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 올리기만 해도 행복하고, 꿈에서조차 늘 그리던 곳이기에 마음만 띄워
보내며 살아 온지도 50여년, ‘고향'이라는 두 글자에 싸 하게 가슴이
저려오며, 눈을 감으면 아름답고 정겨운 고향 영상이 너무도 생생하게
펼쳐진다. 오랜 타향살이에 점점 메말라가는 황폐한 가슴을 늘 촉촉한 단비로
적셔주는 ‘고향’은 언제나 따뜻하고 아련한 추억으로 다가선다.
봄이 늦고 가을이 일찍 오는 내 고향은 하얀 조팝나무가 꽃을 피울 때면
씨앗을 밭에 뿌리는 부침이 시작되며, 비탈진 산골짜기 밭도 쟁기질하는
멍에를 쓴 소에 끈끈한 침이 흘러내릴 때쯤이면 깨끗한 속살을 드러내 보였고,
맵고자를 눌러쓴 농부의 이랴~~어 뎌 뎌 뎌~ 소리만이 산모롱이를 돌아,
잔잔한 냇물 위에 작은 파문을 일으키며 사라진다.
보기 보다는 장난기가 심했던 유년시절에는 초저녁에 학교 운동장에 모여서
깔깔대며 뛰어노는 여자 애들을 보면 괜스레 심사가 뒤틀렸다.
고무줄을 끊는건 예사였고 교문 양쪽에 말뚝을 박고는 발목 높이로 새끼줄을 매어놓고,
여자 애들이 노는 뒤에서 짚단을 머리에 쓰고 달려들면 기겁을 한 애들은
교문을 향해 뛰어가다 새끼줄에 걸려 우르르 넘어지곤 했다.
어디 그뿐이랴,
여자애들이 자주 다니는 길에다 삽으로 구덩이를 파고 몇놈이 돌아서서 오줌을 잔뜩 누고는
가는 나뭇가지로 걸치고 위에는 짚과 흙으로 살짝 덮어 놓는다.
무심코 걷다가 정강이까지 오줌에 빠진 아이가 울면서 집으로 가는 걸 봐야 속이 시원했다.
물론 그 뒤에는 당연히 응징이 따랐고 오빠가 있으면 오빠에게, 아니면 그 부모에게 호되게 혼이 났으나
우리들의 장난기는 멈추질 않았다.
지금 같으면 상상하기도 힘들고, 모두가 절도범으로 잡혀 가던가 변상을해야 하 는 일이 바로 서리가 아닌가?
달고 새콤한 자두가 잘 익어갈 무렵이면
냇물 건너 마을로 원정 서리를 간다.
사전에 현장탐사와 계획을 치밀하게 짠다음, 양쪽에서 망을 보고 두 놈은 담 위에 올라가서 따고
한 녀석은 자루를 벌리고 받는다.
처음에 서리를 할 때는 다리가 후들거렸으며 입술이 바싹바싹타들어 갔다.
숨을 죽이며 자두를 따던 한 놈이 발을 헛디뎌 담에서 떨어지는 바람에 선배형에게 들켰다.
자두를 담았던 자루도 다 팽개친 채 죽을 힘을 다해 뛰었는데,-_-
마치 제 자리 뛰기를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냇물을 건너는 유일한 수단이었던 나루터에 도착, 작은배를 타고 삿대를 저어도망을 가는데,
물가에 까지 헉헉거리며 따라온 선배 형은 욕설과 함께 별 빛
총총한 밤하늘 에 수없이 돌팔매를 날렸지만 뱃전에 납작 엎드린 우리는 무사할 수 있었다.
그날 밤 우리는 삿대로 노를 저어 물살을 거슬러 오르며,
뱃놀이를 하였는데 흐르는 물소리와 어우러진 까만 하늘에 별빛은 너무도
영롱했고 떨어지는 별똥은 수없이 검은 밤하늘을 갈랐다.
반딧불 반짝이는 여름이 지나고 풀벌레 울음소리 깊어지면 어느새 가을 운동회가 열린다.
우리는 까만 빤츠에 하얀 줄 하나가 선명한 걸 입어야했고
셔츠야 흰 것이지만 가슴 에는 청군 백군 이라 찍혀 있었으며, 청군이 되면
속으로 파란 테가 몇 개 지나간 모자를 뒤집어쓰기만 하면 되었다.
나는 그 빤츠를 입고도 모종에 계획을 짰다.
그 거대한 계획은 다름 아닌 바로 마을 외딴집에 배서리를 하기로 한 것이다.
나무가 크고 늦배인 창섭이네 배는 물이 많고 참으로 달았다.
키도 크고 무서운데다 젊은 아버지가 마음에 조금 걸리긴했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었다.
밤에 하얀 옷은 눈에 잘 띄기 때문에 세창이와 나는 윗도리는 벗고 그 까만
빤츠만 입고는 서리에 들어갔다
나무를 잘 타는 세창이는 배나무에 잘도 기어 올라갔고,
손에 잡히는 대로 따 바로 밑에 있는 거름더미로 획획 던지니
푹신해서 소리도 안 나고 아주 좋았다.
허나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던진다는 주먹보다 큰 배는 거름더미가 아닌
그 중 큰 장독 뚜껑을 맞히고 말았다,
쨍그렁 소리가 고요한 적막을 깨고 자다 놀란 창섭이 아버지는 플래시를 들고 밖으로 나오자마자
배나무 있는 곳으로 뛰어왔다.
강냉이 밭으로 뛰어가 숨을 헐떡이며 동정을 살피는데, 플래시 불빛이 비치는
반대편으로 뱅뱅 돌며 잘도 피하던 세창이는 까만 빤츠에 하얀 줄이 불빛에
반사되며 여지없이 걸렸다 "야! 요 쥐새끼 같은 놈아! 빨리 내려와,
안 그러면 아예 톱으로 나무를 잘라 버린다.
아! 순간적으로 나는 여기서 12살 이 어린 나이에 청솔가지 덮고 돌로
눌러진 애창의 모습으로 남아야 하나 생각하니 눈물이 났다.
좀 전까지만 해도 바들바들 떨렸지만 이제는 담담해졌다.
밑으로 내려온 빤츠 바람의 세창이를 본 창섭이 아버지는 분을 못 이겨 싸대기를 후리 쳤다.
옆으로 쓸어 진 세창이는 캑 소리를 냈다.
다시 비실거리며 일어나자 “또한 놈은 누구야?”
라고 묻자, 그놈은 잽싸게 오리라고 했다.
바지에 똥 싼 모습을 하고 어기적거리고 나간 나 역시도, 그 큰손이 바람을
가르는가 싶더니 눈에서 번쩍 불이 났다.
한동안 혼을 내키더니 여기저기 거름더미에 떨어진 배를 자루에 주워 담은 창섭이 아버지는
우리를 향해
“이거 갔다 먹고 다시는 그런 짓 하지마라, 며 타일렀다.
시간의 흐름 속에 반백이 된 서리를 하러다니던 그놈은 행시에 패스하여 고위직 공무원으로
근무를 했었다.
작은 것 하나도 신고를 하고, 법에 의해 처벌하며 시시비비를 가리려 하는
요즘 현실은 우리가 미덕으로 삼았던 이웃간에 나누는 정과 배려하는 마음이
사라진 것 같아 안타깝다.
우리에 메마른 마음도 저녁노을 곱게 물들 때면
하얗게 피어나는 굴뚝의 연기처럼 너그럽고 부드러웠으면 좋겠다.
오랜 세월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는 건, 들켜서 맞은 아픔도 아니요,
걸릴까봐 가슴 졸이던 것도 아니며, 단지 배고픔에 저질렀던 철없는 행동도 아니었다.
그것은 고향만이 가질수 있는 특별한 정감어린 향수이며, 들켜도 혼 내키고,
싸대기 한대로 끝난 우리의 정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