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빛길 시문학(낭송)회
2023년 12월 2일(토) 개최한 제2회 시낭송회에 참여한 분들의 시입니다.
가을에서 겨울로 접어드는 계절
지난 한 해의 여정을 돌아보는 시간
많은 분들이 공유하여 뜻깊은 시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낭송순으로...)
씨알 - 씨알
ㅡ박진양(라화)
바람이 인다
천태만상 깃발이 정신없이 달려든다
한참을 바라보니
그저 나부낀다
바람이 품에 안겨
그렇게
한참 놀다가니
보인다
씨알이
소리없이 웃고있는
내 씨알이 보인다
지금여기 그러함으로 있다고
그냥
아! 씨알이여
그리도 꽁꽁
그리도 잠잠히
그리도 보잘것없이
내 한호흡이 열린다
그리 있었네
그리 살아있었네
그리 늘 피어있었네
씨알 뒤로 바람이 지나간다
그리 우뚝솟은 씨알 앞으로 구름이 지나간다
바람도 구름도 그리 놀다가게 내버려두니
씨알에 땅이 열린다
아,가볍다 춤이나 추자
아, 즐겁다 노래나 부르자
땅땅
하늘땅
빵점땅(영점땅)
나의 정원
ㅡ박보경(빠미라)
우리집 방안에는
조그마한 화분들로 만들어진
나만의 휴식 공간이 있어요
하루의 일상에 지쳐서
힘들 때에 쳐다보면은
싱그러운 초록의 식물들이
저에게 평안함을
선물해 준답니다
스파티필름은
잎사귀가 넓어서
공기를 맑게 해주고 있고요
스킨답서스는
그늘에서도 잘 자라서
잎을 늘어트리고 있어요
테이블야자는
아직 작은데도 제몫을 하느라
열심히 자라고 있어요
행운목은
가지 하나를 얻어서
물에 키우다 화분에 심었는데
1미터가 넘게 시원하게 컸답니다
꽃이 필 날을 기다리고 있어요
개운죽은 물만 주는데도
쑥쑥 크고 있어요
그리고 작은 어항 속의 구피는
그곳이 큰 바다인양
신나게 헤엄치고 있어요
바라만 보아도
저절로 미소가 떠오르는
나의 초록이들과 구피
사랑하는 마음과
고마움을 가득히 담아
그대들에게 찬사를 보냅니다
출근길
ㅡ김준범(유소)
(출근길 1)
버스타러 가는 길에 까치가 인사를 하네
나도 고개들어 까치를 보며 안녕을 건네네
거리의 단풍이 나를 보고 활짝 웃어주네
나도 단풍에게 따뜻한 미소를 건네네
모처럼 올려 본 하늘에는 흰 구름이 빛을 뿌리고
내 가슴에는 사랑의 빛이 반짝거리네
어제와 똑 같은 오늘이
전혀 다른 오늘이네
(출근길 2)
부랴부랴 옷을 입고 정류장으로 향한다
날은 아직 어둡고 햇살이 그립다
비가 온다 더니 구름 낀 게 분명하다
머리 들어 하늘을 보니 회색 구름 번져 있다
그땐 몰랐었다
마음 올리면 구름 걷히는 것을
그땐 몰랐었다
내 안의 반짝이는 보석을
마음 올려 지구 보니 햇살 받아 반짝인다
인드라망
ㅡ여서완
길은 여러 갈래
다음 길은 지금 이 순간 길 밟고 지난다
지금 길이 보이지 않아도
걷고 걷고 걷다 보면 길과 만난다
큰길도 오솔길도 만난다
없던 길도 내가 걸어가면 길이 되고
순간 순간 선택만이
내 길 위에 존재하는 표지판이다
지금이라는 그물코에 매달린
인드라망의 그물
다음 순간은 지금 이 순간에 태어난다
우리에게 고요함이 필요한 이유다
시즌 토끼
ㅡ이은심
유일무이한 태양등에 불을 켜기 위하여
황량한 겨울 들녘을 말없이 건너가는
크리스마스 시즌을 고대해
전송된 크리스마스카드
톡 튀어나온 하얀 토끼 한 마리
대척점에 잠든 토끼를 불러 함께 달리기를 하자고
동지점 까지 루돌프 뿔사슴의 뒤를 좇아 달린다
뒤에서 사냥꾼들의 추격 발자국소리를 들으며
절대 포기 않는 생명의 사도들
신앙의 불꽃이 가슴속에서 바깥으로 터져나와
이글거리는 모습에 탄성
유리난로 포개진 참나무장작이
황홀하게 타오르는 모습을 줄영상으로 바라본다
경쟁의 불꽃은 어느새 협력의 불꽃 나눔의 불꽃으로
투쟁의 불꽃일랑 다 태워버렸어
나무할미님
ㅡ강병천(태얼랑)
나 어릴 적
우리 마을 어귀에는
오백 살 된 고목나무가 있었다
너무 나이가 많아 나무할미라 불렀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오백 번이나 지냈고
현조 고조 증조 조 대대로 집집마다
온갖 사연들 기억하고 있어
어떤 때는 든든하기도 했고
어떤 때는 무섭기도 했다
오백 년 전 어린 묘목을 심던
촌장님의 희망도 담겨 있고
만복이 꽃님이 혼인잔치의 즐거움도 담겨 있고
손자 손녀 점지해달라고
오색실 걸어놓고 기도하던
할머니들의 소원도 담겨 있고
남모를 사연에 가슴 앓다가
목매달아 죽은 순이의 슬픔도 담겨 있다
순이가 죽던 날은
고목나무는 순이를 보듬고 몸부림을 쳤고
마을 입구 장승들도 밤새 울어 눈이 부르텄고
솟대 위의 오리들도 애가 타서 까맣게 변했다
지금도
우리 마을 어귀에는
오백 살 넘은 고목나무가 있다
수많은 이야기들을 품어안고
늙은 마을을 지키고 있다
나무할미님
그 넓은 품으로
못난 사람들 보듬고 어루만지며
해원굿 씻김굿 하면서
오래 오래 그 마을 지켜주소서
추억에 젖어 지나는 나그네
한 자락 오색실에 눈물 담아
새로 난 어린 가지에 걸어주고 갑니다
바위도사님
ㅡ강병천(태얼랑)
나 어릴 적
우리 마을 뒷산에는
천 년도 더 된 바위가 있었다
오랜 세월 좌선하여 바위도사라 불렀다
억겁의 세월 속에
용암이 굳어 버위산이 되고
비 바람 열기 냉기로 부서지고 구르다가
어느때인가 마을 뒷산 터줏대감이 되어
세상 내려다보며 어스대기 시작했다
환인 환웅 단군할배 때에는
오곡 백과 올려놓고 하늘제사도 지냈고
나라 지키는 사내들이 무예도 겨뤘고
호란 왜란 내란때에는
수없이 죽어나간 장정들을 천도하느라
홀로 된 아낙들의 사무친 통곡소리에
머리도 깨지고 가슴도 패이고
한쪽 어깨는 금이 가서 떨어져나가고
그러다가 바위는 그만 도사가 되어버렸다
지금도
우리 마을 뒷산에는
천 년도 훨씬 넘은 바위가 있다
온 몸 구석 구석 역사를 새겨 안고
도사처럼 마을을 굽어보고 있지만
오랜 세월 제사밥을 받아먹어
사람들에게 빚이 많다
바위도사님
그 깊은 내공으로
세상사 온갖 환란
녹여내고 정화하면서
오래 오래 그 마을 지켜주소서
Nowhere I am 읊조리며 지나는 나그네
한 덩이 돌멩이에 그 마음 담아
바위도사 어깨 위에 올려놓고 갑니다
저만치 옆에
자기에게는 제사도 안지내준다며
배고프다고 투덜대는 작은 바위 위에도
돌멩이 하나 얹어주고 갑니다
***후기를 올리며...
시는 머리에서 나오는게 아니라 가슴에서 나옵니다.
생각들의 박제가 아닌 지금 여기에 살아 있는 울림입니다.
예술 창작의 과정과 결과이기도 하고
수행자들이 그토록 바라는 영성 체감의 문이기도 합니다.
이번 낭송회는 참여자들의 좌담회가 밤 늦도록 이어져
원래 예정되어 있던 제2부 가곡의 밤 시간은
좌담회로 대체하였습니다.
***공지사항
매월 첫째주 토요일(2시 30분-5시 30분)은 빛길 시문학회 시 낭송의 날입니다.
참여를 원하는 분은 평소 준비한 자작시를 낭송하면 되고, 시에 재주는 없지만
함께 하고 싶은 분은 좋아하는 동서고금의 기존 시를 낭송하면 됩니다.
제3회 모임은 2024년 2월(1월은 건너뛰고) 첫째주 토요일(2월 3일)입니다.
처음 참여를 원하는 분은 모임일 3일 전까지 의사를 표현해주시면 됩니다.
(이름 닉넴 성별 연령 등 간단한 자기소개를 문자, 카톡 또는 메일로)
nhne1371@hanmail.net
[출처] https://cafe.daum.net/sinmunmyung/r0qR/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