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절에 발 들이면 반드시 신실한 불자 된다
서울 화계사는 삼각산 동남쪽 칼바위 능선 끝자락의 숲과 계곡에 안겨 있어 고즈넉한 산사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전통사찰이다. 아울러 도심과도 가깝고 주택가와 인접해 있어 언제든지 찾아가 신심을 증장하고 지친 심신을 치유할 수 있는 불자들의 ‘정신적 귀의처’이자 시민들의 ‘안식처’ 다.
화계사는 종교, 국적을 뛰어넘어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이다. 지난 2014년 세계일화대회에 참가한 숭산스님의 제자들이 화계사에서 한국사찰음식을 체험하고 있다.
화계사는 조선 중종 17년(1522년) 신월스님이 고려 광종 때 법인국사가 창건해 오랫동안 법등을 이어 온 보덕암을 현재 자리로 옮겨 짓고 절 이름을 ‘화계사(華溪寺)’라 명한 데서 시작됐다. 조선시대에는 흥선대원군과 덕흥대원군, 서평군 등이 중창 불사에 동참하는 등 왕실 가족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으며 근대에는 1933년 한글학회 주관으로 이희승, 최현배 등 9명의 국문학자들이 화계사에서 기거하며 한글맞춤법 통일안을 집필한 유서 깊은 사찰이다. 아울러 만공스님을 비롯해 성월·혜암·춘성·고봉·전강·적음·덕산스님 등의 선지식들의 법맥을 잇고 있는 수행도량이자 세계일화(世界一花)를 몸소 실천해 한국불교를 전 세계에 전한 숭산스님의 원력이 살아 숨 쉬는 국제포교 중심도량이다. 최근 들어서는 활발하고 전문적인 신도교육을 바탕으로 수행은 물론 포교, 나눔, 종교화합 등 다방면에서 모범을 보이는 사찰로 사격을 일신시켜 나가고 있다.
10개 학급 600여 명 수강
체계적인 신도교육시스템
졸업 뒤엔 사중 안팎에서
부처님 가르침 몸소 실천
각박한 세상서 생긴 상처
치유할 ‘시민 안식처’ 추진
“화계사에는 끝나는 게 없다.” 이는 끊임없이 변화를 모색하는 화계사에 대해 신도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말 가운데 하나다.
화계사 주지 수암스님은 10년 전인 지난 2006년 총무국장으로서 화계사와 본격적인 인연을 맺었다. 당시 화계사는 숭산스님의 국제포교 중심도량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고 주지 수경스님은 불교환경운동 등 불교계의 대사회활동에 매진하고 있을 때였다. 이로 인해 사중 일을 도맡다시피 했던 수암스님은 신도들을 하나로 모으고 사회적으로 회향하는 방법을 고민하다 ‘교육을 통한 변화를 도모하겠다’고 서원했다.
스님은 매주 절에 와서 법문 듣고 기도하는 불자를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신도교육이 우선돼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수암스님은 2010년 8월 주지 소임을 맡자, 신도교육사업을 더욱 강화시켜 나갔다. 현재 화계사는 신도교육과정(3개월), 교양과정(3개월), 불교대학(2년), 불교대학원(1년), 경전반(1년) 등을 운영하고 있다. 교양과정은 천수경과 예불·반야심경, 의식 등을 3개월씩 배우도록 편성됐으며, 경전반은 해마다 2가지의 경전을 배우지만 내년과 내후년에는 또 따른 경전을 각각 배움으로써 보다 많은 경전을 배우고 익힐 수 있도록 했다.
화계사에서는 주간반과 주말반, 1·2학년반 등을 통해 총 10개 학급에 600여 명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동시에 배우고 있다. 이를 위해 화계사는 물심양면의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불교대학 등 각 교육과정의 수강생을 모집하기 위해 연간 불교대학 홍보비로 3000만원 이상 쏟아 붓고 있다. 수강료가 전국에서 제일 저렴하다보니 1년 동안 불교대학을 운영해도 돈이 남지는 않는다. 대신 ‘돈’이 아닌 ‘불자’가 남고, 그들이 법회와 교육, 봉사 등을 통해 사찰과 계속 인연을 맺으면서 ‘내 절’이라는 강한 소속감으로 보시와 재능기부를 한다면 그게 더 큰 이익이라는 게 수암스님의 지론이다.
꽃가람체육대회에서 응원하는 신도들.
아울러 불교대학 동문회 임원들이 각 교육과정의 재학 및 졸업생들에게 다음 단계의 교육과정 이수를 적극적으로 독려하고 있다. 불교대학 수업은 주지와 교무 등 사중 스님과 동국대 석·박사과정의 스님들이 맡는다. 불교대학 강의를 통해 자신의 공부를 재점검하고 법문과 스피치능력도 함께 배양하기 위해 동국대 석박사과정의 학인 스님들에게 기회를 준다.
화계사는 불교대학 선후배간의 관계가 돈독하기로 유명하다. 불교대학 등 10개 반마다 5~6명씩 불교대학 졸업생을 임원으로 각각 투입해 후배들을 돕는 ‘학회장 제도’를 운영해 선후배간의 관계를 공고히 다지고 있다. 이들은 자원봉사자로서 학회장과 교무, 재무, 노래 지도, 피아노 봉사 등 궂은 일을 도맡음으로써 후배들이 부처님 법을 공부하는데 불편함이 없고 화합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고 있다.
포교와 자비나눔의 원력을 가진 이들을 위해 포교사에 도전할 것을 적극 권장하고 있다. 해마다 20여 명이 포교사고시에 도전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선배들이 3개월 동안 포교사고시 준비반을 별도로 꾸려 후배들을 지도하고 있다. 화계사불교대학 졸업생들이 수석 등 우수합격자 명단에 연이어 이름을 올려 전국 여느 불교대학의 부러움을 살 만큼 불교대학 운영에 있어서도 모범을 보이고 있다.
이같은 신도교육과정을 마친 화계사 신도들은 신도회 산하 각 신행단체에 소속되며 사중 안팎의 크고 작은 일을 자신의 일처럼 맡아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특히 해마다 정월대보름 달집태우기 문화한마당과 가을 산사음악회, 꽃가람 체육대회, 사찰음식 경연대회 등을 신도회가 도맡아 진행하고 있다. 신도회 산하에는 참선모임인 선우회, 종합적인 수행모임인 수선회, 영어법회, 합창단, 어린이회, 학생회, 대학생회, 청년회, 포교사회, 불화반 등 다양한 신행단체가 활동 중이다.
화계사는 육군 26사단 76여단 호국사자사와 자매결연을 맺어 군법당 법회를 이끌 뿐만 아니라 국립재활원 법당의 환우와 직원법회를 열고 있다. 또한 강북장애인종합복지관을 수탁 운영하고 있으며 해마다 지역사회를 위해 어려운 이웃들에게 쌀과 김장김치, 동지팥죽 등을 나누고 있다. 먼 이국땅에서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이주노동자를 위해 인근에 위치한 다인치과와 함께 매주 토요일마다 화계사에서 이주민을 위한 치과진료도 이어가고 있다. 화계장학회와 숭산장학회를 통해 해마다 약 2000만원의 장학금을 수여하며 인재불사에도 매진하고 있다.
지난 2000년 11월부터 송암교회, 수유1동 성당 등과 함께하는 ‘난치병 어린이돕기 종교연합 바자회’를 통해 종교간 화합은 물론 이웃사랑 실천에도 모범을 보이고 있다. 그동안 8억7000만원을 모아 난치병을 앓고 있는 285명의 어린이들에게 따뜻한 사랑을 실천해 왔다. 주지 수암스님이 강북구사암연합회 회장 소임을 맡고 있는 만큼 사암연합회 활동을 통한 지역 내 불교 위상 강화에도 노력하고 있다. 해마다 성도절을 맞아 연합대법회를 열어 부처님이 깨달으신 의미를 되새기고 저소득세대에 쌀을 지원하고 있으며 부처님오신날에는 봉축 떡나누기, 자비 장학금 전달사업 등을 펼치고 있다.
화계사에 주석하면서 세계 곳곳을 누비며 세계일화를 몸소 실천한 숭산스님의 가르침을 계승하기 위한 노력도 부단히 이어가고 있다. 세계 4대 생불(生佛) 가운데 한명으로 추앙받았던 숭산스님은 1991년 화계사에 국제선원을 개원했을 뿐만 아니라 미국 하버드대학 등지에서 신학을 공부한 엘리트였던 현각스님을 불교에 입문시키는 등 5만명이 넘는 외국인 제자를 양성했다. 숭산스님과 그 제자가 세운 해외 선원은 30개국 120여 곳이 넘는다.
화계사는 지난 2004년 숭산스님이 원적에 든 이후에도 미국 LA 태고사와 무상사 등지에 수행비를 지원하고 있으며 한국불교를 알리는데 소홀함이 없도록 매진하고 있다. 화계사 국제선원에는 하안거와 동안거마다 벽안(碧眼)의 외국인 스님들이 숭산스님의 가르침에 따라 화두를 참구하고 있다.
“누구에게나 열린 도량 만들 터”
화계사 주지 수암스님
“그동안 자비나눔과 문화공연, 종교화합, 복지관 운영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지역사회에서는 화계사가 뭔가를 한다는 건 많이 알고 있지요. 하지만 여기에서 머무를 수는 없는 것 또한 사실이지요. 미래를 위한 마스터플랜을 잡아 나가려고 합니다.”
지난 2월25일 만난 화계사 주지 수암스님은 인터뷰를 통해 이같이 강조했다. 화계사는 신도교육을 통해 기도와 나눔, 변화를 앞장서 실천해 온 사찰로 널리 이름나 있음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비전을 제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자본주의의 심화로 팍팍한 삶속에서 새로운 위안을 찾고자 하는 이들이 많은 반면, 탈종교화 현상 또한 강해질 전망이다. 수암스님은 불자들의 신심증장프로그램 개발 뿐만 아니라 누구나 쉽고 편한 마음으로 찾아와 힐링하면서 소원도 빌 수 있도록 화계사를 만들어 나가겠다고 서원했다. 이를 위한 새로운 방편으로 오는 2018년 4.8m 높이의 야외 미륵석불을 조성한다는 방침이다.
“법당에 들어와 기도하고 불전함에 시주하는 불자는 갈수록 줄 것으로 보입니다. 미륵석불을 조성해 비종교인이라도 석불 앞에서 소원을 빌고 소원지도 쓰면서 마음의 위안을 찾고 불교와 조금 더 가까워 질 수 있도록 인연을 맺어주기 위해 준비중입니다.” 미륵석불 조성불사를 위해 지난 2월26일 영광 마라난타사를 시작으로 33석불을 순례하는 대장정에 들어갔다. 이후에도 구산선문, 백제불교, 신라불교 순례 등 테마가 있는 신행프로그램을 계속 이어감으로써 심신증장에도 도움을 주겠다는 구상이다.
“안주하는 순간 더 이상 발전을 기대할 수 없지요. ‘참선수행과 국제포교 중심사찰’, ‘기도와 나눔으로 함께 하는 화계사’라는 슬로건에 맞게끔 화계사 사부대중과 함께 새로운 원력과 지혜를 모아나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