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차가 몽골에서 뛰고 왔단다

[ironman]

경상대학교 전차수 교수…몽골 국제우정마라톤대회 참가기
꾸밈없는 ‘순수 자연’에 푹 빠지다



달리면서 바라보는 초원과 산, 깨끗한 하늘과 구름… 몽골의 자연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나는 그 순수 자연 속에 점점 빠져들어 갔다. 시간이 지나 다리가 무거워지고 몸이 지치면서,
몽골은 머리가 아니라 근육에 새겨지고, 가슴속에 스며들었다.

몽골은 나에게 뭔지 모를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땅이다. 몽골 마라톤 이야기를 우연히 들었을 때 강한 호기심이 일었다. 광활한 몽골의 초원을 지칠 때까지 실컷 달린다면 그동안 가보았던 호놀룰루, 뉴욕, 로테르담 등의 도심을 달리는 것과 분명히 다른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몽골 국제우정마라톤대회는 대구에 자리 잡은 한몽문화교류진흥원(원장 박상훈)이 만들었다. 나는 작년 11월 박상훈 원장을 우리 대학에 초청하여 몽골의 문화와 역사뿐 아니라 마라톤대회 개최 동기 등에 관한 세미나를 들었다. 박 원장이 몽골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몇 년 전 우연한 기회에 몽골을 찾았다가 몽골의 고비사막을 여행하며 조난 사고를 당하면서부터다. 이때 죽음의 문턱에서 극적으로 구조된 후 몽골에 심취하게 되었다고 한다.

박 원장은 조난에서 구조된 후 우연히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의 수하바토르 광장에서 2백∼3백명의 몽골인들이 농성하는 장면을 목격했는데, 알아보니 그들은 한국의 인력 송출업체에 사기를 당한 사람들이었다. 그는 몽골을 도와줄 방법을 찾다가, 마침 국내에서 번지기 시작한 마라톤 붐을 몽골 관광상품과 연계하여 기존의 관광과 차별화되는 건전하고 좋은 이미지를 줄 수 있는 인적 교류로 만들어 보자는 생각을 했다.

우리나라에서 102명 참가

몽골의 땅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넓은 초원과 나무 하나 없이 매끈한 언덕들이 파란 하늘, 새하얀 구름과 어울려 가슴이 탁 트이는 시원한 느낌을 주었다. 벌거벗은 여인과 같이 매끈하고 부드러운 몽골의 대지를 바라보며 ‘화장’하지 않은 자연 본래의 모습, ‘순수 자연’이 느껴졌다. 이 속에 사는 사람들은 자연을 닮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마라톤대회가 열리는 테를지 국립공원은 초원과 기암괴석들이 절묘한 조화를 이룬 아름다운 곳이다. 그 초원의 한복판에서 한국에서 온 마라톤 참가자를 환영하는 미니 나담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나담’은 독립기념일인 7월 11일부터 3일간 열리는 몽골 최대의 축제인데 그 기간 중 벌어지는 행사의 일부를 우리에게 보여준 것이다. 전통 음악 공연과 춤, 씨름, 활쏘기, 아이들의 말타기 경주 등이 열렸다. 화창한 날씨에 초원에 편안히 모여 앉아 몽골인들의 풍류와 삶의 여유를 맛보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대회 슬로건은 ‘백야를 달리자’

우리는 몽골 유목민들의 전통 가옥인 겔(ger)에서 이틀 밤을 묵었다. 외국인 관광객을 겨냥해서 만들어진 캠프는 쾌적했다. 아마 날씨가 워낙 건조해서 ‘뽀송뽀송’한 탓도 있을 것이다. 특히 캠프에서의 음식은 아주 좋았다. 쇠고기·양고기 요리가 푸짐하게 나왔는데 특이한 향신료를 전혀 쓰지 않아 우리 입맛에 잘 맞았다. 고기는 방목으로 풀만 먹고 자라서 그런지 약간 질긴 듯하면서도 기름이 적어 담백하고 풍미가 있었다.

이 땅에서 목축은 참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메마른 땅에는 인간이 먹을 수 있는 농작물이 잘 자라지 않는다. 그래서 이 땅에서 자라는 풀을 소화력이 강한 동물을 통해 인간이 먹을 수 있는 양식, 고기로 변환하는 것이다. 우리가 멀쩡한(?) 땅에 따로 키운 목초나 곡물을 먹여 소를 빨리 살 찌우거나, 지방 분포를 조절하여 입에 부드러운 꽃등심을 만드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몽골 도착 셋째 날인 6월 25일 토요일 오후 4시에 마라톤대회가 열렸다. ‘백야를 달리자’가 이번 대회의 슬로건이다. 대회가 마무리되는 저녁 10시까지 훤하기 때문이다. 이번 대회가 3회째로 한몽문화교류진흥원, CBS, 몽골 교통관광부가 주최하고 몽골육상연맹이 주관을 했다. 이제 이 행사는 몽골에서 열리는 최대의 국제행사가 되었다. 전체 참가자는 한국에서 간 참가자 1백여명을 포함하여, 한국 교민과 몽골 주재 외국인, 몽골 국민 등 1천5백명 정도였다.

풀코스에 한국에서는 12명이 참가했고, 몽골 측에서는 의외로 20명 좀 넘는다. 아직은 마라톤이 대중화되어 있지 않을 터인데 어떤 사람들인지 궁금하다. 일부는 선수 출신이다. 한 여자 참가자는 올림픽에 출전했었다고 한다. 그들 기준으로는 큰 상금이 걸려 있어 아주 열심히 뛸 거라고 주최 측 인사가 귀띔해 준다.

난 아침부터 워낙 설쳐대서 출발 전부터 지친 느낌이 들어 카메라를 어떻게 할까 갈등했었으나 우선은 들고 뛰기로 했다. 12km 이후에 출발점을 다시 지나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힘들면 그때 맡기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코스는 T자처럼 3번의 반환점이 있고 모두 테를지 국립공원 안이다. 주로의 노면은 대부분 아스팔트 포장이고, 일부만 비포장 흙길이었다.

자연에 취해 마라톤 완주는 포기

오후 4시 풀코스 출발. 난 맨 후미에서 사진을 찍으며 뛰어갔다. 주변에서는 소· 말·양 떼들이 평화롭게 풀을 뜯고 있다. 간혹 차를 세워놓고 밖에 나와 응원을 하는 사람들에게 “싸인바이노(안녕하세요!)” 하고 외치면 반갑게 맞아준다. 다리 밑의 아이들에게 소리치며 카메라를 들이대니 모두들 재미난 포즈를 취하고는 물속에 뛰어든다. 어릴 적 우리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달리기는 무척 힘들었다. 더운 날씨, 1500m의 고지대, 건조한 공기. 목이 좀 마르는가 했더니 입술이 바싹바싹 타들어 갔다. 더구나 아침부터 너무 진을 뺀 것 같았다. 아침에 15km 뛰어다니며 동네 구경을 하고 방금 전엔 시간이 남는다고 언덕에도 올라갔다 왔다. ‘계속 카메라를 들고 뛸 수 있을까? 사진을 좀더 찍다가 힘들면 그만 뛰는 게 낫지 않을까?’ 여러가지로 망설였지만 결국은 20번째 풀코스를 이 땅에서 완주하고 싶은 욕심이 더 컸다.

‘사진을 찍는 대신 머릿속에 바로 입력하자.’ 카메라를 맡기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뛰면서 보는 초원과 산, 깨끗한 하늘과 구름. 몽골의 자연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나는 그 순수 자연 속에 점점 빠져들어 갔다. 몸이 힘들수록 마음은 더욱 황홀해졌다. 시간이 지나 다리가 무거워지고 몸이 지치면서, 몽골은 머리가 아니라 근육에 새겨지고, 가슴속에 스며들었다. 난 그 땅을 밟으며 뛰는 것만으로도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

천혜의 자연 환경을 가졌지만 주로의 준비는 엉성했다. 급수와 교통 통제, 거리 표시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다. 이번 대회는 몽골육상연맹이 주관을 하기로 했다는데 (높은 양반들이 오는) 행사장의 치장에는 공을 들였지만 주로는 미처 신경을 못 쓴 것 같다. 특히 차가 한 대씩 지나갈 때마다 낡은 중고차가 내뿜는 매연은 지독했다. 눈에는 청정 자연인데, 코로 들어오는 것은 지독한 매연. 참 아이러니컬했지만 그래도 이 때문에 몽골 땅에 대한 애정과 한국과 몽골의 자원봉사자들의 수고에 대한 고마움이 줄지는 않았다.

결국 난 끝까지 다 뛰지 못했다. 순찰을 도는 행사 요원에게 아무리 늦더라도 갈 테니 결승점에 한 명만 기다려 달라고 이야기는 해두었으나 이미 마지막 반환점이 철수해 되돌아가고 있었고, 나 혼자 ‘개기고’ 있으면 주최 측에 짐이 될 것이 뻔했다. 20번째 마라톤을 마치지 못해 몹시 서운했지만 한편으론 다시 와야 하는 이유를 만든 것 같아 위안이 되기도 했다.

마라톤은 민간 교류의 ‘굿 아이디어’

마라톤 다음 날 오전은 본격적인 말 타기에 시간이 할애되었다. 몽골의 말은 우리가 어릴 때 보던 그런 작은 말들이다. 서양 말에 비해 크기가 작아 누구나 부담 없이 탈 수 있다. 그래도 이 말들의 조상은 칭기즈칸이 유라시아 대륙을 호령하게 했던 세계에서 가장 강인한 말이다. 말 잔등에 올라 고삐를 잡고 걷다가 “추 추!” 하며 발로 배를 툭툭 쳐주면 속도가 점점 빨라진다.

말에게 몸을 맡기고 탁 트인 초원을 질주할 때의 그 쾌감은 다른 무엇과도 비교되질 않는다. 역시 내 몸 속에는 기마 민족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

저녁, 울란바토르 문화궁전에서는 한몽 합동 문화공연이 있었다. 몽골의 전통 가요, 마두금(馬頭琴, 말머리가 장식된 두 줄짜리 현악기) 연주, 후미(목 노래, 저음과 고음의 목관악기 소리를 동시에 내는 몽골의 독특한 창법) 등이 공연되었고, 한국 측에서는 대중가수 배국화씨와 가야금, 쌍검무, 소프라노, 남성 중창단 등이 출연하였다. 이 자리에서는 다르한 어린이집(고아원) 아이들의 서커스와 춤과 노래 공연도 있었는데 이 어린이들을 위해 즉석 모금의 시간도 가져 한몽 친선의 분위기가 더욱 고조되었다.

이 공연장에는 전날 마라톤대회 때 같이 사진을 찍었던 몽골 친구들이 그때 찍은 사진을 인화해서 들고 왔다. 한 친구는 부인을 대동하고 와서 내년에 꼭 다시 오라며 자기 집으로 초대를 하겠다고 한다. 국제우정마라톤대회라는 명칭 그대로 진한 ‘우정’이 느껴졌다.

마지막 날 저녁, 일행의 일부는 대통령궁에서의 만찬에 초대를 받았다. 그 자리에는 관광교통부 차관을 비롯해 올림픽조직위원회 부총재 등 몽골 정부 관료들이 함께 했다. 관광교통부 차관은 내년에는 몽골 독립 85주년을 맞는 해로 이 마라톤대회를 더욱 성대히 치르겠다는 인사말을 하였다. 한몽 양국 간에 민간 교류를 하는데 마라톤은 정말 ‘굿 아이디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통과 희열을 느끼며 달린 그 순수의 땅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으며, 초원을 달리겠다며 여기까지 찾아온 우리의 순수한 마음에 어찌 이끌리지 않겠는가?

밤 11시 부얀트우하 공항, 서쪽 하늘엔 아직도 태양의 기운이 희미하게 남아 있다. 참가자들, 한몽문화교류진흥원의 자원봉사자들, 몽골의 가이드들이 작별의 인사를 나누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몽골 가이드 아가씨의 눈에 눈물이 가득하다. 깊어진 어둠 속에서 비행기는 이 순수의 땅을 서서히 벗어나고 있다. 몽골, 난 다시 가야 한다.

[전차]

포커스마라톤으로부터 원고 부탁을 받고는 (공돌이가) 못 쓰는 글을 지어내느라 왼종일 고생해따. 생각보다 원고료는 많이주더라. 우리학교 회원들이 대관령삼양목장 대회에서 단체우승을 했는데, 오늘 점심을 사고도 많이 남았다. 연락들 해라.

[카오스]

야, 차비가 더들어서.

[숨비소리]

고생했군아...고통과 희열은 느껴본사람많이 그진수를 알겠지 빠른회복을바라며...

[노루]

원고료?? ㅎㅎㅎ금일봉 받았구나// 몽골가서 말톤 하고 오더니, 고지의 경기는 식은 죽 먹기네~`

[전차]

원고료 아직 남아있다. 진주로 놀러 온나!

[신작로]

뭐 사줄건데

[제임스(james)]

좋은 추억을 새기고 왔구나.언제 함 가 보고 잡다

[레옹]

몽골... 좋았겠다. 마라톤 대회를 개최하는 배경에 그런 사연이 있는줄 첨 알았다. 나도 언제부터인가 몽골 땅 달리기를 꿈꾼다. 담에 몽골 다시 갈 때 나도 함께 하자!

[무무]

ㅎㅎㅎ 야 전차야 쪼매만 띠어서 욜로 보내 준나,,^^

[마이너]

전차 글을 보니 몽골에도 가고 싶은 생각이 드는데 문제는 돈이지. 쩝. 내년엔 마눌님을 함 꼬셔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