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연갤펌] 프랑스 후기 - '연아스러운' 세상 (3)

[포롱포롱]

5. 빌리에 거리의 친구

  녀석은 아직도 그 자리에 붙박여 있었다. 택시가 멀어져 내가 보이지도 않을 텐데, 추위에도 아랑곳없이 우두커니 서 있는 모습이 저 홀로 이겨내야하는 이곳 생활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 같았다. 우리나라까지 그 까마득한 거리만큼 아득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칭얼거리며 떼를 쓰던 어린 시절이 택시가 달리는 속도만큼이나 가파르게 그리웠다. 짧은 만남은 언제나 뭉클하니 긴 아쉬움을 남길 수밖에 없었다. 인터넷 문학카페에서 친구하자며 메일을 보내왔던 당돌한 여중생이 어느덧 대학을 졸업해 유학을 온 지 4년이 훌쩍 지났다. 샹송을 기막히게 잘 부르는 아이다.

고등학생 때 반말하지 말라면 대뜸 “지랄”하고 삐쭉이다 너도 나이 들어서 당해보라니까 “난 나이 어린 친구 안 사귈 건데?”하며 바짝바짝 약을 올리던 영락없는 청개구리였다.

나도 갓 서른을 넘긴 나이긴 했었다. 어린 친구들이 유독 많아서 “나만 특별한 친군 줄 알았더니, 애들 기 빨아먹고 사냐?”하며 골을 내던 녀석도 이제스물일곱을 치달았다. 2년 만에 본 얼굴에서 세월이 느껴졌다.

성질머리는 여전해서 “어쩌다 나타나서 먹을 것만 툭 던져주면 다냐? 그딴 거 사들고올 돈이면 비행기 삯을 하고도 남겠다”하며 잔소리만 잔뜩 늘어놓았다. 내가 더 늙었는데도 어린 친구가 나이를 들어가는 모습이 이상하게 아렸다. 멀리 떨어져서 자주 챙기지 못하는 아쉬움이 컸다.

  나이가 지긋한 택시기사가 “무슈, 음악 좀 들어도 될까요?”하고 나긋이 물었다.

  마침 샹송이 듣고 싶어서 나는 눈치껏 불어를 더듬거렸다. 택시는 이내 빌리에 거리를 빠져나왔다.

  이 이야기는 신의 권력이 강성했던 1482년 아름다운 도시 파리에서 일어난 사랑과 욕망의 이야기, 우리는 이름 없는 예술가로 조각을 하거나 시를 읊어 그대들에게 이 이야기를 전해 후세에 길이 남게 하리, 대성당의 시대가 왔네, 새로운 세상 새 천년을 맞이하며 인간은 별을 향해 오르고 싶어 했네, 그대들의 역사를 사랑으로 새기네 유리와 돌 위에, 그 쌓인 돌과 그 세월들이 흘러 한 세기를 흘러가고 인간은 그들의 손으로 세운 탑들이 높이 올라가는 것을 보게 되네, 시인도 음유시인도 온 인류의 아름다운 날들을 약속하는 사랑의 노래를 불렀네. 라디오에서 ‘대성당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나는 좌석 깊숙이 몸을 기댔다.

  지난 이틀간 연아양은 경기를 즐겼다. 프리경기에서 밀봉하지 않은 해바라기 다발에 제수씨가 얼굴을 붉히고 말았다. 그 꽃다발 때문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말이 많았다. 나는 그냥 흘려버렸다. 설사 디딤발이 꽃씨에 걸려 플립점프를 뛰지 못했다고 해도 남을 몰아세울 그녀가 결코 아니었다. 물론 쓰리 턴을 돈 뒤에 디딤발이 출렁 할 만큼 흔들림이 경기 영상에서 똑똑히 보이기는 했다.

오히려 나는 기뻤다. 침착하게 추스른 경기운영 능력이 돋보였고, 점프 하나에 매달리기보다 작품을 스스로 풀어가는 거장다워진 면모가 세계신기록보다 만족스러웠다. 점프가 한결 쉬워진 몸짓이었다. 올림픽을 앞둔 시즌 첫 경기부터 일찍 치고 나갔다는 조바심도 섣불렀다. 되도록 편하게 연기하려던 산뜻한 몸 풀기였다. 스텝과 스텝시퀀시는 더없이 좋았다.

에지도 보다 깊어졌다. 스파이럴 자세 역시 두드러졌다. 쇼트는 그 자세를 좀 더 웃음으로 흠뻑 적셨으면 하는 바람이 들기는 했다. 몇몇 흠이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시즌 첫 경기였다. 마치 다음 경기로 미리 기대를 돌리는 깜찍한 장난이라도 친 듯했다. 가쁜 호흡 속에서도 생각하는 경기를 치르기에여느 선수들을 멀찍이 앞지르는 무서운 스케이터였다.

  20세기가 낳았던 위대한 천재 아인슈타인 박사는 ‘인간의 지식이란 자기 경험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다’ 하는 가르침을 남겼다. 폭넓은 직간접경험을 쌓아야 함을 뜻했다. 피겨에서도 그런 면면이 있었다. 음악이란 반드시 스토리텔링을 담아내진 않았다. 제프리 버틀이 연기했던 라흐마니노프의 ‘종’을 보면 같은 음악도 안무가의 의도에 따라 어떻게 짜이는지 알 수 있었다.

그 작품처럼 거쉰의 피아노 협주곡은 선수가 소재였다. 뒤늦게 피겨를 접하면 ‘죽음의 무도’와 ‘세헤라자데’처럼 스토리텔링이 강하고 호소력이 좋은 음악이 기준으로 들어서기 쉬웠다. 대중에게 배경 이야기가 널리 알려진 음악들이었다. 내용을 뻔히 아는 관중에게 맞춰진 몸짓이 아니면 교감이 끊겨버렸다.

이번 ‘007 메들리’도 마찬가지였다. 일명 ‘사골곡’이 주로 쓰이는 이유도 피겨를 잘 모르는 사람에게도 쉽게 다가가는 교감 때문이었다. 피겨만이 아니라 모든 안무는 스토리텔링이 중심이 아니었다. 안무가와 선수의 의도, 즉 연출가적 관점이 중심이었다. 그 의도에 따라 음악이나 사람을 소재로 삼았다. 거쉰의 음악을 택했을 때 나도 입맛에 맞지는 않았지만, 춤곡으로 받아들였다. 음악 자체가 배경 이야기가 없고 만들기도 어려워 오직 선수에게 맞출 수밖에 없었다. 또 내 나름대로 짜깁기해서 들어볼수록 사랑스런 여인의 춤사위가 그려졌다.

  엔딩포즈가 ‘이게 저예요’하는 의미이지 싶었다. 그리 헤아리면 안성맞춤인 자세고, 전체 안무가 쉬이 느껴졌다. 미욱한 내 머리 위에 올라선 피겨임을 배웠다. 대중의 입맛이나 이야기에 맞추다 보면 표현은 그만큼 뻔해져서 그녀만의 새로운 명작이 나오지 못할 수도 있었다. 위대한 스케이터 김연아양을 상큼한 여인으로 그려낸 작품이었다. 기승전결이 약한 음악은 아무나 표현하지 못했다.

노래를 불러보면 누구나 쉽게 알 수 있었다. 음치라고해도 음의 고저장단이 뚜렷할수록 따라 부르기 편하지만, 서정적으로 깔려나오는 노래는 가창력이 뛰어나지 않으면 목소리부터 갈라졌다. 한마디로 물이 흐르는 연기였다. 연아양이 왜 차원이 다른지, 피겨의 이상(理想)인지를 또렷이 새겨줬다. 갈수록 몸에 배면 흡입력은 한층 강해질 터였다.

나에겐 ‘종달새의 비상’ 이후 데이비드 윌슨에게 거듭 놀란 안무였다. 전체적으로 스케이팅 스킬이 더욱 알차게 다져졌다. 깔끔한 의상도 음악과 잘 맞았다. 치맛단이 밋밋한 느낌은 있었지만, 올림픽에 맞춰진 매무새임을 아는 터라 내 만족이야 뒷전이 당연했다. 일본이 부러워하는 야무진 ‘드림팀’이 곁을 지켰다. 어려서부터 손수 만든 의상으로 가장 옷을 잘 입는 선수로 불리게 했던 손재주 좋은 어머니도 있고, 역시 피는 못 속여 화장 솜씨와 색감이 전문가 뺨치는 연아양 본인이 알아서 다잡을 터이니 나 따위가 나댈 까닭이 없었다.

  때로 사랑이란 한 발짝 물러서 지켜볼 줄도 알아야 했다. 올 겨울엔 마침 그랑프리 파이널도 있어서 일본으로 간다며 쌍둥이에게 손가락까지 걸고 약속했는데, 짬이 나면 파리에 다시 들러 녀석을 놀래줘야겠다는 생각이 휘감아왔다. 홀가분한 여행이 그리웠다. 오랜만에 내 손으로 따뜻한 밥이라도 한 끼 챙겨주고 싶었다.

6. 아름다운 팬들

  “이 노래 좋아하나요? 좋은 곡이죠, 멋져요. 위고의 작품을 감미롭게 하죠.”

  영어로 흥을 돋우는 눈썰미 좋은 기사에게 “좋아해요, 노트르담 드 파리를 세 번이나 볼걸요”하고 내가 방싯거리니 자기는 다섯 번을 보고도 또 볼 참이라며 열을 올렸다.

  “한국 사람이죠? 아까 아가씨랑 얘기하는 걸 들었어요, 알아듣진 못해요. 예쁜 아가씨가 많이 슬퍼 보이던데, 어디 멀리 떠나나 보죠? 사랑은 아름다운 거예요.”

  어째 그 말이 안 나오나 했다 하는 생각에 나는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이탈리아만큼은 아니지만, 프랑스 사람들도 입만 열면 사랑타령깨나 늘어놓았다.

  “한국 손님이 많아요?”

  “여름엔 꽤 있죠. 이번 주말에도 좀 있었을 거예요. 베르시에서 피겨경기가 있었거든요. 아, 그 한국 아가씨 정말 환상적이더군요. 봤나요? 우연히 텔레비전으로 봤는데, 대단했어요. 스케이팅이 아니라 춤을 추더라고요. 그게 뭐랄까… 그래요, 놀라운 예술가예요.”

  “네, 신이 내려준 선물이죠. 실례가 아니라면 내겐 한국의 잔 다르크 같은 존재예요.”

  “아, 괜찮아요. 식사하다가 소름이 다 돋던걸요. 내가 피겨 팬은 아니지만, 예술은 누구에게나 감동을 주죠. 한국도 예술을 많이 사랑하네요, 그런 아가씨가 있는 걸 보니?”

  잠시 말을 잃었던 나는 “그래서 오를레앙의 잔 다르크 같아요. 피겨를 통해 문화를 알려주는 고마운 친구거든요. 항상 자기보다 피겨를 사랑해 달라고 하죠, 피겨가 스포츠면서 종합예술이잖아요. 어린 후배들을 아끼는 마음이기도 하고요”하며 우물쭈물 읊었다.

  “브라보! 멋진 아가씨군요. 그녀를 보면 예술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어요.”

  그래요, 사랑하지 않을 수 없고 항상 미안하기만 한 어린 스승이죠 하는 말이 나는 목에 더럭 걸렸다. 꿈보다 해몽이 좋은 게 아닌지 선뜻 자신이 없었다. 젊은 지성이라고 불리는 대학교 도서관의 대출순위 10위가 1, 2위만 판타지소설과 무협지일 뿐 나머지는 취업관련 서적이나 실용경제도서들이 었다. 심지어 전공서적도 있었다. 책을 안 산 채 학생들이 복사에 부지런을 떨었다. 과제물조차 베끼기가 다반사였다. 책은 작년에 국민 1인당 0.39권을 너무나 고맙게 읽어줬고, 문예창작학과엔 순수문학을 지망하는 학생들이 씨가 말랐다.

의대만 해도 생명을 다루는 전문의 과정엔 지원자를 채우지 못해 발을 동동 굴렀다. 전남대 법의학과는 5년째 전공의를 받지 못했다. 국립도서관들은 툭하면 양서를 기증해달라는 공문을 보내 가뜩이나 빠듯한 출판사 살림을 나라가 거덜 냈다. 영화는 대기업이 돈지랄로 개봉관을 싹쓸이하는 작품이나 설치지 고른 소비가 이루어지지 않아 전체 영상시장은 적자에 허덕여 다시 돈놀이 투자만 부추겼다. 연극도 똑같았다. 기업이 밀어대는 대형 뮤지컬이나 개그맨들의 코미디가 아니면 손가락만 빨았다. 인생을 망치는 지름길이라는 신세타령이 쏟아지고, 영상미디어에 밀려 지망생조차 줄었다. 발레나 현대무용 등 여느 무대예술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전통 음악과 춤은 남자 전공자가 없어 울며 겨자 먹기로 여학생들이 자리를 메웠다. 국립국악원 무료공연마저 빈자리가 수두룩했다. 두 사람만 모이면 프랑스인은 철학을, 영국인은 문학을, 독일인은 교육을, 중국인은 장사를 이야기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는데, 우리나라는 정치판이나 욕하며 먹고사는 대화로 이어지지 십상이었다.

  나는 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내들었다. 한 나라의 문화예술과 그 재원을 가늠하는 잣대는 활자예술이었다. 정신문화의 틀거지였다. 외규장각문서를 돌려달라고 했을 때 프랑스는 연구목적이면 열람만 하라는 볼멘소리를 늘어놓았었다. 그때 뉴스를 보다가 나는 홧김에 아끼던 화병을 내던지고 말았었다. 거실바닥에 뒹구는 병 쪼가리를 치우다 손을 베인 듯 흠칫 주저앉았었다.

우리는 당장 규장각에 들어찬 유물조차 분류만 해놓은 채 세세히 연구도못하고 있었다. 본래의 규장각 도서 13만 책, 고도서 2만 5000여 책, 고문서 5만여 점, 목판 1만 7800여 장 등 총 22만여 점에 달했다. 그 중에서 ‘조선왕조실록’, ‘비변사등록’, ‘일성록(日省錄)’, ‘17사찬고금통요(十七史纂古今通要)’, ‘송조표전총류(宋朝表錢總類)’ 등 5종 3833 책이 국보로, ‘목우자수심결(牧牛子蓚心訣)’, ‘금강반야바라밀경’ 등 6종 22 책은 보물로 올려둔 말 그대로 인류문화의 보고(寶庫)였다. 지금도 새로운 자료가 찾아질 만큼 서울대 연구원들만으론 100년이 지나도 먼지나 쓸어내는 꼴이었다.

국가차원의 학술연구지원이 턱없이 떨어졌다. 외국학계엔 그런 허울을 잘 아는 학자들도 많았다. 사회학회나 역사학회 세미나에 참석해 일본학자들과 부딪히면 “너희나 잘해”하는 콧방귀를 뀌기 일쑤였다. 역사나 똑바로 가르치라는 뜻이었다. 우리가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배우는 역사교과서란 일제치하 일본학자들과 친일학자들이 짜깁기했던 자료가 96퍼센트 가량이었다.

스스로 역사왜곡을 저지르고 있었다. 일본에서는 매년 퇴계 이황 선생에 대한 논문이 50여 권씩 쏟아졌다. 우리나라는 다섯 권을 넘기면 많았다. 아직도 우리는 공자제례를 지내지만, 일본은 메이지 제일의 공신이며 교육칙어(敎育勅語)의 기초자인 모토다(元田東野)가, 중국은 개화기의 대표적인 사상가였던 량치차오(梁啓超)가 성인으로 섬기며 따른 동북아 근대화의 밑거름이 퇴계 선생의 가르침이었다. 세계 철학학회에서도 동양의 칸트로 섬겼다.

  남의 문화유산을 자기 것인 양 심술을 부리는 프랑스에게, 그 유물을 남겨준 조상들에게 과연 우리는 떳떳한 주인 노릇을 할 수 있는지 나는 죄스러웠다. 이미 동해의 지명은 일본해와 공동병기가 국제적인 흐름이었다. 간도불법협약에 대한 국민의 관심도 기대하기 어렵게 흘렀다. 강대국들의 역사왜곡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힘겨루기란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경제적 이권을 노린 분탕질이었다.

훗날 국민들에게 돌아올 먹고사는 문제였다. 언제까지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짓이나 해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남만 부러워하며 모자란 정부와 정치가들을 탓하기에 앞서 개개인이 저마다 굳은 의지로 생활 속에서 작은 관심과 실천을 행할 때 하나의 문화로 면면히 자라나 김연아 선수가 그렇듯 세계를 향해 옹골차게 내비칠 힘이 길러졌다. 문화선진국들이, 북유럽 복지국가들이 국민을 어렵게 모시는 까닭이었다. 어떤 사건이 터질 때만 거리에 나서는 행동은 생활문화로 자리 잡지 못했다.

윗대가리들이 약삭빨리 눈치나 보며 숨을 돌릴수록 속은 더 구려졌다. 생활문화란 굳이 돈을 들여 가르치지 않아도 자라며 본받는 국민의식이었다. 사회곳곳을 잇고 꿰는 힘이 무서웠다. 어느 일본선수가 그렇듯 우리나라는 건국 이후로 기초부실이고 ‘넘사벽’인 강대국 사이에서 트리플 악셀 같은 한 방만 노린 채 세계와 나눌 대한민국이라는 작품을 아름답게 살피지 못했다.

정말이지 이상할 만큼 천재가 많은 나라였다. 분야마다 뛰어난 개인은 있으나, 국가의 얼굴은 그렇게도 미워하고 싫어하는 일본을 쫓기에 바빴다. 자신을 먼저 돌아봐야 했다. 우리가 강대국이 아니니, 국민이 역사로부터 문화 예술에 이르는 관심을 아름아름 키워 장인(匠人)들을 연아양처럼 응원하고, 사회를 피겨 기술을 가려내듯 구석구석 지켜보며, 글을 쓰거나 동영상을 만드는 ‘대한민국의 팬’이었으면 하는 바람이 나는 가팔랐다.

  일제치하 만주벌판을 맨발로 누볐던 무장독립군 중엔 민족을 위해 젊음을 내던진 십대 청소년들이 숱했었다. 환경이란 때로 아이를 어른으로 기르는 아프지만 굳은 힘을 지녔다. 물론 엄히 시대가 달랐다. 이는 똑같은 환경도 어떻게 받아들이는 가에 따라 마음 그릇이 달라지고, 생활문화로 다듬어낼수 있음을 뜻했다.

연아양의 물이 오른 기술과 표현력도 그런 마음공부가 다잡아낸, 감정을 앞세우지 않고 자기싸움을 통해 거르고 걸러낸 승화(昇華)였다. 눈물겹지만 삶을 두들기는 아름답고 고마운 담금질이었다. 팬들이 가슴을 졸이다 눈물을 훔치며 분노에 치를 떨 때도 정작 그 어린 소녀는 좋고 싫음이 분명한, 성가신 일엔 아예 담을 쌓는 더덜이로 결코 감정싸움으로 내둘리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다시 자신을 다잡았다.

 자신을 스스로 가꾸는 주인의식이자 삶에 대한 책임감을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알아서 챙겼다. 정신문화로 본받기에 충분했다. 우리 사회도 환경을 뛰어넘을 수 있음을 일 깨워줬다. 팬들도 문화를 만들어갔다. 인터넷에서 작품을 바르게 알기 위해 음악과 피겨 지식을 들춰보는 사람들을 두루 볼 수 있었다. 피겨를 살뜰히 알려주는 오랜 골수팬도 의외로 많았다.

게시판마다 수문장으로 나서서 꼴불견을 일삼는 못난이들을 막아선 고마운 사람들도 헤아릴 수 없었다. 피겨를 배우는 어린이들도 크게 늘었다. 그들이 한국피겨 부흥이라는 버거운 짐을 연아양이 홀로 짊어지도록 떠넘기진 않을 터였다. 저마다 팔을 걷어붙이고 함께 나서줄 사람들이었다. 그 큰 사랑이 피겨로부터 징검다리를 밟듯 우리 사회를 더디게나마 바꿔 나갈 불씨를 지필 날이 올 것임에 틀림없었다.

  이제 나는 “우리 조금만 ‘연아스러워’질까요?”하는 말을 조심스레 건네고 싶었다.

  이번 대회를 통해 연아양이 피겨의 간판으로 우뚝 올라섰으니 못난이들이 배가 아파서 나대겠지만, 서로 여러 문제로 이를 가는 처지라 쉽게 물러서진 않을 터였다. 대신 일본에서도 점점 현실을 읽는 눈들이 늘고 있었다. 약이 올라서라도 장난질이 심해질 텐데, 감정적으로 얽혀들면 재미만 붙여서 더 징징거릴 뿐이었다.

일본만 봐도 민족주의는 대안(對案)일 뿐 해결책이 절대 아니었다. 독도와 동해 문제에 일본은 치밀하게 머리를 써왔고, 우리는 그때그때 감정만 들이대다 결국 당했다. 우리도 거들먹거리며 “너희나 잘해”하고 코웃음을 쳐줄 때가 왔다. 상대의 잘못을 꾸짖을 때 죄는 미워하되 일부러라도 사람은 아껴야 했다. 밉다 하더라도 사람까지 깎아내리면 어느 나라건 팔은 안으로 굽기 마련이니 이간질은 끊이지 않았다.

‘연아스럽게’ 잘잘못만 짚어내면 이기는 싸움이었다. 당했던 만큼 되돌려줘야 한다거나 팬들은 굳이 선수를 따르지 않아도 된다면 그 자체로 분풀이이고 대리 만족이었다. 화는 화를 불렀다. 미운 자식 떡 하나 더 주라는 우리 조상들의 가르침으로 상대에 따라 싸움의 기술도 달라져야 했다. 못난이들과 한 데 엉키면 동북아 역사와 문화를 잘 모르는 외국인들에겐 똑같아 보일 수밖에 없었다. 무슨 강대국의 눈치를 보자는 게 아니었다. 일본의 구린내를 바르게 알릴 기회를 만들자는 뜻이었다.

  ‘깔 건 까되 사람은 귀히 아껴주는, 그들에게 문화를 가르쳐준 반만년 스승의 나라다운, 김연아 선수에게 부끄럽지 않은 연아스러운 팬들’이 그녀를 든든히 지켜주기를 나는 바랐다.

어차피 현장에서 지켜본 경기력으론 자국 선수에게도 밀릴 판이었다. 모국어도 서툴 만큼 얼음만 지치도록 만든 어른들을 생각하면 나이보다 어수룩한 생각이나 그 정서의 메마름이 남의 일 같지 않았다. 환경이 망쳐놓은 선수였다. 잘못도 배우지 못한 채 욕심만 사나운, 생각조차 링크에 갇힌 아이 같은 면면이 한 인간으로 심히 걱정스러웠다. 우리 환경을 거듭 돌아보게 했다. 김연아 선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베풀어주기를 이 못난 놈이 팬들에게 머리를 조아려 부탁하고 싶었다.

그 환경이 바로 역사와 사회며 문화 등에 걸쳐 우리가 그들과 싸워야 할 일은 산더미였다. 가슴 아픈 역사는 지나간 과거라지만, 연아양이 만들어가는 피겨의 신기원은 현재진행형으로 팬들이 아름답게 꾸리는 천상의 행운을 누리고 있었다. 팬은 그녀의 또 다른 얼굴이었다.

세계인들의 행복한 스케이터이자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딸로 곱고 굳은 그 마음씀씀이가 더 받들어질 ‘연아스러운’ 전설을 아름다운 팬들이 함께 이루어주기를 나는 바라마지 않았다. 외국 선수들이 저마다 다시 찾고픈 아이스쇼를 만들어낸 우리였다. 피겨를 통해 대한민국의 얼굴도 ‘연아스럽게’ 새길 수 있었다.

  입이 심심했던지 택시기사가 “하하, 아가씨에게 편지라도 쓰나 보죠?”하며 또 엉뚱한 소리를 늘어놓았다.

  “예? 아… 편지죠, 어느 아름다운 사람들에게 보내는 편지요.”

  멀리 드골공항이 흐릿하게 다가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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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놔.... 두 번 다시 후기 안 쓸겨. ㅡ.ㅜ 써달라고 부탁하기 싫게 징글징글하니 길다.

ㅋㅋㅋ 그파 땐 그냥 놀겨. 부탁하는 횽은 미워할거야.(연아가).....

글쓴이 (세상을 읽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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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후기] '연아스러운' 세상 (3)

출처 - DC김연아 갤러리 - 세상을 읽는 사람

 http://gall.dcinside.com/list.php?id=yeona&no=317945&page=11&bbs=

감명깊게 잘 읽었습니다!! (1),(2)편 숨쉴틈도 없이 읽고 (3)편읽고...ㅋㅋㅋ

멋지십니다. 역시 연갤엔 고수들이 많군요.

책 한 권에 푹 빠져있던 느낌이에요~

이런 강같은 후기를 다음에도 또 보고 싶습니다ㅠㅠㅠㅠ

전세계 한민족 커뮤니티의 중심 '한열사'

[야물딱진]

한방 훅~ 하고 먹은기분으로 글을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아침의나라]

정말 멋진 후기네요. 잘읽었습니다.

[▦쥐덫포로리얌]

굉장한 필력이신 분이네요 퍼와주셔서 고맙습니다 ^^

[인간바세린]

필력 참 대단하시네요~~

[강가딘12]

학교다닐때부터 에세이 잘쓰는 사람이 젤 부러웠는데;; 잘읽었습니다.^^

[호삼씨]

우와.. 푹 빠져서 읽었네요. 완전 베스트셀러 읽는 기분이었어요. ^^ 그파때도 써주실 것 같은데...ㅋㅋㅋ

[카리스마김~*]

이분 책 한권 내셔도 될것 같네요 역사 공부 제대로 했습니다

[보조개소녀]

3편 연속으로 읽고,,눈물이 다 나네요..굉장한 분인듯,,,연아를 소재로 해서 역사문화소설 한편내시는게 어떠실지... 이런 글 접하게 해주셔서 넘 감사해요^^

[마르쿠스]

감사^^

[프레드릭^^]

우리 모두^^ '연아스러워'져요 !!

[쭹은]

와우~~ 연아스러워진다라니... 생각만해도 멋지네요... 저도 노력해봐야겠어요~~^^*

[자이제말해봐]

아 정말..작가같다..잘 읽었습니다~

[소설소나기]

단숨에 읽고 갑니다 ^^

[돌씨]

행운이내요 이런 글을 읽다니....후...머리가 혼란스럽내요...

[오호라아~]

종달새의 비상은 윌슨 작이 아닌걸로 알고 있었는데..모르겠네요 ㅋ

[ⓧ가슴이뻐렁쳐]

종달새의 비상 윌슨작품 맞아요 .. 첫작품이었죠 ^^

[몽뭉이]

혹시... 국사를 가르치시는 선생님이신가요?--;;;;;

[chohee2617]

이분 필력도 좋으시고 아시는것도 많네요.

[재워니~]

'연아스럽게' 살고 싶은게 저 만은 아니었군요. 처음 연아선수 팬이 되었던게 나 자신이 부끄러워서였는데... 콕 집어주시네요^^

[갓쉰동이]

이런글을 개념글이라고 하나요? 비슷한 또래의 비슷한 사고 공감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