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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eet People-군군 신신 부부 자자
“형님, 오늘 저녁시간 어떠세요?”
2018년 4월 30일 월요일의 일로, 오후 5시쯤에 내 검찰수사관 후배로 지금은 전북 정읍 쪽에서 표고버섯 재배농장을 하고 있는 임채균 친구가 내게 그렇게 전화를 걸어왔다.
4반세기 전으로 거슬러, 대검찰청중앙수사부 같은 부서에서 4, 5년 정도 나와 함께 근무한 인연이다.
그렇게 함께 근무하는 동안에 깊이 정이 들어, 호형호제할 정도로 가까이 지내는 사이다.
“좋아. 괜찮아.”
저녁시간이 임박했음에도, 잠깐의 주저함도 없이, 내 선선하게 그리 답했다.
아무런 약속이 없어서 그리 답한 것이 아니다.
약속이 있었음에도 그랬다.
내가 31년 9개월의 검찰수사관 생활을 끝내고 ‘명예퇴직’이라는 이름으로 검찰을 떠나는 그 해에, 내 마지막 근무처였던 대검찰청에서 함께 근무했던 인연이 있는 몇몇과, 이날 저녁을 같이 하기로 한 약속이 미리 잡혀있었다.
그런 줄 빤히 알면서도, 내 그렇게 괜찮다고 선선한 답을 한 것이다.
“저녁 같이 하고 싶어서요.”
“좋아. 저녁 6시 반까지 ‘연타발’로 와.”
“거기가 어디죠?”
“강남역 부근에 있는 고깃집이야. 출구가 어딘지는 알지만, 그 출구번호는 몰라. 하여튼 알아서 찾아와.”
딱 그 두 마디씩의 대화 끝에 나와 임채균 친구와의 사이에 ‘연타발’에서의 번개팅 저녁 약속이 잡혀졌다.
그렇게 약속이 되는 과정에서, 나와 그 친구가 각각 특별히 그냥 넘긴 짓이 있었다.
나는 임채균 친구에게 왜 갑작스레 저녁을 먹자고 하느냐고 따져 묻지 않았고, 그 친구는 내게 왜 가까운 서초동을 놔두고 강남역 그 먼 곳에 장소를 잡느냐고 따져 묻지 않은 것이, 곧 그 짓이었다.
나도 그렇고, 그 친구도 그렇고, 만나기도 전에 뭔가를 따져서 우리들 만남을 부담스럽게 하는 것을 싫어했기 때문이었지만, 그보다는 서로가 다 이유 있어 그러겠거니 하고 늘 이해를 앞세우기 때문이었다.
문득 생각에 곧장 실행이라고, 만나고 싶을 때 그냥 만나고 마는 것, 그것이 우리들 삶의 공통철학이었다.
그렇게 의기투합된 약속이었다.
결과적으로 누구도 불편해 하지 않는 만남이었다.
내가 검찰을 떠나던 그 당시 대검찰청 차장검사였다가 지금은 김앤장 법률사무소에 몸담고 계시는 이정수 변호사님을 비롯해서 이날 선약이 되어 있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젊은 후배와 함께 하게 되어서 기쁘다고 했고, 뒤에 약속이 되어 그 자리에 끼어들게 된 임채균 후배는 평소 존경했던 상관들과 자리를 함께 하게 된 것이 영광스럽다고 했다.
화기애애한 대화가 오갔고, 분위기가 고조되어 폭탄주 술잔도 수차례나 돌고 돌았다.
끝판에는 어깨동무까지 했다.
그 어떤 가림도 없이, 마음으로 하나 되는 순간들이었다.
그렇게 흉허물 없이 두루두루 어울린 자리에서, 내 문득 생각의 세계에 떠오른 말이, 바로 그 ‘군군 신신 부부 자자’(君君 臣臣 父父 子子)라는 그 말이었다.
30여 년 전으로 거슬러, 내 나이 40대 전후였을 때의 일이었다.
시청과 광화문 광장에서 학생들 시위가 연일 벌어지고 있을 때였었는데, 그때 어느 TV방송에서 당시로 꽤나 유명세가 있던 교수가 그 말의 의미를 풀어가는 것을 보면서 그 말의 존재를 처음 알았다.
다음은 Daum백과에서의 그 말에 대한 풀이다.
‘제경공이 공자에게 정사에 대해 묻자, 공자께서 대답하셨다. “임금은 임금 노릇 하며, 신하는 신하 노릇 하며, 아버지는 아버지 노릇 하며, 자식은 자식 노릇 하는 것입니다.” 제경공이 말하였다. “훌륭한 말씀입니다. 진실로 만일 임금이 임금 노릇을 못하며, 신하가 신하 노릇을 못하며, 아버지가 아버지 노릇을 못하며, 자식이 자식 노릇을 못한다면, 비록 곡식이 있은들 우리들이 그것을 먹을 수 있겠습니까?”’
여기서 ‘노릇’이라는 것은, 쉽게 말해서 ‘답다.’라고 풀 수 있겠다싶었다.
그런 풀이라면, 나도 벌써 써먹고 있는 말이었다.
학생을 지목해서 써먹었고, 아내를 지목해서 써먹었다.
곧 이 말이었다.
‘학생은 학생다워야 하고, 아내는 아내다워야 한다.’
당시 연일 데모를 하면서 공부를 하지 않는 학생들이 안쓰러워서 그랬고, 물론 애초의 빌미를 내가 제공하기는 하지만 툭하면 부부싸움으로 치닫던 아내를 어떻게라도 길 좀 들여 볼까하고 그랬다.
만약 공자가 한 말을 그때 익히 알고 있었다면, 유식한 척 공자의 그 말에 더 보태서, 내 이리 말했을 것이다.
‘학학 부부’(學學 婦婦)
그러나 내 그 말은 곧 감춰버리고 말았다.
옳은 말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처음에는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고, 아버지는 아버지다워야 하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는 그 말이 그럴 듯했다.
‘학학 부부’라고 내가 지어낸 말도, 그럴듯하게 지어낸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그 말을 수도 없이 해댔는데, 희한하게도 그 말을 할 때마다, 내 양심의 세계는 자꾸만 부끄러워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답다.’라는 그 기준을 누가 세운 것이냐 하는, 그 주체에 대한 의문이 생기면서 그랬다.
그 의문이 계속되어서, 만약에 아내가 자기 나름의 기준을 세워서 내게 ‘남편은 남편다워야 한다.’면서 ‘부부’(夫夫)를 외치면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자책에까지 이르렀다.
더군다나 다들 저 잘났다하고 사는 요즘에 와서, 내 사랑하는 손녀가 할아버지인 나를 보고 손가락 총을 ‘빵!’하고 쏘는 것을 보고 ‘손손’(孫孫)할 수가 있으며, 그 빈총에 맞아 와다닥 뒤로 자빠져 죽은 척해야 하는 나를 보고 ‘조부조부’(祖父祖父)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스스로 자신을 가다듬는 의미에서 ‘군군 신신 부부 자자’라고 할지언정, 남을 가르치는 의미에서 그리 말해서는 안 됨을 내 뒤늦게 깨달았다.
그런 깨달음이 있고 난 이후로, 내 그 말을 더 이상 입에 올리지 않았다.
그리스신화 한 토막으로, 아테네 강변에 여관 하나 지어놓고는, 지나가는 과객을 꼬드겨 하룻밤 묵게 해서, 그 과객이 눕는 침대의 길이에 맞춰, 길면 자르고 짧으면 늘려서 죽이던 강도인 프로크루스테스(Procrustes)가, 꼭 나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그랬다.
첫댓글 함께 어울리신 모습이 참으로 보기 좋습니다.
폭탄주 드시는 풍경도 넘 정겹네요.
기분좋은 시간들
사람도 좋고
술도 좋고
또 그 어을림도 좋고~~~
표고버섯 농장 하시는 임채균 오라버님도 넘 반갑습니다.
그 버섯 구입해서 먹어봐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