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어제 글에서 제 처가에 다녀왔다는 말씀은 드렸지만,
수박에 겉핥기로 대충 하였으니 이젠 구체적인 내용으로 들어가야죠.
나무를 제대로 잘 보기위해서는 숲 밖에서 한번 전체모양을 보고 숲속에 들어가서
세세하게 보아야 한다잖아요.
별거 아닌 듯 보이는 분재(盆栽)나 난(蘭)이 어떤 것은 수천만원을 홋가하고 심지어는
억단위 넘는 것도 있다해요.
웬만한 집 한 채 값이 넘는 다는 거죠.
제가 보기에는 그저 보통 나무에 풀처럼 보이지만요. (하하하)
어떤 분들은 동네 뒷동산이나 간만에 가까운 산에 올라가서도 산삼(山蔘)을 캐서
술값은 물론, 톡톡히 재미를 본다는 데,
이 몸은 등산을 좋아하지도 않지만, 어쩌다가는 산행에서 설사 제 옆에 산삼이 있더라도
몰라봐서 못 캘 겁니다.
산삼이 어떻게 생겼는 지를 알아야 캐던지 말던지 하지요. (ㅋㅋㅋ)
제 처가가 속리산 기슭이라는 얘기는 벌써 수차례 했는 데, 해마다 속리산에서 산삼을
캐서 횡재했다는 분이 나온 다네요.
하긴, 아무나 캘 수 있는 산삼이 아니죠.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저는 산삼을 몰라서 못 캐고, 어떤 분들은 캐려고 노력해도 보지 못한다는데...
저희 장인어른도 속리산에 열심히 올라 다니셨지만, 산삼은 못 보셨대요.
자연산 “송이버섯”은 많이 따셨지만요.
지금은 관절염 수술 후로 등산은 못하시고, 겨우 농삿일이나 신경 쓰시는 형편이지요.
울 님들 중에 산삼 생각나시는 분들 속리산에 함 오시죠? (ㅎㅎㅎ)
그제(3일) 새벽에 장모님 생신을 축하해 드리고자 용화를 가기 전에,
저는 본당에서 토요특전미사를 드렸어요.
용화에는 성당이 없어서 까딱하다보면, 주일미사를 못 드리는 불상사가 생기거든요.
2일 저녁에 주님께 저희가 “용화에 잘 다녀오겠습니다”하고 미리 인사를 드렸죠.
그런 다음, 아녜스와 저는 제 차를 끌고 쇼핑을 갔어요.
쇼핑 가는 중에 주유소를 들러 오랜만에 휘발유 4만원어치 넣었죠.
지난 3월 6일 장인어른 생신때 용화 다녀오면서 기름 넣었었으니, 거의 4개월만이니...
저 같은 사람만 있으면, 정유회사와 주유소 업자들 굶어 죽겠다 하겠죠? (ㅎㅎㅎ)
차 기름까지 빵빵하게 채우니 기분 좋더라구요.
새벽에 일찍 가야하니까 장인장모님께 드릴 선물과 음식재료를 미리 사기위해 둔산동 할인매장으로 쇼핑 갔어요.
아녜스가 혹시라도 빠뜨릴세라 메모지에 사야 할 품목을 꼼꼼하게 적어 왔더라구요.
누가 살림 못한다고 할까봐...? (흐흐흐)
카트에 수북히 실어놓은 물건을 거금(?)을 주고 계산완료하고 제 차 트렁크에 싣고
룰루랄라 집에 왔어요.
밤 시간에 쇼핑하느라 다리도 아프고 졸리던데, 그래도 그 시간에 특별할인 하는 게 많다는
울 짝지...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주차공간이 별로 없었지만, 어차피 새벽 일찍 용화로 출발하기에
보조브레이크를 푼 채로 그냥 통로 옆에 주차했어요.
그러고는 집에 들어서자마자 잠을 청했는 데, 평소에 새벽1시를 지나서야 잠자는 저희라
그런지 눈만 말똥말똥하고 잠이 안 들어지더라구요.
그래도 T.V.를 좀 더 보다 억지로 잠이 들었는 데, 깨어보니 새벽 5시 30분.
아녜스는 벌써 깨서 애들 아침밥 준비를 다하고, 출발할 준비를 하고 있더라구요.
간만에 친정집에 가서 자기 부모님을 뵈려니까 기분이 들떴남...?
나중에 차안에서 물어보니, 두 시간도 못 잤다더라구요.
소풍날 기다린 초등학생 심정이었는지...? (ㅎㅎㅎ)
드디어, 집을 나서서 선물과 음식재료를 한 보따리 차 트렁크에 싣고서 출발!
새벽 5시 57분이었죠.
휴일 새벽에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대전시내에 차가 별로 없어 신나게 달렸죠.
월평동에서 둔산동, 오정동, 원동, 인동, 효동, 판암동을 지나는 데, 15분도 채 안 걸렸어요.
장맛비가 엄청 쏟아지는 속을 꿋꿋하게 가는 데, 폭우가 너무 심하다 생각했는 지,
아녜스가 하는 말, “빗길에 위험하니 그냥 집으로 돌아가고, 다음주에 날 좋을 때 용화가는 게 어떻겠냐”더라구요.
장인장모님이 시골에서 이제나 저제나 저희들 오길 기다리고 계실텐데,
안전운전하며 갈테니 걱정말고, 기도나 열심히 드리라 했어요.
폭우에 와이퍼를 세게 작동했는 데도 앞이 잘 안보일 정도 였지만,
저는 차로를 지키며 꿋꿋이 갔지요.
세천을 지나고, 이윽고 대전과 충북의 경계인 고개를 넘어 옥천땅에 들어섰죠.
1년에 몇 번은 가는 길이라 규정속도인 70~80Km/h로 달렸어요.
대전시내 도심에서야 그런 속도 못 내지만, 시외에서야 쭈~욱 신나게 달리는 거죠.
옥천읍에서 보은방향으로 좌회전하여 들어서서 산과 대청호를 보면서 달려간 끝에
보은읍에 도착했어요.
충북 보은은 제가 면직원일 때, 태어난 아들 요한이의 고향이죠.
태어나 100일 지나서 바로 대전으로 이사했기에 요한이는 그때 기억이 안 난다죠..
딸 세실리아는 3살이었는데도 모르겠다는 데...
보은읍에서 청주방향으로 가다가 세거리에서 우회전하여 산외면으로 들어서면,
제 처가인 용화로 가는 초입이죠.
구티고개를 넘어서면 탁트인 시골 풍경이 멋진 데,
저는 한적한 도로를 120Km/h까지 속도가 나오게 달렸어요.
다른 국도에서야 감시카메라가 많이 있지만, 이곳은 설치 안 되었거든요. (헤헤헤)
물론, 이른 시간에 도로를 걷는 사람이 없으니 그런 속도를 낼 수 있죠.
아이쿠, 이글 보고 보은경찰서나 상주경찰서에서 감시카메라 설치하면 안되는뎅...
보은 산외면 신정리를 지나고 활목고개를 넘어서면, 경상북도 땅입니다.
경상북도 상주시 운흥리.
제 처가인 용화에 들어서는 거죠.
운흥리를 지나면 한참 개발하다 중도에 충북 괴산군의 반대로 중지된,
“용화온천”개발지구가 나와요.
자연보호와 지역개발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곳이죠.
저도 “용화온천” 물을 마셔도 보고, 목욕도 해봤었지만, 정식으로 개발되면
속리산 절경과 함께 멋진 관광명소가 될 텐데... (쩝!)
운흥리를 지나면, 제 짝지가 졸업한 “용화초등학교(지금은 화북초등학교 용화분교로 격하되었지만)”가 있지요.
“용화장터”에 버스종점이 있구요.
그전에 제가 자가용 차 없을 때에는 거기서 처갓집까지 애 둘 업고 걸리고 보따리 들고서
힘들게 갔었는 데...
지금은 써금써금한(?) 중고차라도 제 승용차로 갈 수 있어서 넘 편하죠. (하하하)
그전에 짝지가 태어나 살았던 신흥리를 지나면, 대흥리(댕골이라죠.)가 나와요.
마을회관 공터에 차를 세우고,
마련해온 선물보따리를 들고 몇 발자국 걸어가면 나오는, “대문 없는 집”이 제 처갓집입니다.
하긴, 그 동네엔 “대문 없는 집”이 여러 집입니다.
그전에 소 키우실 때는 송아지가 대문밖에 나가지 못하게 막대기라도 걸쳐 놓았었는 데,
지금은 소를 안 키우시니까 그것도 없어요.
요즘 같이 살벌하고 각박하다는 세상에 사람을 믿고 살 수 있다는 것은 큰 기쁨일 거여요.
이 글보고, “도둑놈”들이 그곳으로 몰려가진 않겠죠?
하긴, 어르신 들 말씀으로는 시골 구석에 도둑놈이 와도 가져갈 게 없다시던데... (하하하)
“용화”가 산 좋고 물 깨끗하고 공기 맑은 멋진 고장입니다.
개발이 많이된 충북 보은 법주사쪽 보다는 자연생태계가 훨씬 좋다죠.
아이쿠, 대전 월평동에서 경북 상주 화북면 용화에 오는 얘길 쓰고 보니 넘 길어졌네요.
이제 처가에 도착했으니 숨 좀 돌리고,
그곳에서 있었던 이야기는 내일해야죠.
제가 너무 길게 끄나요?
재미없는 "T.V.드라마“는 질질 끌면 짜증 난다는 데, 그래도 날마다 글 올리려 애쓰는
제 성의를 봐서 참고 기대하시길... (호호호)
오늘은 7월 5일입니다.
요즘 사무실 분위기가 어수선해요.
인사발령이 있거든요.
저는 지금 부서에서 근무하는 지, 1년이 채 안되어서 옮길 수 없겠지만,
그래도 같이 고생하는 직원들이 승진하고 영전하면 좋겠죠.
울 님들도 좋은 일 많아지시는 오늘이기 바랍니다.
행복하세요!!! (넙죽!)
아래의 글은 제가 작년(2004년12월7일)에 올렸던, “대문 없는 집 (1편)” 글입니다.
못보신 분들을 위해 같이 올려 드리니 이해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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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회원님 뿐아니라 전국 어디서나 열심히 생활하고 있는 분 들 대부분은 농촌 추억이 있으실 겁니다.
우리나라 수도인 서울 시민 중에도 일부 토박이를 제외하면 시골이 고향이거나 부모님, 형제, 일가친척 등의 연고가 다 있으실텐데...
저는 언젠가 얘기했듯이 수도권의 소도시(동두천시)가 고향으로 농사와 관계없는 어린시절 형편이었지만,
그래도 동네를 나서서 조금만 나가면 논과 밭이 있었기에 농촌 냄새를 맡아가며 지냈습니다.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살다가 대전에 오고, 청주에서 결혼해 신혼생활을 시작해
보은에서 공무원 근무하며 농촌에 계신 농부님들과 애환을 나눴고,
다시 대전에와 교도관으로 교도소 근무를 하였으며, 다시 지금의 근무처에서 밥벌어 먹고 있으니...
산전수전 안 겪은 분 없지만, 저 역시 4학년 5반이 되도록 여러 경험을 했다지요.
옛말에 “농자는 천하지대본야”라 했는 데, 정말로 농사가 잘 되어야 인심도 좋고
세상 경기도 풀리는 게 아닐는지...
풍년이면 농산물이 너무 많아 값이 떨어져 걱정, 흉년들면 값은 올랐어도 수확량이 적어서 걱정.
게다가 요즘은 걸핏하면 수입 농산물이 들어와 농촌에 계신 님들의 시름이 더 커진다죠. (쩝!)
예로부터 곳간에서 인심난다 했는 데, 농촌이 더 살기 좋아지고 농부님들 걱정이 덜어져야 세상살이가 좋아지겠는데요.
제게는 1년에 몇번 가보는 처가가 있는 곳이 경상북도 상주입니다.
필리핀의 박산다라양의 아버지 박익수씨도 같은 고향이죠.
제 마눌 강아녜스와 같은 초등학교 동기동창이니...
속리산 기슭에 “용화”라고 부르는 동네로, 아름다움과 정겨움이 넘치는 좋은 고장입니다.
보통 속리산하면, 충북 보은쪽을 떠올리는 데,
저는 제 짝꿍을 알고서부터 화북(=용화)을 알게되었다죠.
자연미가 풍성한 그곳이 좋아요.
제가 경북 상주 제 처가를 처음 갔을 때는 1982년 11월 26일로 추운 초겨울이었어요.
처음 용화를 갔던 때는, 보은에서 용화까지 비포장도로로 버스로 덜컹거리며 무려
1시간 반을 갔던 그곳.
지금은 도중에 있는 구티고개도 좋아졌고, 포장도로로 변해 너무나 즐거운 처가행이
되었답니다.
이게 장가 잘 든 덕분일까요? (우 헤헤헤)
도시의 찌든 삶에서 시달리다가도 대전에서 차로 1시간 30분을 달리면 갈 수 있는
그곳. 경상북도 상주.
속리산 자락의 운치도 멋지지만,
그래도 자연미와 함께 인정이 넘치는 그곳이 너무 좋아요.
여름철에는 으슥한 계곡물이 좋아, 홀딱 벗고 담그고 있다가 차갑다 못해 추워서
저절로 피서가 되는 곳이죠.
가을과 겨울철에도 짙은 단풍과 설경으로 멋진 곳이구요.
제 처가가 있는 동네엔 “대문이 없는 집”이 많아요.
이 각박하고 살벌한 세태에 대문 없이 사람을 믿고 산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닐겁니다.
대문없이 그냥 막대기로 집안에 있는 송아지가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걸쳐만 놓은 동네.
이렇게 남을 믿고 살면 좋겠는 데,
그러지 못하는 곳이 너무 많으니... (훌쩍!)
저는 내일 개인적인 사정이 있어 하루 휴가를 내고 “대문 없는 집” 처가에 다녀올 거여요.
사실, 저는 작년과 올해 여름휴가를 안 갔었어요.
휴가를 안 간건지, 못 간건지? (ㅎㅎㅎ)
아무리 직장 일이 많고 바쁘다 해도 남들이 가는 건 다 가야하는 건데...
안 그래요?
울 애들은 학교에 가야해서 같이 동행 못하겠는 데, 다음에 같이 갈 일 있겠죠.
지난 7월 장모님 생신 후로 5개월 만에 뵙는 장인, 장모님과 막내 처남에게 잘 해줘야죠.
울 장모님이 열심히 끓여 주시는 손칼국수를 맛보구요.
“홍두깨”로 밀어서 납작하게 만들어 끓여주시는 손칼국수가 정말 맛있답니다.
(후루룩~ 냠냠! 쩝!)
요즘 젊은 친구들은 “홍두깨”가 뭔지 아려나? (하하하)
엊그제 저의 집도 김장을 담갔는 데, 장모님이 저희 먹을 김장도 담갔으니 가져 가
먹으라 세요.
1년 농사 지으신 쌀과 고추도 가져 가라시니...
시장에서 얼마든지 사먹을 수 있는 거지만, 그래도 시집간 딸자식과 사위 생각해 주시는 분들이 너무 감사하죠.
제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셨기에 장인 장모님께도 더욱 잘해 드려야 겠는 데...
마음은 있어도,
멋진 모습에 좋은 선물을 많이 못해 드리니... (훌쩍!)
그래도 저희를 보면, 항상 고마워하시며 격려해 주시는 분들이십니다.
마누라가 이뿌면 처갓집 쇠말뚝 보고도 절 한다 했지만,
저는 쇠똥 냄새에 풀 냄새 풍기고, 아침 저녁에 밥짓는 시간 맡아보는 아궁이 연기도 정겨워요.
물론, 시골에도 지금은 아궁이에 나무 때는 집이 많이 줄었지만요.
제 처가도 그전엔 아궁이 신세 졌었는 데, 지금은 살기 좋아져서 가스레인지를 쓰신
답니다. (ㅎㅎㅎ)
오늘도 즐거운 하루 보내시길 바라며...
모두들 화이팅!!!
첫댓글 참으로 진솔한 삶의 향기가 묻어나는 글이네요..저는 집이 춘천인데 처가도 같은 동네에 있어서 처가집에 가는 재미는 없는 편이죠..집에 갈 때 항상 들려서 와야하니 비용도 두배로..ㅎㅎ..님의 글에서 행복을 느끼고 갑니다..즐거운 하루 되시길...
색시가 이쁘면 처가집 말뚝 보고 절 한다는 말이 있듯이 용화사랑님게서 닉이 처가댁 동네이름이네요...행복한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용화 사랑님이 아이디를 왜 그리 하셨는지 이해가 가는 좋은 글 입니다. 고국의 시골 내움이 물씬 풍기는 글... 그리고 카톨릭 신자 시군요. 저도 카톨릭 신자다보니... 제 본명은 다니엘이고. 우리집 사람은 모니카 입니다. 기회있는대로 이곳 성당 이야기도 좀 쓸 생각 입니다. 용화 사랑님! 주님안에 좋은 주일 맞으소서
용화가 지명이름이었네요....님의 부인은 정말 행복하시겠습니다..잘읽었습니다..행복하시길..
용화사랑님,부인 아네스를 사랑하시는 마음이 느껴 지네요~그래요 그렇게 알콩달콩 한세상 사는거지요 뭐~ㅎㅎ 잘 읽고 갑니다 좋은밤 되시구요
네, 님들 감사드립니다. 아파치님은 태평양 건너 미국에서 사시네요. 조국을 떠나면 누구나 애국자가 된다는 데, 건강하고 행복하시길 기도드립니다. 형제자매님과 모든 회원님들께도 기쁨 많고 즐거운 날 되시길 바라구요. (넙죽!)
오랫동안 머물다 갑니다 참 좋은 곳에 사시네요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소서......
정성담긴 긴글 가슴따뜻하게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