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돗개의 유래에 대해서 진도군청 홈페이지에서는 '진도개는 옛날 석기시대의 사람이 기르던
개의 후예가 전해 내려온 한반도의 토종견'이다.라고 되어있으며,
두산백과에서는 '석기시대의 사람들이 기르던 개의 후예라고 할 수 있는 개 중에서 나온
동남아시아계의 중간형에 속하는 품종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진돗개의 유래에 대하여 정설처럼 되어있는 것이 '석기시대 개의 후예이다'라는 것이다.
두산백과에서는 거기에다가 동남아시아계라고 못박고 있다.
진도군청과 두산백과의 진돗개의 유래는 모두 모리 다메조 교수의 보고서를 근거로 하고 있는데,
진돗개의 유래가 석기시대이며 동남아시아계라고 하는 것은 모리 다메조 교수의 교묘한 트릭이
포함되어있어서 일정부분 일리는 있지만, 단정적으로 말하기에는 조심스러운 측면이 있다.
모리 다메조 보고서 '진도견'에서는 진돗개의 유래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는데 그 골자는 다음과 같다.
① 석기시대의 유골은 여러곳의 패총에서나 그 유적에서 나왔는데 그 중 오래된 것은 한국이나 일본에서
볼 수 있는 (중형견보다 다소 작은) 진도개나 일본의 기주개와 거의 비슷하다. 진도견이나 기주견과 같은
일본개는 한.일을 막론하고 모두 석기시대사람들이 기르던 개의 후예가 전해 내려온 것이다.
② 석기시대 개의 유골은 한국과 일본뿐 아니라 만주, 유구, 중국에서도 모두 같은 계통의 것이 출토되고 있다.
귀가 서 있고 꼬리가 위로 쳐들고 있는 것이 요즘 동부아세아계통의 개라는 것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
③ 진도견은 신석기시대의 것이 들어와(신석기시대의 것으로) (중형보다 약간 크고 주둥이도 약간 긴 개) 와의
혼혈형같다. 일본견도 혼혈형이 있으나 제법 고형(古形)의 것이 남아 있다.
④ 석기시대 사람들이 동남아에서 이주할 때 반드시 가축으로서 데리고 왔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즉 중앙
아세아에서 만주를 거쳐 한국으로 오고(한쪽은 유구를 통해서) 다시 일본으로 이동했다.
모리 다메조 교수의 주장은 진돗개와 일본개에 대한 상당한 통찰력을 보여주고 있지만, 교묘한 트릭이 포함되어
있다.
① '진도견이나 일본개는 모두 석기시대 사람들이 기르던 개의 후예가 전해 내려온 것이다.'
- 그 당시 개의 유골은 동래패총과 김해패총에서 출토된 것으로 엄밀하게 말해서 진돗개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조선 개는 석기시대 사람들이 기르던 개의 후예이다'라고 하는 것이
보다 정확한 표현이다.
② 석기시대 개의 유골은 한국과 일본뿐 아니라 만주, 유구, 중국에서도 모두 같은 계통의 것이 출토되고 있다.
귀가 서 있고 꼬리가 위로 쳐들고 있는 것이 요즘 동부아세아계통의 개라는 것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
- 사실 관계의 교묘한 조합을 통해서, 동부아세아와 만주, 유구, 중국, 한국, 일본의 개들이 모두 같은 계통
이며 석기시대의 개는 귀가 서고 꼬리가 들렸다는 주장은 확실한 것이 아니다.
③ 진도견은 신석기시대의 것이 들어와(신석기시대의 것으로) (중형보다 약간 크고 주둥이도 약간 긴 개) 와의
혼혈형같다. 일본견도 혼혈형이 있으나 제법 고형(古形)의 것이 남아 있다.
- 일본 삼관지 두개골의 두개최대장은 14.3cm이며, 두개 최대폭의 최대장의 비율은 59.6이며, 소진가총은
각각 18.1cm와 54.1이다. 이 수치를 근거로 삼관지 두개골을 구석기 시대의 고형(古形)으로 분류하고,
소진가총의 두개골은 신석기 시대의 혼혈형으로 분류하고 있다.
- 모리 다메조 교수가 조사한 우리나라 석기시대 두개골은 동래패총과 김해패총의 것인데, 두개골의 길이는
17.7cm와 18.5cm 그리고 두개 최대폭의 최대장의 비율(얼굴 넓이)은 58과 56.2로서 일본개의 것과는
다르게 그다지 큰 차이를 나타내고 있지 않다.
따라서 석기시대의 두개골을 진돗개의 것으로 직접 연결시키는 것과 진돗개를 혼혈형으로 분류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된다.
④ '석기시대 사람들이 동남아에서 중앙 아세아와 만주를 거쳐 한국으로 오고 다시 일본으로 이동했다.'라고
하는 것은 그 당시로서는 상당한 통찰력을 보여주는 주장이었지만, 그레그 라슨 연구팀의 연구결과와
페이 리우 연구팀의 연구결과를 종합해 보면, 중앙아시아(티벳)에서 몽골을 거쳐서 우리나라로 들어온
경로와, 동아시아남부 (중국남부)에서 해안을 따라서 우리나라로 들어온 경로가 있으며, 양자의 적절한
조합으로 진돗개가 탄생한 것으로 보인다.
'석기시대 개의 후예'라고 하는 말은 진돗개의 역사가 오래되었다는 의미로 쓰인다면 모를까 그 자체로는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없는 것이다. 동래와 김해패총에서 출토된 석기시대의 개 두개골이 진돗개와 관련이
있다고 단정할 아무런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유전자 분석 자료 등). 차라리 진도의 마을 개라고 하든가,
아니면 한국의 마을 개의 일종이라고 하는 것이 타당한 말인 것 같다. 또한 구석기 시대의 개는 고형(古形),
신석기 시대의 개는 혼혈형(混血形)으로 구분하고, 진돗개는 혼혈형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구석기와 신석기
시대의 시간 차이를 생각하면 실로 어이가 없는 일이다.
한국이나 일본의 석기시대 유적에서도 개의 유골이 나왔다. 그와 동시에 사슴(한국에는 노루가 많다) 돼지, 조개류 등 유골이 나오고 해안지방에서는 물표범 등 골격이 나타난다.이로 보건데 개는 사냥에 쓰였으며 개뼈가 토막진 것으로 보아 식용으로도 길렀다고 추측한다. 이렇게 생각할때 개는 석기시대인에게는 없어서는 안될 가축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같은 석기시대의 유골은 여러곳의 패총에서나 그 유적에서 나왔는데 그 중 오래된 것은 한국이나 일본에서 볼 수 있는 (중형견보다 다소 작은) 진도개나 일본의 기주개와 거의 비슷하다. 따라서 석기시대에 기른 옛 개는 한국이나 일본이나 같은 형이고 오늘날 것과 거의 같아 가축상 한.일관계를 말하는데 흥미있는 사실중의 하나다. 이 석기시대 개의 유골은 한국과 일본뿐 아니라 만주, 유구, 중국에서도 모두 같은 계통의 것이 출토되고 있다. 이같은 현상은 한국이나 일본의 고분에서 나오는 토우나 그림에서도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일본의 고송궁가가 소장하고 있는 대경회권물(야행행의 도)나 한국 이왕가소장의 영조시대 김익주경암의 매사냥에 쓰인 개그림으로 귀가 서 있고 꼬리가 위로 쳐들고 있는 것이 요즘 동부아세아계통의 개라는 것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 그러므로 진도견이나 기주견과 같은 일본개는 한.일을 막론하고 모두 석기시대사람들이 기르던 개의 후예가 전해 내려온 것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진도견은 신석기시대의 것이 들어와(신석기시대의 것으로) (중형보다 약간 크고 주둥이도 약간 긴 개) 와의 혼혈형같다. 일본견도 혼혈형이 있으나 제법 고형(古形)의 것이 남아 있다. 이 점 골격편에서 다시 살펴보기로 한다. 그러면 석기시대의 개는 어떻게 발생한 것일까. 학자중에는 각각 그 지방의 이리의 종류가 그 지방견이 되었다고 말한다. 한국의 경우 늑대가 개가 되었다고 하고 일본의 경우 지금은 전멸하고 없는 산견(山犬)이라는 것으로 각각 그 지방의 석기시대 사람들이 가축화했다는 설이다. 그러나 골격이 다른 것을 보면 믿을 만한 설이 못된다. 오히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동남아 석기시대의 옛개가 극히 닮은 것은 개를 가축화한 지방이 동남아의 오지로써 인도의 쟈까루(沙漠狼)와 같은 것을 가축화하였고 다시 다른 근사한 것이 혼혈했을 것으로 생각킨다. 그리고 그 개는 석기시대 사람들이 동남아에서 이주할 때 반드시 가축으로서 데리고 왔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즉 중앙아세아에서 만주를 거쳐 한국으로 오고(한쪽은 유구를 통해서) 다시 일본으로 이동했다고 볼 수 있다. 이 계통의 개 후예가 한국 전역에 번졌으나 근래 서양개나 다른 개들이 섞여 귀는 축 쳐지고 꼬리도 내리는 잡종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러나 진도만은 섬이라 교통이 불편하여 다른 개의 출입이 적어 비교적 순수한 한국원형이 남아 있다고 볼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