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른바 ‘대통령의 격노가 빚어낸 한 마디 말’로 나라가 온통 쑥대밭이다. 공정하게 수사한 해병대 수사단장의 말처럼, ‘한 사람의 말로 인해 모든 일이 꼬이고 수많은 범죄자가 생겼다’는 말이 가장 적확한 표현이다.
이미 훤하게 밝아버린 하지절의 아침, 일어나자마자 《논어 자로편》을 읽다가, 문득 노나라 정공과 공자의 대화가 가슴에 파고들었다. 몇 번을 되풀이해 읽다가 쉽게 우리말로 직역해 보았다.
정공이 물으셨다. “‘한 마디 말로 나라를 일으킬 수 있다’고 하니, 그럴 수 있습니까?” 공자가 대답하셨다. “말을 이와 같이 기약할 수 없겠지만, 사람들의 말에 ‘임금 노릇하기가 어렵고 신하 노릇하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니, 만일 임금 노릇하기가 어려운 줄을 안다면 한 마디 말로 나라를 일으킴에 가깝지 않겠습니까?”
노 정공이 말씀하셨다. “‘한 마디 말로 나라를 잃는다’고 하니 그럴 수 있습니까?” 공자께서 대답하셨다. “말을 이와 같이 기약할 수 없겠지만, 사람들의 말에 ‘내가 임금 노릇함에 즐거움이 없고 오직 말함에 나를 거역하지 말라’고 한다니, 만일 그 말이 선한데 거역함이 없다면 또한 좋지 않습니까? 만일 선하지 않은데도 거역함이 없다면 한 마디 말로 나라를 잃음에 가깝지 않습니까?“ |
노정공은 공자에게 두 가지를 물었다. 한 마디 말로 나라를 일으킬 수도 있고, 한 마디 말로 나라를 잃을 수도 있다는데 사실을 확인하고 싶었다. 공자는 세간에 떠도는 말을 인용해 대답하였다. 자신의 권력을 누리기보다 오직 국민들의 소망을 챙겨주는 것이 임금의 노릇이니, 얼마나 힘들겠는가. 이처럼 권력을 가진 자가 임금 노릇하기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을 자각한다면 충분히 한 마디 말로 나라를 일으킬 수 있다고 설명하였다. 생각이 제대로 된 권력자라면 자신의 책임이 얼마나 막중한가를 먼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하노릇하기가 쉽지 않다’는 말은 대체 무엇일까? 절대 권력자 혼자서 나라를 운영할 수 없다. 그 밑의 공록을 받아먹는 공직자들이 책임지고 뛰어 일을 성취해내야 한다. 그것이 어찌 쉽겠는가. 아무리 노력해도 모두를 다 만족시킬 수 없는 법이다. 이만하면 됐다 싶었는데 어디선가 볼멘소리가 새어나온다. 그래서 쉽지 않다. 권력자의 눈치만 보고 그 심기만을 살피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간신이 되고 만다. 권력에 빌붙어 아부를 떠는 것만이 간신은 아니다. 눈의 시선이 권력에 있는지, 민생에 있는지를 보면 안다. 간신들은 마치 세상을 다 알고 있는 것처럼 착각하고 조언하는 특징이 있다. 하지만 권력자에게 듣기 좋은 말만 늘어놓으며 자신의 자리를 계속 보전하려는 사악함이 자신도 모르게 내면에 가득 고인다. 그리고 마침내 그것이 신념으로 굳어지며, 자신이 아닌 ‘나라와 국민을 위한 것’이라고 강변한다. 속된 말로 지나가던 개가 웃을 일이다. 반대로 절대 권력자에게 국민의 편에 서서 귀에 거슬리는 말을 계속 한다면, 어느 순간 욕을 당할지언정 충신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한 마디 말로 나라를 잃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지금 우리나라의 현상이 그렇다. 절대 권력을 가진 자가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란, 국민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일이다. 자신의 비리를 감추고, 가족과 측근들의 비리를 감추는데 권력을 사용하는 것은 가장 추잡한 행위이다. 권력자인 내가 말하는데 누가 감히 나를 거역하느냐? 지금 나라꼴이 그렇지 않은가? 공자는 권력자의 명령이 선하여 거역할 수 없다면 좋은 일이라고 했다. 그런데 선하지 않은데도 거역하는 자가 없다면 그것은 나라를 잃는 것에 가깝다고 정곡을 찔렀다.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둘 다 말했으나, 말의 핵심은 후자에 있다. 절대 권력에 취한 정공을 경계한 말이다. 자신의 말을 거역하지 않고 따랐다고 해서 모두 복종한 것은 아니다. 절대 권력자의 말이 옳은지 옳지 않은지를 먼저 따져야 한다. 힘에 억눌려 마지못해 따르는 면종(面從) 내지 굴종(屈從)이 있고, 마음에서 우러나 복종하는 심복(心服)이 있다.
지금 대한민국의 상황은 어떤가? 내 눈에는 심복보다는 죄다 굴종으로 보인다. 양심상 부당한 처사임을 알면서도 그대로 자행하였다. 22대 국회가 법사위원회를 열고 불법을 자행한 증인들을 불러 심문하자 한결같이 '기억나지 않는다'거나 '답할 수 없다'고 회피한다. 이들에게는 두 가지 과오가 있다. 첫째, 부당함을 바로 고하지 못한 나약한 간신이라는 점. 둘째, 권력이 국민에게 있음을 망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을 말하는 순간 절대 권력이 허무하게 무너질 수 있다는 두려움도 내면에 가득할 것이다. 공정한 일이었다면 국민들이 이처럼 분노하겠는가?
언젠가 공정한 세상은 찾아올 것이다. 공자의 말대로라면 지금 형국은 ‘한 마디 말로 나라를 잃는다’는 것에 가깝다. 한 마디 말의 의미가 단지 '말'에 그치겠는가. 검사 출신들을 앞세워 언론을 탄압 장악하고, 국민 권익을 조롱하고, 정적을 표적 감사하는 일이 버젓이 행해지고 있다. 권력자의 부당한 행위를 모두 정당화하고 민심이 적으로 간주하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권력은 민심을 잃으면 그냥 몰락한다. 《대학》 에서 이른바 '실중즉실국(失衆則失國)'이다. 작은 구멍 하나가 거대한 타이타닉호를 침몰시켰듯, 말 한 마디가 나라를 잃는 지경에 이를 수 있다. 사람의 감정 중에서 느닷없이 분출되는 분치( 忿懥:성냄) 를 가장 경계해야 한다는 성현의 가르침이 문득 생각난다. 《대학》 7장에 '자신에게 분치하는 바가 있으면 올바름을 얻지 못한다(身有所忿懥, 則不得其正)'라고 하였다. 어렵게 얻은 금쪽같은 외아들 청년이 해병대에 자원입대해서 사고로 순직한 사건을, 애통한 마음으로 공정하게 수사한 수사단장의 노고에 ‘격려가 아닌 격노’를 해서 나라가 이 모양이 되었다. 지지율 긍정평가 20~30%를 오가는 지금의 절대권력, 부정평가 60~70%를 오감에도 민심을 무시하는 절대권력. 어디 얼마나 가는지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자.
2024.6.23. 장마가 시작된 흐린 날 아침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