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가 머문자리

그렇게 마음이 통한 두 사람은 버스를 기다려서 타고 면 소재지의 파출소로 가는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게 되고 이야기 끝에 어쩌다 불목하니가 됐냐는 성철이 물음에 불목하니는 자기의 내력을 간단히 말했다.불목하니의 이름은 김홍식이고 고향은 강원도 영월이며 집안은 남의 집 소작을 하는 가난한 농부의 아들이었다.어려서는 아버지의 일을 도우며 열심히 살았지만, 차차 나이가 들며 가난 때문에 초등학교를 겨우 졸업하고 중학교도 못 가게 되자 중학교도 못 나온 자기에게는 앞날이 없다는 생각이 들고 또 논도 몇 마지기 안 되는 그것도 남의 논을 짓는 소작하는 일을 해보아야 평생 가난을 면치 못하리라는 생각에 농사짓는 일에 더욱 흥미를 붙일 수가 없어 집을 나와 객지로 떠돌게 되었다.그래도 천부적으로 강한 체질을 타고 태어나 그것을 무기로 한때는 서울에서 깡패조직에 들어 사고도 치고 감옥살이도 하다 나이 들면서 그 짓도 못 하게 되고 젊어서 건달 생활은 하며 하루하루를 되는대로 사는 바람에 모아놓은 재산도 없고 농촌 출신이어서인지 늙으면서 점점 도시 생활이 어렵고 마음도 허하여져 고향 떠난 지 30여 년 만에 고향을 찾아 내려왔다.그러나 고향에 계시던 부모님은 그동안 돌아가시고 몇 안 되는 형제들도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뿔뿔이 흩어져 고향을 떠났고 그들이 간 곳을 아는 사람이 없고 낯익은 사람(성철의 처지를 이해하는 사람)들도 별로 없어 고향에서도 마음 둘 곳을 찾지 못하고 술이나 먹고 방황하고 있는 것을 먼 친척 되는 얼음골 주지 스님이 탁발을 나왔다가 그날도 술집에서 시비 벌리며 난동을 부리는 홍식을 구슬려 얼음골로 데리고 가서 불목하니를 삼았고 올해로 불목하니가 된 지 5년여가 지났다고 한다.하여 따지고 보니 불목하니의 나이는 적어도 육십이 넘어 성철보다 대여섯 살은 많은 것이다.해마다 한두 번은 얼음골 산사에 가는 성철이 불목하니와 만나면 서로 안면이 있어 간단히 목례만 할 정도였지 오늘처럼 같이 다니며 이야기를 한 적은 없어서 불목하니에 대하여 전연 아는 바가 없던 성철은 불목하니의 긴 이야기를 듣고는 “고생을 많이 하셨군요.” 했다.“고생은요. 그만한 고생은 누구나 하는 것이죠.”불목하니가 웃으며 한 말이다.그 말을 들으며 성철은 ‘이 사람도 오랫동안 절에 있더니 스님이 다 되었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불목하니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면 소재지에 있는 파출소에 도착하여 얼음골 사건을 신고했다.주검을 신고받은 파출소에서는 이것은 관내 파출소가 생긴 이래 처음으로 생긴 큰 사건이라며 처음에는 담당자들이 어떻게 처리하여야 할지 몰라 당황했으나 외출에서 돌아온 파출소장의 지시로 영월경찰서에 사건 발생 보고를 하고 한편으로는 순경 두 사람을 현장으로 보내 현장을 보존시키도록 했다.그래서 불목하니는 순경들과 같이 얼음골 산사로 성철은 집으로 돌아갔다.성철이 집에 돌아오자 불목하니와 같이 면 소재지로 간 성철의 행동에 의문을 가지고 있던 처가 성철에게 무슨 일로 불목하니와 같이 면 소재지를 다녀왔냐며 꼬치꼬치 따져 묻는다. 지금까지 사건의 내용을 숨기고 있던 성철은 처도 내용을 알아야 알 것 같고 또 그런 일이야 없겠지만 나중에 혹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대처가 가능할 것 같은 생각에 사건을 이야기해 주었다.이야기를 들은 성철 처도 놀라고 무서워 몸을 떨었다.특히 그 사람이 절에서 며칠 묵었었다는 말을 듣고는 앞으로 무서워 절에 어떻게 가느냐며 걱정을 한다.그 모습을 본 성철이 “절에서 당신한테 이야기하면 당신이 무섭고 놀라서 눈 덮인 산길을 지나 집에 오는데 어려움이 생길까 봐 당신한테는 숨겼던 거야.” 하고 덧붙였다.“그러게 말이에요. 내가 알았다면 무서워서 혼자선 한 발자국도 못 움직였을 거예요. 어쩌다 그런 일이 절에서 생겼을까?”하고 성철 처도 동감을 한다.그리고 다음 월요일 오후에 농협으로 형사가 성철을 찾아왔다.형사는 성철에게 주검을 발견하게 된 경위를 물었고 성철은 다시 한번 주검을 발견하게 된 동기와 그 후에 한 일들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하였다.설명을 다 듣고 또 자기가 궁금한 것에 대하여 이것저것 묻고 난 형사가 수고했다며 일어나자 성철은 그동안 의문스럽게 생각했던 것에 대하여 물었다.“그런데 주검은 자살입니까? 타살입니까?”“시체에 외상이 전혀 없는 것으로 보아 자살인 것 같습니다.”“어떻게 그렇게 단정하세요?”“부검을 해보아야 알겠지만 약을 먹은 흔적을 발견했어요.”“참 안 됐네요. 자살 동기는 밝혀졌나요?”“아직은 모르지요. 현장조사도 아직 안 끝났으니.”“연고자는 나타났나요?”“아직은---”성철의 계속되는 질문에 형사는 다소 귀찮아하는 기색이 보인다.“그렇군요. 수고가 많으십니다.”“수고는요, 늘 하는 일인걸요.”“안녕히 가십시오.”“네! 안녕히 계십시오.”그렇게 성철을 찾아왔던 형사는 돌아갔고 성철은 일상적인 생활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