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9년에 창립된 화투전문 제조회사 닌텐도는 당시 일본화투계를 석권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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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닌텐도표 화투... 손맛이 그냥....-_-;;
1949년 닌텐도 화투회사를 젊은 사장 야마우치 히로시가 조부로 부터 물려받는다........(아버지는 실종)
패기에 불타는 야마우치 히로시는 닌텐도를 세계적인 브렌드로 만들겠다고 불타오르고....
1953년 일본 최초의 플라스틱 트럼프, 1959년 디즈니와의 라이센스 계약, 어린이용 트럼프라는 신천지를 발굴, 텔레비전 광고 등의 힘을 업고 대히트를 칩니다.
이때까지 참 잘나가던 야마우치 히로시였는데 갑자기 뻘짓을 하기 시작합니다......
일단 사업의 다변화. 러브호텔, 택시회사, 등등. 어느 하나 성공한게 없습니다. 제일 망한 것은 '인스턴트 식품'이었는데, 뽀빠이 라멘, 디즈니 프리커(후리카케) 등의 애매한 상품과 시대를 앞서나간 '인스턴트 라이스'는 닌텐도에 큰 상처를 입혔습니다. 특히 60년대의 기술력으로 만든 인스턴트 라이스는 '잘 봐줘야 죽'정도였다고 합니다.
게다가 트럼프 시장의 포화로 한때 900엔까지 올랐던 닌텐도의 주식은 60엔까지 폭락.
이때쯤 1965년 닌텐도의 구세주 요코이 쿤페이가 입사합니다.....
개발부로 입사한게 아니고 그저 화투제조라인 설비보수라는 공돌이로 입사합니다.....
쿤페이는 심심풀이로 울트라핸드라는 장난감을 만들어 놀고 있다가 사장눈에 띄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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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트라핸드 140만개 판매라는 대히트 기록
울트라머신 200만개 판매라는 대히트 기록
돈이 생긴 사장은 또 뻘짓 시즌2를 시작합니다.......
사업의 다각화로 대대적으로 말아먹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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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으로 말아먹은것중에 하나인 유모차사업.........
그후 이렇다할 히트작을 내놓지 못하고 몰락의 길을 걷고 있던 닌텐도는
레이져 클레이사격장이라는 아이템에 승부를 겁니다.....
이 레이져 클레이사격장은 당시 일본에서 유행했던 볼링의 아성을 무너뜨리고 대히트를 기록합니다........
이제 살것같다 싶었던 닌텐도는
하지만 다시한번 위기를 겪습니다... 오일쇼크......
1970년대 중반 닌텐도는 미츠비시 전기로 부터 칼라 TV용 게임기 개발을 의뢰 받습니다. 이미 딴 회사에 맡겨 개발하던 계획이었지만 그회사가 망한 덕분에 닌텐도에 기회가 돌아옵니다. 1977년 '칼라 TV게임 6'와 '칼라 TV게임 15'를 발매합니다. 닌텐도의 훗날을 생각하면 야마우치 히로시 사장은 '바로 이거야!'라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이 시기의 닌텐도는 TV게임기을 아케이드 게임기로 확장하던 시기였습니다. 퐁이나 스페이스 인베이더의 성공으로 전세계가 아케이드 게임의 붐이 일어난 덕도 보았죠. 그리고 '레이더 스코프'와 함께 전설이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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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더스코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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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이더
그리고 슈퍼마리오의 아버지 '미야모토 시게루'가 입사합니다.(197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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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쯤 드디어 닌텐도DS의 고조할아버지격인 게임&워치가 발매됩니다....1980년대
기업인들의 회합에 가려는 야마우치 히로시 사장의 운전수로 당시 개발부였을 요코이 군페이가 끌려옵니다. 준비된 차가 외제차-왼쪽 핸들-인데 왼쪽 핸들 운전경험자는 요코이 군페이 뿐이었기 때문입니다.
야마우치 사장을 태우고 요정-이겠죠 아마?-으로 가던 요코이 군페이는 개발부 치프의 의무감-내가 이런데서 운전이나 할 사람이 아니라-으로 '신간센에서 본 전자계산기를 갖고 노는 회사원'이야기를 하면서 이것을 응용한 휴대용 게임기 아이디어를 사장에게 이야기 합니다.
게임&워치는 그렇게 만들어 졌습니다. 처음에는 샐러리맨을 대상으로 고가인 5800엔으로 책정 되었는데.(칼라TV게임 6가 9800엔이던 시절), 너무 비싸니까 '시계'기능을 넣어 그나마 가격이 낮아 보이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이름이 게임&워치.
그리고 대히트! 어느 세대를 불문하고 대대적인 히트를 칩니다. 이 게임&워치가 훗날 게임보이 그리고 NDS로 이어지는 것은 말할 것도 없죠. 그리고 아마 이걸로 그동안 진 빚을 다 갚았을 겁니다.
미국 닌텐도 지사에서 SOS가 날라옵니다......
샘플 테스트에서 평이 좋았던 '레이더 스코프'를 대량으로 팔아서 사업을 확대할 생각을 하고 무려 3천대를 주문합니다.
그리고 물건이 배에 실려 미국에 도착하는 4개월 사이에 스페이스 인베이더의 유행이 지나버립니다. (-_-;) 결국 2천대가 안팔리고 남아 버리자 "남은 게임기를 활용할 수 있는, 게임만 개발해서 칩만 보내달라."고 본사에 SOS를 보냅니다.
미국에서 날아온 SOS의 중책이 맡겨진 것은 바로 '미야모토 시게루', 아케이드 게임기 케이스에 그림이나 그리고 있던 5년차 디자이너에게 '전자오락'을 만들어 보라는 임무가 떨어집니다.
베이스는 게임&워치의 뽀빠이 게임. 브루터스가 납치한 올리브를 뽀빠이가 구하러 간다는 스토리로 공사현장을 배경으로 위에서 떨어지는 통을 뛰어서 피하는 액션게임은 막판에 라이센스를 못 따는 바람에
부르터스->고릴라로, 올리브->공주, 뽀빠이->콧수염난 아저씨로 변경됩니다... 바로 슈퍼마리오의 데뷔작 동키콩입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동키콩은 미국에서 대히트, 애초 애물덩어리였던 2천대는 물론이고 최종적으로 6만대를 팔아치우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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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키콩
이렇게 게임&워치와 동키콩으로 반석에 오른 야마우치 사장은 '닌텐도가 갈 길은 이것 뿐이다!'라고 정신을 차리게 됩니다.
그리고 패미컴의 시대가 옵니다.
1983년 발매된 패밀리 컴퓨터-패미컴-은 당시 어떤 게임기보다 저렴하고(14,800엔), 뛰어난 성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실 원가절감 노력을 너무 한 바람에 본체을 팔아서 돈이 벌리진 않았습니다.(칩을 개발한 RICOH사가 개당 2천엔 아래로는 팔 수 없다고 난감을 표하자, 3백만개를 사주겠다고 호언하고 계약) '게임팩을 팔아서 돈을 번다.'는 개념은 이때 뿌리내린듯 합니다.
그리고 슈퍼패미컴과 게임보이로 탄탄대로를 달렸을 것 같은 닌텐도지만. 2009년을 사는 우리들은 그 뒤로 간간히 이어진 닌텐도의 뻘짓을 잘 알고 있죠.
닌텐도 64, 게임큐브로 이어진 차세대기의 참패. 요코이 군페이를 퇴사까지 몰고간 3D게임기 버츄얼 보이의 실패. 플레이스테이션의 등장-원래 닌텐도의 의뢰로 소니가 개발한 게임기-등등. 사실 승승장구 사이에서도 디스크 시스템이나 슈패미의 새틀라이트 시스템 같은 뻘짓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야마우치 히로시 사장이 2002년 물러나면서 후임 사장인 이와타 사토루에게 3시간 동안 일대일로 경영 철학을 교육시켰다고 하는데, '다른 업종에 절대 손을 대지 말아라.'라는 내용에서 무게가 느껴집니다.... 풉~!!
지금은 NDS로 부동의 왕좌를 차지한 듯이 보이는 닌텐도지만 여기까지 오기까지 흘린 땀과 눈물 그리고 피-남의 피도 포함해서-는 결코 가볍게 볼 수 없습니다.
사실 대한민국도 한번의 기회는 있었습니다...
바로 MP3죠~
세계 그누구도 따라올수 없는 레벨이었는데.......
뻘짓거리하다가 아이팟한테 완전히 밀렸죠.......
어쩌면 아이팟의 자리는 대한민국의 자리였을지도 모릅니다...ㅋ
이글은....... http://kcanari.egloos.com/1868008 을 원본으로 하여 비매니아들도 알아들을수 있도록 소프트하게 각색 및 편집하였습니다.
첫댓글 난 드디어 무플무상의 경지에 올랐다네~~~
닌텐도 화투 시커먼그한데 멋잇네요ㅋㅋㅋ손맛이어떨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