식년을 70년 동안이나 쉬어야 했다고 말하면서, 490년 동안의 왕정 전체를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시각 안에서 우리는 요시야에 대한 칭송(왕하 23:25)을 삭제하는 역대기 저자의 신학도 이해할 수 있다. 역대기 저자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돌아보면서, 왕정 역사를 비판적으로 재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역대기의 요시야 본문은 포괄적인 개혁을 다루고 있지만, 요시야의 이른 죽음은 왕정 전체에 대한 역대기 저자의 비판 가운데 있다.
마지막으로 역대기 저자는 요시야 죽음에 대하여 슬픔과 애도를 추가했다. 예레미야는 그의 죽음을 노래하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애가를 부르도록 했다(대하 35:25). 역대기 저자는 그 애가가 자신의 시대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보도한다. 역대기의 요시야 본문에 있는 유월절 행사가 다양한 계층과 지역의 사람들을 포용하는 기쁨의 축제로 전해지고 있다면, 요시야의 죽음과 애도가 성전과 도시의 철저한 파괴와 포로 됨을 경험한 이들에게 비극을 완화하는 의례로서 자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결론
역대기 저자는 열왕기에 있는 요시야 왕의 이야기에서 책의 발견과 그 이후 사건들의 ‘인과관계’를 도치시켰다. 열왕기에서 책의 발견은 성전의 수리라는 결과로 이어진 것과 다르게 역대기 본문에서 성전 수리는 책 발견 이전에도 행해졌다. 역대기의 본문에서 책의 발견은 왕과 ‘온 이스라엘의 언약 갱신’과 ‘온 이스라엘’이 참여하는 유월절 행사로 이어진다.(대하 35:18) 북쪽 지역에 위치한 성전들에 대한 정화 운동(대하 34:6-7)과 북쪽 사람들의 수금 및 성전 정화 참여(대하 34:9), 유월절 행사와 북쪽 지역인 므깃도에서의 요시야의 전투에 이르기까지 모두 ‘포용’이라는 주제를 담고 있다. 즉, 역대기 저자의 요시야 본문은 열왕기 본문을 다양한 방식으로 수정하면서 예루살렘과 성전의 개혁만을 강조하는 것뿐 아니라, 북쪽 지역과 사마리아에 대한 배타를 완화하고 있는 것이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역대기 저자의 시대에 다양한 성전들이 공존하고 있었다고 한다면, 역대기 저자는 왕정과 성전의 파멸을 경험한 독자들을 향하여 외부를 향한 공격보다 내부로부터의 철저하고 점진적인 개혁과 포괄적인 연대를 제시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역대기 저자의 요시야 이야기는 책의 발견을 통한 공격적이고 배타적인 중앙화를 언약 체결과 유월절의 준수로 변형하고, 나와 다른 이들의 포괄적 참여야말로 진정한 개혁임을 드러내고 있다. 요시야가 죽음을 맞이하고 많은 이들의 애도를 받은 것(대하 35:26)은 그의 종교적 개혁운동뿐 아니라, 자신의 것을 제물로 내어놓고(대하 35:7), 북쪽 지역을 정화하고 그 지역까지 지키려고 애쓴 모든 일과 유기적 관련이 있다. 역대기의 요시야 본문이 보여주는 구성은 왕과 국가의 부재 현실에서 중재자인 레위를 통하여 모든 지역과 계층의 사람들을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규합하고 연대하는 개혁을 보여준다. 결론적으로 역대기 저자가 제시하는 요시야의 개혁은 나와 다른 이를 포용하고 자신의 것을 내어놓는 것이며, 다른 이를 배타하고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내부로부터 철저하게 시작하는 것이다. 역대기 저자는 요시야 이야기를 통하여 과거 역사와 저자의 시대 그리고 이상을 변증법적으로 새롭게 담아내고 있다.
주(註)
1 박사 논문에서는 수사비평방법론이 비체계적이라는 비판에 따라 현대 언어학 연구와 체계적 수사학을 적용하여 성서를 분석하였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지면 관계상 분석의 결과와 그 신학적 의의를 중심으로 역대기 저자의 요시야 본문을 다룬다.
2 ‘역대기 저자’(the Chronicler)란 여러 학자의 견해와 같이 에스라-느헤미야서와 독립된 역대기의 저자를 의미한다. 학자들은 이방인과 북이스라엘에 대한 포용적인 태도와 신학을 역대기 저자의 주요한 구분 표지로 이해한다. S. Japhet, “The Supposed Common Authorship of Chronicles and Ezra-Nehemia Investigated Anew,” Vetus Testamentum 18 (1968): 330-371; H. G. M. Williamson, Israel in the Books of Chronicles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77), 5-70.
3 역대하 34장에는 ‘그 집들’이라는 복수형 표현이 두 차례 등장하는데, 하나는 역대기 특수자료이며(대하 34:6), 그다음은 평행자료의 단수를 복수로 변경한 것이다.(대하 34:11). 34-35장의 문맥에서 ‘그 집’이라는 용어는 모두 성전을 지시하는 데 사용되었기 때문에 ‘그 집들’이라는 단어도 ‘성전들’로 일관되게 이해하는 것이 적절하다. 또한 역대하 34장 6절에서는 문장의 서술어가 생략(삭제)되어 있다. 통상적인 역본들은 “그렇게 행하여”라고 번역했지만, 이러한 번역을 따른다면 구체적 행위가 무엇인지, 요시야가 무엇을 행했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따라서 앞 문장과 동일한 서술어가 생략된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해 보인다.
4 참조, G. N. Knoppers, “Mt. Gerizim and Mt. Zion: A Study in the Early History of the Samaritans and Jews,” Studies in Religion 34 (2005): 312-313; David Janzen, Chronicles and the Politics of Davidic Restoration: A Quiet Revolution (London: Bloomsbury T&T Clark, 2017), 37; Andre Lemairé, “New Aramaic Ostraca from Idumea and Their Historical Interpretation,” in Oded Lipschits and Manfred Oeming eds., Judah and the Judeans in the Persian Period (Winona Lake, Ind.: Eisenbrauns, 2006), 413; James B. Pritchard, The Ancient Near East Vol. 2: An Anthology of Texts and Pictures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58), 491-493.
5 존스톤은 훌다의 거주지인 예루살렘 둘째 지역이 북왕국 멸망 후 레위계를 중심으로 정착한 사람들로 이루어졌음을 주장한다. William Johnstone, 1 and 2 Chronicles (Sheffield: Sheffield Academic Press, 1997), 241; S. Japhet, I and II Chronicles (Louisville: Westminster John Knox, 1993), 1035; Renita J. Weems, “Huldah, the Prophet: Reading a (Deuteronomistic) Woman’s Identity,” in Brent A. Strawn, Nancy R. Brown eds., A God So Near: Essays on Old Testament Theology in Honor of Patrick D. Miller(Winona Lake: Einsenbrauns, 2003), 329
6 Andrew G. Vaughn and Ann E. Killebrew eds., Jerusalem in Bible and Archaeology: The First Temple Period, Society of Biblical Literature Symposium Series 18 (Atlanta: Society of Biblical Literature, 2003), 279.
김윤식|한신대학교와 동 대학원에서 구약학을 공부하여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기독교장로회 목사이며, 수원 한민교회에서 부목사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