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에 대안문명의 바람이 일고 있다. 물질 중심의 가치관, 에너지 고갈,
공동체 파괴 등 기존 문명의 폐혜를 극복하자는 운동이다. 각 분야에서 새로운 생활방식과 제도를 만들려는 실험이 이뤄지고 있다. 1월부터 연재해
온 '대안문명-지구촌 현장을 찾아서'의 결산을 위해 관계 전문가 좌담을 열고 향후 대안문명의 세계적 흐름과 국내 전망.과제 등을 점검했다.
진행.정리=홍성호 기자 hario@joongang.co.kr
-유럽에서 대안문명 운동이 일어난 배경은.
▶장회익=유럽에서는 1960년대에 환경 문제가 대두하면서 대안문명에 대한 실험이 시작됐다. 생태계라는 큰 틀에서 문제를 해결해야겠다는 인식이
싹트면서 점차 문명.생활 운동으로 확대, 발전했다. 80년대 들어서면서 분야가 다양해졌다. 일본은 40~50년 전에 유전자를 이용한 농업을 시작했으나 건강.환경 문제 등의 폐해가 생기면서 유기농으로 돌아갔다.
▶유재현=대안문명 운동의 기본은 화석연료 위주의 20세기 패러다임에 대한 도전이다. 문명적.정신적 성찰을 강조하는 신(新)사회운동도 함께 일어났다. 기존 문명에 비판적인 지식인들이 출현해 대량 생산.소비의 산업구조와 삶의 문제를 함께 들여다본 것이다. 지구가 망하면 모두 함께 망할 수밖에 없다는 위기의식이 확산했다.
▶차명제=대안정치 실험은 독일에서 먼저 일어났다. 독일에서 사민당과 녹색당이 집권한 것은 환경.평화 문제 때문이다. 경제를 우려하는 반대세력도 있었지만 시민들이 환경 등 대안문명의 가치를 높이 산 것이다.
-현재 대안문명에 대한 관심은 어느 정도인가.
▶유재현=환경론자를 중심으로 점차 넓게 확산하고 있다. 예를 들어 궤도형 버스순환 시스템 등 메트로 시스템을 갖춘 브라질 쿠리티바시는 가장
살기 좋은 대안 도시인데 세계의 여러 나라가 이를 모델로 새로운 대안문명 도시를 만들고 있다. 중국 광저우(廣州)에서는 태양과 물만으로 유기농업, 축산, 물고기 양식을 하고 있다. 밭의 풀을 가축의 먹이로 사용하고 가축의 분뇨는 삭혀서 물고기의 먹이로 사용한다. 인공비료나 재료를 투입하지 않는데도 기존 농가에 비해 네배 이상 소득을 올린다.
▶장회익=슈마허가 '작은 것이 이익이다'라는 저서에서 2백7가지의 문명
혁신 사례를 보여주면서 분산 에너지 정책이 새 문명을 만들어 갈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졌듯이 앞으로 물질소모를 최대한 줄이고 환경을 살리는
'자연 자본주의'라는 개념이 많이 거론될 것이다. 미국의 에머리 로빈슨이란 사람이 해발 2천m의 로키산맥에 세운 연구소는 자연의 위대한 힘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곳에서는 에너지의 95% 이상을 태양을 이용해 조달하고 건물 안에서 바나나도 가꾼다.
▶유재현=사실 모든 산업의 비용은 대부분 에너지에 들어간다. 에너지는
문명의 기본이다. 태양 에너지만 이용해도 우리가 현재 사용하는 에너지의
1천배 이상을 충족할 수 있다. 개인이 에너지를 생산하게 되면 화석연료 사용 기업들의 독점을 깰 수 있다.
▶차명제=유럽.미국 등은 에너지.산업.교육.유기농.교통 등 각각의 대안문명 성공사례를 시스템적으로 연계하는 연구에 나서고 있다. 네덜란드.독일
등에선 정부가 대안에너지 목표를 정해 추진하고 있다. 독일에서는 풍력발전소 건설에 드는 철강이 조선분야에서 쓰는 것보다 많고, 대체에너지 개발에 참여하는 노동자 수가 군수산업 노동자보다 많다.
▶장회익=그렇지만 지난 20여년간 지구 온난화가 심화하는 등 대기의 질은
더 나빠지고 있다. 지구 차원에서 보면 '전투에선 이기지만 전쟁에서는 지는 형국'이다.
-앞으로 어떻게 진행되리라 보는가.
▶장회익=대안문명이 확산하려면 경제적으로 풍요롭고 더 사람답게 살 수
있다는 게 입증돼야 한다. 그러나 아직까지 그런 증거가 없어 급속히 퍼지지 않고 있다. 대안문명의 실현에는 개인들이 기득권을 포기하고 본래의
도시 생활 터전에서 고립돼야 하는 희생이 따른다. 대안문명은 생산공동체가 전제돼야지, 소비나 영성공동체로 나아가면 보편화되는 데 어려움이 있다. 그런 면에서 유기농.지역화폐.공동구매.공동생산.공동이윤 분배 등이
성공적으로 이뤄지는 스페인의 몬드라곤시가 모델이 될 수 있다.
▶차명제=메이저 석유회사 등도 구조적으로 대안에너지의 정착을 어렵게
한다. 이들이 직.간접으로 소규모 집단의 조직화를 방해하는 것이다. 대안문명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극복해야 한다. 교육받은 이들이 주변을 설득해야 한다.
▶유재현=지금까지 개인들이 주류사회에서 빠져나와 소박하게 생태공동체 등을 이뤘다. 이제 이런 사람들이 서로 정보교환을 하고 새문명 운동체들이 연대해야 한다. 세계문명이 잘못되면 글로벌 재앙으로 함께 죽는다는
인식하에 세계적인 연대가 필요하다.
*** 참석자
- 장회익(녹색대학 총장) 유재현(녹색미래 대표) 차명재(성공회대학교
NGO대학원 교수)
국내 대안문명 현황과 과제
시민들 무관심 가장 큰 문제, 몸으로 느끼는 대안교육 필요
-우리나라에서 대안문명 실험은 어느 정도까지 진행되고 있나.
▶김제남=우리나라는 1960년대 이후로 물질 중심의 문명에 젖어 환경파괴.생명경시 등의 문제에도 불구하고 자연.이웃과 더불어 살자는 목소리가 늦게 나왔다. 최근에야 시민사회가 활성화해 대안 모색이 시작됐다. 그간 우리는 빠른 산업화에 대한 성찰의 기회를 거의 갖지 못했다. 서양은 산업화
기간이 길어 그에 대한 비판.성찰의 시간도 길었고 철학적 사상으로 발전돼 생태운동을 뒷받침했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joins.com%2Fcomponent%2Fhtmlphoto_mmdata%2F200304%2Fhtm_2003042916543914001450-001.JPG)
▶이필렬=한국에서는 유기농이나 생태 공동체 정도가 언론이나 시민의 관심을 끌 뿐이다. 우리 생활의 밑바탕을 이루는 에너지.산업 등 하드웨어 부문의 대안 문명화에는 관심이 없다. 유럽에서는 이런 하드웨어적인 변화와
실천이 문화.소비.공동체 등의 운동과 함께 가고 있다.
▶이귀호=기업들도 아직 생태산업 단지에 대한 개념이 없다. 당장의 제품생산에 문제가 없기 때문에 생태산업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최근 수출품의 환경규제가 심해지자 조금씩 관심을 갖는 정도다.
-대안문명 실험이 쉽게 이뤄지지 않는 이유는.
▶이필렬=우선 시민들이 무관심하다. 태양열.태양광 등 대안 에너지를 어려운 것으로 생각한다. 관심이 있더라도 설치비용 문제에 맞닥뜨리면 한발
물러난다. 사실 설치비용은 장기적으로는 충분히 뽑을 수 있는데도 그렇다.
▶김제남=대안교육도 현실적으로 대중화가 쉽지 않다. 어떤 부모가 대안학교에 자식을 집어넣으려고 해도 학교가 너무 멀리 떨어져 있고, 졸업 후에도 대학 등 정규코스를 밟아야 하는 등 문제가 많다. 제도권 교육이 일정
부분 대안교육 역할을 해줘야 한다.
▶이귀호=생태산업은 각 기업들의 부산물들을 먹이사슬 구조로 만들어야
하는데 그런 기업들을 찾아 연결하기가 어렵다. 기업의 의식도 문제다. 오염물질 처리만 생각하고 오염물질이 나오지 않게끔 하는 데는 생각이 미치지 못한다.
▶김제남=제도적인 걸림돌도 많다. 유기농을 위해서는 환경농업육성법이
있지만 농민 입장에서 장점이나 이익이 많지 않다. 구색 맞추기식 제도들을 바꾸고 농업 유통구조도 바꿔 현재의 지역단위에서 공동체 경작이나 도농 직거래 활성화 쪽으로 가야 한다.
▶이필렬=우리도 지난해 9월 대체에너지 촉진법이 발효돼 개인이 생산한
에너지를 한국전력에 팔 수 있게 됐지만 발전사업자 허가 등의 조건이 개인이 하기에는 불가능하다. 법 외의 장벽이 너무 많은 것이다. 독일 등 유럽은 제도가 잘 돼 있고 가정에서 태양에너지 생산 설치비용을 장기 무이자 융자로 지원해 준다.
-대안문명을 정착시키려면 정부의 지원도 필요할 텐데.
▶이귀호=생태산업 단지를 활성화하려면 단지 내의 기업뿐 아니라 외부기업과 연결해도 폐기물 운반 등에 대한 규제를 풀어주고 산업단지 내에서
먹이사슬을 형성할 수 있는 기업들을 육성하는 지원법이 있어야 한다.
▶이필렬=교육이 중요하다. 교과 과정에 대안교육이 반영돼 있지만 몸에
배는 교육이 되지 못한다. 대안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지도자로 나서 대안문명을 이끌어야 한다. 교육이 성공하면 다른 것들은 쉽게 따라간다.
▶김제남=대안문명의 카테고리를 활동 영역으로 하는 풀뿌리 시민단체가
많이 생겨야 한다. 이들 비정부기구(NGO)들이 연계.교류해 새로운 삶의 모델들을 시민들에게 제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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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4.29. 2003 Joins.com All rights reserv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