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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일 강제동원 배상책임" 2차 판결로 파탄 위기
조성렬 북한대학원대학교 초빙교수
일제강점기 강제동원에 대한 일본 전범기업들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대법원 판결이 또다시 나왔다. 지난 12월 21일과 28일 대법원은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와 유족이 일본기업을 상대로 낸 제2차 손해배상 소송에서 신일본주금과 미쓰비시중공업, 히타치조선 등 피고기업에 배상 책임이 있다고 판결했다. 이것은 2018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과 같은 취지로, 윤석열 정부의 ‘제3자 변제안’ 발표 뒤에 나온 판결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지난 3월 6일 윤석열 정부는 대법원이 일본전범기업이 피해자들에게 배상금을 지급하라는 대법원 판결을 따르지 않고, 한국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하 지원재단)이 강제동원피해자에게 배상금을 대신 내주되 피고인 일본기업에는 구상권을 청구하지 않겠다는 '제3자 변제안'을 밀어부쳤다. 하지만 이번 판결로 110여 명에 이르는 다른 강제동원 소송에서 피해자들이 승소할 가능성도 커져 제3자 변제안은 파탄의 위기에 내몰렸다.
파탄 위기에 내몰린 제3자 변제안
윤석열 정부는 집권하자마자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무시한 채 제3자 변제안을 내놓았다. 이에 대해 한국 정치권과 시민단체는 물론 일본 시민단체도 이러한 윤 정부가 내놓은 방안이 진정한 해법이 될 수 없다고 비판해 왔다. 그럼에도 윤 정부는 이를 강행했으나 대법원의 판단을 바꾸지는 못했다. 이제 제3자 변제 방안은 법리적으로 이미 파탄 났으며 재정적으로도 기금 마련이 어려움에 직면했다.
법리적으로 볼 때, 윤석열 정부의 제3자 변제안은 사실상 2018년 대법원판결을 무효화한 것으로 정당성을 결여했다. 한국정부가 일본전범기업에게 대한 구상권을 포기한 채 한국 측이 배상함으로써 2018년 대법원판결을 무의미하게 만든 것이다. 이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은 “2018년 대법원판결을 존중하고 이해한다”고 말했으나 이는 권력 남용에 대한 비난을 피하기 위한 면피성 발언에 불과하다.
정부는 배상금 수령을 거부한 피해자에게 법원에 '제3자 공탁'하겠다는 입장이었으나 이것조차 법원에 의해 제동이 걸렸다. 법원은 채권자인 피해자들이 제3자에 의한 공탁을 거부하고 있기에, 법원이 소송당사자도 아닌 제3자의 공탁금을 받아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올해 9월 15일 현재 수원지법(지원 포함 5건), 전주지법·광주지법(각 2건), 서울북부지법·창원지법·춘천지법강릉지원(각 1건) 등에서 법원 공탁관이 지원재단의 공탁을 거부한 바 있으며, 법원의 불수리 결정에 대한 지원재단의 이의신청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배상을 위한 재정 차원으로 볼 때, 윤석열 정부의 제3자 변제안은 잇단 패소로 인해 지원재단의 자금이 고갈에 직면한 상태다. 대법원은 피해자 1인당 325만~1억 2000만 원씩 배상하라고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는데, 소송 참여 피해자가 110여 명에 달해 총 배상금은 150억 원 이상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현재 지원재단 기금은 일본 경제협력자금의 수혜 기업인 포스코가 출연한 40억 원이 전부이다.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일본이나 한국 기업들의 재원 출연이 필요하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자국 기업의 기금 참여를 막고 있다. 한국 정부는 한국기업이 지원재단에 출연했다가 배임죄로 처벌당할 수 있어 강요할 수도 없다. 박근혜 정부 때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미르·K스포츠재단에 출연금을 냈다가 배임죄로 유죄를 받은 바 있기 때문이다. 재단기금을 늘리지 않으면 제3자 변제마저 못 하게 되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는 것이다.
28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 유족이 미쓰비시 중공업을 상대로 낸 14억 원 상당의 손해배상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승소한 뒤 두 팔을 들어 올리며 기뻐하고 있다. 2023.12.28. 연합뉴스
일본 측 선의만 바라보는 한심한 윤 정부
윤석열 대통령은 3월 일본방문 때 제3자 변제안을 발표하며, "한국이 물을 반 컵 채웠으니, 나머지 반 컵은 일본이 채울 것"이라고 말했다. 먼저 일본 경제협력자금의 혜택을 받은 한국기업들이 지원재단에 출연한 뒤 이를 통해 피해자들에게 배상금을 지급해 물컵의 반을 채운 다음, 일본 정부가 강제동원피해자들에게 추가로 사과하고 피고인 일본기업이 지원재단에 출연해 나머지 반 컵을 채운다는 구상이다.
이처럼 윤석열 정부는 한국이 물컵의 반을 채우면 일본정부의 추가 사과, 일본기업의 재단기금 출연으로 나머지 반을 채울 것으로 기대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일본 정부의 사과는커녕 일본기업들의 자금 출연도 없었다. 오히려 일본 측은 한국 측의 제3자 변제가 국제법 위반을 스스로 시정하는 당연한 조치일 뿐으로, 일본이 추가로 취할 조치는 없다는 입장이다.
12월 21일 대법원판결 직후 외교부 당국자는 일본의 추가 의지가 부족하다는 지적에 대해 "(일본)정부 차원에서 민간에게 자발적인 기여를 독촉하거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저희도 그런 관점에서 좀 더 진전이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하며 여전히 일본 측의 선의만 기대하는 자세를 보였다. 12월 26일 한일 외무차관보급 면담에서도 이 문제가 논의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동안 일본 측이 보여준 태도를 보면 윤석열 정부의 순진한 기대는 실현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일본 측은 윤 대통령의 기대와 정반대 행동을 보였다. 5월 7일 방한한 기시다 총리는 공식이 아닌 개인 의견을 전제로 피해자들에게 "힘들고 슬픈 경험에 대해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고 말했을 뿐 끝내 사과하지 않았다. 그 뒤 일본 측은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계획 발표, △왜곡 역사교과서 검정 통과, △독도 영유권 주장, △기시다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공물 봉납 등 ‘나머지 반 컵’을 채우기는커녕 오히려 한국민을 자극하는 조치를 잇달아 취했다.
대법원판결에 대해서는 적반하장의 태도를 내보였다. 21일의 대법원판결 직후 나마즈 히로유키 외무성 아시아대양주 국장은 김장현 주일 한국대사관 정무공사를 초치해 항의하면서 "대법원판결을 결단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도 "한일정구권협정에 명백히 반하는 것으로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면서, "이(제3자 변제)에 맞춰 한국정부가 대응해 갈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28일의 대법원판결 직후에도 일본 측은 동일한 반응을 보였다.
이제 윤석열 정부에게 남은 일은 무력화된 제3자 변제안을 유지하기 위해 일본 측의 선의를 기대하는 수밖에 없게 되버렸다. 일부 국내 일본 전문가는 일본이 '물컵의 나머지 반'을 채울 의사가 없다기보다 기시다 정권의 지지율이 너무 낮아 동력이 없기 때문이라며 이해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일본 정부가 공식적으로 약속하거나 양해를 구해온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매우 순진하고도 한심한 변명에 불과할 뿐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31일 서울 동작구 노량진수산시장을 찾아 꽃게를 들어 보이고 있다. 2023.8.31. 대통령실 누리집
국제법 위반 수용으로 첫 단추 잘못 끼워
그렇다면 윤석열 정부는 어떻게 해서 자충수를 두게 되었나? 윤석열 정부는 정략적인 목적에서 한일관계의 악화 이유가 전적으로 문재인 정부의 탓이라고 책임을 떠넘겼고, 이는 '한국이 국제법을 위반했기 때문에 스스로 해결책을 갖고 오라'는 일본 측의 프레임에 말려드는 결과로 이어졌다. 실제로 2022년 9월 한덕수 총리는 기시다 총리를 만난 뒤 공개석상에서 "(대법원 판결이) 국제법으로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라며 일본 측 주장을 수용하는 발언을 했다.
그동안 일본 정부는 두 가지 논리를 내세워 한국이 국제법을 위반했다며 시정을 요구했다. 하나는 대법원의 판결이 '한일 청구권 협정'에서 ‘배상 문제가 모두 해결됐다’고 합의한 것을 뒤집었기에 국제법 위반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한국 정부가 청구권 협정 제3조의 분쟁해결절차를 따르지 않아 국제법 위반이라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의 한심한 작태로 인해 한국이 국제법을 어겨 해법을 제시하는 모양새가 되긴 했지만, 일본 정부의 주장은 일방적이자, 사실무근이다.
첫째, 대법원은 한일청구권협정이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제4조에 따른 양국 간 재정적·민사적 채권·채무 관계를 다룬 것일 뿐으로 일본 식민 지배의 반인도적 불법행위에 대한 배상은 포함되지 않았고, 따라서 식민 지배의 합법성을 근거로 '국가총동원법'과 '국민징용령'에 따른 강제동원이 유효하다는 일본법원 판결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즉, 강제동원피해자 배상 문제는 청구권협정에 빠져있던 사안이기에 대법원판결이 국제법 위반은 아닌 것이다.
둘째, 대법원의 강제동원피해자 판결이 청구권협정과 무관하다고 명시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가 한일청구권협정에 따른 분쟁 해결을 요구한 것은 대법원의 판결을 무력화하려는 의도가 깔린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당시 문재인 정부가 이에 응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는 일본의 간계에 넘어가지 않은 것일 뿐, 한국 정부의 무대응이 국제법 위반일 수 없다.
오히려 국제법을 위반한 것은 일본 측이다. 피해자들은 일제의 군대와 경찰의 통제 아래 노예와 같은 강제수용과 강제노동을 강요당했다. 일본 정부와 긴밀한 범죄공동체를 이룬 일본기업의 강제동원은 모두 반인도 범죄 또는 노예금지와 관련한 국제적 강행규범을 위반한 것이다. 국제인권법은 국제적 강행규범 위반에 따른 개인 청구권에 대해 국가가 함부로 포기하거나 상대국과 협상할 수 없으며, 소급적용이 가능하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일본 정부는 소송당사자임에도 법원의 판결에 개입해 자국의 피고 전범기업에 판결을 따르지 말라고 강요하는 불법적인 행위를 저지르고 있다. 당초 일본기업이 지원재단에 기금을 출연할 것이라는 한국의 정부와 일부 국내 일본 전문가들의 순진한 기대가 어긋난 것도 이 때문이다.
대일 외교, 순진함에서 벗어나 원칙을 견지하라
지금까지 일본정부의 과거사 사과를 이끌어낸 것은 한국 정부와 시민사회, 그리고 일본 시민사회의 끈질긴 노력 덕분이었다. 일본 정부는 고노 담화(1993)에서 일본군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했고, 무라야마 담화(1995)에서는 전쟁범죄에 대해 사죄했다.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1998)은 식민지 지배에 따른 한국 국민의 손해와 고통에 대해 사죄를 표명하였다.
2011년 8월 헌법재판소는 "위안부 문제의 외교적 해결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은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렸고, 이로 인해 박근혜 정부 때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한일관계의 최대 쟁점으로 떠올랐다. 당시 일본은 현안-과거사를 분리해 양국이 현안에서 협력하자고 주장한 반면, 박근혜 정부는 위안부 문제 해결 없이는 현안에 협력할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이었다. 결국 2015년 12월 일본 총리가 공식사과하고 일본국가예산으로 10억 엔을 출연해 화해치유재단을 만들어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지원하는 선에서 합의가 이루어졌다.
2018년 10월 대법원판결로 강제동원피해자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오자, 문재인 정부는 과거사와 분리해 현안 협력을 제안했으나, 아베 정부는 한국 정부가 강제동원피해자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 않는다면 현안 협력도 불가하다며 강경한 입장을 취했다. 하지만 식민지배의 합법성을 근거로 한 일본 측 주장은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관련된 사안이어서 문재인 정부는 받아들일 수 없었고, 불가피하게 양국 갈등이 심화되었다.
이 때문에 국내 전현직 외교관이나 소위 일본 전문가 중에는 사법부가 불필요하게 외교 문제에 개입함으로써 한일관계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떤 전문가는 고도의 정치성을 갖는 국가기관의 행위는 사법심사가 제한된다는 통치행위이론을 내세워, 사법부가 한일청구권협정과 같은 외교 행위에 반하는 판결을 내놓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대법원이 반대의 판결을 내렸다고 생각해 보자. 대법원이 일본법원 판결을 인정하는 순간, 일본 측은 한국 대법원도 식민지배의 합법성을 인정하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는데 왜 불법이라고 주장하느냐고 선전할 게 분명하다. 또한 '통치행위'로 인정받은 판례는 남북정상회담 개최,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 군사시설보호구역 변경(이상 대법원), 자이툰부대 파병, 대통령의 사면권(이상 헌법재판소)뿐이다. 외교 행위와 무관한 강제동원 판결은 통치행위에 해당되지 않는다.
일본 정부의 식민지배 합법 주장 못지않게 심각한 문제는 식민 지배의 미화를 넘어 그 자체를 부인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한국이 자발적으로 합법적인 절차를 거쳐 일본과 ‘합방’했고 서구 식민 지배와 달리 교육과 경제발전이 이루어졌다는 점을 들고 있다. 이러한 인식은 제국주의 시대부터 일본 여론을 주도해 왔던 일본 신문기사에도 잘 드러난다. 1931년 만주사변 이후 '외지' 용어가 급증하더니 1935년 이후에는 '식민지' 용어가 점차 사라졌다. 최근에도 종종 식민 지배 자체를 부정하는 발언이 나오고 있는 배경이다.
한반도·대만에 대한 과거 일본언론의 인식
세대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웃 국가인 일본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발전시키자는 데 반대할 한국인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일본이 식민 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고 진정으로 사죄하며 일본군위안부 및 강제동원피해자에게 보·배상하는 것이 최선의 해결책이 될 것이다. 한국과 일본의 시민사회가 이를 실현하기 위해 활동하는 이유다. 하지만 한일 양국 사이에는 여러 현안이 있기 때문에 정부 차원에서 과거사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고 해서 다른 현안에 대한 협력을 늦출 수는 없다.
문제는 윤석열 정부의 대일 자세에 있다. 윤석열 정부는 식민 지배의 불법성을 명확히 한 대법원의 판결이 갖는 의의를 폄훼하고 일본의 선의에 기대하는 안이한 외교적 자세를 보였다. 그런 점에서 대일 외교는 게도 잃고, 구럭도 잃었다. 대법원판결이 당장 한일관계를 어렵게 하는 측면이 있더라도 그것은 다른 차원에서 해결할 일이지 역사 바로 세우기를 중단할 일은 결코 아니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 대일 외교의 과오를 거울삼아 한일관계의 새판짜기에 나서야 할 것이다.
출처 : 제3자 변제? 게도, 구럭도 다 잃은 윤석열 대일 외교 < 민들레 광장 < 기사본문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mindl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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