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그램의 이 실험은 사람들이 불합리하고 파괴적인 복종에 굴복하는 이유가 개인의 성격이 아닌 '상황'에 있으며, 권위에 의해 강제된 상황 하에서는 아무리 이성적이고 도덕적인 사람도 자신의 가치관이나 원칙을 따르기 위해 저항하기 보다는 불합리한 명령일지라도 권위에 복종하는 것을 더 편하게 여긴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충격적이지 않나요? 아니면, 당연한 결과인가요?
사실, 저는 이 실험결과를 보고 인간에 대한 믿음과 자존심에 크게 상처를 입었습니다. 저 자신을 포함해서 사람들에 대한 일종의 배신감이 느껴지더군요. 하지만, 이것이 바로 거울에 비친 우리 자신의 진실한 모습인가 봅니다. 아무리 부정해도 부정할 수 없는…
이렇게 상처입은 인간의 자존심을 더욱 회복불능 상태로 만들어 버린 더욱 충격적인 사건을 하나만 더 소개할까 합니다.
밀그램의 실험이 있은 지 3년 후 뉴욕,
흉악범의 엽기적인 살인 행각을 지켜 본 목격자가 38명이나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상황을 막고자 나선 이가 단 한 명도 없었던, 그야말로 엽기적인 사건이 일어납니다.
다수의 군중성과 익명성 속에 묻혀, 우리는 스스로의 양심과 최소한의 인간됨의 요구에조차 침묵하는 무임 승차자(free rider)로서가 훨씬 편한 존재들인 모양입니다. 결국은 우리 자신을 규정하고 지배하는 것이 우리가 의식하는 시선들, - 과연 실체가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운- 우리를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일 뿐이라는 부끄러운 결론을 부정할 수가 없네요. 자신의 존재와 정체성을 결정하는 그 중요한 문제조차 스스로의 선택이 아닌 타인의 결정에 맡겨버리는 이 어리석음은 어쩌면 사회적 동물이기에 오히려 인간에게는 자연스러운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인간으로서 우리 자신과 대부분의 타인들이 합리적으로 사고하며 이성적으로 행동하는 존재임을 믿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위의 두 가지 심리 실험은 지금까지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어왔던 그 모든 상식들을 전혀 낯선 사실들로 만들어 버립니다.
"불합리하고 정당하지 못한 권위 앞에서 침묵하고 복종하는 대신 거부하고 저항할 수 있는 행위, 그리고 자신의 존재를 군중의 익명성과 타인의 시선에 맡겨 규정짓기 보다는 적극적으로 스스로의 기준과 원칙에 따를 수 있는 행위"는 결코 평범하거나 쉬운 일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바로 그러한 행동이 우리가 인간인 우리 자신과 타인에게 기대하는 지극히 상식적인 당위임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우리가 믿고 있는 상식에 따라 산다는 것, 그리고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기본을 지키며 산다는 것이 말처럼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위의 이야기는 보여줍니다. 우리는 인간이기 이전에 이성보다도 강한 본능을 지닌 동물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위의 실험에서도 소수이긴 하지만 인간으로서 지극히 상식적인 선택을 한 사람들이 분명 있었습니다. 그들은 동물로서 인간의 자연스럽고 평범한 본성을 따라갈 때 누리게 될 안전함과 편안함을 포기한 대가로 진정한 '인간됨'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처럼 가장 포기하기 힘든 것을 포기할 수 있을 때 우리는 그것을 '용기'라고 부릅니다.
우리 삶의 가장 평범하고 상식적인 것을 지켜내기 위한 그런 비범한 용기가 더욱 절실하게 느껴지는 이 시대를 보면, 넘쳐나는 물질적 풍요와 기술의 발달이 '인간다운' 삶의 필요조건일지언정, 결코 충분조건이 될 수는 없나 봅니다.
참고로, 위에 소개한 두 가지 유명한 심리실험은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2008)”(로렌 슬레이터 지음, 에코의 서재)라는 책에 더욱 잘 나와 있습니다. 기존의 믿음과 편견을 넘어 인간 존재에 대한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이해하는데 이보다 더 훌륭한 참고서는 없을 듯 합니다. 꼭 한 번 읽어 볼 것을 권해드립니다.
-2009년 7월 13일, 거리두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