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환, 김광한, 두시의 데이트 김기덕입니다.
그 시절 서울 변두리 라면집에만 가도 ( 그 후진 망우리에도 송곡여고 영란여중상이 있어 그런 탓) 엘피판을
전시하고 음악을 틀어주며 신청곡을 받던, 추억과 낭만으로 점철되어 있다.
이를테면 아들과 딸에서 장발같은 긴머리에 엉덩이 뒤 주머니에 도끼빗을 꺼내어 개폼을 잡던
디제이 지망생들에겐 희망의 출발출장소는 아니었을까.
허스키한 세일링이란 음악을 틀어주며 날린 멘트는 그 무슨 쓸데없는 철학을 담고 있던 것이었을까.
인생 또한 세일링이라고 하진 않았을까...
글을 옮기던 중 언론통폐합으로 지금은 없어진, 전일방송의 서수옥의 밤의 데이트인가 하는 음악프로그램도 아련히 생각난다,
관련된 기억이 있는 사람들은 많은 댓글 부탁드림.
라디오가 일상화 되던 그 시절.
대원전기밥솥을 열심히 광고하며 시작했던 죄는 밉지만 인간은 미워하지 말라고 일장훈시 했던 법창야화.
지금은 고인이 된 김자옥의 사랑의 계절.
생겼다가 없어진 수 많은 라디오 프로그램들.
우리시대의 그것들은 추억의 저장소는 아니었을까....
지금이야 FM이란 고음질로 배철수의 음악을 출퇴근 시간에 유유히 듣고,
막힌 길을 짜증대신 음악으로 위로하고,
그래도 라디오가 주는 과거의 서정성은 오십대 후반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흐르는 강처럼 마음에 흐르고 있다.
사는 건 흐르는 세월만큼 나이를 먹어가고 있는거겠지...
그 추억의 라디오를 생각하며,
느그들의 마음 한켠에 자리잡은 라디오프로그램은 무엇이 있었는 지 쓸데없이
궁금해진다.
첫댓글 웅호야.
중학교 2학년땐가 관제옆서에
라디오 프로그램에 신청곡을
보낸적이 있었는데 그 곡이 사연과 함께 나오는데 세상을 다 얻는거 갔더라
누구를 위해서 보냈는데 들었는지
나 혼자 설랜적도 있었단다
멀 리서 아주멀리서 고향 친구들 그리워하며 글 올리는 너에 정성에 감사함을 전한다
오늘도 술한잔 올려 놨으니까
그림이라도 음미하길. ..
오면 사주께 ㅎㅎㅎ...
그래 맞다.하얀색 관제엽서! 연말시상식 때 투명 유리통에 수도 셀 수 없는 엽서들이 자기사연을 꼭 전해달라고 목을 빼던 그 아날로그 시절이 그립기만 하다. 수학여행지에서 팔았던 관광지엽서들이 지금 보면 사제엽서였던거시였다. 펜팔이란 코너도 선데이서울 같은 잡지에도 한 모퉁이에 있었는 데,,일할 때도 건강챙기고, 안전조심하고, 쉬엄쉬엄 그리고 천천히,,,,
승률이가 이성에 눈을 빨리 떴구나 ! 그녀는 누구 ???
얼마전 그중의 한 분 김광한씨가 세상을 떠나셨다. 손윗동서의 오빠분도 김광한씨랑 친하던 DJ셨고. 난 엽서를 보낸적은 없지만 광주에서 서수옥씨가 진행하던 라디오 프로그램을 가끔 들었던 적이 있었지. 그나저나 궁금해지네? 승률이의 누구가 누구신지? 그건 비밀이겠지? 법창야화 생각난다. 여름이면 납량특집,그땐 온식구가 여름이면 평상에 누워서 하늘의 은하수를 바라보면서 모깃불 피워놓고 우물속에 둥둥 띄워놓았던 수박 탁 쪼개서 나눠먹으면서 듣던 으시시한 전설의 고향 등등 참으로 많은 추억이 있었네. 언제 우리 마주앉아서 옛날 이야기 하는 그런 날이 오겠지? 꼭!
한때는 임국희 엠비시 여성싸롱 바구니에 가득찬 행복. 물론 여성들의 한 많은 이야기들이 주종을 이루었지만, 때론 감동적인 이야기들로 사람들의 마음을 뭉클한 사연도 참 많았다. 속사포같은 그녀의 말재간에 후련하기도 하고,,그 뒤엔 강부자 황인용 , 양희은 등등 그렇고 그런 비슷한 프로그램들이 살포시 자리를 잡았는 데, 지금은 7080노래도 한장르로 자리잡은 코너도 있던데,,아무튼 라디오는 내 친구라는 카피가 마음에 또 다시 자리메김 한다. 밤을 잊은 그대에게 좋은 밤되길 ,지금 이시간은 아침.
기수기 같은디, 아닌가, 아녀도 책임 못져, 내 마음의 보석상자는 추억 그대로 놔두는 게 옳겠지. 첫사랑처럼,,,,
서수옥 선배 ... 그 양반 광주 편성국장할 때 회의 끝나고 소맥으로 일갈 ... 그 양반도 이제 전설이 돼 가는구나 ㅋ
@woonghokim 웅호는 걸어댕기는 추억의 백과사전이다
요럴때는 아뭇소리안하고 있었야하는건가?
여친들이 옆구리 찔러 보는 건 그래도 괜찮지 않을까. 과거로부터의 자유함이 있을 때 비로서 그녀를 완전한 과거로 돌려 보낼 수 있는것처럼,,,, 밤을 잊은 그대여. 이젠 카페 불끄고 신랑옆에 진한향수 뿌리고 잠좀 자렴,,,,ㅎ
아참! 기억나는 게 있다. 점심시간 11시 55분에서 12시까지 성우가 누구더라, 아 생각난다. 구민! 반공이념으로 주로 북한 김일성에 대한 이야기를 ,,배경음악으로 두만강 푸른물에 깔면서 ,어려운 북한 삶을 일갈했던, 우리시대의 이야기다. 꼭 오전수업을 마치고 집에 오는 길에 길거리에 있는 찢어진 스피커에서 구성지게 흘러 나왔는 데,, ~옛날로 돌아가서~~그 노래를 읊쭈려본다.
김삿갓 북한방랑기! 어렸을 적 그걸 들으면서 그게 방송이란 생각은 못하고" 저 할배는 어떻게 북한을 맘대로 다니나?"하고 의아해했던 생각이 나네. 멍청하게시리.ㅎㅎ
그리고 저 망우리 영란여상도 나하고 인연이 있다.교생실습을 나간곳이 바로 그곳. 학생들과 떡볶이집에 가면 근처에 있는 송곡여고 아이들도 우르르 들어와 맛나게 먹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곳의 짜장 떡볶이는 아직도 있을런지. 벌써 34년전 추억이네 ㅎ
사당동에서 종연이랑 만났을 때 그리 이야기 했었지. 같은 재단이기도 했으닌까. 교생실습하니 나두 기억나는 추억이 참 많다. 내가 다닌 서울사대부고도 서울대생들이 교생실습오면( 우린 최초의 남녀공학이었으니) 우리에겐 하나의 축제의 기간이였다. 부디 오해마시길 음악4년생들의 실습시간은 꽃중의 꽃이었다. 아마도 연상녀를 마음에 품었던 추억도 봄의 아지랭이처럼 아련하기만 하다.
우리의 청춘시절을 그야말로 푸른감성으로 이끌어 주셨던 디제이분들이 가고나니 그 시대가 더욱 그리워지네.
웅호 출퇴근시간을 외롭지않게 해주는 라이오친구가 있어 다행이다.
나도 오늘아침 '세일링'한번 들었네. ㅎㅎ
서울친구가 방학때 내려와서 디스코 가르쳐 주었을때 불렀지ㅡ.
Tomjones의 Keep on Running 카셋트 틀어놓고 신나게 흔들어대고......
모범생들은 아닌가?
승률이는 제법 다리좀 움출거렸을거고.... ㅎ 손가락으로 하늘 많이 찔러 댔지아마? ㅎ
DJ 하면 다방 DJ 아니냐? LP판 돌리다가 전화호출도 해주고 ㅎ
내 친구는 그 큰 도끼빗을 어디서 구했는지~
지금도 뒷주머니에 넣고 다닌 넘이 한마리 있단다.
근데 그 녀석은 머리가 거의 없는 대머리야~~ㅋ
갸가 게그맨이 소원이었던 친구인데~
사는거 자체가 게그야~
그 웃음 보따리가 지금 영흥화력발전소장을 하고 있으니~
그 직장은 얼마나 활기가 넘치겠냐~~ㅎㅎㅎ
글고~
그 옛날 콩기 촌넘이 종로 음악감상실 "르네상스"인가를 웅호를 따라 첨으로 갔는데~
빨간 불이켜진 진공관을 통해 흘러 나왔던 알수없는 감미롭고 그 아름다운 음악을 듣고~
미친넘처럼 잠깐 경끼(?)를 일으켰던 기억이 아스라한 저편에서 있구나...
참말로? ㅎㅎㅎ.스무한두살때 만난 콩기는 제법 긴 머리에 시커먼 뿔테안경쓰고 다녔었는데, 지금은 세상을 떠난 박영숙이랑 연주랑 수원에 있던 딸기밭에 갔던 일이 생각나네.
닌 별것같지 않은것조차까지 기억하고 있구나. 생각하는것만큼, 그리움을 가슴에 지닌만큼 우리들 가슴에 화석처럼 남는 모양이다...그 사회초년병시절까지도 기억하며,,. 주어진 사소한것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넘 좋다.
기왕 말이 나왔으니. 아니지 기왕 글이 나왔으니 , 서울시청 뒤에 있는 그 시절 7080의 명소 "코러스"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는지요. 가끔씩 가서 좋아하는 애창곡을 함께 부르고, 무대에 올라가서 당당하게 자기의 실력을 뽐냈던 그 옛날이 오늘의 희미한 추억이 되었다. 이용복의 눈을 감으면 저멀리서 다가오는 다정한 그림자....... 그 노래가 불현 듯 생각남은 왜일까. 친하게 지내 지 못한 건 서로의 삶의 발자취가 피차 달라을 뿐 , 카페속에서 서로가 작은것에 위로해주며, 작은 전화한통에 작은 관심을 표현하며 살아가는 좋은 친구들이 있어, 우리들의 카페 홧팅!
난 코러스는 모르겠다. ㅎ 조그만 관심이 우리의 삶에 윤기와 사랑으로 커다란 힘이 되어지리라. 모두, 이곳. 저곳 힘내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