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여름향기 -deathcard님의 다시 쓰는 여름향기 엔딩(6회)
포토출처 - 드라마 여름향기
사진은 여름향기최고님이 캡춰하신 것을 사용합니다.
deathcard님의 다시 쓰는 여름향기 엔딩(6회)
도시는 연말의 분위기로 가득 채워지고 있었다. 교회의 첨탑도, 쇼윈도 우도 크리스마스 추리가 조명을 대신하고 케롤송이 거리의 분위기를 고조 시키고 있지만. 쏟아져 나온듯한 많은 사람들은 살을 에는 듯한 추위에 입김을 불어내며 오갈 뿐이다. "야, 춥다 추워..... 차라리 이런날에 눈이나 올일이지...화이트크리스마슨 틀린 것 같네. 이거원....작년도 그렇고 올해도...내 30몇해를 살아왔지만 정말 이런 추위는 첨이다." 대풍은 두손으로 귀를 감싸며 추위를 못참겠다는듯 허공에다 소리를 지른다. "야 민우야, 안 춥냐? 어..짜식이 저만큼 가네. 야! 민우야 같이 가자! 상열씨, 빨 리가" 대풍은 나란히 걷고 있는 상열을 재촉한다. "민우야, 추운데 어디 들어가서 차나 한잔 마시고 가자." "형, 늦을 것 같은데..." 민우는 손목시계를 들여다 본다. "야, 내 얼굴 좀 봐라. 술기운이 좀 있잖니, 이래 갖고 좀 그렇잖니..." 대풍은 얼굴을 민우 코 앞에다 들이댄다. "그러게 누가 그렇게 마시래요? 주는 대로 족족 받아 마시니 그렇죠." 상열은 대풍을 보며 입을 삐죽 거린다. "어이구 상전 납시었네. 그렇다고 그렇게 핀잔 주듯이 쌀쌀맞게 꾸짓습 니까 상열씨. 그러시는 댁은 안 마셨수?" 대풍은 입김을 내 뿜으며 게스츠럼한 눈을 하고 상열에게 얼굴을 들이 댄다. "왜 이래요? 술냄새 나요." 상열은 대풍이 얼굴을 들이미자 미간을 찌뿌리며 고개를 돌린다. "선배님, 저기 커피가게가 있네요. 팀장님, 차나 한잔 마시고 가죠?." "어이구...이제 몸이 좀 풀리네." 대풍은 커피를 마시며 몸을 부르르 떤다. "선배님, 그 턱에 붙은 잡초나 좀 제거 하시죠. 탐관오리 받드는 아전 도 아니고...." 상열은 대풍의 턱에 붙은 수염을 한번 쳐다보고는 차를 마신다. 대풍 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엉덩이를 들썩인다.. "아니 이 사람, 방금 뭐랬어? 이 수염으러 깍으라구. 그리고 뭐 잡초? 어이구 상열씨 이제 두어달 같이 일했다구 정들었어? 그래서 만만한가 보지? 이 사람아 이 수염은 나의 트레이드 마크야. 자 자세히 봐 이게 그냥 지 멋대로 자란 것 같지만 매일 아침마다 엄청난 공을 들인다구 자 봐. 이게 여늬 수염과 같은건지." 그러면서 대풍을 식탁에 두손을 짚고 턱을 상열이 앞으로 내민다. "아, 그냥 자란 수염일 뿐이지 다른 수염과 뭐가 달라요." "아 이친구야 자세히 보라구. 자." 대풍이 더욱더 턱을 내밀자 상열은 할수 없다는 듯이 수염을 오른손으 로 당기며 자세히 들여다 본다. "아야." "야...그러고 보니 하...트 모양이네요." "아이구 턱이야..... 그냥 보지 잡아 당기긴..." 대풍은 두손으로 턱을 감싸쥔다. "흠..흠 이사람 이제 제대로 봤어. 이건 그냥 수염이 아니라 예술 작품 이라니까." 대풍은 목소리를 깔며 근엄한 목소리로 대꾸한다. "참, 민우야." 대풍은 팔장을 끼고 말없이 앉아있는 민우를 돌아본다. "오늘 박정재 이사 표정이 밝지 않던데....물론 우리와의 관계가 좀 끌 끄러워서 그런것도 있겠지만....오늘은 유난히 어두워 보이던데... 술도 많이 마시는 것 같고...우리가 알던 평소의 단정한 박정재가 아니던 데..." "글세... 민우는 폭탄주를 마시던 정재를 떠올렸다." "우리가 공사를 제대로 못했나....?" 대풍은 모르겠다는 듯한 표정을지으며 상반신을 소파에 깊숙히 누인 다. "민우야...혹시..너와 혜원씨의 관계에 대한 불편한 감정때문이 아닐까?" 대풍은 상반신을 소파에서 떼면서 민우를 곁눈질 한다. "........" 민우는 찻잔을 입에대고 있다가 내려놓는다. "아마...요즘 경기불황때문 일거야. 장기간의 경기침체로 신한쇼핑사정 이 어려운가봐." "맞아요. 요즘 신한쇼핑매출이 엄청 줄었대요." 상열도 민우의 말에 맞장구를 친다. "그래......그렇다고 대한민국에서 이십위안에 드는 기업인데 설마 무슨 일이야 있겠어. 요즘 불황으로 고생안하는 기업이 어딨어... 다 마찬가 지지..그 큰 기업이 그렇게 엄살을 부리면 중소기업은 다 문닫았겠다." 대풍은 아무렇지도 않는 듯 말한다. "아뇨 대풍선배, 심각한 것 같던데요." 상열의 표정이 진지해진다. "형, 그만 일어나자." 민우가 일어나려하자 대풍의 휴대폰이 울린다. "철이 엄마야?" "대풍씨, 오늘만은 좀 일찍 들어와요. 오늘 크리스마스 이브예요. 오늘 같은날 처자식 내버려두고 바깥으로 나돌기예요 정말." 장미는 화가 잔뜩난 목소리다. "오늘 공사완공 축하파티 때문에 늦는다고 얘기했잖아...그리고 오늘 일 찍 들어갈려구 우리 디자인팀만 빠져나왔잖아. 걱정마 내일은 하루종 일 지겹도록 붙어 있을께." "철이 아빠, 혜원이는 오늘 축하파티에 참석안했죠?" 대풍은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다시 앉는다. "혜원씨?" 대풍은 민우를 쳐다본다. "혜원씨는 연말이라 가게일이 바빠서 못나왔어. 가게에 전화해봐." "가게에 전화해 봤는데 신미경이란 얘있죠, 그 얘가 혜원이 병원 갔데 요. 얼마전에 대풍씨가 얘기한 하..예림씨란 분이 입원해 있는 병원에 갔대요. 웬만하면 대풍씨가 민우씨와 혜원이 내일 우리집으로 오라고 해요. 아니면 오늘 밤에 오든가요. 크리스마스이브를 같이 보내게요. 민우씨도 갈데 없잖아요. 알겠죠?" "응...그래 알았어." 대풍은 전화를 끊고 휴대폰을 호주머니 넣는다. "형, 형수야?" "그래, 내일 너와 혜원씨 우리집에 왔으면 좋겠데." "혜원씨는 내일 정재씨 집에 가야 한다는데...." 민우도 소파에 다시 앉으며 대풍에게 말한다. "참...그렇겠구나...그럼 민우야 병원 갔다가 오늘 밤에 가자. 철이 엄마 가 내일 못오면 오늘 밤에라도 오래 혜원씨하고." "그..럴까." "그래, 가서 우리끼리 오붓하게 케익이나 한조각씩 먹으면서 크리스마 스 이브를 보내자구나." "그러지 형." "참, 상열씨도 오늘 우리집에 같이 갈까?" 대풍은 상열을 돌아보며 같이 가자고 말한다. "오붓하게요?...그러시면서 이방인인 제가끼면 오붓하게란 말이 무색하잖아요." 상열을 빙긋히 웃으며 대풍의 말꼬리를 문다. "참, 이친구도 그렇게 확대해석 할건 뭔가....가기 싫으면 가기 싫다 하 지..." 대풍은 못마땅하다는 듯이 상열을 흘겨본다. "아닙니다 선배님..실은 10시에 다른.. 약속이 있습니다. 걱정마시고 즐 거운 시간들 보내세요." 대풍은 손사레를 친다. "참, 민우야. 혜원씨 지금 병원에 있나봐." "무슨 소리야 형? 혜원씨가 병원이라니?" 민우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미간을 찌뿌리며 묻는다. "아..아니..예림씨가 입원해 있는 병원 말이야." "그...그래...오늘은 우리가 간다고 가지 말라고 했는데....." "혜원씨가 병원 있데요?" 상열은 대풍을 쳐다보며 묻는다. "그런가봐." "하루도 안빠지고 병원에 가다니...혜원씨가 정말 이번에 고생 많이 했 어요. 공사하랴 병원에 가서 예림씨 간호 하랴...다 저 때문이죠..제가 도면만 잃어버리지 않았어도..." 상열은 근심스런 표정으로 민우를 쳐다본다. "근데, 상열씨 그 백에는 뭐가 들어 있길래 아침부터 신주단지 모시듯 갖고 있는거지? 공사끝났는데 서류는 아닐테고...." 대풍은 상열이 옆구리에 놓인 007가방을 가리키며 궁금한 듯 묻는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 어디에선가 귀에 익은 음악소리가 바람을 타고 병실에 스며들고 있었 다.. 예림은 침대에서 일어나 창문쪽으로 다가갔다. 그녀는 커튼을 젖 히며 살며시 창문을 열었다. 음악소리는 선명하게 그녀의 귀속으로 파 고 들었다. 그녀의 귀속으로 스며드는 피아노 선율은 틀림없이 성악곡 아베마리아가 분명했다. 그녀는 아베마리아의 피아노 선율에 취해 가 만히 눈을 감았다. 예전 친구와 오페라 하우스에 공연을 보러갔다가 저 노래를 들은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땐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했 다. 사람들은 왜 이런 지루한 노래를 듣고 하품나는 공연들을 보는지 이해를 못했다. 하지만 오늘 다시 듣는 아베마리아의 선율은 감미롭기 그지 없었다. 그땐 정말 듣는둥 마는둥 했었는데 저 음악이 이렇게 아 름다울줄이야... 빠른 댄스곡위주의 팝과 대중가요에만 익숙했던 그녀 로서는 성악곡의 엄숙함이 이채롭게 느껴지면서도 아련한 감동을 자아 내는 것 같았다. 그녀는 아베마리아의 가늘고 여린 선율때문인지 오늘 따라 질식할 것 같은 지독한 외로움이 엄습해 오는 것 같은 서늘함을 느낀다. 사고난지 보름이 되었다. 이젠 많이 좋아졌지만 그녀는 여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그녀에게 신체에 부산물이 하나 덧붙었다. 그녀는 지 금 목발을 하고 있다. "예림씨.." 그녀는 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혜원이 꽃을 들고 들어서고 있었다. 혜원은 진한 청바지에 두툼한 스웨터를 입고 있었다. 그녀의 목은 체 크무늬 목도리가 칭칭감고 있었다. 그녀의 양볼은 발갛게 물들어 있었 다. "어때요 예림씨, 걸을만 해요?" 혜원은 꽃을 침대위에 놓고는 털장갑을 벗으며 예림에게 미소를 짓는 다. 예림은 눈읏음만 가볍게 짓고는 침대에 걸터 앉는다. "덕분에요. 천사같은 혜원씨가 이렇게 매일 오시다시피 해서 간호를 한 탓인지 하늘이 탄복했나봐요." 예림은 다소 냉소적으로 대꾸를 한다. 혜원은 예의 예림의 특유의 빈 정거리듯 하는 말투에 이젠 익숙해서인지 입가에 가벼운 미소만 띄우 고는 창가로 가서는 창문을 닫는다. "예림씨, 추운데 창문은 왜 열어놓았어요?" "그냥...환기 좀 시킬려구요." 예림은 살살맞게 대답한다. "음악이 참 아름답죠?" 혜원은 침대머리위 탁자에 놓인 꽃병의 시들은 꽃을 빼내며 예림에게 말을 건넨다. "누가 음악소리를 들었다고 그래요." 예림은 자신의 속내를 들킨것에 대해 자존심이 상한다는 듯이 신경질 적으로 내 뱉는다. 혜원은 갖고온 꽃을 꽃병에 꽂으며 예림을 돌아본 다. 혜원은 예림의 뾰류퉁한 표정에서 어린애의 투정을 보는듯해서 웃 음이 배어나온다. 예림은 혜원을 한번 흘겨보고는 한쪽다리를 침대에 뻗는다. "근데 혜원씨가 저한테 왜 이렇게 친절하게 대하는지 이해를 못하겠네 요? 하루 이틀도 아니고 근 보름씩이나...왜죠? 민우씨를 위해서 인가 요? 제가 민우씨 심부름을 하다가, 그래서 제가 다친것에 대해서 민우 씨가 죄책스러워 하는것에 대한 사과의 의미 인가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희생같은거 뭐 그런건가요?" 예림은 열녀 났다는 듯이 입을 삐죽거린다. 혜원은 아무말 없이 돌아서 주전자를 들고 포트에 물을 붓는다.. "왜 아무 대꾸도 못하는 거죠? 제 얘기가 틀렸나요?" "예림씨 사고난거....그거 예림씨가 자초한거 아닌가요." 혜원은 콘센트에 포트 플러그를 꽂고는 고개를 돌려 무표정하게 대꾸 한다. "그...게 무슨 얘기..예요?" "그건 예림씨가 더 잘 아실거 아네요." "......." 예림씨...예림씨는 저하고 같이 일하시다가 다친 동료일뿐이예요. 전 다 친 동료를 간호하는 거구요. 더군다나 예림씨는 정아 친구 아닌가요? 정아는 예림씨 친구지만 저 또한 정아친구예요. 이런 관계면 충분히 저의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나요?" "착한거예요, 아니면 착한척 하는거예요?" 예림은 실눈을 뜨고 팔장을 끼며 콧방귀를 뀐다. "그...게 무슨 뜻..이예요?" 혜원은 점점 강도를 더해가는 예림의 시비를 거는듯한 말투에 짜증이 밀려온다. "뭐 하나 물어봐도 될까요?" "........" "제가 알고 있기로는 혜원씨가 박정재씨와 예전에 연인사이 였던걸로 알고 있는데..." 혜원은 탁자 서랍을 열어 커피통을 연다. "무...슨 얘기가 하고 싶은 거...예요?" 혜원은 침착해 지려하지만 서랍속을 더듬는 그녀의 손이 가늘게 떨린 다. "혜...원씨가 정재씨를 배신...했나요? 혜원씨가 재벌인 정재씨를 마다한 거 보면 재물에 욕심이 없는 착한 사람같고 정재씨에게서 등을 돌리고 도 정재씨 주위를 떠나지 않는걸 보면 착한척 하는 것 같아요. 정재씨 를 더 이상 맘 아프게 할수 없다는 핑계로.. 그래서 정재씨를 완전히 떠날 수 없다는 거죠? 그..런데..기실은 그게 아니죠? 경제적인 기반이 없어서...그래서 혜원씨로서는 든든한 배경이 필요한거 아닌가요? 지금 혜원씨에게 정재씨가 그 이상의 의미가 있을까요? 혜원씨가 진정으로 정재씨를 맘 아프게 하지 않는 방법은 정재씨와 오빠 동생관계를 단절 하고 정재씨에게서 완전히 떠나는 거예요. 언제까지 정재씨를 보면서 정재씨 고통에 희열을 느낄거예요." 혜원은 예림의 말에 심장을 찌르는 듯한 통증을 느끼며 가슴을 움켜쥔 다. 그녀의 이마에서 땀방울이 맺힌다. 그 동안 정재가 몇번 병원에 왔 지만 의례적인 인사만 주고 받았을뿐 혜원과 정재는 오빠, 동생사이가 나눌수 있는 대화는 한마디도 나누지 않았다. "예...림씨 커피..가 하나도 없네요..커피좀 사 올께요..."
혜원은 왼손으로 가슴을 움켜쥐고 포트의 플러그를 다시 빼고 병실을 나와 문앞에 쓰러지듯 쪼그리고 앉는다. 그녀는 머리를 무릎에 파묻고 한동안 그자세로 숨을 고른다. 이마를 받치고 있는 오른손 바닥에 땀 이 흥건히 젖어든다. "혜원씨!" 혜원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눈을 가늘게뜨고 병원 복도 입구로 천천 히 고개를 돌렸다. 민우가 달려오고 있었다. 뒤에는 대풍과 상열이 따 라오고 있었다. "혜원씨, 왜.. 그래요. 어디... 아파요?" 민우는 무릎을 꿇으며 혜원의 팔을 잡고 일으켰다. "혜원씨, 무슨 일입니까? 안색이 왜 그렇게 창백해요?" 대풍은 혜원의 땀에 젖은 얼굴을 보며 걱정스럽게 묻는다. 상열은 혜 원의 얼굴을 안타깝게 쳐다본다. "아뇨..괜찮아요...점심때 체한게 아직... 안내려 갔나...봐요." "혜원씨, 정말 괜...찮아요?" "민우씨 걱정..말아요. 괜..찮아요." "오늘 나오지 말라고 했잖아요." "알고 보니... 예림씨 무척... 외로운 사람이예요." 민우는 혜원의 건강이 매우 좋지 않다는 것을 직감한다. 단순히 체한 것 같지가 않음을 한순간 스쳐가는 그녀의 눈빛에서 읽을수 있었다. 찰나이지만 민우는 그녀의 얼굴이 몸을 찟기는 듯한 고통으로 일그러 지고 있음을 보았다. "이왕 이렇게 된거 잘됐네...혜원씨, 오늘 장미씨가 민우와 같이 오래요. 이따 같이 가도록 해요. 피곤할텐데... 괜찮겠어요?" 대풍은 민우와 혜원을 번갈아 보며 혜원의 의사를 묻는다. "어머...그래요. 안그래도 철이가 보고 싶었는데 그럼 그렇게 해요." 혜원은 반색을 한다. "저, 잠시... 가게에 좀 갔다 올께요." 혜원은 가슴을 움켜잡았던 손을 슬며시 내린다. "저 혜원씨 뭐 사러가는데요? 제가 갔다 올께요." "아니 상열씨... 그럴 필요 없...어요. 추운데 병실에 들어가세요." 혜원은 세사람을 뒤로하고 총총걸음으로 복도를 나간다. "혜원씨, 저도 같이 갈께요!" 상열은 혜원의 뒤를 쫒아간다. "상열씨, 올 때 혜원씨 업고와!" 대풍은 뛰어가는 상열의 뒤통수를 보며 소리친다. "민우야 들어가자." 대풍은 혜원이 사라진 복도를 멍하니 응시하고 있는 민우의 팔을 잡아 끈다. "예림씨, 혜원씨 왜 저래요? 무슨일 있었어요?" 대풍은 병실에 들어서자 마자 예림에게 묻는다. "일은 무슨일이 있었겠어요." 예림은 침대에 앉은채 짜증스런 표정을 짓는다. "아니..아무래도 무슨 일이 있었던 것 같애..." 대풍은 예림을 흘겨본다. "대풍씨, 왜 그런 눈으로 보시는 거예요." "형, 왜그래?" 민우는 대풍을 나무라듯 한다. "평소 예림씨를 생각하면 분명 혜원씨에게 살살맞게 군게 분명해. 혜원 씨에게 괜히 시비 걸었죠? 혜원씨와 같이 일할 때도 그러더니, 안봐도 눈에 선합니다." "아무일 없었다는데 대체 왜 그래요. 대풍씨야 말로 저한테 무슨 억한 감정 있어요? 제가 에스켈리터에서 어깨를 다치고 부터는 계속 안좋게 보시던 것 같던데....." 예림은 지지 않겠다는 표정이 역력하다. "하하하....그만 둡시다. 오늘 같이 좋은날 싸울일 있습니까." 대풍은 민우를 쳐다보며 크게 웃는다. "예림씨, 오늘 예림씨만 빼놓고 파티에 참석해서 미안하군요. 더군다나 자주 와 보지도 못하고..." 민우는 예림에게 미안한 표정을 짓는다. "아녜요 민우씨....다친 제가 잘못이죠. 전 공사 시작한지 얼마되지도 않 는데 벌써 공사가 끝났다니...이런걸 개점휴업이라 하죠?" 예림은 긴 한숨을 내쉰다. "예림씨 이건 우리디자인 팀이 준비한 선물입니다." 민우는 입고있는 윗도리 주머니에서 조그만 상자를 끄낸다. "뭐예요 민우씨?"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나눠 가지라고 커플 목걸이를 준비했어요." 민우는 상자를 예림의 손에 쥐어준다. "목....걸이요?" 예림은 별로 반갑지 않은 표정으로 민우를 올려다 본다. "왜 별로예요 예림씨? 그거 우리가 비싸게 주고 산 겁니다. 성의를 봐 서라도 표정이 그게 뭡니까." 대풍은 반갑잖은 시선으로 민우를 쳐다보고 있는 예림에게 퉁명스럽게 말한다. "그래요. 하나는 제가 걸고 하나는 정재씨 주면 되겠네요. 그렇게 없는 애인을 만들어 주시니 고맙군요. 됐나요?" "아..니 예림씨..그게 아니고.." "아니...그게...무슨 얘기..입니까? 예림씨와 정재씨가 아는... 사이..입니 까?" 대풍은 민우와 예림을 번갈아 본다. 민우는 예림의 다소 엉뚱하다 싶 을 정도의 상상력에 할말을 잊고 쓴 웃음을 짓는다. 예림은 상자를 옷 걸이에 걸려있는 자신의 옷 호주머니에 넣는다. 민우는 그동안 우연히 정재와 병실에서 두 번이나 마주친적이 있었다. 정재는 담담한 표정이 었지만 예림은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첫날은 정재가 민우가 들어 오자 마자 바로 갔지만 예림은 어색한 침묵으로 일관했다. 하지만 두 번째 마주쳤을 때 예림은 민우에게 자신이 정아친구이며 정재오빠소개 로 왔다고 얘기할 수밖에 없었다. 민우씨도 알고 있는 사실이고 언제 까지 이런 어색한 분위기를 감당해야 할지 암울하다고 했다. 그녀는 이번공사에 끼어든 것을 후회하는 것 같았다. 민우는 그녀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수 있었다. 다쳐서 일도 제대로 못하고 자칫했으면 민우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그녀의 가슴에 깊은 상처를 남길뻔 했기 때 문이다. 다행히 예림은 민우와 혜원의 사이에 자신이 낄 틈이 없다는 것을 알고 민우에 대한 연모의 감정을 추스르는 것 같았다. 예림은 사고를 당한 뒤 두 번째 병원에 들른 정아에게 정재, 민우, 그 리고 혜원에 대한 모든 것을 들었다. 물론 그것은 3년전에 세사람 사 이에 일어났던 사랑과 질투, 그리고 갈등에 관한 것이었다.
"혜원씨, 혹시 노트북 있어요?" "아뇨, 없는..데요." 상열은 구내 매점을 나오며 혜원에게 가방을 내민다. "그럼, 이거 받으세요." "뭐..예요. 상열씨?" 혜원은 상열이 가방을 내밀자 선뜻 받지 못하고 묻는다. "제가 금방 혜원씨한테 물었던 겁니다." "노트..북...이라구요? 저..한테 왜..이런 큰 선물..을..?" "그동안 저 때문에 고생을 하셨잖아요. 그래서 사과하는 의미에서 드리 는 겁니다. 절대 부담갖지 마세요. 이건 우리형이 대리점을 하기 때문 에 싸게 샀어요. 그러니까 절대 부담갖지 마세요." 상열은 절대라는 말에 엑센트를 준다. 혜원은 상열을 쳐다보며 난감한 표정을 짓는다. "저..이거 받을수 없어요. 제가 단지 도면을 잃어버렸다고 해서 일을 한 건 아니예요......" 혜원은 말을 잇지 못하고 상열을 단호한 표정으로 쳐다본다. "알아요 혜원씨, 유민우팀장님과 신한쇼핑 박정재이사님 때문에 일을 도와줬다는거 알아요. 어쨋든 원인제공은 제가 했잖아요. 그러니 어서 받으세요. 그리고 이 노트북에는 이미 꽃과 꽃산업, 그리고 플로리스트 에 대한 방대한 자료가 저장되어있어요. 아마 요긴하게 쓰실수 있을겁 니다. 전 먼저 들어갈께요. 팀장님한테 먼저 집에 갔다고 전해 주세요. 오늘 술을 좀 마셨거든요." 상열은 당황해하는 혜원에게 가방을 쥐어주다시피하고 병원을 빠져나 간다. "상열씨!
"혜원씨, 상열씨는...?" 대풍은 병실을 들어서면서 문을 닫는 혜원에게 말을 건넨다. "예...회식할 때... 과음을.. 했다고 먼저 집에 간다고 갔어요." "어..먼저 갔다구요? 이친구 의리 되게 없는 친구네. 술은 자기 혼자 마 셨나....." 대풍은 혀를 찬다. "혜원씨, 그..가방 상열씨가 갖고 있던거 아닙니까?" "예...대풍씨...그게..크리스마스 다음날인 내일모래 그러니까 26일날.. 마 무리 점검때 좀 갖고 와 달래요. 자신은 취해서 혹시 잃어버리지나 않 을까 싶어서 저한테 맡기고 갔어요." "허..이친구..염치없는 친구네..." "대풍씨, 민우씨 침대에 좀 앉아요. 제가 커피한잔 타 드릴께요. 예림씨 도 조금만 기다려요." 혜원은 포트의 플러그를 다시 꽂으려고 탁자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제가 꽂았어요." "그...그래요." 예림이 차갑게 말한다. 민우와 대풍이 반대편 침대에 걸터 앉자 문이 열린다. "언니, 나 왔어." 예림의 동생 예슬이다. 두 갈래로 칭칭따은 여고생같은 머리에 허리 끈이 달린 핑크색 가죽코트에 두꺼운 가죽스커트를 입고 있었다. 그녀 의 가죽부츠가 형광등 불빛에 빛나고 있었다. "아..예슬씨 왔어요." 혜원은 예슬을 반갑게 맞는다. 혜원은 매일 오다시피 했지만 민우는 그 동안 서너번밖에 오지않아서 예슬이와 한번도 마주치지 않았다. 예 슬은 침대에서 엉덩이를 떼는 민우와 대풍에게 깊숙히 목례를 한다. 민우와 대풍도 가볍게 고개를 숙인다. "혜원언니 고생 많죠? 미안해요 자주 오지 못해서..." "아니예요 예슬씨. 앉으세요. 커피나 한잔 하세요." "혜원언니, 그거 제가 할께요." 예슬이 혜원이 커피믹서켑술을 찢어 찻잔에 부으려하자 찻잔을 받아쥐 려한다. "괜찮아요 예슬씨, 앉아 있어요." 예슬은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예림의 침대에 허리를 기댄다. "언니, 좀 나아졌어? 미안해 자주 오지 못해서..." 예슬은 예림에게 싱그러운 미소를 지어보인다. "하나뿐인 언니가 이럭하구 있는데 대체 며칠만에 오는거니? 니 눈에 는 나아진걸로... 보이니? "그래도...많이 좋아진거 같네. 목발이 있는거 보니..." 예슬은 배시시 웃으며 말꼬리를 흐린다. "동생하나 있다는게...혜원씨가 내 몸종이니?" 예림은 혜원을 돌아보며 멋쩍게 웃는다. "언니, 나도 바쁘단 말야...내년엔 정말 꼭 대학원 가야 한다 말이야." "그래 자랑이다 기집애야. 대학이 무슨 놀이터인줄 알았어? 졸업도 제 대로 못하고..." 예림은 민우와 대풍을 한번 쳐다보고는 예슬에게 눈을 흘긴다. "언니 참... 호주에 계시는 엄마 아빠한테 얘기할까 말까?" 예슬이 빙글빙글 웃으며 얘기한다. "말씀드리지 말라고 했잖아 기집애야, 병원에 입원해 있는게 뭐 자랑이 라고..." "하긴 뭐....가라는 시집은 안가고 다쳐서 병원에 있으니 엄마 아빠가 보시면 뭐라 그러시겠어. 당장 한국생활 청산하고 호주오라고 그러실 걸." "너...그만좀 안... 할래?" 예림이 세사람을 쳐다보면서 한번 씩하니 웃고는 예슬을 쏘아본다. "참, 예슬아 인사드려라. 내가 말씀드렸던 팀장님인 유민우씨와 지대풍 씨다." 예림의 표정이 상냥해진다. "안녕하세요. 하 예슬이라고 해요. 두 분 말씀 많이 들었어요." 예슬이 다시 민우와 대풍에게 머리를 깊숙히 숙여 인사를 한다. "첨 뵙겠습니다. 지 대풍이라 합니다. 이쪽은 팀장인 유민우입니다." 민우는 예슬에게 머리를 숙이며 가볍게 웃는다. "야...예림씨 동생분이 예림씨보다 더 미인이시네요. 한떨기 장미꽃이 따로 없군요. 하하하..." 대풍은 예림이만 들으라는 듯이 예림을 쳐다보며 큰 소리로 말한다. "감사합니다." 예슬이 대풍에게 다시 고개를 살짝 숙인다. 그녀는 부끄러움에 볼이 발그레해진다. "우리 언니 짐짝이죠." "예...? 민우와 대풍은 무슨 소리냐는 듯이 세사람을 번갈아 쳐다본다. "아...짐짝요.? 맞습니다. 그러니까 그 짐짝이..? 그... 짐짝이죠 네, 하하 하.." 대풍은 예림의 표정을 살피며 크게 웃으며 말한다. 예림이 실눈을 하 고는 예슬의 팔을 꼬집는다. 형제가 없는 무남독녀인 혜원은 티격태격 하는 자매의 모습이 정겨워 보이면서도 한편으로 부러움에 가슴 한켠 이 시려온다. 엄마 아빠는 딸하나만 달랑 낳아 놓고도 부족해서인지 홀로, 천애고아로 남겨놓고 나란히 세상을 등지셨다. 혜원은 외로움을 느낄 시간도 없이 정아네 집에서 살다시피했다. 가끔부모 형제 없는 혈혈단신인 자신을 느낄때면 죽음보다 무서운 외로움과 고독에 몸서리 를 쳤었다. 엄마 아빠 못지 않게 잘해주시던 정아 부모님, 정아, 그리고 정재오빠...하지만 그 배경에는 알고보면 정아 아버지와 같이 사업 을 하던 아빠의 피나는 각고의 노력이 있었다. 그 결실이 정아 가 족의 어쩌면 의무적일수 밖에 없는 사랑으로 나타난것은 부인할수 없 다. 아버지는 유일하게 이런 무형의 유산을 남겨주고 가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하나 혈육을 대신할 수는 없음을 혜원은 절실히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아무리 허물없이 친부모, 친형제처럼 잘해줬지만 그들 가 족만의 세계가 있었다. 그런 공간에 들어서면 혜원은 어쩔수 없는 남 이었다. 혈육만이 공유할수 있는 정신적교감은 혜원에겐 어쩔수 없는 벽으로 다가왔었다.
"민우씨, 어서와요. 혜원이도. 늦었네요." 장미는 현관을 들어서는 민우와 혜원을 반갑게 맞는다. "언니, 잘있었어?" "형수님. 잘 있었어요?" "아...예 민우...씨.." 장미는 얼굴이 빨개지면서 양볼을 만진다. "혜원아, 너 왜 휴대폰을 안 받냐? 오늘 몇번이나 전화를 했는데." "그래...언니? 또 휴대폰 전원이 끊어졌나보네. 가끔 내 휴대폰이 말썽 을 일으켜." 그러면서 혜원은 호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들여다 본다. "이것봐 언니, 전원이 나갔잖아." 혜원은 휴대폰을 장미의 눈앞에 들이민다. "다시 이렇게 해서...이렇..게 꾹 누르...면..." 혜원은 휴대폰 버튼을 꾹 누른다. "봐, 언니 전원이 다시 들어왔잖아." 혜원은 천진스럽게 웃으며 다시 휴대폰을 장미의 코앞에 갖다댄다. "얘, 휴대폰 바꿔라 좀... 한 두 번도 아니고...아니다 혜원아 바꾸면 뭐 하니 또 잃어버릴텐데..." 장미는 팔장을 끼고 혜원에게 눈을 흘긴다. "언니? 내가..좀 그렇지...이상하게도 새로운 기종이 나올때쯤 되면 나도 모르게 잊어먹게 되더라구....." "너 대체 휴대폰 몇 개째니?" 장미는 쟤가 대체 요즘 왜 저럴까 하는 듯한 표정이다. "언니, 이제 다섯 개째야. 앞으로 한...두세번 더 잃어버리면 몸으로 때 울거야." 혜원은 장미의 얘기를 듣는지 마는지 휴대폰에서 눈을 떼지 않고 휴대 폰 단추를 열심히 누르고 있다. "몸으로 때우다니, 그게... 무슨... 소리니?" "응.....공중전화 찾아다녀야지 뭐...?" 혜원은 두손으로 잡고있는 휴대폰에서 여전히 눈을 떼지 않은체 아무 렇지도 않다는 듯 천연덕스럽게 대답한다. 장미는 혜원의 말이 황당한 지 장난스레 한쪽다리를 휘청한다. "흐이그 얘.....속터진다 정말...머리가 나쁘면 손발이 고생한다더니 딱 혜원이 너를 두고 하는말 같구나...얘가 왜이렇게 망가졌는지 원..." 혜원은 비로소 휴대폰에서 눈을 떼고는 씩하니 웃는다. "언니도 참..이정도는 아무것도 아냐. 왜 작년에 내가 국제플로리스터 대회에 참가한다구 프랑스에 갔었잖아. 언니 기억나...?" "그...래 기억나 그때 너 수상은 했다면서도 빈손으로 왔었잖아." "언...니 실은...그때 상금과 부상으로 받은 순금 트로피를 아트홀 화 장실에 놓고 그냥 비행기에 올랐지 뭐야...인천공항에 내려서 보니 뭔가 허전한거 같더라구.. 챙피해서 누구한테 얘기도 못하고 한동안 머 리를 쥐어뜯으며 밤잠을 설쳤지 뭐..." "맙소..사 그게 사실이니..?" 혜원은 대답대신 배시시 웃는다. "혜원아? 너 정말 큰일이다. 벌써 그렇게 건망증이 심해갖고..." 장미가 이마를 찡그린다. "언니도 그렇게 생각해? 나도 요즘 내가 내가 아닌 것 같애." 그러면서 혜원은 어린애처럼 울상을 짓는다. "어머..얘가 점점..." 장미가 딱하다는 듯이 혀를 찬다. "하하하하....!" 거실 소파에 앉으려던 대풍은 혜원과 장미의 대화에 배꼽을 잡고 웃는 다. 민우도 피식피식 삐져 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손으로 입을 가린다. 민우는 병원에서 고통스러워 하던 혜원의 모습은 찾아볼수 없다. "형부, 민우씨...왜 웃어...요? 난 정말 심각한데....." 혜원은 민우와 대풍을 멀뚱멀뚱 쳐다본다. "아..아닙니다 혜원씨...혜원씨가 이쁘다구요." 대풍은 돌아앉아서 킥킥거린다. "흠..흠..형 왜 그래..?" 민우는 혜원과 장미를 번갈아 보면서 나오는 웃음을 주체하려고 돌아 앉은 대풍의 등을 쥐어박는다. "언니, 참.. 철이는? 잠들었어?" "아니, 방금 내가 안고 있다가 안방에 뉘여놓았어. 방에 가봐." 혜원은 가방과 목도리를 벗어 소파에 던지고는 안방으로 달려간다. "지금 다들 병원에서 오는 길이예요? 많이 춥죠? 주방에 가서 앉아요. 저녘 차릴께요." 장미는 주방으로 쪼르르 달려간다. "형수님, 그냥 간단하게 차리세요. 형과 나는 파티에서 많이 먹었으니 까요. 혜원씨가 배가 많이 고플겁니다." "참, 그렇죠. 알았어요. 조금만 기다려요." "민우야, 우리 간단하게 한잔 더 할까?" 대풍은 소파에 등을 기대고는 양팔을 소파머리에 걸친다. "형, 그만 마시자. 혜원씨와 난 이따 가야 되잖아." "야...오늘은 여기서 자고들 가라. 내일 쉬는 날이잖아....." "형, 혜원씨 내일 박정재씨 집에 가야한다니까." "참! 그렇지 내 정신 좀봐. 내가 아직 술이 덜 깻나?" 대풍은 그러면서 자신의 머리를 때린다. "철이 엄마! 리모콘 어딨어?" 대풍은 탁자 주위를 두리번 거린다. "리모콘요? 거기 텔레비젼 위에 있잖아요!" 대풍은 리모콘으로 텔레비젼을 켠다. "참, 미...민우씨, 대풍씨!" 장미가 주방에서 쪼르르 달려나온다. 민우와 대풍은 무슨일이냐는 듯 이 장미를 돌아본다. 장미의 목소리가 물을 급한게 삼킨 마냥 흥분되 어 있었다. "대풍씨 리모콘 이리 줘봐요." 장미는 대풍에게서 리모콘을 빼앗다시피 나꿔챈다. "아니..왜 그래?" 장미는 체널을 어느 한곳에 고정시키고는 리모콘을 탁자위에 올려놓는 다. "지금 열한시 뉴스해요. 누가 나오나 봐요." 장미의 표정이 자못 심각하다. "형수님, 누가 나온다고 그래요?" "한번 지켜 보세요. 어떤 뉴스가 나오는지.. 놀랄노자예요. 얘, 혜원아!" 그러면서 장미는 혜원을 부르며 안방으로 뛰어간다. 텔레비젼에서는 케이비에스 열한시 뉴스라인이 방송되고 있었다. "엘지 카드사태 소식입니다. 유동성위기를 겪고 있는 엘지 카드사태가 일단은 고비를 넘길 것 같습니다. 엘지카드 채권단에서 엘지카드에 2 조원을 투입하기로 잠정적인 결정을 내렸다고 합니다. 하지만 금융 전 문가들은 미봉책에 불과할 뿐이라며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합니 다. 언제까지 카드돌려 막듯이 밑빠진 독에 물붓는 짓을 계속 할것이 냐며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항간에서는 공적자금 투입을 요 구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관계당국은 공적자금 투입은 절대 있을수 없 는 일이라며 격앙된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모든 것은 엘지와 엘지 채권단이 알아서 하든지 시장경제원리에 맡기는 것이 정도라고 방관적 인 입장을 보이며 이번 사태에 절대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못을 박았 습니다. 이렇게 신용카드사태가....." "대체 누가 나온다고 그래.." 대풍은 리모콘을 집어든다. "형, 잠깐 좀더 봐." 민우가 리모콘을 잡으려는 대풍의 손을 잡는다. "다음소식입니다. 재계서열 18위인 신한쇼핑센터가 만기가 되어 돌아오 는 어음을 막지못해 부도 위기에 몰렸다고 합니다. 신한쇼핑센터는 작 년말부터 계속되는 경기불황으로 매출이 10개월 연속 감소해 경영에 심각한 타격을 입은걸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야...민우야. 저게 무슨 얘기야? 그런데 .저게 누구야? 박정재씨 아냐? 대풍은 허리를 곱추세우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화면과 민우를 번갈아 본다. "형..가만 있어봐." "신한쇼핑센터는 전국적으로 12개의 지점을 거느린 우리나라 최대의 쇼핑센터입니다. 아울러 이번 사태는 업계전반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올것으로 보입니다. 이미 자생능력을 상실해 사실상 자본잠식상태에 들어간 신한쇼핑센터는 채권단조차 고개를 저을 정도로 심각한 위기에 처했습니다. 신한쇼핑센터의 박정재 대표이사는 모기업인 신한그룹의 지원을 바라고 있지만 신한그룹에서는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 습니다. 이렇게 신한쇼핑센터가 위기에 몰린 근본적인 이유는 3년전 그룹 에서 분리되면서 신한그룹의 박재덕회장의 장남인 박정재씨가 대표 자리에 앉으면서 부터라고 합니다. 박정재이사는 무리한 계열사 확장 으로 일년전부터 채권단과 주주로 부터 눈총을 받았다고 합니다. 하지 만 박정재이사는 이러한 경고를 무시했다고 신한쇼핑센터 관계자들은 입을 모읍니다. 박정재이사는 3년전 무주에 있는 신한그룹계열사인 카 라리조트에서 경영수업을 받았지만 그의 일천한 이력으로 봐서는 신한 쇼핑센터 경영자체가 무리였다는 것이 재계의 시각입니다. 지금 상태 라면 전국의 신한쇼핑센터 계열사의 도미노 파산은 불가피해보입니다. 신한그룹의 창업자 박재덕회장은 입지전적의 인물로 재계에 널리 알려 져 있습니다만 자회사인 신한쇼핑센터의 부실로 창사이래 최대의 위 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다음 소식입니다......." 거실은 한동안 얼어붙은 듯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민우와 대풍은 꼼 짝을 하지 않은채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혜원과 장미도 소파뒤에서 굳어버린 듯 초점없는 눈동자로 텔레비젼 화면만 응시하고 있었다. "그랬구..나...정재씨가 오늘 파티에서 왜 그렇게 술을 많이 마시나 했더 니....." 대풍이 적막을 깨듯이 말문을 열었다. 민우는 고개를 돌려 혜원을 쳐 다보았다. 그녀는 여전히 움직임이 없었다. "참 내 정신좀 봐...혜원아 우리 밥 먹어야지. 조금만 기다려." 장미가 주방으로 발길을 돌리자 혜원의 호주머니에서 벨이 울린다. 혜 원은 아는지 모르는지 전화 받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얘, 혜원아 니 전화잖아!" 장미가 주방에서 소리를 지르자 혜원은 그제서야 휴대폰을 꺼내든다. "여..보세요? 응...정아니...?" 혜원은 등을 돌려 소파에 허리를 기댄다. "혜원아, 혹시 너 정재오빠 안 만났니?" "응....안 만났..어." "연락도 없었어?" "응..." "정재오빠와 연락이 안돼, 혜원아 너 소식 들었니? 지금 회사가 난리났어. 오빠가 갈만한곳 다 연락해 봤는데 찾을수가 없어 혹시 너한테 연락이 올지 모르니까 연락이 오면 집으로 전화좀 해줘 알았지?" "응..알았어." "그리고 내일 집에 오는거 알지." "응...알아..꼭 갈께." "그래 그럼 끊는다 내일보자." 장미가 주방에서 다시 나온다. "정아씨니?" "응, 언니....언니 나 그만 가봐야 겠어." "혜원..아 그래도 밥은 먹어야..지? 지금 어디 갈려구. 이따 민우씨와 같 이 가." "아니..내일 정아 부모님 뵐려면 오늘 일찍 자 둬야지 형부, 민우씨 저 그만 가 볼께요. 미안해요." 혜원의 얼굴은 초조감과 불안으로 붉게 물들고 있었다.
민우가 혜원을 따라나왔다. 큰길가로 나온 두사람은 차도를 두리번 거 린다. 살을 에는 듯한 추위가 몰아치고 있었다. "택시!" 민우가 택시를 세웠다. "혜원씨... 어서... 가요." 민우는 혜원을 안타깝게 쳐다보았다. 민우는 아무말도 할수 없었다. 지 금 그녀에게는 아무런 말도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다. 혜원은 민우를 한번 쳐다보고는 택시에 올랐다. 순간 민우는 그녀의 눈가에 이슬이 맺 히는 것을 보았다. 민우는 넋을 잃고 어둠속으로 사라지는 택시를 쳐다 보았다. "민우야, 혜원씨 갔어?" 대풍은 다시 아파트로 들어서는 민우를 걱정스런 시선으로 쳐다본다. "......." 민우는 거실 소파에 털썩 주저 앉는다. 장미는 철이를 안고 당혹스런 얼굴로 거실을 왔다갔다 하고 있다. "아니...어떻게 그 큰 회사가 하루 아침에...." 대풍은 민우의 반대편에 앉으며 입술을 깨문다. 민우는 수심에 가득찬 표정을 하고 고개만 숙이고 있다. "민우야...잘 되겠지. 신한쇼핑센터가 신한그룹에서 분리되었다지만 정 재씨 아버지가 그냥 보고만 있겠니. 좀 기다려 보자꾸나." 대풍은 민우의 어깨를 한번 만지고는 안방으로 들어간다. "그래요 민우씨 괜찮을 거예요. 너무 걱정마세요. 전 혜원이가 걱정이 예요. 혜원이가 충격을 받지 않을까 걱정돼요." "참, 형수님..." 민우는 고개를 숙인채 장미를 부른다. "민우..씨 왜요?" "혜원씨가 다니는 병원이 어디예요?" "병..원 이라뇨?" "혜원씨가 심장병 때문에 다니는 병원 말입니다." "아....그 병원요? 삼년전 다니던 그 병원에 계속 다니고 있어요. 그..런 데 왜요?"
혜원은 가슴에 둔중한 통증이 일고 있었다. 차창밖 네온불빛속의 빌딩 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바싹 타버린 입술위로 거친 숨결이 떨려 오는 것이 느껴졌다. 혜원은 눈을 감으며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혜원 은 자신도 모르게 정재오빠의 잔재가 가슴에 깊게 자리잡고 있음을 깨 닫는 자신을 보고 있었다. 수십년간 혜원 자신만을 생각하며 살아온 정재오빠의 공백이 가슴에 커다란 멍울로 자리잡고 있음을 혜원은 몰 랐다. 혜원은 휴대폰을 꺼내 정재의 휴대폰번호를 눌렀다. 하지만 신호 만 갈뿐이었다. 혜원은 다시 휴대폰을 호주머니에 넣었다. 그녀는 차창 밖으로 고개를 돌려 긴꼬리를 날리며 빠르게 지나가는 네온샤인을 무 심히 바라보았다. 택시에서 내리자 이미 아파트의 불빛은 모두 잠들어 있었다. 뿌연 서 리가 가로등 불빛을 받아 눈처럼 흩날리고 있었다. 혜원은 엘리베인터 를 타고 9층에서 내렸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 혜원은 벽에 기대었다 그녀는 벽에 기댄채 눈을 감고 한동안 꼼짝도 하지 않았다. 혜원은 숨을 고르고 현관문앞에 섰다. 그런데 어디선가 인기척이 나는 소리에 혜원은 무심코 오른쪽 계단옆 창문아래로 고개를 돌렸다. "악!" 혜원은 비명을 지르며 뒷걸음질쳤다. 사람이 분명했다. 모서리에 비스 듬히 기대어 움직임이 없었지만 분명히 사람이었다. 혜원은 조심스레 다가가 허리를 굽혔다. "오...오빠...정재..오빠.." 정재였다. 혜원은 숨이 멎는것 같은 충격에 머리속이 백짓장처럼 하예 졌다. 정재는 바닥에 주저앉아 고개를 숙인채 움직임이 없었다. 불규칙 한 신음소리만 토해내고 있었다. 알콜냄새가 혜원의 코를 파고 들었다. 혜원은 주저앉듯 무릎을 꿇고 떨리는 두손을 정재의 얼굴로 가 져갔다. 혜원은 정재의 얼굴을 보자 절망적인 슬픔이 복받쳐 올라 가슴 이 저미어왔다. 혜원의 눈은 어느새 눈물로 젖어들고 있었다. 그녀는 정 재의 얼굴을 가슴에 안았다. 그녀의 눈에서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이 정재의 머리를 적시고 있었다. "오빠...오빠답지 않게 대체...왜...이래...오빠...제발....."
첫댓글 다시 보아도 ....데스님 참 대단하네요, ㅎㅎ 기승전결 좋고 글에 긴박감도 있어 지루하지 않고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