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청의사랑방이야기(176)술상 위의 주머니
인물·성격 두루 좋은 서진사에 천지신명이 걱정거리 하나를…
서 진사는 신언서판에 모자람이 없다. 허우대가 틀이 잡혔고 서글서글한 성격에 때로는 다정다감했다. 부모에게 효도하고 부인을 끔찍이 아꼈다. 서 진사네는 천석은 못되지만 칠팔백석은 거뜬했다. 천지신명이 이런 서 진사를 시샘했는지 걱정거리 하나를 안겼다. 자식이 없는 것이다. 손이 귀한 집안이라 혼례식을 올리고 두세달도 안돼 시어머니는 며느리 입덧을 챙겼다. 기울어진 양반 집안에서 시집온 소담댁은 덕이 흐르는 복스런 얼굴에 언행도 진중해 모두 천생 부잣집 맏며느리감이라 입을 모았지만, 일년이 지나자 모두들 새색시가 석녀(石女)라고 수군대기 시작했다. 시어머니가 삼신할미한테 빌고 또 빌었으나 백약이 무효, 소담댁의 입덧은 코빼기도 보이지를 않았다.
이년이 지나자 시어머니는 씨받이를 구하러 다니고 소담댁은 서 진사에게 첩실을 하나 얻으라고 졸랐다. 그때마다 서 진사는 쓸데없는 얘기 말라며 소담댁을 쓰러트렸다. 매일 백숙에다 곰국을 먹으며 기운을 축적해 사흘에 한번씩 소담댁 치마끈을 풀었다. 어느 날은 문우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고 집에 들어와 소담댁 허리를 껴안았다. 소담댁이 촛불을 끄려 하자 그녀를 당겨 팔에 안고 “부인, 아이를 갖지 못한 연유를 알았소.”
소담댁이 큰 눈을 뜨고, “서방님, 그게 무엇입니까?”
“음양이 서로 흥분하여 합환을 해야 삼신할미가 점지한다는데 부인은 목석처럼….”
서 진사가 입을 맞추며 소담댁 입속으로 혀를 집어넣었다. 전에는 하지 않던 짓이다. 저고리를 벗기고 치마·속치마에 고쟁이까지 벗기자 소담댁은 몸을 오므리며, “서방님, 불을 끄세요.”
서 진사는 불을 끄지 않았다. 혀로 소담댁의 귓불·목덜미·겨드랑이·젖꼭지·배꼽, 그 아래로 맹활약을 하자 소담댁의 감창이 처음으로 터져나왔다. 석달 넉달, 감창은 끊임없이 터져나왔지만 입덧은 없었다.
삼년째, 시어머니가 씨받이를 구해와 별당에 넣었다. 서 진사는 별당에 가지 않았다. 소담댁이 읍소를 해도 움쩍하지 않았다. 어느 날 밤 서 진사가 집에 오니 소담댁이 보이지 않고 안방 경대 위에 편지 한통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서 진사는 읽고 또 읽고 울고 또 울었다.
강산이 변한다는 십년 세월이 흘렀다. 지리산에 목줄을 매고 사는 구례 사람들이 산자락에 한마을을 이뤘다. 남원·순천·하동 사람들이 오가는 길목이라 조그만 주막 하나가 동구 밖에 자리를 잡았다. 저녁나절, 단봇짐을 메고 땟국물이 흐르는 두루마기를 걸친 초라한 몰골의 선비 한사람이 주막에 들어섰다. 부엌에서 주모가 행주치마에 젖은 손을 닦으며 “어서 오십….” 선비와 주모는 얼어붙었다.
“당신을 찾아 팔도강산을 유람한 지 칠년째요. 천지신명이 내 발길을 이리로 보냈구려.”
서 진사도 흐느끼고 소담댁도 어깨를 들썩였다. 바깥에서 놀던 아이 셋이 조심스럽게 다가와 “엄마 왜 울어?” 소담댁의 치마를 잡았다. 석녀라던 소담댁이 아이가 셋인데도 서 진사는 놀라지 않았다. 십년 전 소담댁이 떠나고 부모님의 간절한 뜻을 외면할 수 없어 씨받이와 살아도, 재취를 들여놓아도 아이가 생기지 않는 걸 보고 서 진사는 원인이 자신이라는 걸 깨달았다. 자신의 병을 고치겠다는 구실로 집을 나와 방랑길에 들어선 것이다.
“당신이 너무너무 보고 싶었소.”
“나으리, 왜 이리 초췌해지셨소? 내 가슴이 찢어집니다.”
바로 그때 바짓가랑이를 노끈으로 동여맨 수염이 덥수룩한 남정네가 들어왔다. 아이들이 “아부지~” 하며 매달렸다.
“여보, 이분이 서 진사요.”
어색한 조우였지만 두남자는 술잔을 몇번 부딪치고 나서 십년지기인 양 말문을 텄다. 세사람은 울고 웃으며 꼬박 밤을 새웠다. 이튿날 아침, 잠깐 눈을 붙인 소담댁이 해장국을 끓여 객방으로 갔더니 남편은 술상 옆에 꼬꾸라져 자고 서진사는 없다. 술상 위에 놓인 주머니를 열어보니 금화가 좌르르 쏟아졌다.
[출처] 농민신문 사외칼럼 - 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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