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행4:5-12)
갈등
1. 부활절 후 세 번째 주간에 성서정과가 제시한 금주의 설교 본문을 읽었습니다. 공교롭게도 주일에 사도행전을 설교하는 우리 교회는 이미 이 말씀을 나누었어요. 그래서 요한계시록 내러티브나 다른 본문을 나눌까 하다가, 다시 이 본문을 나누는 것이 좋겠다고 결정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두 번이 아니라 열 번을 반복해도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의 때는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방언 사건이 있었고, 이어서 성전 미문 앞에서 구걸하던 40여 평생 한 번도 걷지 못하던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이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게 한 직후의 일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와 부활 후 오순절-오십 일 동안 잠잠하던 예루살렘에 신비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이 일을 보고 예루살렘 시민들은 동요하기 시작했어요. 사람이 할 수 없는 하나님의 역사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아주 정상적인 인식이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사도들과 막 탄생한 초대 예루살렘교회를 주시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5-6절,“이튿날 관리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에 모였는데, 대제사장 안나스와 가야바와 요한과 알렉산더와 및 대제사장의 문중이 다 참여하여.”
2. 그들은 관리들-장로들-서기관들(바리새인들)-대제사장들과 그의 문중입니다. 당시 유대의 최고 권력기관이었던 산헤드린 공회의 멤버들을 말해요. 70명으로 구성되었고, 대제사장이 의장(대표)이었습니다. 방언 사건에 이어서 평생 걷지 못하던 자가 일어난 일로 예루살렘 사람들이 동요하자 이들이 긴급회의를 소집했습니다. 여기에 그들이 누구인지 자세히 소개하는 것은 이 회의에 빠진 사람이 거의 없었다는 것을 암시해줍니다. 그만큼 그들에게는 심각한 상황이었어요. 그들은 당시 누구도 관여할 수 없는 무소불위의 권세를 가졌습니다.
체포와 심문, 고문, 심지어 거짓 증인을 세워 살인도 일삼이었어요.(스데반) 그들은 7절,“사도들을 가운데 세우고 묻되 너희가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산헤드린 공회는 언제든지 사람들을 불러서 심문하고 정죄할 수 있었습니다.(산헤드린 전경 사진 함께 보지요) 그들이 사도들을 심문한 첫째 질문은 너희가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들이 사도들을 심문하면서 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고, 무슨 권세-누구의 이름에 집중했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갈등 심화
3. 산헤드린 공회의 심문에 사도들이 어떻게 대했는지 봅니다. 사도행전은 심문에 대처하는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했다는 말로 했어요.(8절) 베드로가 개인적인 말로 대답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9절,“만일 병자에게 행한 착한 일에 대하여 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받았느냐고 오늘 우리에게 질문한다면.”베드로의 독특한 답변이 보입니다. 하나는 걷지 못하던 사람이 일어난 기적을 착한 일-선한 일이라고 말했어요. 베드로는 이것은 놀라운 기적이었다는 말로 강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40여 년 평생 한 번도 일어나보지 못한 사람이 일어나게 한 선한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치유와 기적은 항상 선한 일입니다. 연약한 피조물인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며 은혜를 베푸시는 일이에요. 또 하나는 걷지 못하던 사람이 나았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이 사람이 구원을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이 사람이 단지 몸만 나은 것이 아니고 영혼이 구원받았음을 선포했습니다. 이 말은 베드로가 이 사람을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으키기 전에 복음을 전했다는 것이에요. 그가 전한 복음을 이 사람이 믿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선포할 때 그가 일어났습니다.
4. 참 기적이 이런 것입니다. 몸만 낫지 않고 영혼과 마음까지 낫는 전인적 치유-전인 구원이에요. 베드로는 이어서 10절,“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성령충만했던 베드로의 지식과 담대함이 잘 보입니다. 성령충만하면 이 두 가지-지식과 감정-가 밸런스를 이뤄요. 베드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며 선포했던 옛 선지자 같은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고 하며 산헤드린 공회의 심문에 답을 해나갔습니다.
베드로는 산헤드린 공회원들이 거의 다 참여한 자리에서 조금도 위축되지 않았습니다. 그의 담대함이 돋보였어요. 그는 산헤드린 공회 너희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다고 선언했습니다. 이것은 다 아는 사실이었지만, 무소불위의 권세를 가진 당사자들 앞에서 이렇게 말하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그는 감정으로 이 말을 한 것이 아니고, 진리를 선포하며 이 말을 했어요.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알리며, 너희가 죽인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걷지 못하던 이 사람이 일어나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서 있다고 말했습니다.
5. 베드로의 진술의 극치는 12절,“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산헤드린 공회원들 앞에서 복음을 확실하게 선포하였어요. 위기는 기회라고, 베드로가 공회에 붙잡혀 와서 심문을 당하지 않았으면 이런 기회가 없었습니다. 베드로는 시118:22을 인용하며 이 진리를 선언했어요. 성령충만한 베드로는 정확한 성경 인용과 적용을 산헤드린 공회 앞에서 선언했습니다. 산헤드린 공회가 사도들에게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했느냐는 질문에 답한 베드로의 대답은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요?
실마리
6. 오순절 성령 강림과 방언 사건, 이어진 걷지 못하던 사람이 일어난 기적은 참 멋진 하나님의 역사였습니다. 아무 때나 쉽게 볼 수 없는 일들이었어요. 이때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고 시대를 분별하며 살았다면, 산헤드린 공회원들이 이 상황을 알고 바로 회개했을 것입니다. 아, 우리가 메시야로 오신 나사렛 예수를 죽이는 실수를 했구나! 베드로는 방언 사건 후 예루살렘 시민들에게 이 진리를 선언했어요. 너희가 십자가에서 죽인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고 할 때, 예루살렘 사람들이 마음에 찔려 우리가 어찌할꼬 베드로에게 물었습니다.
베드로는,“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라.”고 답했습니다. 그의 설교를 들었던 사람들 중에 3,000명이 회개했어요.(2:36-41) 이때 산헤드린 공회원들은 베드로의 설교를 이미 알았고, 오늘 다시 들었습니다. 그들은 들으나 깨닫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단지 자기들의 기득권을 지키기에 급급했고, 사도들을 심문하며 할 수 있는 질문이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병자를 고쳤느냐는 말이었습니다. 자기들의 권세와 이름 외에 누가 권위가 있느냐는 질문이었습니다.
7. 성령이 충만했던 베드로는 그들의 의도를 잘 알았습니다. 베드로는 너희들이 권세와 이름을 이야기하는데, 그 권세와 이름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라고 선포했어요. 그는 진리를 조금도 피하지 않고 전했습니다. 우회적으로-부드럽게 전하지 않았습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언제나 선한 일을 행하심을 선포했습니다. 걷지 못하던 사람을 일으킨 것도 이런 일의 하나였다. 이 사람의 일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께서 몸만 아니라 영혼까지 구원하신 것이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이름이다. 이보다 간략하고 확실한 응답은 없습니다. 성령충만한 주님의 수제자의 멋진 모습입니다.
복음 제시
8.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는 11절,“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베드로는 시118:22을 인용하며 말했어요. 우리가 전하는 복음의 근거는 항상 성경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신학에서 증거 본문이라고 부릅니다. 베드로만 아니라 바울 등 다른 사도들도 구약 성경 인용을 하면서 진리를 전했습니다. 예수님은 건축자들(산헤드린 공회원들)의 버린 돌과 같이 되었습니다. 그가 무기력하게 유대 종교인들에게 잡히고 십자가에 죽으실 때까지만 해도요.
하지만, 예수님은 죽음에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 성령을 교회에 보내주시며 교회의 머릿돌이 되셨습니다. 시118:23,“이는 여호와께서 행하신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한 바로다.”라고 익명의 시인이 노래했습니다. 평범한 노래가 아니라 놀라운 복음을 노래했습니다. 이 시인도 성령에 충만하여 부른 노래입니다. 이 시편의 말씀을 예수님도 인용하셨어요.(마21:42-포도원 농부 비유이에 이어서 곧 희생되실 것을 예언) 바울도 인용했습니다.(엡2:20-모퉁이 머릿돌이 되신 예수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성전이 되어가고, 성도들도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간다)
기대
9. 성령충만했던 베드로가 보여준 지혜와 담대함이 너무 멋집니다. 예수님은 오늘 본문의 베드로가 있도록 오랫동안 기다리셨어요. 인물은 하루아침에 태어나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훈련과 연단을 통해서 만들어집니다. 베드로-주님의 수제자-가 대표적으로 이 모습을 보여줍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지금 부족한 부분으로 인해서 너무 낙심하지 말기 바랍니다. 베드로처럼 우리도 성령충만하며 변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남은 생애 동안, 조금씩 변화되어 가며 주님의 제자답게 성숙하게 살아가도록 이 시간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