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없는 순교자 20인의 묘가 산재해 있는 곳
천혜의 피신처라 할 수 있는 배티는 충북 진천군과 경기도 안성군이 경계를 이루는 지점에 위치한 깊은 산골이다. 하지만 서쪽으로 안성, 용인, 서울, 남쪽으로는 목천, 공주, 전라도 그리고 동쪽으로는 문경 새재를 지나 경상도로 이어져 박해 시대에는 내륙 교통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이처럼 각 지역과 쉽게 연결되면서도 깊은 산골이라는 지리적 특성으로 1830년부터 본격적으로 교우촌이 형성되었다.
배티 성지가 지니고 있는 중요한 의미는 순교자들의 고향이라는 점이다. 현재 이곳 배티 골짜기에는 순교자들의 무덤이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으며, 그중에는 무명 순교자들의 무덤들이 섞여 있다. 배티는 1866년 병인박해와 1868년 무진박해(넓은 의미에서 1866년부터 시작하여 1873년경까지 8년간 지속된 병인박해에 포함됨) 때에 50여 명의 순교자를 냈는데 그 가운데 하느님의 종 오반지(吳盤池, 1813~1866, 바오로)를 비롯하여 이영준 아우구스티노, 김원중 스테파노, 김준기 안드레아, 손관보 베드로, 오사룡, 윤바르바라, 이종여, 김조이 막달레나, 이호준 요한 등 29명은 교회 역사에 기록돼 있고 나머지는 배티 일대에 이름 없는 묘소들로 산재해 있다.
배티 일대의 교우촌은 한국의 카타콤이며, 스스로 찾아온 복음의 진리를 온몸으로 살아간 신앙의 현장이며, 수많은 혈색(적색) 순교자와 백색 순교자를 배출한 순교의 땅이다. 고 윤의병(尹義炳, 1889~1950, 바오로) 신부의 소설 《은화》는 말 그대로 박해 시대에 피어난 “숨은 꽃(隱花)”들의 신앙과 고난을 그린 군난(窘難) 소설이다. 이 소설의 배경이 된 곳이 골배 나무가 많았다던 배티와 그 일대의 교우촌들이다.
배티 성지를 지나 안성으로 가는 고개 방면으로 약 1km 가면 왼편으로 조그만 비석이 하나가 나온다. 바로 6인의 무명 순교자 묘로 올라가기 시작하는 지점인데 여기에서 산속 오솔길로 약 20분 정도를 걸어 올라가면 도착할 수 있다. 하지만 이곳도 경사가 만만치 않다. 배티 성지 야외 성당에서 시작되는 등산로를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이 길로 가면 2시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
다시 안성 방면의 고개로 약 100m 오르면 오른쪽에 또 하나의 무명 순교자 묘를 알리는 비석이 세워져 있다. 14인의 무명 순교자 묘다. 이들은 기구하게도 박해 시기에 안성으로 넘어가다가 포졸들이 집단으로 처형을 한 순교자들이다. 2006년 7월말 충북 진천 지역을 휩쓴 막바지 장맛비에 무명 순교자 묘역이 크게 훼손되었다. 14위 묘역 봉분 부분이 산사태로 상당 부분 유실되어 11기 묘역 봉분과 십자 묘비석은 모두 유실되었으나 다시 보수하고 주변을 정리하였다.
▒ 배티 인근 유명/무명 순교자 묘
○ 무명 순교자 6인 묘지(배티 성재골)
○ 무명 순교자 14인 묘지(배티 고개)
○ 이 요한의 아내와 딸 순교자 2기(삼박골)
○ 유 데레사와 남편 순교자 2기(배티 옛 성당및 은골)
○ 이 스테파노 순교자 1기(이월 새울)
○ 박 바르바라와 시누이 윤바르바라 순교자 2기(백곡 공소)
○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와 한국의 모든 순교자들이시여,
●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와 한국의 모든 순교자들이시여,
● 저희 교우들이 가정을 중요시 여기는 마음으로 거룩한 가정을 만들어 나갈 수 있도록 빌어 주소서.
■ 찾아가는 길
■ 순례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