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불이 밝게 비추려면,,. / 무비 큰스님
善知識(선지식)아 定慧猶如何等(정혜유여하등)고→
定과 慧가 어떻게 해야 평등한 것이냐?
저는 정(定)과 혜(慧)를 구름 걷힌 것과 맑은 하늘로 비유를 했는데,
육조스님은 아주 멋진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猶如燈光(유여등광)이니→ 마치 등광(燈光)과 같으니, 그랬어요.
등불이 등(燈)이 있지요? 그리고 빛이 있다고요.
등 하고 빛 하고는 다르다면 다른 것이지만, 사실은 하나예요.
등이 있으므로 빛이 있고, 빛은 곧 등에서 나왔으니까
그러니 나눠 놓고도 볼 수가 있고, 또 나누자니 좀 아닌 것 같고 그렇지요.
얼른 생각에,,, 등과 빛은 같은 도리(道理)이다.
有燈卽光(유등즉광)이요→ 등이 있으면 곧 빛이 있게 돼 있어요.
無燈卽暗(무등즉암)이라→등이 없으면 어둡고 캄캄하지요. 빛이 아예 없지요.
燈是光之體(등시광지체)요→ 그 등은 빛의 本體(본체)가 된다. 이것이지요.
光是燈之用(광시등지용)일새→ 이 빛은 등의 작용이다.
이 비유가 참 명쾌하지요? 그러면 밝게 비추려면,
이 세상을 온통 더 밝게 비추려면 어떻게 해야 되지요?
등이 더 빛나야지요? 그러면 온 세상이 환하게 밝잖아요.
그런데 자기 방하나 겨우 비출만한 30촉짜리나
100촉짜리 정도 등이라면 그 방 하나 정도 밖에 못비추지요.
이것이 무슨 말인지 한번 잘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살아가는데, 사람 사람마다
이 세상에 끼치는 자기의 빛을 그 나름대로 비추고 있어요.
그 나름대로 비추고 있다고요.
그것은 본체가 얼마나 많은,,, 등불로 친다면,
등불이 얼마나 용량을 함유하고 있느냐?
거기에 따라서 비추는 범위와 빛의 밝기가 다르지요.
마찬가지로 우리의 마음속에 공덕(功德)을 얼마나 쌓았느냐?
공부를 얼마나 했느냐?
그것이 우리가 함유하고 있는 등(燈)의 용량(用量)과 마찬가지이지요.
얼마나 자기 수행과 공덕과 공부가 되어 있느냐에 따라서
세상에 비추는, 세상에 영향력(影響力)을 주는 범위가 전혀 다르지요.
기껏 자기 한 인생을 그저 소승(小乘)으로
조그마하게 살다 가는 사람도 있고,
많은 사람에게 큰 공덕을 베풀며 사는 사람도 있고,,, 여러 가지입니다.
체(體)의 本質(본질)은 누구나 똑 같지만,
그 닦은 공덕에 따라서 그걸 果報(과보). 報身(보신) 그러는데,
과보(果報)가 달라요. 영향력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과보는 영향력을 말하는 것입니다. ,,,
< 상기 글은 무비스님께서 설하신
육조단경( 제30강 정혜품-1, 2006, 8, 30. 녹취인; 대원성) 법문 중 일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