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날을 맞아...
권우(眷佑)해 주신 은사님!
* 권우(眷佑)하다: 애정으로 보살피다
대부분의 은사님들께서는
우리를 가르침에 권우(眷佑)해 주셨다
그중에서도 뚜렷히 추억에 남아
사는 동안 새록새록 권우의 향기가
피어나고 있는 분들이 있다
▶남성 고등학교 이ㅇㅇ 체육 선생님, 강ㅇㅇ 수학 선생님,
이 ㅇㅇ 국어 선생님, 김ㅇㅇ 용길 생물선생님, 문ㅇㅇ 교련 선생님
고 1 봄 소풍을 황등 돌산으로 가고 있다
맨 뒷줄에 선 몇몇은
막걸리를 몇 잔씩 몰래 마시며 걸었는데
다른 반에서도 그런 것 같다
나는 술을 못 마셨지만
즐거움에 두어 모금 마셨는데
얼굴이 어느정도 붉었다
황등 돌산 정상에서 점심을 먹는데
지도부 선생님들이 돌아다니시며
얼굴들을 톺아보시며
음주한 학생들을 체크했다
*톺아보다: 샅샅이 훑어 가며 살피다
이 ㅇㅇ 체육 선생님이 나를 발견하시더니
오라고 하신 후 조용한 말로
이따 닭 싸움 놀이할 때 저 숲속으로
뒹글어 들어가서 있다가
술먹은 학생들 불러내 훈계가 끝난 후
나와서 놀아라고 하신다
이렇게 하여
10여 명이 3일간씩 유기정학을 당했고
나는 피할 수 있었다
5일간의 정학이 유세였지만
이 ㅇㅇ 선생님 의견을 받아들여 3일로 낮추었으니
내게나 정학 당한 학생들에게도
권우였음은 틀림없다
나는 퇴역 후 2010년부터 지금까지 거의 매달 뵙는데
친구 몇몇과 함께 모시기도 하면서 회포를 풀고 있다
2024년 4월 29일 은사님 부부를 모시고 금강변 웅포교회에서
강ㅇㅇ 수학 선생님은 2학년 담임이셨다
학년 초 신상명세서를 썼는데
제일 좋아하는 과목에도 수학
제일 싫어하는 과목에도 수학을 적어냈다
"너, 선생님한테 장난하냐?"
"아닙니다. 수학을 제일 싫어하지만
공부를 잘해야 하기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제일 좋아해야 합니다."
"그래?" 나를 톺아보시더니
*톺아보다: 샅샅이 훑어 가며 살피다
"화택이 너, 지금부터 내 수양아들이다."
나의 첫 수양아버지가 되셨다
3학년 때 전북기계공고로 가셔서 교장까지 하시고 퇴직하셨으나
오래 전에 작고하셨다
이 ㅇㅇ 국어 선생님은 3학년 1반 담임이셨다
유신치하, 전 학교 데모 금지 훈령이 떨어진 직후
전 학년 3일간 등교거부 데모 주동 사건으로
내 짝궁을 포함 3명은 군산제일고로 전학가고
나와 26명은 14일간의 무기정학 생활을
학교 도서관에서 반성문과 풀뽑기 등으로 했다
선생님은 교무회의 때
"무기 정한 학생들의 데모 목적이
순수하고, 한 참 공부해도 부족할 시간에
가두어 놓고 풀이나 뽑아야 되겠습니까?"
결국 선생님은 데모에 동조한 죄목으로
수업배제, 중학교로 좌천, 파면을 당했지만
박정희 대통령을 임명했던 당시
통일주체국민회의 의장이시던 이 ㅇㅇ 이사장님을 상대로
거금의 회유에도 응하지 않고 정의를 회복하기 위해
외로이 변호사 없이 선생님의 변호로
5년여의 대법원 항고 끝에 승소하여
군산제일 고로 가셨다가
상산 고로 가셔서 퇴직하셨다
몸에 중병이 4군데 있으셔서
거동이 불편한 처지이시지만
고려대 재학 시 4.19 의거에 앞장섰던 정의의 기백이
여전히 살아 계시는 선생님을
2019년부터 친구 몇몇과 함께
고향 쪽에 내려오실 때면
일년에 두 세 차례 모시고 있다
김 ㅇㅇ 생물 선생님은 3학년 담임이셨다
몸이 비대하신지라
허리가 안 숙여진다
발음도 특이하셔서
"유. 글래나" 이런 식으로 발음하신다
무기정학 초기에 반성문에 이름만 써내자
내가 얼른 교실로 복귀해야 선생님 맘이 편해진다며
내게, 반성문 쓸 때마다
잘못했다고, 다시는 안 하겠다고, 깊이 반성한다고
반성문을 쓰라하신다
학교 교문에서 운동장까지 50여 미터의 양쪽에
커다란 히말라야시다 나무들이
줄기를 크게 늘여뜨리고 멋있고 위풍당당히 서있었다
그런데 이 길의 일부를 관통시켜
2차선이면서 인도가 좁았던 도로를
4차선으로 확장한다는 시청의 계획에
이사장님이 협조를 한 것이다
우리는 이것에 건의했지만 묵살되자
전교생 3일간 등교거부로 항의한 것이다
친구들에게 우리 선생님의 권유대로
반성문 내용을 쓰자라고 했고
이 ㅇㅇ 국어선생님의 발언 등의 영향에 힘입어
2주만에 풀렸고 곧 바로 4월 19일을 맞았다
조회 때 선생님께서
오늘 교무회의에서 오늘은 4.19 의거 날인데
데모 사건도 있고 해서
오늘은 일체 조퇴를 금지하기로 했다고 하신다
이 말씀에 불쾌한 나는
"선생님, 저는 도서관에 있다가 나온지라
김제 집에 그동안 못 갔습니다. 말썽 안 부리고 다녀올테니
집에 다녀올 수 있도록 조퇴를 해주세요."
나를 바라보시던 선생님은
교장선생님께 너의 요청을 말씀드려보겠다고 하시며
다녀오시더니
"승낙하셨다. 대신 형사들이 검문하거든
이빨이 아파서 치과 치료를 위해
김제 집에 간다고 말하거라. 한 손으로 턱을 받쳐
치통이 있는 것처럼 하고 다녀와라."
이 말씀에 친구들이 흉내내면서 깔깔 웃었다
지혜의 향이 우러나는 애정으로 보살펴주신 선생님이셨는데
가장 먼저 돌아가셨다
문 ㅇㅇ 교런선생님
선생님은 헌병 CID(후에 범죄수사단으로 변경) 출신으로
중위 때 전라북도를 담당하시기도 했으며
남성 고 총동창회 태동의 사무국장을 맡아
85세인 지금까지도 동창회에 애정을 가지고 활동하신다
데모 첫날 대대장 한 명이 자수하는 배신의 사건이 발생했고
선생님들의 호호방문과 새마을 방송 노력으로
부분적으로 학생들이 등교하여
수업이 진행되었지만 데모 종료 후 등교일인 월요일부터 정상화 되었다
월요일 등교하자마자 지도부 선생님들이 근무하시는 2교무실로 갔다
남성 여고에서 작년에 우리 담임선생님과 함께 오신
김 ㅇㅇ 생물선생님은 나를 만날 때면
내 팔을 어루만지시며 "화택이 피부는 여학생들 보다 더 곱다."며
귀여워 해주셨는데(요즘은 있을 수 없지만 당시는 무관)
"화택이 네가 제일 나쁘다. 총들고 싸운 독립군보다 더 훌륭하신 분들이
군자금을 대주신 분들이다. 반면에 너는 데모 주동 회의 때 참석자들의
짜장면 값을 모두 다 내줬기 때문에 네가 제일 나쁜 학생이다."
나무라시자 문 ㅇㅇ 교련선생님과 일찍 돌아가신 최 ㅇㅇ 교련 선생님께서
생물 선생님의 말씀을 가로 막았다
문 ㅇㅇ 교련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길
1 교무실에서 중앙정보부와 형사들이
관련 간부들은 조사를 다 마쳤고
최고 주동자인 연대장과 2, 3 대대장들을 심문하고 있는데
시국에 항의 한 것이 아니라 학교 자체 일이라며
잘못 없다고 대들고 있더라면서
규율부장인 너를 기다리고 있으니
너는 지금 내려가서 자수하고
고분고분하게 반성하는 표정으로
잘 못했다고 진술하라는 뜻으로 조언해 주셨다
군 생활 중 수사관으로서의 경험을
애정을 담아 내게 말씀해 주신 것이다
절친의 동생이 3년 후배였는데
문 ㅇㅇ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형 이야기를 자주 하셨다고 한다
"뭐라고 말씀하시는데?"
용모출중, 힘세고 날렵, 펀치와 맷집이 최고,
호남선 열차에서 남성 고 칸에 도전한
타 학교 학생들 53명대 6명의 이리역 대한통운 적재장에서의 싸움,
최초 전북종합장애물 400미터 대회에서 1위,
학교 학생들이 시내에서 맞고 있다는 신고가 들어오면은
형이 먼저 달려가서 형이 신속하게 물리치고 구했다는 무용담 등등
"그러셨구나, 졸업한 나를 오래도록 후배들에게
자랑하셨네."
나는 짝궁이 없는 빈자리에서 졸업을 했고
짝궁이었던 연대장 최 ㅇㅇ 친구는
패배자로 전락한 마음의 상처를 이기지 못하고
30 초반에 자살로 생을 마감했고
대대장 중 한 명도 쓸쓸히 대인관계를 기피하며
살아가고 있다
배신한 친구는 연대장이 되었으며 사회에서 승승장구했지만
친구들을 대함에 그 시절의 부끄러움이 나타나지 않을까?
나를 질책한 선생님은 교장까지 마쳤고
시내나 동창회에서 간혹 마주치지만
아직까지는 내가 인사를 안 건내고 있다
본인도 왜 인사를 안 하는지 아시는지라
시선을 마주하진 않으신다
대신 내 절친 최성엽 교수가 우연한 기회로
선생님이 포함된 모임의 총무로서
내 몫까지 다해 선생님을 월례회 모임에서 챙겨드리고 있다
이 글을 쓰면서 모두를 다시 한 번
너그럽게 너그럽게 이해하고 그러려니 했다
수학 정석의 대가 홍성대 선배님이
전주에 상산 고를 세우시려는 대망을 갖고
문 ㅇㅇ 교련 선생님을 픽업했다
학교 부지 선정부터 설계까지 관여하시며
학교를 완성했고
선생직을 수년 후에 그만 두고 서무직으로 퇴직하셨다
수년 전 위암 치료 후 제작년에 식도암을 수술하신
문 ㅇㅇ 교련 선생님은 회복이 잘 되어가고
작년 7월쯤부터 하루에 맥주 한 병까지는
즐기고 매주 금요일 친구들과 등산 등을
가벼이 하시며 독서로 삶을 즐기고 계신다
선생님의 암/건강관리 스케줄을 맞추어야 했기에
뵙는 날도 정해놓았다
매월 첫 주 토요일 오후 11시 40분쯤에
전주 팔달로 예술의 회관 앞에서 만나
선생님이 즐겨 드셨던 시내 맛집으로 향한다
때로는 익산이나 김제 축제장으로
친구 몇몇과 함께 모시기도 한다
선생님께서는 "화택이는 내 자녀들보다 더
나를 만나준다."라며 고마운 마음 전해주시고
내 친구들도 내게, 은사님들의 효자라고 칭찬한다
나도 이런 은사님들을 본받아
지인들을 대할 때 권우한다
인연자들에게는 애정으로 보살피려는 마음을
친절한 인사로 나타내려 노력한다
때로는 굴욕감을 무릎쓰고 상대에게 우월감을
느끼도록 내 자존감 희생도 감수하며
친절하게 인사를 건내며 살아가고 있다
오늘 10시 30분에
절친 최성엽이가 이ㅇㅇ 체육선생님을 모시고
함열로 온다
나는 군산에서 오는 절친 박상호와 10시 10분에 만나
선생님을 영접한 후
함께 즐거운 투어를 한다
룰루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