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같이 상주인데 그중에서 저 같은 사람은 정치활동하면서 망자를 지켜주지 못한 경우니, 죄송하다는 말씀이 적절할 것 같았습니다. 심지어 제게 “정말 감사합니다. 절대 잊지 않을게요”라는 분도 있었는데, 자신이 심리적인 상주면서도 오래 빈소에 머물지 못하고 저희는 종일 자리를 지켜주며 대신 상주 노릇 해주니 고맙다는 뜻이었을 겁니다. 민주주의란 욕망이 욕망을 통제하는 제도-국민장 기간 중 네 차례에 걸쳐 손글씨로 추모시와 메시지를 써서 인터넷을 통해 공개됐습니다. 내용을 떠나서 메시지를 전달한 형식에서 뜨거움, 분노가 느껴졌는데요.
-봉하마을에서 선생님이 <한겨레>를 화를 내며 내던졌다는 소문을 전해 들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두달간 두 신문의 보도, 그건 죄악입니다. 죄악. 조중동과 똑같이 ‘받아쓰기’했을 뿐 아니라…. 제가 <한겨레> 20년 독자인데 한달 동안 무서워서 신문을 펼치지 못했어요. 포털로 기사는 읽었지만 지면으로 보기는 끔찍했어요.
기자들이 인터뷰하자고 연락했기에 내가 무서워 읽지 못하는 신문에 어떻게 인터뷰를 하느냐고 반문했죠. 어느 기자에게 이런 법이 있느냐고 했더니 대통령은 인권이 없대요. 그래서 전직 아니냐 했더니 공인은 인권이 없대요.
대통령 돌아가시고 나서 여러 신문들을 보며 다시 한번 끔찍했어요. 불과 1, 2주 전에 노무현이 없어져야 진보의 새로운 길이 열린다고 썼던 칼럼니스트가 그 손으로 수백만의 노무현으로 부활하라는 칼럼을 쓰고 있어요.
제가 이럴진대 당사자는 어떤 기분이었을까요. 노무현 자체가 재앙이고 노무현이 있는 한 진보가 재기할 수 없다는 글을 읽으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후불제 민주주의>를 요약하면, 헌법에 다 있으니 법대로 하자는 이야기입니다. 어떻게 읽으면 학생을 위한 입문서 같은데 다 읽고나면 아주 기본적인 논리만 갖고도 현 정권의 행보를 완벽히 반박할 수 있다는 고수의 여유가 보입니다. 부채로 칼과 창을 제압한다고 할까.
-우리 사회는 헌법에 정한 민주주의의 비용을 뒤늦게 치르고 있다는 내용을 쓰셨는데요. 최근 들어 남이 빼앗아가려고 해야, 가진 것을 지킬 힘과 가질 자격이 내게 있는지 비로소 알게 된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습니다.
-‘후불제’라는 표현에는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는 오랜 속설이 포함되는 건가요?
-몇몇 저서를 읽어보면 선생님은 궁극적으로 주권자인 시민의 각성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사회주의처럼 이타적 개인을 상정하진 않아도 역시 이상적인 면이 있고 정치인을 계몽자로 상정하는 거 아닌가요?
그러니까 여기서 계몽은 누가 가르쳐주는 게 아니라 체험과 학습을 통해 내 권리를 알아가는 과정이고 그것을 온전히 누리기 위해서는 연대가 필요해요. 타인에게 주어지지 않으면 내게도 주어지지 않으므로, 필연적으로 헌법의 규정은 연대의식의 발생을 내포하고 있어요. 당장 자신의 권리를 침해당하지 않아도 누군가가 침해당하면 격분하면서 시민행동이 조직되는 것이죠. 그게 잘되는 나라가 민주주의 선진국이고요.
물론 대통령이나 권력자가 계기가 될 순 있어요. 대통령이 선의를 가지고 국민이 권리를 맘껏 향유하도록 해줌으로써 그 다음에 누군가 빼앗아가려고 할 때 마찰이 생기게 하는 방식으로 계몽에 기여할 수도 있고 혹은 이미 부여된 것을 자기가 빼앗아가는 과정에서 결과적으로 계몽에 기여할 수도 있고. (좌중 웃음) 전자가 목적의식적 계몽주의, 후자를 결과적 계몽주의라고 생각해요. 노 대통령은 목적의식적 계몽주의에 빠져 고생했고 이 정부는 민주주의가 뭔지 몰라서 결과적 ‘계몽군주’ 역할을 하는 셈이죠. 아버지는 굉장한 이상주의자셨어요-대구가 고향이십니다. 자신 안에 TK적 면모가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4남 2녀의 다섯째입니다. 여자형제가 많았다는 사실이 남긴 흔적이 있을까요? 요리도 잘하신다고 들었는데요.
식당에 가면 입에 맞는 맛있는 음식이 어떻게 만들어졌나, 젓가락으로 헤집어서 재료가 무엇이고 어떤 순서로 버무렸겠다 짐작한 다음 집에 가서 만들어보면 맛이 비슷하게 나와요. 샤브샤브, 구절판도 그렇게 만들고, 돼지고기 삶으면서 이것저것 넣어보다가 인스턴트 커피를 반 숟갈 넣었는데 맛있더군요.
-맛을 그리는 능력이 있으시군요. 다른 가사일도 잘하세요?
-남매 중 세분이 민주화운동에 투신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아버님도 강직하고 탈권위적이었다는 회고를 읽었습니다. 그랬다면 학생운동에 대해 가족의 이해가 있었을 것 같은데요.
군법회의에서 재판받은 날도 참관을 오셨다는데, 재판장이 공소장을 읽고 똑같은 상황이 오면 다시 이런 일을 하겠냐고 묻더군요. 자존심이 상했어요. 지금 생각으로는 똑같은 상황이면 똑같이 할 수밖에 없지 않겠냐고 했더니 화를 벌컥 내더군요. 전날 집에서 신체검사통지서를 받은 아버지는 일말의 기대를 품고 오셨는데 제 대답을 듣고는 그냥 나가셨대요. 저놈, 나오긴 틀렸다고. 근데 전 그날 저녁 풀려나서 이틀 뒤 새벽에 군에 갔습니다.
-서울대 프락치 사건으로 재판을 받을 때 쓴 ‘항소이유서’는 명문으로 회자됐고 청년들이 널리 돌려읽었습니다. ‘항소이유서’를 읽으며, 상상의 독자가 누구였을까 궁금했습니다. 판사가 읽으라고 쓴 것이라기보다는 외부 독자를 의식한 팸플릿 같거든요. 그리고 첫 저서 <거꾸로 읽는 세계사>의 첫장이 드레퓌스 사건인데요. 혹시 에밀 졸라의 <나는 고발한다>를 염두에 두셨나요?
‘항소이유서’는 밖으로 내보낼 생각은 전혀 없었고 정말 억울해서 판사 보라고 쓴 거예요. 근데 이돈명, 홍성우 변호사가 보시고 우리끼리 읽기 아깝다고 저희 누나를 불러서 밖으로 나가게 된 거죠. 그렇게 널리 읽힐 줄 알았으면 100원씩이라도 받을걸. (웃음)
-‘항소이유서’에는 제갈공명의 <출사표> 같은 고전적 글쓰기의 느낌이 있는데, 혹시 한문학을 좋아하십니까?
정치인의 일상엔 짐승의 비천함이…
-언젠가 읽고 싶은 책을 읽고 싶은 글을 쓰는 것은 누구에게도 크게 뒤지지 않는다고 쓰신 적이 있는데요. 독서와 글쓰기는 스트레스 없는 즐거운 활동인가요?
근데, 정치인의 일상을 들여다보면 짐승의 비천함이 있어요. 야수적 탐욕도 함께 있고요. 그래서 하루하루가 너무나 괴로워요. 정치를 하려면 국회의원직을 유지해야 하니까 효도잔치 가서 노래하고 초등학교 총동문체육대회 가서 텐트마다 돌며 소주 먹고 하는 거죠. 그런 일을 즐기는 정치인도 있으나 그런 사람은 성인의 고귀함에 도달하기 어려워요.
반면 정치에서 고귀함을 추구하는 사람은 그런 일상이 괴로워요. 성인의 고귀함을 이루기 위해 야수적 탐욕을 상대하며 짐승 같은 비천함을 감수하는 일, 절대 아무나 못하는 거예요.
-<MBC 100분토론> 400회 특집을 기한 여론조사에서 대표논객 1위로 선정되셨습니다. 글과 말 가운데 어떤 도구로 사고를 표출할 때 더 유창하고 자유롭다고 느끼나요?
-보통 사람은 말과 글의 밀도 차이가 많이 나는데 선생님의 경우 큰 차이를 못 느끼겠어요.
-‘글 잘 쓰는 법’을 묻는 질문에 “박경리 선생의 <토지> 1, 2부를 5회 이상 읽어라”라는 구체적 충고를 한 적도 있는데요.
-선생님 저술의 간결한 문체로 미루어볼 때 문학이 아닌 법조문이나 경제학의 수식에서 아름다움을 느낀 적도 있을 거라는 짐작이 드는데요.
첫 번째는 예수가 매달린 십자가상을 교실마다 걸도록 돼 있는 바이에른주 교육법에 대해 종교의 자유를 침해했다고 위헌판결을 낸 판결문이었어요.
다른 한편은 아우슈비츠를 조작이라고 주장하는 일을 처벌하게 돼 있는 법이 표현의 자유 침해라고 주장한 우익단체의 위헌 소송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린 판결문이었어요. 표현의 간결함과 정밀함, 논리적 연쇄의 치밀함이 빚어내는 아름다움이 있었죠.
수학도 잘은 못하지만, 말로 하면 두세 페이지의 설명을 한줄로 정리해버리는 수식엔 압축의 아름다움이 있어요. 몇개의 공리를 토대로 정리를 쌓아나간다거나 배리법을 이용해 반증을 함으로써 명제를 무너뜨리는 과정도 아름답죠.
-취미로 낚시와 축구를 즐기시는 걸로 아는데, 각각의 낙은 무엇인가요?
스타 정치인은 호랑이 등에 올라탄 사람-정치인 생활을 하면서도 글쓰는 이로서 정계, 정치인, 공무원에 대한 관찰을 멈출 수는 없었을 것 같아요.
국회의원 보좌관을 할 때는 1월1일 눈뜨면 12월31일까지 1년이 훤히 보였어요. 가을이면 국정감사 예결위 들어가고, 몇월에는 어떤 민원이 주로 발생하고 계절별 지역구 행사는 무엇이 있고 똑같죠.
정치인 중에는 안정되고 예측 가능한 그 생활에 맞는 사람도 있지만 저는 성격상 반복되는 일을 잘 못해요. 책쓰기는 일은 같아도 매번 다른 책을 쓰니 괜찮아요.
-참여정부 국정체험담을 <계간 광장> 신년호에 기고하셨습니다. 공무원들에게 보내는 가이드와 같은 내용이었는데요.
예를 들어 장애인 이동권 문제라면 복지부에서는 건설교통부로, 그곳에서는 다시 복지부로 보내기를 반복해서 왔다갔다하다 지쳐 떨어지게 하는 거죠. 조직의 경향성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강력한 대항력을 가해줘야 완화돼요. 인사, 훈시, 표창을 통해서 낡은 관행을 깨거나 부하직원의 창의성을 살려주는 간부, 혁신적 아이디어를 내는 직원을 북돋워주지 않으면 구습대로 가요.
민간조직과 달리 관료조직은 장관이 하라고 해도 듣지 않을 때가 있어요. 그럴 때는 이 사람이 왜 움직이지 않는지 살펴야 해요. 책임지기 싫어서라면 장관 사인 밑에 부기해서 “실무자 반대에도 불구하고 장관이 관철시켰다”는 설명을 써주고, 이력을 보아하니 이해관계의 그물망에 얽혀 있는 눈치면 자리를 바꿔줘야 해요. 그러지 않으면 장관은 직원들이 왜 일하지 않는지 신경질만 내다 시간을 다 보내게 돼요. 공무원들도 장관이 성심껏 일하는지 다 고려해서 움직여요.
-선생님의 정치 여정을 보면, 1년4개월 보건복지부 장관을 하면서 새로운 에너지, 확신을 얻은 것 같은 느낌이 있습니다.
=정치생활 6년 중에 제일 행복했죠. 마음을 먹고 방법만 찾으면 구체적으로 몇명의 사람을 덜 불행하게 만들어줄 수 있다는 가시적 성과가 나오니까요. 어떤 정책을 세우면 시설아동들이 18살에 얼마를 쥐고 나갈 수 있고, 기초노령연금 도입하면 몇명한테 얼마를 드릴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나오니까요.
-“보건복지부 장관으로서 보는 세상은 슬픔으로 가득하다”라는 글귀가 인상적이었습니다.
-2007년 대선 후보 당내 경선에 출마해 결국 이해찬 후보와 단일화하셨지만 꽤 오랫동안 독자적 캠프를 이끌어 갔습니다. 출마로 당선하겠다는 목적도 있겠지만, 출마 행위를 통해 뭔가를 드러내고 싶었던 게 아닌가요?
빅뱅의 <세상에 너를 소리쳐!>라는 책 제목처럼 제 목소리를 내고 싶었어요. 야당을 할 때는 하더라도 의연하게 행동해서 나중에 국민들이 알아줄 때 집권당을 하면 된다. 패배하는 한이 있더라도 참여정부 5년간의 국정운영 성과와 부족함을 솔직히 이야기하고 개선할 방법을 말하고 정책 노선을 계승해가자. 단 한번이라도 소리칠 기회를 얻고 싶은 게 동기였어요.
-정치에서 스타란 무엇을 의미하나요?
위험하죠. 위험을 벗어나고 싶으면 지지자를 실망시키더라도 빨리 손을 털고 그만두든가 정치를 하는 한은 중간에 낭떠러지에 떨어져 죽더라도 끝까지 가는 것이요. 야수랑 싸우다가 야수가 되는 수도 있죠. 야수와 싸울지라도 성인의 고결함을 견지해야만 훌륭한 지도자가 될 수 있어요. 그러면 국민들이 알아봅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이후 의지와는 관계없이 어깨에 짐이 얹히는 기분이 있을 것 같습니다. 안희정 최고위원, 문재인 비서실장, 이광재 의원 등 노 대통령과 가까웠던 측근이 여러 분 있지만 대중적 인지도도 높고 노 대통령의 정치철학을 잇는 면에서 많은 사람이 유시민 선생님을 급격히 주목하고 있으니까요.
제 인생도 있고 제가 속해 있는 공동체의 여러 상황도 함께 고려하는 거죠. 또한 노무현 대통령이 우리에게 어떤 존재였나 그분의 시대가 끝난 것인가, 노무현의 시대가 있었다면 시대정신은 뭐였나, 그가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는 어떤 뜻이 있나, 그 모든 것을 국민은 어떻게 생각하나를 더 고민해봐야 합니다.
참여정부 재평가는 지식인들이 해야 할 일
-국민장 기간 중에 국민들의 반응은 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의도가 선한 정치인이었다는 데에 집중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정치적 동력이 되려면 참여정부 5년의 국정에 대한 재평가가 나와야 하지 않을까요?
지난번 대선에서는 그것이 ‘경제 살리기’ 였죠. 무슨 비리를 저질렀건, 국민들은 그걸 취했어요. 다수 국민이 하나의 소망을 갖고 있으면 반드시 어떤 형식으로든 이룬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현재 그런 게 있는지 저는 못 느끼겠어요. 조류가 아직 안 보인다고 생각해요. 국민들 스스로가 내가 뭘 원하는지 알고 거대한 흐름으로 형성해내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거라고 봐요.
1987년 이후 20여년 동안 제가 지켜본 우리의 지난 궤적은 너무나 엄혹합니다. 보수정당과 조중동을 중심으로 한 정부수립 이후 대한민국을 반 세기 동안 지배해왔던 지배 카르텔에 대항한 정치지도자는 노무현 한 사람입니다. 그가 비참하게 눌려서 죽은, 모든 퇴로를 차단당하고 굴욕적인 생물학적 삶을 받아들이든가 죽든가 양자택일의 벼랑으로 몰려 죽은 지금, 누가 다시 용기를 낼 수 있을까요.
-민주당에 대해 더이상 희망이 없다고 진단하고 탈당하셨습니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는 어떨까요? 진중권 선생님은 유시민 선생님의 거취에 대해 “분명 참여정부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질 것이고 차기 대권 후보로 나올 수도 있는 상황이다. 내가 보는 유시민은 철저한 현실주의자이기 때문에 개혁당 때처럼 친노 세력을 결집하고 민주당 내로 돌아갈 가능성도 있다”고 보시던데요.
노 대통령을 지지해온 사람들의 울음 속에는 원통함과 더불어 국민들에 대한 고마움이 있어요. 무슨 종교집단처럼 지난 몇년간 매도당해 왔는데 너무 고맙죠. 기쁨과 슬픔이 뒤범벅된 모순된 상황이고, 앞으로도 그런 시간을 한참 보내겠죠. 그러나 그것을 확대해석해선 안된다고 생각해요.
국민들의 생각이 바뀐 것은 지난 일에 관한 것이고 앞날은 앞날이에요. 보상심리로 노 대통령을 열심히 모신 사람이 선거에 나오면 지지해줄 수도 있겠으나 그것이 정당의 존재근거가 되고 우리 사회 발전에 제대로 기여할 수는 없어요. 민주당은 나름의 역할이 있는 필요한 정당이에요.
다만 제게 정치는 역시 이상주의 운동이거든요. 민주당에는 이상을 품고 있는 조직이 풍길 수밖에 없는 향기가 없었기에 당을 나온 것뿐입니다.
‘진정한’이라는 단어는 말의 폭력
-본인의 이념적 포지션에 대해 진보자유주의, 사회자유주의라고 규정했는데 조어에 고심하셨을 것 같습니다. 정치 기사를 읽다보면 우리 정치인들이 진보, 보수, 자유주의, 사회주의에 대해 서로 다른 사전을 갖고 대화한다는 인상을 받을 때가 많은데요.
저는 ‘진정한’이라는 단어가 말의 폭력이라고 봐요. 국회 앞에 가서 “여기 오로지 국민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진정한 국회의원 있으면 나와봐!” 하고 외쳐봐요. 나오는 놈은 사기꾼이고 안 나오는 놈은 전부 진정한 국회의원이 아닌 거죠. 그런 식의 이야기는 내전이나 이데올로기 전쟁에서 적개심 유발하기는 좋지만 헌법에 규정된 절차를 이용해 다수의 지지를 획득하려는 정치운동에는 맞지 않다고 생각해요.
-배제의 언어라는 말씀이군요.
사실 우리쪽은 항상 민노당, 진보신당이 무엇을 하는지, 어떻게 우리를 바라보는지 건너다보고 있거든요. 그분들의 주장이 조금 비현실적인 면이 있지만 논리적으로 맞고 정의롭고 시련에 굴하지 않으며 좁은 길을 가는 분들이라는 존경심이 항상 있어요. 짝퉁이 망해야 명품이 팔린다는 전략을 참여정부 5년 동안 내내 구사하는 동안 남은 정서적 반감이 있는 것이죠. 비판은 좋지만 그럴 필요는 없지 않나 싶어요.
-<대한민국 개조론> 이래 한-미 FTA에 대한 생각에는 변함이 없는지요? 제 주변에서는 이런 것을 궁금해합니다. FTA는 양날의 칼이라 득을 보는 부문에서 이익을 떼어내 피해 보는 부문에 지원하는 것이 정부기능인데, 정권이 교체되면 재분배 정책을 보장할 수 없는 상황에서 어떤 생각으로 참여정부가 FTA를 추진했냐는 거죠.
둘째 그렇다면 참여정부가 할 거냐 다음 정권으로 넘길 거냐를 고민했는데, 정치적으로는 완전 손해고 국가적으로는 비용이 덜할 것이라는 결론이었어요.
참여정부 지지층은 FTA를 반대하는데 그분들이 지지하는 정부가 결행하면 반대를 완화할 수 있지 않겠냐는 것이었죠. 역풍을 각오하고 보수정부가 할 일을 감행한 거죠. 또 우리가 하면 초기 협상조건을 유리하게 잡고, 임기 내에 비준동의가 나가면 보상책도 포함될 거라고 상정하고 추진한 것이죠.
노무현 대통령이 특이한 점입니다. 그분도 나중엔 후회를 하셨어요. 굳이 그것까지 우리가 할 필요는 없지 않았을까라고.
-토론자로서 매섭다는 평을 듣습니다. 진중권 선생님이 센 표현을 사용한다면 선생님께서는 독설은 아니지만 냉소적이랄까, 듣고 난 뒷맛이 당한 듯한 느낌이 강해서 그런 평을 듣는 것 같습니다.
돌이켜보면 인간에 대한 무례 앞에서 격분을 다스리지 못했어요. 사람을 괴물로 그려놓고 비방하고 모욕하고 저주하는 언어들이 활개치는 상황에서 미소지으며 “일리가 있으십니다. 그런데” 하는 식의 토론은 할 수 없었어요. 만약 그랬다면 제 개인적으로는 좋았겠죠. 노무현은 엉망인데 유시민은 인간됐다 그런 말을 들었겠죠.
근데 전 그러면 대통령을 욕보이는 일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저를 위하는 보좌관들이 제발 꼭 보면서 하라고 메모지에 몇 가지 키워드를 적어줘요. 미소, 긍정, 참을 인자 몇개. (웃음)
방송할 때 메모를 옆에 놓고 해도 소용없어요. 막말은 안 했지만 아주 차갑게 했죠. 그러지 않으면 진짜, 암 걸리겠더라고요. (좌중 웃음)
사실 제 내면에는 냉소적이고 갈 데까지 가보자는 측면이 있는 한편, 타협을 굉장히 잘하는 면도 있어요. 상대가 나를 인정하고 존중할 때는 절충과 타협하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대단히 전투적으로 임해요.
정치적으로 더 큰 사람이 되려면 그런 점을 바꿔야 한다는 지적에는 지금보다 정치적으로 더 중요한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이 없다고 답했어요.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토론해보면 너무 재밌는 ‘지식인 노무현’
-대중의 사랑보다 특정 국면에서 자신의 쓰임새에 더 치중하는 것 같습니다. 이타적 인간이라는 뜻이 아니라, 그런 데서 만족을 찾는 것 같다는 거죠.
노무현을 보위하기 위한 정치 팸플릿이라 6주 만에 쓴 거예요. 그런 심리상태로 6년을 살았거든요. 저를 아끼는 분들은 만류했지만 저는 적어도 정치적인 면에서 보면 제가 아니라 대통령이 중요하다고 본 거예요.
-그렇게 한 시기 삶을 지배한 존재를 잃은 상실감은 슬픔이란 말로는 표현이 안될 것 같습니다.
대통령님과 관계에서 고비들도 많았습니다. 의견이 다르기도 했고 토론하다 좁혀지지 않으면 어른 말씀대로 소극적으로 동의해드렸죠. 이렇게 하면 사람 다 떠나고 당 없어지고 대통령님은 버림받고 퇴임하시고 나면 아무도 지켜줄 사람 없게 된다고 말씀드려도 “그래도 내 판단대로 해보세요” 고집하셨죠.
-앞으로 저술 계획을 알고 싶습니다.
-몇해 전 얼굴을 보면 본인이 봐도 사납다고 쓰신 걸 읽었어요. 살아오면서 성격의 전환점이 있었다면 언제라고 생각하세요.
요새는 생각하는 걸 다 말하지 말아야겠다는 마음이 있어요. 그래서 새삼 노무현은 용기있는 사람이었다고 생각하게 돼요. 어떻게 그렇게 전체를 상대로 싸울 생각을 하셨을까. 진짜, 세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출처 :씨네21 = http://www.cine21.com/Article/article_view.php?mm=005002007&article_id=56625)
==================================================================
저요? 물론
유/시/민 이라는 사람을 오래전부터 좋아합니다. 하지만 이 글은 글을 보시라고 가져온 것이 아닙니다.
맨 앞의 사진에서 풍겨나오는 사람의 향기를 맡아보시라고 감히 퍼 왔습니다.
불펌은 아마 괜찮을 것입니다. [씨네21] 창간호부터 지금까지 정기구독자이니까요..^^*
돌이켜 다시 생각해보니 1985년, 제가 대학 1학년 때 그의 [항소이유서]를 만났을 때부터 존경하고 좋아하였나봅니다.
사람이 사람을, 비록 그가 남자라 할지라도 좋아하는데 뭐 큰 까닭이 있겠습니까만 이 사람, 얼마나 큰 인물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이대로 좋습니다.
지난 시절 그가 행동으로 보여준 대부분의 행적들과 그의 촌철살인의 말들에
위 사진을 더하여 그를 좋아하고 사랑합니다.
유시민, 그를 지켜보겠습니다.
2009. 6. 15. 맑은날
들풀처럼
|
출처: 들풀처럼 원문보기 글쓴이: 들풀처럼
첫댓글 들풀처럼님의 수고로움 덕분에 감사히 읽었습니다.어느면에서도 저 자신은 방관자일뿐인듯하여 헛헛하기만 하네요.ㅠㅠ
작은 일에서부터 한걸음씩 더 나아가는 삶을 살려구요. 저 역시 많이 반성하며 살아간답니다. ...
오래전부터 텅빈 마음에 휑한 바람이 불던 이유를 알까요?
위 글의 '추신'을 읽다 끝내 한 방울 눈뮬 훌렸답니다. ㅜㅜ
아, 모르고 지나갈 뻔한 글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유시민 전 의원 정치인으로서, 지식인으로서 존경하고, 독자로서 팬이기도한데, 전부터 존재감은 있었습니다만, 그를 언제부터 존경하고 지지하게 되었는지 잘 기억은 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제가 첫번째로 읽었던 글이 항소이유서라는것은 분명히 기억이 나네요. 정말..명문인데... 혹시 궁금하신분들 읽어보셔도 좋다고 추천드려요. 감동이 밀려오거든요.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 -.-;;
저번 총선에서 고양시를 포기하고 황무지 대구 물론 고향이지만,,, 왜 그 곳에서 출마를 하였는지는,, <항소 이유서> 새록합니다,
별명이 마음에 듭니다. <수요와 공급>의 문제가 우리가 안고 있는 경제위기의 전부라던데요? ^^*
헉..오늘 아내와 시립도서관 가서 시네21 기사 보고 왔네요. 그리고 [그녀에게 말하다-김혜리가 만난 사람] 책 빌려오구요. ^^
잔잔한 인터뷰라고나 할까요..연재될 때마다 보는데 ..괜찮습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