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경보 속의 답사 (8월)

[68기 문무순]

 <배우고 익히면 기쁘지 아니한가!>

찜통더위 덕분에 폭염경보가 발생되었다.

7시에 부산을 출발한 버스는 5시간을 달려 겨우 서울에 닿았다.  더위는 메르스보다는 그 심각성이 덜했는지    달걀이 익어버릴 정도의 아스팔트를 계속  달려도   우리는  지겨움을 느낄 새가 없었다.

이열치열(以熱治熱)... 더위는 더한 열기로 다스려야 한다더니 아마도  우리들의 8월  답사가 바로 그랬다. 공자께서도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그 즐거움이 크다고 하셨는데  이번 답사의 문화 아이콘이 뜨거운 열정의 프리다여서인지 아무튼 우리의 열기도 대단하였다고 생각된다. 버스속에서 올림픽공원에 대해 배운다. 서울 한복판에 아시안게임과 올림픽대회를 위해 건설한 올림픽공원의 조감도가  이번 답사자료의 표지이다. 다섯개의 경기장과 체육학교, 올림픽파크텔과 회관을 위시하여  한성백제박물관과 소마미술관이 소개되어 있고 몽촌토성과 토성을 둘러싼  해자와 호수공원이 한눈에 들어온다. 올림픽 9경이라는. '평화의 문'이라든가 '만국석'과 조각공원의 조각작품들  '엄지손가락'과 '대화' 등의 대표 조각작품도  소개되어 있다. 자료를 정성껏 만들어 온 총무님께 진심의 박수를 보낸다.  하나하나 배워 나가니   서울 살면서도 관심없는  사람들보다 더 박식해지는 느낌이 든다.  올림픽공원을 한번 훑고 이어서 소마미술관에 펼쳐진 프리다의 연보를 공부하니 어느새 칠곡 휴게소에 이른다.  밖은 온통 따끈따끈 . 그대로 찜질방이다 

부산하게 처리된 아침식사 쓰레기가 만만치 않다. 각자 나름대로 준비한 부식도 버스속을 부지런히 왕래했다  온갖  과일이며 과자 등속이  입의 즐거움을 더했나보다. 봉지커피까지  쉬지않고 제 소임을 다하고 나니 비울게 몸속에 가득 쌓였다. 가볍게 몸을 털고 다시 장도에 오른다. 이번에는 프리다를 배운다. 연보에 이어서 프리다의 작품을 우선 읽어 나간다. '다친 사슴' '원숭이와 함께있는 자화상 '을 비롯하여 모두  11개의 작품이 소개된다. 맥시코의 민속의상과 열대지방의 강열한 색감과 때로는 기괴할 만치 으스스한 신화적인 자화상들이다. 초현실이라지만 프리다 자신은 자신의 현실을 그렸다고 한다.  그림에 곁드린 설명을 읽으면서 또 한번 자료를 만드신 이에게 감사를 드린다. 이어서 부회장께서 마련하신 프리다 칼로의 영화를 감상한다. ' 셀마 헤이웩' 이라는 여배우가 프리다를 열연했다.

끔찍한 교통사고를 일찍 경험했고  스물두살 어린 나이에  이미 조숙한 영혼을 겸비한 프리다가 만난 운명은 바로 디에고 리베라 ,맥시코 대중벽화와 민중미술을 이끈 또 하나의 걸출한 영혼이었다.

허지만 디에고는 프리다에게 안정을 주지는 못했다  그것이 오히려 그녀가 예술을 향해 매진 하도록  만든 탈출구가 아니었을까

 수많은 수술을 거치면서 부서진 육체를 다듬어가면서 프리다는 자신을 그려낸다. 일자눈썹과  무심한 눈빛과 앙다문듯한 입술이 거의 중성적인 면모를 강조한 얼굴들이다. 영화를 통해 그녀의 일생을 고통스럽게 따라 다니면서도 결국에는 프리다가 부러워진다. 절망에 이르는 고통도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승화되었기에  이름을 남긴 그녀의 인생이  부러운 것일까? 사람이라면 당연한 부러움일 것이다.

더위도 잊고 프리다에 몰입하면서 다섯시간이 지난다.   서울이다  송파구 방이동, 43만  여 평의 대지위에 설계된 우리나라 최대의 체육공원이다. 오른편으로 장미공원을  지나고 들꽃마루도 스치면서 드디어 우리는 서울땅 올림픽공원에 하차한다. 소마미술관  맞은편에서 점심식사를 한다. 마실 한정식의 깔끔한 정식이 공부에 지친  우리의 식욕을 양껏 체운다.

배우고 때로 익히니 이 아니 즐거운가!  배웠으니 이제는 눈으로 확인할 차례이다.

<아는 자도  즐기는 자에는  따르지 못하리>

1) 한성백제박물관

한성이 백제의 옛서울이라는 유적이 풍납토성이나 몽촌토성에서 발굴되었다고는 하나 아직도 미미한 수준이라한다. 그러나 위례성의 위치가 어디였던지간에 한성은 오랜 세월 사람들이 살아낸 중심지라 할 수있다

몽촌토성을 한바퀴 돌면서 백제인이 되어 고구려 졸본성을 떠나 위례성에 토성을 쌓으며 나라를 건설한 그들의 심정을 느껴보고도 싶지만 시간의 제약 또는 찜통같은 무시무시한 더위가 이런 것들을 용납하지 않는다.

점심식사를 한 후 바로 한성백제박물관으로 들어간다. 이렇다할 유물이 많은 것 같지도 않고  어디에나 항상 보는 토기류 무기류 그리고 초기 삼국시대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디오라마들이 펼쳐져있다. 풍납토성을 전사한 거대벽면을 따라 초기백제를 본다. 기증관에도 들러서 기증자들의 이름과 함께 전시된 유물을 감상한다. 어쩌면 개인의 수장고에서 가치없이 존재할 물건들이 박물관 불빛 아래에서 제빛을 내는 듯하여 바람직한 모습을 보는 것 같다. 한바퀴 돌고나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전망대로 오른다. 둔덕을 파서 백제박물관을 만들었고 둔덕을 그대로 전망대처럼 사용하니 이 전망대에서 옛시절의 백제땅을 건너다 본다.

온통 거대건물의 파노라마는 이천년전을 거슬러지 못하고 오히려 123층 제2롯데월드 건물의 위용이 아스라히 바라다 보인다. 십년이면 강산이 변하는데 십년이 2백 번이나 흘렀으니  선인들의 조촐한 삶에도 희노애락은 분명있었겠지.. 서로 국토를 넓히기 위해 한강유역을 다투던 모습을 얼핏 떠올려본다. 고구려군사가 아차산을 점령하고 이어서 신라가 통일하고 고려 때는  남경으로, 이조에 들어서서부터  한성이 수도로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상전벽해를  넘어서서 빈틈없이 들어선  건물의 숲을 보면서 그래도 이 터전에 몽촌이라는 유적을 만들어 백제를 기념하고 있으니 만감이 교차한다. 눈 아래로 몽촌토성이 바라다보인다.  토성위로 난 산책길과 아름드리 우거진 숲 그리고 숲 사이로 군데군데 숨어 있을 기념물들,  경기장들, 그리고 조각작품들을 생각하며 두시에 약속한 소마미술관으로 걸음을 옮긴다 .가는 길에 '발다치니'의 손가락 작품도 보고  '대화 '라는 작품에서 사진도 찍어보고 문신조각가의 '화합' 작품은 햇살이 너무 뜨거워 먼 그늘에서 감상을 해본다.

2) 절망에서 피어난 천재화가(소마미술관의 프리다 칼로전)

아는만큼 보인다고 했다.

오는 내내 프리다를 익히고 배운 덕분일까?

영화로 그녀의 질곡에 찬 인생까지 훑고 왔으니  도슨트아가씨의 설명이 너무나 또렷하게 귓속을 파고 든다.

프리다와 디에고의 연보도 머릿속에 입력이 되고 그들이 살아낸 맥시코의 현실과  공산주의 혁명까지 그들이 숨겨준 러시아의 혁명가 트로츠키와의 해우까지 잘 이해가 되었다. 

드디어 프리다의 그림 앞에 선다. 총 143점. 그중에서 우리가 볼수있는 것은  대형작품은  5~6개정도로 너무 빈약하다 .공산주의 국가라  프리다의 그림이 모두 국가 재산이라 반출이 되지 않고 지금 전시된 작품들은 모두 갤만부부의 소장품이라한다.  방학이기도 하겠지만 미술관의 프리다관은 초만원이다.     다섯개의 관마다 사람들의 발걸음이 줄을 있는다. 왜 프리다에게 이렇게 열광하는 것일까

그녀가 살아낸 남다른 생애가 이들의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는 것일까?

반출이 되지 않는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애호가들의 발걸음 때문일까?

어쨌던 프리다는 서울 한복판에서 벌어진 이 여름 최대의  문화아이콘이 되고 있었다.

'원숭이와 함께있는 자화상' 앞에섰다. 맥시코 전통의상을 입고 원숭이 네마리에 둘러싸인  프리다는 머리를 단정히 쓸어 올린 모습이다.  얼굴의 각도는 오른쪽으로 꺽어지고 일자눈썹 아래 강인한 두눈이 불안한 듯 초월적인 듯  유혹적인 듯 조소적인 듯, 알 수 없는 묘한 눈길로  관람자들을 쏘아본다.  미술 작품에서 이런 표정은 가히 처음 만나는 것처럼 생경스럽다.

지극히 여성적이면서도  지극히 무심한 듯, 위험해 보이기까지 하는 매력을 쏟아 내는 모습에 온통 정신이  햇갈린다. 그림 한 장에서 표현된, 같은 시선이 계속된다. 정면으로 보거나 사선으로 보거나 프리다의 위험하면서도 무심한 눈길이 전시관을 가득 체우고 있으니 그림 편 수가 적다고 불평하던 마음이 싸그리 없어져 버린다.

자신이 처한 현실 즉 육체적 고통과 남자들과의 애증에 따른 정신적 피페를 모두 함유한 것들이 그림에 담겨 초현실적인 느낌을 가지게 하는 것 같다. 프리다의 생애를 이해하지 않고서는 이 무심한 눈길의 의미를 모를 뻔했다.

그리고 또 한점 ' 우주, 대지, 맥시코, 디에고와 나,세뇨르솔로틀의 사랑의 포옹'  앞에 서 보니  프리다를 왜 천재화가라 부르는지  저절로 수긍이 간다.

우선 그림이 방대한 신화적 의미를 담고 있는 것 같다.

해와 달이  한 하늘아래 존재하고 어린아이로 묘사되어 그녀의 품에 안긴 디에고. 붉은 옷을 입은 프리다와 인디오 검은 맥시코로 상징되는 여신과 우주로 상징되는 반백반흑의 여신이 품은 그들,  서로를 위해 존재하나 결코 하나가 될 수는 없는 운명 , 맥시코적인 색채의 혼합도 가히 천재적인 작품에 한 의미를 더하는 것만 같다.

'내마음속의 디에고(테우아나차림의 자화상)' 앞으로 간다.  화려한 의상을 걸쳤지만 천갈래 만갈래로 파괴되고 해체되어가는 마음을 이마에 새긴 디에고로 인한 상처로 표현한 것인지..아무리 그가 애증을 주어도 그녀의 정신세계는 이렇게 갈라지고 있는 것인지 그녀를 만나면 한번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역시 그녀의 강인한 눈빛에 주눅이 들면서 걸음을 떼어놓는다. 

'땋은 머리를 이고있는 자화상 '이다. 이혼한 이후 프리다는 다시 디에고와  재결합하지만 이미 풀어져 버린 매듭사이로 쭈빗쭈빗 비어져 나온 머리카락과  목걸이사이로 가로막힌 긴 막대기로 두사람 사이의  관계 변화를 나타내고 있다 한다. 그림이 초현실주의의 화풍을 닮았다지만 프리다는  결코 꿈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녀의 현실을 그린  것이라고 한다 .어쨌거나 루브르미술관의 최초 입점자로, 페미니스트의 선두주자로 추앙받는 여성작가로 되기까지 프리다는 미술계에 크다란 하나의 획을 남기게 된 것이다 

다른 전시실에서 디에고의 그림도 몇점 보았다. 프리다와는 그 느낌이 전혀 달랐다. 디에고가 프리다의 그림을 평할 때 난 그렇게는 못그린다는 화평이 떠올라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그와 동시대를 살면서 맥시코의 미술계를 이끌어간 시케이로스, 루마노 타마요, 마리아 이스키에르도 등의 작품도 여러 점 감상했고 프리다의 편지글, 입던 의상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프리다의 그림에서 본 맥시코의 원색과 프리다의 코요아칸 푸른 집의 푸른 칼라 앞에서 우리는 우리대로 강열한 흔적을 만들고 미술관을 걸어 나온다. 프리다만큼 뜨겁고 강열한 여름 태양이 우리를 이제 올림픽 '평화의 문'으로 잡아당긴다. 

3)올림픽공원에서

평화의 광장을 걸어 백금남작가가 설계하고 단청한 '평화의 문' 아래 섰다

청룡백호 현무주작이 두 날개 위에 단청으로 빛나는 우리의 위대한 올림픽유산을  바라보며 왜 평화의 문인지 이해가 간다. 세계 159개의 국가에서 8391명이 참가하여 23개의 종목으로 선전을 다툰 대회 . 38년전(1950년) 내전으로 인해 한없이 가난하고 피폐해진 대한민국이 한강의 기적을 일구면서 드디어 세계의 중심이 되어 평화의 제전을 펼친 곳 .88' 올림픽에서 우리는 개최국으로 세계 4위의 반열에 올라서는 기염을 토했다. 금메달 12개, 은메달 10개 동메달이 11개였다.  만국기가 펄럭이는 기념단 아래 벽에는 올림픽 참가국의 이름과 메달리스트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호수에는 음악분수가 설치되어 있고 우리는 한더위를 피해 호돌이열차를 타고 올림픽공원을 돌아본다. 열차를 타니 시원한 바람이 머리의 땀을 말린다. 산책로 너머로 이제는 뮤지션들의 공연장으로 이용되는 경기장들이 하나씩 나타나고 이어서 산책로를 따라  몽촌토성의 목책들이 보이는 곳에 도달한다 .토성과 목책 그리고 해자는 모두 옛사람들의 방어시설이다.  오랫만에 목책을 보니 감회가 새롭다 . 세계유산으로 등록된 백제유적중 백제문화단지내의 위례성을 방문했을  때  우리는 그곳에서 최초의 목책을 보았던 것이다. 곳곳에 숨어있는 조각작품들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곤한다.  이렇게라도 공원을 돌아볼 수 있으니 어쩌면 이것이 폭염속에서 취할 수 있는 최선의 답사가 아닐까 싶다.한바퀴 돌아오니 어느덧 해가 반이나 기울어 간다.  함께한 서울의 대선배님,남양주에서 오신 선배님과 이별식을 나누고 천천히 장도를 준비한다. 한성백제미술관에 들러 최종 몸을 비우고  하행길에 오른다.

긴 하행길에서 우리는 답사마무리를 또 한번 멋지게 치른다. 바로 프리다.

프리다의 그림과 인생에 대한 DVD를 감상하며  예습, 실행 ,그리고 복습까지 훌륭하게 마친다

   배우고 익히니 이 또한 즐거움이 컸고

 아는 것을 즐기고 나니 기쁨이 배가되어 역시 아는 자보다 즐기는 자가 한 수 위임을 알겠다

 폭염속에서도 무사히 답사를 마치게 도와주신 회원여러분들께 심심한 감사를 드리며

9월에는 성주(星州) 땅으로  가서 우리나라의 최초 태실(胎室)인 세종대왕자태실(世宗大王子胎室)과 양반마을 한개마을과  성밖숲 왕버들군락과  하목정에 만개한 배롱꽃을 감상하겠습니다  .

건강에 유의하시어 9월에 만나겠습니다.

[72기 황운정]

프리다는 멕시코에서 한국까지도 왔는데 서울까지 폭염,폭우속이라도 만나러 기야지요.
고통속에 핀 진실은 세월이 갈수록 빛이나는것 같습니다.

[73조윤주(가태)]

알고 즐긴자들의 행복감을 도둑질하게 해 주셨서 감사합니다 *^*
프리다 칼로의 뜨거운 영혼을 뜨겁게 달군 8월의 미술관이 그려집니다. 대단합니다 - -

[60기 수련]

함께하지못해 아쉬웠는데 가본듯 느껴짐니다
수고많았습니다 9월에는 꼬리잡을깨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