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베니스의 선원입니다. 밀덕당에 전략 폭격의 역사를 더 연재하고 싶지만 얼마전에 새로 산 재미난 책을 본 관계로
나폴레옹 토탈워를 이용한 나폴레옹 일대기를 한번 연재해보려 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_~
---------------------------------------------------------------------------------------------------------------
프랑스 혁명이 터진 이후로 유럽의 강국 프랑스는 숙적 오스트리아를 격파하며 이탈리아 방면에서의 우위를 확실히 했습니다.
결국 오스트리아를 주축으로 한 제 2차 대 프랑스 동맹은 와해되었고, 오스트리아는 1801년 2월 9일 뤼네빌 조약으로 프랑스에
굴복합니다. 홀로 남은 영국은 프랑스와 맞서 싸워보지만, 해군 만 잔뜩인 영국군 혼자 유럽대륙을 주름잡는 프랑스를 당해 낼
수는 없죠. 결국 1802년 3월 25일 프랑스와 아미앵 조약을 맺게됩니다. 이로써 프랑스는 프랑스 혁명직후 잠시나마 평화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1년이 지난 후 프랑스와 영국의 갈등은 다시 점화 되었고, 결국 1803년 5월 16일 영국은 아미앵 조약을
파기하고 프랑스에 선전포고를 하게 됩니다. 한편 강력한 지도자를 원하던 프랑스 국민과 나폴레옹 본인의 야망이 합쳐져서
나폴레옹은 교황 피우스 7세를 파리로 불러와서 대관식을 거행합니다. 스스로 프랑스 제국의 황제가 된것이죠.
-다비드의 유명한 그림 나폴레옹뒤에 떨떠름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게 피우스 7세입니다-
한편 나폴레옹이 황제가 되자 열받은건 오스트리아 였습니다. 비록 허울뿐인 이름이었지만 가톨릭 유럽 세계의 황제는 유서 깊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단 한명이었는데, 프랑스의 웬 떨거지가 스스로 황제를 자청하니 거의 1000년정도의 유서 깊은 역사를
자랑하는 진짜 황제의 자존심에 금이간 것이었죠.
-나폴레옹의 라이벌 신성로마제국황제, 오스트리아의 프란츠 2세-
-위 복장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의 예복이라고 합니다.-
하여간 나폴레옹은 먼저 영국을 치겠다고, 도버해협근처에 위치한 브르타뉴 지방에 프랑스 육군 18만명을 집결 시킵니다.
-프랑스의 모서리 브르타뉴 지방-
결국 다급해진 영국은 다시금 오스트리아와 러시아를 끌어들여서 제 3차 대 프랑스 동맹을 결성합니다. 그리고 프랑스 군이 전부
브르타뉴에 몰려있는 틈을타서 오스트리아의 라이베리히장군이 이끈느 7만의 오스트리아 군이 독일 남부 바이에른을 침공합니다.
프랑스군이 오려면 아직 한참 멀었다는 것을 생각한 오스트리아군은 여유를 부렸지만 상대는 기동전의 대가 나폴레옹이라는 것을
간과했던 것입니다.
첫댓글 다음편도언넝.... 기대중이에여...
쌀꺼 같아요.
다음화부턴 황제의 기동전이 시작되는군요 오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