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범회장님의 카톡에서]
우리국민이 이룩한 77년간 우리의역사
*우리는 일본속국에서 해방된 나라가 되었다.
*우리는 왕정국가에서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되었다.
*우리는바지 버선 나라에서 신사의 나라가 되었다.
*우리는 짚신의 나라에서 신발수출 1위의나라가 되었다
*우리는 초가집의 나라에서 아파트의 나라가 되었다.
*우리는 호롱불의 나라에서 원전 수출의나라가 되었다.
*우리는 사랑방글방의 나라에서 세계제일의 문맹이 없는 나라가 되었다.
*우리는UN의 도움으로 나라를 지킨나라에서 UN 사무 총장을 배출한 나라가 되었다.
*우리는 외화벌이 노동수출의 나라에서 노동수입국이 되었다.
*우리는 숭늉의 나라에서 커피 왕국이되었다.
*우리는 짐보따리의 나라에서 재벌의 나라가 되었다.
*우리는 가마의 나라에서 자동차 천국의시대가 되었다
*우리는 행길의나라에서 거미줄 고속도로 천국이되었다.
*우리는 거북선나라에서 선박수출 세계제일의 나라가되었다.
*우리는 대장간의 나라에서 제철 왕국 이되었다..
*우리는 5일장의 나라에서 백화점, 대형마켓 의 나라가 되었다.
*우리는 비행기 없던 나라 에서 초음속 전투기를 생산하는 나라가 되었다.
*우리는 활쏘는 나라 에서 전차, 대포, 전투기 를 수출하는 무기 수출 8위의 나라가 되었다.
*우리는 달을보며 계수 나무 부르던 나라에서 달을 탐색하는위성을 쏘아올린 나라가 되었다.
*우리는 판소리의 나라 에서 K-팝수출의 나라가 되었다.
*우리는 천막 극장의 나라에서 세계적인 영화배우, k팝스타를 배출하는 나라가 되었다.
*우리는 마라톤만1등의 나라에서 태권도,수영,빙상,골프,양궁,배드민턴,탁구,펜싱,야구등 1등국가가 되었고 올림픽을 개최한 나라가 되었다.
*우리는 60불의 나라에서 35,000불의
세계가 인정한 세계10위의 선진국이 되었다.
*이상이 광복77년만에 우리국민이 이룩한 쾌거이며 자랑입니다.
대한민국 화이팅입니다.
그래서 모두가 더욱
건강하시고 평안이 함께 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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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과응보
(因果應報)🍒💕
🍒어느 60대 후반의 부부가~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조용히 식사를 하고
있었다.
🍒" 좀 있으니 젊은 20대쯤
보이는~
▶️남녀 둘이 음식을 들고
들어와 노부부 옆 식탁에
앉아 식사를 했다.
🍒식사 도중에 노부부 아내가
물컵을 바닥에 떨어뜨려~
▶️옆에서 식사하던 젊은
남녀가 깜짝 놀랐다.
🍒옆 자리서 젊은 남자가
한다는 소리 왈(曰),
▶️ "시발 늙어가지고 기어
나와서 민폐 끼치네!
🍒늙으면 집에 박혀있지!
▶️왜 나와서 지랄인지!
🍒" 노부부 남자가 한마디
합니다.
▶️나이가 먹으니 실수가
많아지네요?
▶️놀라게 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나이는 쳐먹어 가지고
냄새나는 것들 쩝..!!
▶️야! 틀딱이들 재수없다.
나가자.
🍒음식을 먹다 말고
두 남녀는~
▶️밖으로 나갔다.
🍒밖으로 나간 젊은 남녀가
탄 차가 후진을 하다가~
▶️옆 차를 드르륵 긁어
흠집을 냈다.
🍒노부부도 음식을
다 먹은 뒤라~
▶️밖으로 나와 차를
타려고 하니!
🍒다른 차가 노부부
승용차를~
▶️쓰으윽 긁는게 아닌가~
🍒노부부 차는 1억 8천만
정도의~
▶️최상급 "메르세데스
벤츠"였다.
🍒두 젊은 남녀는 차에서 내려~
▶️긁힌 상황을 보고
어쩔 줄 몰라했다.
🍒나타난 차 주인을 쳐다보니!
▶️자기가 저질 스럽게
욕했던 노부부의 차가
아닌가?
🍒막말하던 젊은 남자가
머슥해 하며 하는 말이~
▶️어르신, 죄송합니다.
▶️갑자기 악마가 천사로
변한 것이다.
🍒노인분이 하는 말~
▶️차 운전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요?
🍒보험회사에서 지금
온답니다.
▶️그분과 얘기 하세요?
🍒나이 먹어 가지고,
▶️밖으로 돌아다녀
죄송합니다
🍒막말한 젊은 남자는~
▶️피가 꺼꾸로 쏟았다.
🍒보험회사직원 언동에
의하면~
▶️이 정도의 흠집이라면
수리비만 2,500만원
정도 배상해야 한다네요?
▶️오지게 걸렸네~
🍒노인 분이 말했다.
▶️당신이 식당에서
우리에게~
🍒심한 욕지거리만
안했다면~
▶️난 수리비를 청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올바른 인성으로~
▶️어른들에게 대하세요?
🍒당신도 머지않아~
▶️노인이 된답니다"라고
말하고,
🍒노인 부부는~
▶️차를 타고 가버렸다.
🍒사람은 친절이~
▶️힘이고 신용이다.
🍒젊은이들이여!
▶️늙었다고 무시하면
안돼요?
🍒당신들도 미래의~
▶️노인들입니다.
🍒이 글은 1억원씩 내고 봐도~
▶️아깝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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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하고 싶은 사람
언제부터인가~
오랫동안 동행하고 싶은사람은
맘 편하고 대화가 잘되는 사람이더라
잘나고 똑똑하고 성공한 사람보다,
길거리표 🍵
커피 한잔을 마셔도
향기가 전해지고 웃음을 주는
마음을 터놓을수 있는 사람~
이런 사람은
나이가 많든적든 상관이 없고
비온뒤 맑게갠 하늘처럼
청명한 마음이 느껴지더라 ~
이 한세상
나와 동행할 사람으로
가슴 따뜻한 참좋은 그대~
그대에게 나도
한번쯤 기대고 싶고 오래도록 함께하고 싶은
맘 편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ksd
🎀편안한 친구~
http://m.blog.daum.net/soj3882/216?tp_nil_a=1
ㅡ
🎀배려하는 마음
https://m.blog.naver.com/sby5600/222296987885
🎀끝이 없는 우정
https://m.blog.daum.net/soj3882/249?np_nil_b=-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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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 유능한 지도자
신문사에서 유럽의 몇 몇 잘사는 나라들을 취재하러 가서 독일에 들렸을 때 들은 이야기이다.
독일 주재 한국대사관의 주선으로 예정된 취재를 끝내고 짬이 생기기에 프랑크푸르트에서
무역업으로 성공한 대학 후배의 안내로 스위스를 관광하게 되었다.
후배는 아우토반이라는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도로의 역사를 설명했다. “아우토반은 1920년대에 시작 됐지만 30년대 초 히틀러가 다시 계속해 만든 세계 최초의 고속도로입니다.
히틀러는 이 도로를 전쟁을 위해 만든 것이지만, 이 도로가 있었기에 세계 2차 대전 후 독일 경제부흥의 초석이 되었던 것이지요.”
그러면서 그는 우리나라 고위직으로는 아마도 고 박정희 대통령이 처음 이 도로를 지나가 봤을 것이라고 했다.
차를 타고 가면서 그가 들려준 박정희 대통령의 방독에 관한 이야기는 눈물 없이 들을 수가 없었다.
“사실 박 대통령의 방독은 단군 이래 처음으로 대한민국 대통령이 국빈으로 유럽국가에 초청된 첫 사례일 겁니다.
그런데 당시 서독정부가 한국대통령을 초청하게 된 동기는 한국인 광부들과 간호사들의 근면 성실하고 헌신적인 태도 때문이었지요.
” 후배는 당시의 감격적인 장면들을 기록영화를 보는 것처럼 설명해 나갔다.
독일은 우리나라 광부가 가기 전엔 유고슬라비아나 터키 혹은 아프리카 등지에서 광부들을 데려다 썼다고 한다.
그런데 이들이 너무도 게을러서 결국 광산을 폐쇄하는 일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온 광부들이 투입되면서 생산량이 엄청나게 높아졌고 이런 사실을 서독 신문들이 ‘한국인은 근면한 민족’이라며 대대적으로 보도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한 달 급여120달러에 보너스를 지급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었다고 한다.
또한 서독이 간호사가 필요했던 이유는 자국민들이 ‘간호사는 3D업종’이라면서 기피하는 현상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특히 특근수당을 많이 준다고 해도 야간에 일할 독일인 간호사가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한국에서 간호사들을 데려왔지만, 처음엔 후진국에서 왔다면서 주로 영안실이나 호스피스 병동에서만 근무를 하게 했다.
그런데 한국인 간호사들은 환자가 사망하면 그 시신을 붙들고 울면서 염을 하는 것이었다.
이를 본 유가족이나 관계자들이 깊은 감명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구나 서독 간호사가 자리를 비우거나 하면 한국인 간호사들은 주사도 놓고 환자를 극진히 보살피는 것을 보고 우리 간호사들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 뿐이 아니었다.
위급한 환자가 피를 흘리면서 병원에 실려 오면 한국인 간호사들은 몸을 사리지 않고 그 피를 온 몸에 흠뻑 적시면서도 응급환자 치료에 정성을 다했다.
만약 피가 모자라 환자가 위급한 지경에 빠지면 직접 수혈을 하여 환자를 살리는 등 그야말로 헌신적이었다.
이를 지켜 본 서독 사람들은 “ 이 사람들은 간호사가 아니라 천사다.” 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런 사실들은 서독의 신문과 방송에 연일 대서특필됐다.
서독에서의 소식은 유럽 전체로 퍼졌고 유럽인들은 이구동성으로 “ 동양에서 천사들이 왔다”고 말했다.
이렇게 광부들과 간호사들의 미담이 언론을 통해 전해지자 서독국민들은 “이런 국민들이 사는 나라의 대통령을 한 번 초청해서 감사를 표하자”는 여론이 확산되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한독협회 바그너 의장의 경우는 치료차 병원에 오면 꼭 한국인 간호사만 찾곤 했다.
그러자 기자들이 그 이유를 물었다고 한다.
바그너 의장은 “한국인 간호사는 주사를 하나도 아프지 않게 놓는 기술자여서 그런다”고 말해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를 지켜 본 서독 정부도 “그냥 있을 수 없다.”며 박정희 대통령을 초청하기로 한 것이다.
우리 정부로서는 이 초청에 응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오지 말라고 해도 가야할 다급한 실정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모든 준비를 했으나 큰 난관에 봉착했다.
일행이 타고 갈 비행기가 없었던 것이다.
한국이 가진 비행기는 일본만을 왕복하는 소형여객기 뿐인데 이것으로는 서독까지 갈 수 없었다.
그래서 아메리칸 에어라인을 전세내기로 했다.
그러나 미국 정부가 ‘군사 쿠데타를 한 나라의 대통령을 태워갈 수 없다’고 항공사에 압력을 넣어 그 마저도 무산되고 말았다.
궁리 끝에 서독에 특사를 보내 비행기 편을 얻어 보기로 했다.
창피하지만 달리 도리가 없었다.
한국정부는 당시 동아일보 사장이던 최두선 선생을 특사로 보내 뤼브케 대통령을 예방케 했다.
최 특사는 뤼브케 대통령을 만나 간곡히 간청했다.
“ 각하, 우리나라에는 서독까지 올 수 있는 비행기가 없습니다.
각하께서 비행기 한 대를 보내주실 수 없으시겠는지요?
” 뤼브케 대통령을 비롯해 서독의 관계자들은 최 특사의 이 말에 깜짝 놀라며 한참 말을 못했다고 한다.
결국 홍콩까지 오는 서독의 여객기가 서울에 먼저 와서 박정희 대통령 일행을 1.2등석에 태우고 홍콩으로 가서 이코노미석에 일반승객들을 탑승케 한 후 방콕, 뉴델리 , 카라치, 로마를 경유해 프랑크푸르트로 가는 것으로 합의했다.
1964년 12월 6일. 루프트한자 649 호기를 타고 간 박 대통령 일행은 쾰른 공항에서 뤼브케 대통령의 영접을 받고 회담을 한 뒤 다음날은 뤼브케 대통령과 함께 우리 광부들이 일하는 탄광지대인 루르 지방으로 갔다.
그곳 강당에는 서독 각지에서 모인 간호사들과 대통령이 도착하기 직전까지 탄광에서 일하던 광부들이 탄가루에 범벅이 된 작업복을 입은 채로 기다리고 있었다.
새까만 얼굴을 본 박정희 대통령은 목이 메어 애국가도 제대로 부리지 못하더니 연설을 하던 중에 그만 울어버렸다.
광부들과 간호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가 한 덩어리가 되어 부등켜 안고 통곡의 바다를 이루는 광경은 감동적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뤼브케 대통령도 울었고, 현장을 취재하던 기자들도 함께 울었다.
“연설을 마치고 떠나는 대통령을 붙들고 놓아주지 않았던 광부들과 간호사들은 대통령이 차를 타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일제히 “대한민국 만세” “대통령 각하 만세”를 외쳤습니다.
"후배는 이야기를 이어가다가 가슴이 벅찬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나 역시 가슴이 뭉클했다.
”뤼브케 대통령의 차를 함께 타고 돌아오던 박 대통령은 차속에서 계속 우셨다고 합니다.
뤼브케 대통령은 그런 우리 대통령에게 자기의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아 주었습니다.
언론의 보도를 통해서 “대통령을 붙들고 우는 국민들이 있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서독사람들은 하나같이 탄복해 마지않았다고 합니다.”
박 대통령이 방문한 후 서독정부는 제3국의 보증이 없이도 한국에 차관을 공여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국제관례가 있어 한국광부와 간호사들이 받는 월급을 1개월간 은행에 예치하는 조건으로 1억5천 9백만 마르크(상업차관 1억 5백만 마르크, 재정차관 5천 4백만 마르크)를 공여했다.
우리 광부와 간호사들이 본국에 하는 송금액은 연간 5천만 달러였다고 한다.
이 달러가 경부고속도로 건설과 중화학공업에 투자되었음은 물론이다.
“서독에서 피땀 흘린 광부와 간호사들이야 말로 조국 근대화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위대한 ‘국가유공자’ 들입니다.
” 그러면서 후배는 지금 우리가 달리고 있는 이 아우토반이 우리 대통령이 달렸던 바로 그 고속도로라고 강조했다.
“ 우리 대통령은 그날 고속도로를 달려오다가 세 번이나 차를 세우고는 도로상태 등을 면밀히 조사하면서 우셨다고 합니다.”
취재 노트를 뒤적이면서 이런 유능한 지도자가 없었다면 과연 오늘의 잘 사는 대한민국이 있었겠는가 하는 생각을 새삼 하게 된다.
그러면서 작금의 생각하면 걱정만 앞선다.
소득주도정책은 경제파탄을 자초했고, 안보 또한 위태하기만 한 나라, 희망이 없는 나라를 후손들에게 남겨주게 됐으니 어찌 잠이 오겠는가. 참으로 암담하기만 하다.
오늘도 당신은 좋은일만 있을겁니다.
2020.9 글 장석영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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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보름달 사진 모응]
달 구경하세요
https://m.blog.naver.com/johnjung56/222513453387
이번 추석은 100년만에 달이 가장 크게 보였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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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쫓겨난 할머니 (실화임)
아들을 생각해서 모든 재산도 다 미리 상속해주고
아들과 며느리와 함께 행복하게 살고자 했던 한 서울 할머니가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들과 며느리가 할 말이 있다며 말하기를
"어머니! 저는 어머니랑 마음이 안 맞아서 같이 못 살겠어요!
이제 집을 나가주세요!
나가서 혼자 사세요! "
"이런 짐승만도 못한 녀석들.....”
어머니는 그날 마음에 너무나 큰 상처를 받고 아들과 며느리에게 버림받고 돈도 없이 집을 쫓겨나야만 했습니다.
당장 먹고 살 곳도 없고 돈도 없고 정처 없이 그저 한 목숨 부지하기 위해 무조건 번듯한 동네를 찾아가서 벨을 누르고 파출부로 써달라고 슬픔을 참으며 할머니는 간절히 부탁을 하면서 돌아다녀야만 했습니다.
할머니는 심신이 모두 지친 가운데 계속 퇴짜를 맞다가 어느 집인가에서 할머니를 보고 그 집 주인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할머니~ 저희 집에 아버님이 병환으로 누워계시는데 혹시 외람되지만 가능하시다면 병간호 좀 해주시고 그냥 말벗도 좀 되어주시겠어요?
"아들과 며느리에게 쫓겨나 거처와 돈이 없었던 할머니는
"네! 그럼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할머니는 그날부터 그 집에 들어가 사랑과 정성을 다해 그 집 환자 할아버지를 돌보고 친구처럼 말벗이 되어주었습니다.
어느덧 그렇게 1년이 지날 쯤 할아버지와 예쁘장하게 생긴 할머니는 서로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되었고 그 집 주인 부부는 어느 날 이렇게 할머니에게 말했습니다.
" 할머니!
저.... 어려운 부탁이 있는 데요.
저희 어머니가 되어주세요!
아버님도 할머니를 너무 좋아하시고 저희 부부도 우리 어머니께서 너무 일찍 돌아가셔 어머니가 안 계셔서 어머니로 꼭 모시고 싶어요.
괜찮으시면 저의 어머니로 모시는 것 허락해주세요...."
그렇게 그 할머니는 그날부터 뜻밖의 간청을 받고 마치 재벌 동네 같은 지역에서 착하고 마음씨 좋은 아들, 며느리 또래의 그 집 어머니가 되었습니다.
어느 날 할아버지와 부부와 함께 고급 승용차를 타고 밖을 나가는데 정말 우연히 어디선가 오래전 그 할머니의 독자였던 아들과 며느리를 만났습니다.
아들이 오랜만에 어머니를 뵈니 놀랍게도 훤해진 어머니. 예전 모습이 전혀 아니었습니다.
매우 럭셔리하면서도 우아한 옷과 장신구를 한 어머니....
누가 봐도 한눈에 재벌 집 마나님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아니?
이게 어찌된 일이냐고 묻고는 당시 사업에 어려움을 겪게 된 그 아들은 다시 보게 된 어머니가 돈 좀 있어 보이니 그 아들과 자부가 말하기를 "어머니! 다시 우리 집에 들어오셔서 사세요.....
저희가 잘 모실게요! " 하니 할머니 왈 : " 누구신지요?
나는 당신과 같은 아들과 며느리를 둔 적이 없습니다.
내 아들과 며느리는 저기 있고 내 남편도 있습니다."
그 할머니는 그렇게 배반의 늪을 지나 신세계에서 새로운 삶을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이 사건은 실제로 있었던 일로 우리 모두에게 많은 느낌을 주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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