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1
송태선
세상도 물어보고 인생도 물어보고 생별과 사별의 아픔을 삼키며 살아왔다. 내 맘 뜰 안에 가득 심어 두었던 기기묘묘한 사연들은 환희와 비애가 교차하는 인동초 넝쿨이었다. 가시밭길 넝쿨 속에서 헤매다 잡아주던 친구들과 지인들이 하나둘 떠나갔다. 다시 만날 수 없는 추억의 인연들은 마음속 깊숙이 자리 잡았다.
친구라고 다 같은 친구가 아니다. 삶의 수액이 흐르는 대지 위에서 표류하는 마음을 의지했던 저세상으로 간 친구가 그립다. 십여 년이 지나도 가는 곳 자취마다 목소리 그림자가 가물거린다. 가끔 꿈에도 보이곤 한다.
동갑내기 친구와는 아주 각별했다. 부부 이야기, 자식 이야기, 지인들 이야기 허심탄회하게 속을 터놓고 지내던 친구다. 비밀이 없었으며 두 사람 모두 차가 있었기에 ]마음만 먹으면 자정이 넘어도 강원도로 전국 어디라도 가곤 했다. 갖가지 여러 분야 활동도 같이했으며 그림자처럼 붙어 다녔다.
세상에 내놓은 것은 다 해봐야 한다고 후회 없이 살았던 친구는 61세란 나이에 수락산에 등산 가서 심장마비로 현장에서 쓰러졌다. 헬리콥터에 몸을 싣고 아산병원 가는 도중 숨을 거두었다.
주위 사람들은 좋은 사람 갔다고 아쉬워하면서도 굵게 짧게 하고 싶은 것 다 했으며 죽을 때도 헬리콥터 타보고 죽었다는 실화도 남겼다. 이렇게 후회 없이 미련 없이 살아온 그림자 뒤에는 가족과 자식들, 그리고 애잔해하는 지인들도 죽음에는 못다 한 아쉬움이 있기 마련이다. 가는 자는 말이 없으며 남은 자에게는 아쉬움에 그리움을 보태어 주고 떠난다.
정겨운 얼굴 한 자락이 하얀 구름 사이 허공에 맴돌고 있다.
이방인 2
송태선
맑은 하늘 사이로 흘러가는 구름에 내 마음 의지하던 고향 친구를 피부로 와닿지 않는 저세상으로 보내야 한다.
떠나가지도 보내지도 못하는 일몰의 황홀한 석양 빛을 바라보며 또 한 친구를 보낼 준비를 하고 있다. 구멍 뚫린 허탈감이 전신을 엄습해온다. 가슴 심층부로부터 쉼 없이 애끓는 마음 내뿜고 있다.
고향의 강 언덕과 마음을 끌어 당기던 코스모스 밭 사이 그리움 삭혀 두었던 둘도 없는 죽마고우다. 사랑의 무게만큼이나 아픔이 절실하다. 대구 청천, 고향의 기둥이었던 친구가 갑자기 쓰러져 산소 호흡기에 몸을 맡긴 채 사람 구별도 못 하고 말없이 누워있는 시간이 1년이 다가온다.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응급실에서 산소 호흡기 하나에 이승과 저승을 넘나들고 있다. 코로나 때문도 있겠지만 중환자실에는 가족 이외는 면회도 할 수 없다. 마지막 순간까지는 귀가 들리는 것으로 알고 있다.
처절한 마지막 생존의 몸부림 앞에 나는 친구에게 마음에 꽃 한 송이 귓전에 심어주고 싶다. 멀고 험한 여정 속에서 달려온 초원의 시절을 그리며 말 한마디 한마디가 가슴에 와 맺힌다. 인연도 노력해야 머문다는 말이 생각이 난다.
왜 자주 만나지 못했을까? 지나고 보니 별것 아닌 세상! 바람같이 스쳐 가는 인생, 무엇이 그리 이유가 많은 삶을 살아야 했는지 강한 후회가 밀려온다. 앙상한 벌거숭이 몸으로 자신과 처절하게 씨름하고 있는 친구를 생각하면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추억으로 휘감긴다. 인생의 타래를 풀지 못하고 정신을 놓아버린 친구는 평소에 씀씀이가 풍요롭고 활발했던 친구였다.
지난날을 생각하면서 고향에 남은 친구들은 우리도 일몰에 끝자락에 서 있는 것 같다는 것이다. 인생은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것을 실감하면서 낙엽 되어 침묵으로 눈 맞춤하고 있다.
함께 만들어 내는 화음 속에 서로가 기대어 둥지를 틀고 살아온 날이 얼마였던가? 꽃 피고 열매 맺어 단풍 들어 눈 내리면 인생도 끝나는 것. 세상 끝자락 눈 덮인 설국에는 모두가 똑같은 삶이었다.
후회 없고 미련 없고 아쉬움 없는 삶이 어디 있겠는가? 산다는 게 다 그러한데...
그래도 보고 싶고 그리우며 잘못된 것만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