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릭터는 얼굴이 아니라 ‘액션’에 있다 <칠검> 견자단 | ||
[필름 2.0 2005-10-07 22:30] | ||
<칠검>에는 다소 어색한 느낌의 한국말을 쓰는 조선인 무사가 나온다. 현재 무술영화를 준비하는 세계의 수많은 영화인들이 원화평만큼이나 가장 많이 찾는다는 견자단이 바로 그다. 견자단(甄子丹, Donnie Yen)은 <칠검>의 최고수다. 천산의 신비한 힘을 머금은 7개의 검 중 초소남(견자단)은 가장 파괴력 넘치는 검술을 구사한다. 장발 속에 감춰진 슬픈 눈, 굳게 다문 입술에 비밀스런 사연을 숨기고 살아가는 그는 무언의 고수 역할에 제격이다. 영화 속 칠검 중 맏형인 그는 장이모우의 <영웅>(2002)에서도 장발의 고수로 등장해 초반부 이연걸과 환상적인 일대일 대결을 펼치며 깊은 인상을 남겼다. <칠검>에서는 조선에서 팔려온 노예라는 설정 때문에 다소 어색한 한국말을 구사해야 했다. <칠검>은 영어와 중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세계적인 무술감독으로도 활동하고 있는 그가 ‘언어 장벽에 부딪힌 첫 번째 영화’였다. 여명과 양채니 등 기존 스타들의 몸놀림에 비하면 정통 무술인 견자단의 액션은 단연 돋보인다. 여타의 홍콩 액션 스타들의 명성에 가려 국내에는 크게 알려지지 못했지만 견자단은 현재 홍콩 내외에서 가장 각광받고 있는 무술 배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거 원화평이 그 실력에 반해 단번에 발탁했던 그는 국내에서는 <특경도룡>(1988)의 컬트적인 인기에 힘입어 처음 알려졌고, 한참 시간이 흘러 <신용문객잔>(1992)의 악역으로 새로운 모습을 선보였으며, <철마류>(1993)를 통해 구미 시장에서도 인지도를 드높였다. <전랑전설>(1997)로 감독 데뷔했으며 연출과 배우를 겸하던 중 최근에는 <샹하이 나이츠>(2003)에서 악역으로 성룡과 대결을 벌이며 국내 관객들에게 알려졌다. 2000년대 들어서는 <하이랜더: 엔드게임>(2000)을 시작으로 <블레이드2>(2002)의 무술감독을 맡는 등 국제적인 무술감독으로도 그 주가를 높이고 있다. 가장 가까이로는 현재 촬영 중인 이완 맥그리거, 미키 루크 주연의 <스톰브레이커>에서 무술지도를 맡았다. 이소룡의 무술 철학을 공유하고 있는 그는 쿵푸 외 합기도와 태권도 등 여타의 무술도 깊이 수련한 실제 무술인기도 하다. 한국에서 홍콩으로 건너와 활약했던 몇몇 선배 무술인들을 흠모하기도 했던 그는 <칠검>을 통해 처음으로 한국땅을 밟았다. 하이브리드 액션의 결정체 2002년 당시 동서양의 무술배우들을 통틀어 최고의 액션 연기를 보여 줬던 사람은 다름아닌 <블레이드2>의 웨슬리 스나입스였다. 절도 있고 군더더기 없는 동작은 영락없이 무술감독 견자단의 그것이었다. 예측불허의 신경 경련처럼 탁월한 스피드로 뱀파이어들을 막고 찌르고 산화시키는 블레이드의 액션은 <황비홍2>와 <철마류>에서 볼 수 있었던 견자단의 모습 그대로였다. <블레이드2>는 이듬해 나온 원규 무술감독 지도의 <엑스맨2>(2003)를 거쳐 타란티노의 <킬빌>(2003) 시리즈로 집대성되기까지 할리우드 액션영화가 과연 어디까지 홍콩 무술영화의 자양분을 흡수할 수 있는지 증거하는 바로미터가 됐다. 견자단은 현재 세계 무술배우들 중 가장 미래형에 근접해 있는 인물이다. 중국 정통 무술을 구사하는가 싶더니 그것은 킥복싱의 킥으로 바뀌고, 소림권법의 제스처로 시작한 액션이 태권도의 연속 발차기로 나아가는 등 그가 보여 준 액션은 이소룡의 그것처럼 하나의 계통으로 정리하기 힘들만큼 박진감 넘친다. 상대를 압도하는 발군의 스피드는 말할 것도 없다. 무술에 조예가 깊은 웨슬리 스나입스조차 그를 "가장 독창적인 무술배우"라고 말했다. 변종과 변칙이 자연스레 정통과 화합한 견자단의 특별한 액션 스타일은 과연 어디서 나온 것일까. 이연걸과 같은 1963년 생인 견자단은 성룡, 홍금보, 원표, 원화, 원규 등 이른바 ‘칠소복’이라 불리는 당대 주류 무술 영화인들의 다음 세대다. 특이한 점은 아버지로부터의 전수 혹은 경극학교에서의 수업이 아니라 어머니로부터 체계적인 무술 지도를 받았다는 점이다. 중국 광둥에서 태어난 그는 두 살 때 홍콩으로 건너와 아홉 살이 되면서 미국 보스턴에서 청년기를 보냈다. 덕분에 영어를 능통하게 구사하는 그는 일찌감치 여러 국가에서 무술감독을 수행할 수 있는 바탕이 됐다. 태극권과 팔괘장의 고수로 유명한 그의 어머니는 ‘블랙 벨트’와 ‘인사이드 쿵푸’라는 무술 잡지들에서 여러 차례 ‘올해를 빛낸 여자 무술가’로도 선정됐고, 중국우슈연구협회를 운영했을 정도였으니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여동생 역시 국제무술경연대회의 단골 선수였다. 견자단의 액션 스타일이 랩을 하듯 박력 있으면서도 섬세한 여성적 동작 연출을 보여 주는 것은 어머니의 영향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스스로는 음악이 끼친 영향도 얘기한다. 아버지로부터 클래식 피아노를 공부했던 그는 그 영향으로 바이올린을 비롯한 여러 현악기를 연주할 수 있었다. 그러한 음악적 리듬감이 자신의 액션 연출에 많은 영향을 준다고 말한다. <칠검>에서 견자단은 거대한 검을 들고 연기한다. 첫 장면부터 실제 무기술의 달인이자 영화 속 부총관으로 직접 출연한 유가량 무술감독의 서명이 남겨지기 시작한다. 상대의 머리통을 그대로 뽑아버리는 이른바 ‘혈적자’(Flying Guillotine)라 불리는 무기부터 각종 기괴한 형상의 무기들까지 유가량의 존재감은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한다. 하지만 무술감독의 그림자가 짙어질수록 그 속에서 활동하는 배우와 감독의 무게는 지워지기 십상이다. <소오강호>(1990)를 함께 만들던 서극 감독과 홍콩 무협영화의 전설 호금전 감독이 그렇게 헤어졌고, 유가량 감독 역시 성룡과 함께 <취권2>(1994)를 만들다 의견 차이로 도중 하차해 전혀 다른 영화를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견자단은 감독과 배우의 선을 명확하게 구분한다. “지금껏 <영웅> <연인>의 정소동 무술감독, 그리고 원화평 무술감독과 많은 작업을 했다. 대선배인 유가량과는 첫 번째 작업이다. 그럴 때 어려움은 없다. 내가 배우로 참여할 때는 절대 배우일 뿐임을 잊지 않는다. 아무리 스타급 배우가 있고 탁월한 무술감독이 있다 할지라도 최종 결정은 오직 감독이 하는 것이다. 그 선을 넘어서는 안 된다.” 어려웠을 것 같은 무기술에 대해서도 그는 “무기? 내가 그동안 무기를 잘 안 써왔는지는 모르겠지만 겨우 걸음마를 시작할 때부터 어머니로부터 정통 쿵푸와 태극권, 각종 병장 기술을 혹독하게 배워왔다. 무기는 오로지 신체의 연장일 뿐이다. <영웅>에서의 창도, <칠검>에서의 검도 단지 내 손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맨손 액션이건 무기술이건 기본은 같다”고 말한다. 이른바 많은 사람들이 ‘견자단식 무술’이라 일컫는 그의 스타일의 비밀이 바로 여기 있다. 원화평 감독과의 인연 청년기의 견자단은 오직 무술만 알던 사람이었다. 보스턴에 있던 차이나타운의 극장을 돌아다니며 개봉하는 홍콩 무협영화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섭렵했다. 이소룡, 성룡, 홍금보 등이 그의 우상이자 언젠가 넘어야 할 벽이었다. 수시로 주먹다짐을 벌이기도 하는 등 넘치는 혈기를 주체하지 못하는 순간들도 있었다. 걱정이 된 그의 부모님들은 견자단을 베이징으로 보내 무술 수업을 받도록 했다. 이연걸이 몸담기도 했던, 중국에서도 명성이 자자한 베이징 우슈팀이었다. 그렇게 짧은 수련을 마치고 보스턴으로 돌아온 그는 전혀 다른 사람이 돼 있었다. 정통 쿵푸 한길을 고집했다기보다 여러 다른 길과 방법을 모색하는 시간을 줬다. 극장에서 본 무술영화의 동작들을 그대로 따라해 내지 못하면 화가 났고, 킥 복싱과 태권도 등 무술이란 무술은 완전히 체득할 때까지 계속 땀을 흘렸다. “차이나타운의 한 극장에서 정말 무술영화 많이 봤다. 성룡, 홍금보의 영화들을 보면 정말 그 액션이 놀랍고 부러웠다. 그중에서도 좋아했던 사람을 꼽으라고 하면 정말 다들 아직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이라 난감하다.(웃음) <사제출마>에서 성룡과 대결을 벌였던 악당 역의 한국 출신 배우 황인식도 기억한다. 정말 그 발기술이 대단했다.” 하지만 이때까지 오직 무술인으로의 자존심만 있었을 뿐 미국에 있는 몸으로 특별히 영화를 꿈꿀 수 있는 위치는 아니었다. 견자단의 운명이 바뀐 것은 순전히 원화평 감독 덕이다. 지금의 견자단을 말할 때 원화평은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다. 지금이야 <매트릭스> <킬빌> 시리즈 혹은 <쿵푸 허슬>의 무술감독으로 더 이상 오를 곳 없는 정점에 서 있는 사람이지만 당시는 성룡과의 합작으로 이제 막 혜성처럼 감독 데뷔를 치른 시기였다. <사형도수>(1978)와 <취권>(1978)으로 성룡과 더불어 최고의 흥행과 인기를 누렸던 그는 이후 각자의 발전을 위해 헤어지게 된다. 성룡과 원화평 모두 각자 감독의 길에 들어서게 된 것이다. 원화평의 독립은 그리 순탄하지 못했다. 성룡 이후 뚜렷한 스타를 찾지 못했고 계속 원신의, 원일초 등 자신의 ‘원가반’ 멤버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거나 <기문둔갑>(1982) 등 전혀 다른 스타일의 무술영화를 꾀하기도 했다. 그때 <소태극>(1984)의 오디션을 보러 미국에서 홍콩으로 온 사람이 바로 견자단이었다. 마치 이소룡이 죽은 뒤 성룡을 발견했던 라유 감독처럼, 원화평은 성룡과의 이별 후 견자단을 발견한 것이다. 그때 견자단의 나이 19세였다. “별 생각이 없었는데 친구가 오디션을 보라고 해서 봤다. 테스트 촬영을 해보더니 그 자리에서 바로 계약하자고 했다. 정말 얼떨결에 영화를 하게 됐다. 잘생기고 무술도 잘해서 원화평이 좋아했나?(웃음)” <소태극>을 시작으로 <정봉적수>(1985) 등 원화평은 견자단을 계속 주연으로 기용하면서, 무술감독으로 성장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줬다. 특히 <타이거 케이지>라는 영어 제목으로 한때 국내 ‘B자’ 비디오 시장을 주름잡았던 <특경도룡>(1988)은 출연과 무술 지도를 겸했던 첫 영화다. “사실 그때까지 원화평은 감독 데뷔 이후 고전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지금까지 했던 사극 무술영화 말고 현대물을 해보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에게 무술감독을 맡아달라고 했다. <특경도룡>에서 나는 끝까지 살아남는 주인공은 아니지만(웃음) 모든 동작들을 설계했다. 원화평의 첫 번째 현대 액션영화다. 나 역시 좋아하는 영화고 당시 현대적인 액션을 구사하는 신선한 영화라고 좋은 평가를 받았다.” 한국에도 <특경도룡>의 팬들이 많다는 말에 반색을 했다. "오, 그런가? 홍금보, 임달화, 오경과 함께 출연했고 엽위신이 감독한 <살파랑 SPL>(2005)이라는 영화가 11월경 개봉한다. 한국에서 개봉할지는 모르겠지만 <특경도룡>의 팬이라면 분명 좋아할 영화다. 나 역시 액션이 마음에 들고 직접 무술 지도도 했다. 기대해도 좋다.” 이소룡의 부활을 꿈꾼다 견자단은 동갑내기 이연걸과 여러모로 비교해볼 만한 구석이 많다. 두 사람 모두 어느덧 마흔을 넘긴 나이지만 여전히 스턴트 없이 직접 무술 연기를 해낼 정도로 자신의 무술에 대한 애착이 크다. “저 멀리서 혼자 300m를 뛰어가는 연기는 대역을 시킬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자기만의 특징적인 동작이 있는 장면들은 절대 대역 스턴트를 용납할 수 없다. 캐릭터는 얼굴을 보여 줄 때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몸짓도 캐릭터”라는 게 그의 변함없는 지론이다. 무엇보다 이연걸이 베이징 본토에서 활동하다 그 실력을 인정받아 홍콩 영화계로 온 경우라면, 견자단 역시 청년기를 미국에서 보내고 원화평에 의해 발탁돼 영화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두 사람 모두 이방인으로 시작했지만 정통 무술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존경하는 무술 배우도 단연 이소룡이다. 두 배우 모두 <정무문>의 리메이크작에서 주인공 ‘진진’을 연기하며 개인적인 오마주를 바친 바 있다. 절대 뒷걸음질치지 않고 앞만 바라보며 전진하는 파이터라는 점에서도 닮았다. 이연걸과 견자단은 성룡과 달리 대결에 임할 때 절대 시선을 분산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이연걸과 견자단이 일대일 대결을 펼친 <황비홍2>(1992)의 라스트와 10년 뒤 다시 만난 <영웅>(2002)의 오프닝 결투는 두고두고 회자되는 명대결이다. 태엽 감긴 기계처럼 전혀 물러서지 않고 전진만을 반복하는 두 사람의 대결은 당대 무술영화계의 마지막 아날로그 고수들의 대결이다. 특히, <황비홍2>에서 물에 젖은 천을 돌려 감아 채찍으로 사용하는 기술은 직접 고안하기도 했다. 견자단 역시 이소룡에 대한 애정이 크다. 첫 번째 감독 데뷔작인 <전랑전설>은 내용상으로는 전혀 관계가 없지만 독특한 괴성과 액션 스타일에서 여러모로 이소룡을 연상시켰다. 해외 시장에서는 이소룡의 <당산대형>(1971)의 영어 제목인 <The Big Boss>를 본떠 <The New Big Boss>라는 제목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결국에는 스스로 세 번째 영화 연출작인 <신당산대형>(1998)을 만들어 주인공을 겸했고, TV 무협 시리즈 <정무문>에서는 드디어 진진 역할로 출연해 뛰어난 실력을 선보였다. “이소룡을 정말 좋아하고 존경한다. 무술배우를 꿈꾸는 많은 선후배들 사이에서는 그는 정말 꿈만 같은 이름이다. <신당산대형>은 정말 그에 대한 존경을 다 바쳐 만든 영화다. 미국에 있다 홍콩으로 진출했다는 성장 과정도 비슷해 더 애착이 가고, 무엇보다 그의 무술에 대한 이론과 철학에 깊이 공감한다. 인간이 두 개의 팔과 다리로 할 수 있는 싸움과 대결 방식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런 점에서 가능한 한 모든 무술들을 익히는 것이 좋을 것이다. 나 역시 이소룡처럼 중국 무술뿐만 아니라 각종 합기도, 태권도, 킥복싱 등을 쉴 새 없이 익혔다.” 이소룡을 좋아하기 때문일까? 견자단은 <영웅> <칠검>같은 사극보다는 현대물이 더 몸에 맞는다고 말한다. “사실 사극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새로운 시도가 있으면 반갑고 내 열성과 재능을 녹일 수 있다면 상관없지만 현대물의 보다 쿨한 느낌이 더 좋다.” 액션 연출에 관한 한 현대물에서 보다 더 자신의 역량이 발휘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SF 액션영화 <트윈 이펙트2>(2004)에도 출연했고, 할리우드나 홍콩뿐만 아니라 일본영화 <프린세스 블라이드>(2001)에서 무술감독을 맡기도 했다. 그 자신의 말을 빌리자면 아프리카 쪽에서도 제의가 들어오는 등 정말 지역을 가리지 않고 불려다니고 있다. “과거처럼 홍콩 무술영화계도 성가반, 홍가반, 원가반 같은 팀 개념이 거의 유명무실해지고 있다. 서로서로 도와주고 협조해주면서 그 경계가 사라져가고 있다. 그럴수록 개인의 실력과 역량이 중요하다. 대역을 써야 하는 순간이 올 때까지 나의 액션은 계속될 것이다.” 성룡이 “액션이 아닌 다른 연기에 도전하고 싶다”고 말하고 이연걸이 “<곽원갑>을 끝으로 액션 연기를 그만두겠다”고 선언한 현재, 견자단은 홍콩영화계에서 무술감독과 액션 연기를 겸하는 거의 유일한 이름이 돼가고 있다. <칠검>의 조선인 무사를 시작으로 이제 곧 개봉할 <살파랑 SPL>과 진가상 감독의 정통 무술영화 <쿵푸 마스터>, 그리고 영국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스톰브레이커>는 그의 진가를 다시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필모그래피 <소태극>(1984) <정봉적수>(1985) <특경도룡>(1988) <노화위룡>(1991) <황비홍2>(1992) <신용문객잔>(1992) <철마류>(1993) <신유성호접검>(1993) <영춘>(1994) <마희소자>(1994) <가두살수>(1996) <신당산대형>(1998) <블레이드2>(2002) <영웅>(2002) <샹하이 나이츠>(2003) <연정고급>(2004) <칠검>(2005) 사진 김태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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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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