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t1.daumcdn.net/cfile/cafe/1274D4224C4C13E788)
처음 Ildjarn을 들었을 때가 생각난다. 물론 앨범으로 들은건 아니고 유튜브ㅡㅡ로 찾아들었었는데 "어라..뭐지 이건..병신같아.." 어쩌자는건지 모를 무한반복에 조악한 음질은 나로 하여금 당황스러움을 불러일으켰으며, 어째서 이런걸 찬양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Sort Vokter를 처음 접했을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곧 나는 사람들이 단체로 최면에 걸렸거나 했던것이 아니라는걸 깨달았다.
먼저 첫번째 트랙 Kveldstimer는 신비스러운 키보드 인트로로 시작한다. 서서히 쌓여가는 긴장감 속에 보컬, 기타, 베이스, 드럼이 쏟아져 들어오며 청자를 깜짝 놀라게 한다. 특징적으로 이 곡에서 멜로디를 이끌어가는 주체는 키보드이다. 기타는 지글거리는 분위기를 깔아주는데 쓰이며 베이스는 키보드와 같은 멜로디를 연주하며 전체적인 틀을 잡는다. 드럼은 반복적이고 지속적이다. 마치 연속하여 흘러가는 시간을 표현하는듯 하다. Langs Stier Uten Ende에서는 베이스와 기타가 거의 같은 비율로 전 트랙에서처럼 변화없이 지속적인 드럼 위에 일직선으로 놓여지고 보컬은 소름끼치게 절규한다. 세번째 트랙 Grålysning로 넘어가며 기타가 주 멜로디를 연주하는 가운데 작은 볼륨으로 키보드가 같은 선율을 연주하는데 마치 뒤에서 실질적인 진행을 하는듯 하다. 주구장창 스네어만 두드리던 드럼은 멜로디가 하강하는 부분에서 심벌을 쳐준다. 중 후반부부터 키보드소리가 점점 커지며 기타와 드럼소리는 점점 작아지다 결국 키보드부분만 남는다. 다음 트랙으로 넘어가면 기타와 베이스가 거의 같은 비율로 진행하며 보컬이 두드러진다. 첫 리프를 살짝 변형시킨 리프들이 뒤에 나오며 계속되는 반복 중에 점점 원래 리프에서 변주된 리프로 비중이 많아지는것을 느낄 수 있다. 5번 트랙 Tårers Sang는 앰비언트 트랙으로 앞에서의 음의 폭풍에서 잠시 쉬어간다. Hatefulle Tanker ut i Natten은 보컬의 비명으로 시작한다. 잘 들어보면 배경으로 키보드소리가 들리는데 의외로 곡의 진행에 큰 역할을 한다. 일직선상으로 변화 없이 진행하다가 드럼이 사라지고 브레이크다운후 뭔가 더 나올것 같은데 끝난다. 이 느낌은 다음트랙 Ni Gygrer / Nattjakt에서 연결된다. 마치 숲속을 맴도는 바람같은 느낌의 키보드로 시작하여 아주 서서히 기타가 스며드는데 그 이상의 변화는 일어나지 않고 다음 트랙으로 넘어간다. Bak to Lysende Øyne으로 넘어가면 드럼 없이 긴장감을 유발하는 기타로 시작해서 드럼과 베이스가 등장하고 보컬이 등장한다. 보컬이 진행을 거의 주도한다. 슬금슬금 페이드아웃. 9번 트랙에서 기타와 보컬은 마치 칼바람 자체를 그대로 표현하려는듯하다. 아웃트로격인 마지막 트랙 Fjellstev는 앰비언트 트랙이다.
적어놓고보니까 정말 별거 없다. 그러나 이는 각각의 트랙별로 생각했기 때문이고, 앨범 전체로 눈을 돌리면 얘기는 달라진다. 마치 모자이크화처럼 각각의 곡들은 하나의 타일이라고 볼 수 있다. 개별적으로 들었을때는 단지 음의 조각이었을 뿐이고 그런걸 따로 들으니 이해할 수 없다는건 당연한 것이었다. 무한반복적인 갹각의 파트들은 앰비언스를 형성하고 그 미묘한 변화로 앨범 전체라는 하나의 거대한 풍경을 완성시킨다.앨범 전체에 대해 얘기할때 먼저 보컬에 대한 평을 빠뜨릴 수 없다. 보컬은 마치 숲의 정령같다. 항상 등장하지는 않으면서(실제로 절반 가량이 보컬이 없는 곡이다.) 음악 전체의 감정을 불어넣어주며-혹은 대변하며-곡에 생기를 부여한다. 숲이 자신들의 겨울에 빠져 닫혀버리지 않게 하듯이..
키보드 인트로로 시작해서 거친 음의 홍수와 지속적인 음의 출력 인간의 것이 아닌듯한 보컬의 절규, 황량하게 얼어붙은 계곡을 지나, 세번째 트랙에서 보컬의 출현 없이 미묘한 악기 비중의 변화만으로 풍경을 전개시키는것은 영문 트랙명(Dawn) 처럼 자욱한 안개사이로 서서히 햇살이 비치고 나무 그림자를 드리워가는 숲을 보는듯하다. 또한 네번째 트랙에서 점점 변주된 리프의 비중이 많아지는것도 영문 트랙명(From The Fount To The Tarn)과 일치한다. 앞에서의 반복적이고 거친 폭풍을 지나 5번째 트랙에서의 앰비언트 음악은 눈보라가 몰아치다가 잠시 구름 사이로 달빛이 숲을 비추는듯 하다. 그리고 6번 트랙에서 또다시 증오스러운(Hateful) 폭풍이 몰아친다. 숲의 정령의 상징인 보컬은 소름끼치게 절규한다. 6번트랙 후반-7-8번 트랙의 연속으로 청자는 시공을 초월하여 어둠이 몇백, 몇천년동안 웅크리고 있었을 숲으로 이동한다. 9번 트랙에서의 날카로운 칼바람, 그리고 마지막 트랙. 이 앰비언트 트랙은 숲의 한 주기의 끝을 표현한다. 눈보라가 지나간 뒤 고고한 달빛이 침엽수 위를 흐른다.
사람들이 흔이 울버의 Nattens Madrigal과 비교하는데, 둘 다 차가운 자연이라는 표현 대상이 같고 최소의 장치를 사용한다는점에서 동일하지만, 울버의 경우에는 기타를 아주 날카롭게 (만일 음으로 물체를 자를 수 있다면 왠만한 중금속쯤은 아무렇지도 않게 썰어버릴듯한..)사용을 한다던가 하는등 느낌에서 많이 다른 느낌을 준다. 울버가 Sort Vokter보다 자연의 냉소적인 면을 더욱 중점적으로 표현한다는 느낌이 드는 이유이다. 오히려 분위기상으로는 버줌 3집이나 In the woods...와도 약간 유사점이 있는 듯 하다. 어쨋던 아주 독특한 음악과 분위기를 나타내며, 일단 적어도 나는 Ildjarn이외에는 이 밴드 전, 혹은 동시대의 이와같은 음악을 들은적이 없다. (나름 충격적..)
각 곡들은 유기적으로 연결되며 하나의 거대한 풍경을 완성한다. 미묘한 변화로 음악은 각각의 풍경을 재생시키고 점차적으로 청자를 숲으로 에워싸간다. Sort Vokter는 최소한의 조작으로 그들이 표현하고자 하는것을 표현해낸다. 뭐처럼 새소리 물소리따위 집어넣지 않고 거대한 숲을 표현한다. 미묘한 표현에는 각 곡마다 악기 파트의 주/부 역할의 차이가 한몫 하는데, 멤버들이 각 곡마다 서로 다른 악기파트를 맡았다니 그로 인한것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것들도 (당연하게)철저히 계산되었을 것이다. 마치 아무것도 아닌듯 흩뿌려놓았지만 정교한 계산에 의한 마치 홀로그램같은 (홀로그램 원판은 무작위적으로 뿌려진 파원같지만 실제로는 정교하게 계산되어 형상을 재생한다)반복이다. 단순하고 지루한 반복이라고 이 앨범을 까는 사람들은 말 그대로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만 본 것이다. 제발 액 모 밴드가 "저 Sort Vokter 듣고 그냥 기타 징징대고 보컬 끠에엑댔어요 삼촌 그러니까 저 드럼머신좀~~~~"따위의 말을 하거나 하는일이 없었으면 한다. (물론 이 말은 픽션이고..)
내가 Sort Vokter에서 느꼇던 숲은 지독하게 냉혹했고, 또한 시리도록 아름다웠다. 만일 숲 이외의 것에 비유할 수 있다면 광활한 우주를 표현했다 할 수 있을것이다. 검고 텅 빈 공간을 별들이 무심하게 굴러가고, 냉혹한 진공과 차가움...그리고 아름다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