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가 주인공입니다
늘푸른언덕
1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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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부활 소망>을 주제로 한 제 블로그에서 잠시 언급한 바 있는 주말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를 요즘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시청하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섬 제주를 배경으로 삶의 애환을 갖고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이 드라마는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입니다. 우리네 굴곡진 인생 이야기를 그대로 극화하여 보는 이들로 하여금 많은 공감대를 이끌어내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인생과 많이 닮아 있습니다.
이 드라마는 종래의 일반 드라마와는 사뭇 다른 소위 옴니버스식 형식으로 극의 전개를 이어가면서도 전체적으로는 한 무대 안에서 전개되는 아주 특별한 연출기법을 사용하는 점이 눈에 띕니다. 즉 드라마 속에 등장하는 14명의 주인공들의 각기 다른 삶의 스토리를 옴니버스식으로 소개하면서도 극의 전개는 하나의 큰 스토리 안에서 이루어지는 독특한 연출기법입니다.
우리에게 이름이 잘 알려진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하여 시청자들에게 어떤 시련에도 결코 포기하지 말라고 주문합니다. 우리의 인생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여전히 살아 있으니 그러므로 행복하라는 특별한 응원의 메시지를 드라마를 통하여 분명하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 드라마에는 우리들이 주변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을 법한 14명의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이들 14명 모두가 이 드라마 속의 주인공들입니다.
정보 웹사이트 [나무위키]에 소개된 주인공 등장인물들의 삶의 사연들을 들여다 보면......
하나뿐인 아들과 살가운 말 한마디 섞지 못하는 일흔 중반의 옥동이란 이름을 가진 할망 (할머니의 제주 방언)을 비롯하여
옥동의 아들로 가진 것이라곤 달랑 만물상 트럭 하나와 모난 성깔뿐인 마흔 초반의 솔로 남 동석,
남편은 물론 자식 셋을 먼저 보내고 오래 산 게 분명한 죄라는 걸 증명하는 듯한 일흔 초반의 춘희 여사,
그리고 하루 이십 시간 생선 대가리를 치고 내장을 걷어내 억척같이 살면서 번 돈으로 평생 형제들 뒷바라지 하고도 기껏 생색낸다는 말을 듣는 인생 오십 줄에 들어선 싱글 억척녀 은희,
고향 제주를 등지고 사랑 찾아 떠나 결혼하여 서울 생활 가운데 이혼을 당하고 맨몸으로 다시 고향 제주로 돌아온 돌싱녀,
그래봤자 월급쟁이 인생에 골프 선수 꿈꾸는 능력 좋은 딸이 있지만 그 뒷바라지에 허리가 휘고 다리가 꺾인 어느 기러기 아빠의 고단한 삶,
한편 해녀로 물질하며 깡좋아 먹고사는 것은 두려울 것이 없지만 무슨 사연인지 누구와도 벽을 치며 살아가는 삶의 비밀을 지닌 듯한 젊은 여인네와 그런 여인네를 흠모하는 순정남 선장,
지긋지긋한 제주와 삼촌들 (아저씨와 아줌마들의 제주말로 다 삼촌이라 호칭함), 아방(아버지)에게서 벗어나 서울로 대학 가려다 기막힌 사연으로 덜컥 발목을 잡혀버린 고교 청춘 남녀 영주와 현,
그리고 억장이 무너지는 마음을 움켜잡고 그들의 삶을 운명처럼 지켜내야 하는 홀아방(홀아비)들...
출처 : 나무위키
어찌 보면 인생 성공 방정식 기준의 반열에서 보면 크게 낙오되었거나 결코 빛나지도 않는 보잘 것없는 인생들이지만 그들이 노래하는 그 애잔하고 기구한 삶의 이야기들이 아이러니하게도 드라마 속에서 하나같이 보석처럼 빛나며 깊은 공감과 감동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보는 이들로 하여금 위로가 되고 힐링이 됩니다.
드라마가 전해주는 이야기들도 감동적이지만 제가 이 드라마를 통하여 발견한 중요한 삶의 진리에 관한 메타포(Metaphor) 하나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다 주인공이다’라는 귀한 명제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지난 2018년 4월에 출간한 제 자서전적 참회록 <백점 아들과 육식동물 아빠>에서 언급한 적이 있는 ‘나는 단 한 번 뿐인 소중한 삶의 주인공이다’라는 삶의 명제에 대한 기억을 다시 소환시켜 주었습니다. 책 속에서 저는 이 단순한 삶의 진리와 같은 명제를 스스로 찾기까지 무려 50년이란 시간이 걸렸다고 고백했습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 살아가는 동안 만나게 되는 수많은 공동체 안에서 항상 그 공동체의 중심에 서있는 사람이 주인공이라는 착각 속에서 대부분의 세월을 보낸 것 같습니다. 학교라는 공동체에서는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 당연히 주인공인 듯 보였습니다. 또한 성적도 우수하고 리더십이 좋은 학급 반장이 당연히 그 학급이란 공동체의 주인공이었습니다. 학교 졸업 후 입사하게 된 회사라는 또 다른 공동체에서는 늘 리더들이 중심에 있었고 그들이 당연히 그 공동체의 주인공이라 착각했습니다. 나는 단지 그들을 돕는 조연의 역할이면 족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겸손이고 미덕이라 생각했습니다.
시간이 지나 어쩌다 팀장이 되고 임원이 되면서 처음으로 나 자신도 작은 공동체의 주인공이 되었다는 자존감이 생겼던 적이 있었지만 곧 그 자리에서 물러나면서 화려한 주인공에서 다시 빛도 없는 조연이고 엑스트라로 전락하는 듯한 느낌을 뼈저리게 경험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묵상하게 된 주님의 말씀을 통하여 나는 주님의 영광을 위해 세워진 귀한 존재라는 사실을 통하여 잃었던 자존감을 회복하게 됩니다.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아사야 43장 1절
말씀 묵상을 통해 자존감을 회복하면서 뒤늦게 깨달은 ‘나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단 한 번뿐인 내 인생의 주인공이다’ 라는 사실에 감사하게 됩니다.
화려하고 웅장한 음악을 만들어내는 오케스트라는 어쩌면 우리들의 삶의 모습을 많이 닮아 있습니다.
오케스트라 지휘자는 멋진 음악을 만들어 내기 위해 다양한 악기들을 사용합니다. 그런데 오케스트라에서 가장 화려한 연주를 뿜어내며 단연코 돋보이는 바이올린 같은 현악기만이 무대 위의 주인공이라고 누가 감히 이야기 할 수 있겠습니까?
존재감이 다소 떨어져 보일지라도 여전히 오케스트라를 구성하는 타악기나 연주 가운데 드물게 등장하는 콘드라 베이스가 그 무대의 주인공이 아니라고 결코 이야기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오케스트라가 만들어 내는 환상의 하모니는 지휘자의 지휘에 따라 모든 악기들이 제 몫을 다하며 조화롭게 어우러질 때 가능한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그렇게 지으셨습니다.
그리고 오케스트라의 연주처럼 주님은 우리들의 삶 가운데에서 우리를 그렇게 연주하고 계십니다.
내가 가진 악기가 화려하고 빛나는 악기이든, 혹은 존재감이 떨어지는 악기이든 그것이 결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분이 만들어내는 장엄한 음악에 내 자신이 가진 악기가 어떤 모습으로 사용되고 있는지 어떤 정성으로 사용되고 있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우리의 삶은 소중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소중한 삶의 주인공입니다.
우리들이 주님의 귀한 악기로 쓰임 받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나 여호와여, 이제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니이다
아사야 64장 8절
첫댓글 치열하고 팍팍한 삶가운데
자칫 놓칠 수 있는 귀한 삶의 진리!
우리는 단 한 번 뿐인 우리 삶의
소중한 주인공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지음 받았습니다.
소중한 당신의 삶을 응원합니다.^^
(늘푸른언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