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사무소에는 대부분의 직원들이 남아 철야를 하며 마을을 순찰하고 추가로 발생하는 수해를 파악하고 내일부터 도와야 할 수재민의 지원계획을 세우느라 정신이 없다.
마을이 생긴 이후 처음 당하는 홍수로 어쩔 수 없이 입는 재산 피해는 피하지 못하더라도 인명피해는 최소한 줄이기 위해
더구나 형식의 집은 조금 외진 곳이긴 해도 지대가 높은 곳이어서 하루 밤사이에는 별 탈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해 순찰하는 사람들이 그곳까지 가지 않았고
형식도 낮에 멀리서나마 건너다본 집이 안전하다고 생각되고 수재민 구호에 정신이 없어 더 이상 집에 대한 생각을 하지 못했다.
무슨 일이 생겼으면 순영이 전화를 했을 텐데 순영에게서 전화가 없어 더욱 마음을 놓고 있었다.
그리고 혹 순찰하는 사람들이 근처까지는 왔더라도 물에 도로가 잠겨 건너갈 수 없어 그냥 먼 곳에 비 내리는 어둠 속에 묻혀있는 형식이네 집을 건너다보아서는 아무것도 보지도 못했을 것이고 홍수로 넘치는 물이 아우성을 치며 흐르고 있어 형식의 집안에서 사람이 고함을 쳤어도 아무도 그 소리를 듣지 못했을 것이다.
일부러 비에 흠뻑 젖어 들어간 영돈은 추위보다도 자기가 저지른 일 때문에
떨떨 떨다가 형식을 보자 숨이 턱 막힌다.
형식이 당장 달려들어
“너! 이놈의 자식! 우리 집에 가서 무슨 짓을 저질렀어? ”하며 멱살을 잡을 것만 같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심호흡을 하고 형식을 외면하며 어정저정 들어가지만, 부들부들 떨리는 몸을 주체하기가 어럽다.
면사무소를 들어서는 영돈을 본 형식이
“이 사람아! 어디를 그렇게 돌아다녀? 수해 지원도 좋지만 그러다 자네 병나겠네, 이리로 와 한잔 들어 그래야 몸이 풀릴 거야.”
하며 난로가 의자를 내주곤 소주 한잔을 따라 준다.
형식은 마을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비를 맞으며 동분서주하는 영돈이 여간 믿음직스러운 것이 아니다.
영돈은 형식의 그 말에 그만 울컥하고 눈물이 나올 것 같은 것을 억지로 참았다.
자기를 이렇게 믿고 사랑해주는 사람의 처자를 자기 손으로 죽이다니 지금이라도 사실을 말하고 용서를 빌까 하는 마음이 또 고개를 들었지만 그러면 자기는 죽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형식이 길길이 뛰는 성난 모습이 또 머리를 젓게 한다.
자연히 술잔을 받으려고 내미는 손이 가늘게 떨리고 몸에 오한이 오고 얼굴색이 붉게 변하고 형식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한다.
영돈의 그런 모습을 본 형식이
“자네 벌써 어디 몸이 불편한 것 아니야?”
“아! 네!”
영돈은 얼떨결에 대답한다.
“이 사람아! 자네 몸도 생각해야지 이렇게 무리해서 쓰나. 어서 한잔 들고 집에 들어가 쉬게. 이제 큰일은 없을 테니까.”
하며 돼지고기 안주도 한 점 집어준다.
“감사합니다. 계장님!”
다른 때 같으면 형님 하는 소리가 붙었을 텐데 오늘은 차마 형님 소리가 안 나온다. 자기가 저지른 일 때문에
몸을 떠는 영돈이 몸이 많이 좋지 않은가 보다고 생각한 형식은
“자네 몸이 많이 안 좋은 모양이니 어서 집에 들어가 쉬게”
하고 영돈의 등을 떠밀어 집으로 보냈다.
그렇게 면사무소를 나온 영돈은 집으로 향해가며 형식의 호의를 생각하며 다시 한번 자기 소행을 한없이 후회한다.
순영의 집을 무엇 하러 갔나?
갔더라도 처음에 생각한 것처럼 고백만 하고 왔으면 좋았을걸.
또 술을 그렇게 많이 먹지 않았으면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았을 걸.
어째 한순간의 욕망을 참지 못하고 그런 일을.
오늘 일을 잊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살아갈 수 있을까?
이놈의 홍수는 왜 와 가지고.
별생각을 다 하며 후회를 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이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집에 돌아와 누우면서 충격으로 정말 병이 나서 다음 날도 일어나지 못한 영돈은 형식의 집이 집 뒤에 있는 산의 붕괴로 일어난 산사태가 형식이네 집을 덮쳤다는 말을 듣고 더욱 마음이 괴로웠다.
산사태까지 날 것이라고는 생각 못 했는데
홍수로 불어난 물이 둑이 높을 때는 개울 안의 물의 수위가 높으나 영돈이 터놓은 둑으로 빠지며 물의 수위가 갑자기 낮아져 물 높이 때문에 수압으로 유지하고 있던 힘의 균형이 무너지고 또 흐름이 빠르게 바뀐 물이 산 밑을 파서 산이 무너져 내린 모양이다.
며칠을 앓으면서 자기가 이상한 행동을 하면 의심받고 그러다 잘못하면 자기의 죄가 탈로나니 평소처럼 행동 해야된다고 자신을 다잡은 영돈은 어렵게 몸살은 이겼지만, 홍수 나던 날밤 순영과 벌리던 싱갱이와 영애를 죽이던 꿈을 꾸며 무서운 악몽에 시달리면서도 아무 일도 없는 듯 다시 면사무소를 다니고,
사랑하는 처자와 집까지 잃은 형식은 마음이 잡히지 않아 근 한 달여를 방황하며 직장도 다니는 둥 마는 둥 하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다시 면사무소의 일을 제대로 하기에 시작했다.
그동안은 형식의 방황으로 형식과 영돈이 자주 부딪히는 회수가 적어 영돈이 그런대로 지낼 수 있었고 한 달여 후에는 날짜가 그만큼 지난 후 이어서 영돈이 형식을 대하기가 좀 편해진 점도 있지만 영돈은 실은 다른 이유로 형식을 생각할 틈이 없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처음에 수사는 답보상태를 면치 못했다.
비가 심하게 오는 날 밤에 사건이 발생했고 산사태로 현장의 모든 상태가 달라져 단서가 될 만한 것은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또한, 수해를 당해 정신이 없던 마을 사람들도 무엇 하나 제대로 기억하는 사람이 없어 목격자는 물론 이상한 것을 발견한 사람도 없고 수재민들은 제 코가 석자라 수사에 적극 협조도 하지 못한다.
답답한 상태에서 한 달이 갔다.
성과 없이 수사전담반은 해체가 되고 파출소에서 수사를 계속하고 있으나 아무런 실마리를 못 잡자 그 수사반에서조차 우리가 홍수로 죽은 사람을 타살이라고 조사하며 인력과 시간만 낭비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생기기 시작하고 그래서 수사는 더욱 지지부진하여 졌다.
그리고 형식과 안면이 깊은 형사들은 수사에 진척이 전연 없어 형식을 대하기가 민망하고 미안해했다.
그래도 형식과 친하고 타살에 무게를 크게 두고 있는 경찰서장이 파출소에 형편 따라 가능한 범위에서 수사를 계속하라고 지시해 수사가 명맥을 유지하고 계속되었다.
그렇게 6개월여가 지나게 되며 이제는 그나마 있던 파출소에서조차 수사가 유명무실하게 된 어느 날
영돈이 경찰서를 찾아 범행을 자백했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사건 후 앓아 누었던 영돈은 며칠 후 일어났으나 홍수 나던 날 밤 저질렀던 행위가 자꾸 꿈에 보여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가
순영의 시체가 발견되던 날 죽기보다도 가고 싶지 않은 형식의 집을 평소에 형식과 친분 관계상 안 가면 의심을 받을 것 같아 어쩔 수 없이 가서 그 장례에 참석하여 서도 자기가 지은 죄 때문에 당장이라도 순영의 시체가 일어나 달려들 것 같은 생각에 순영의 시신이 있는 빈소는 되도록 피하고 겉돌다 누군가가 자기 이름을 부르거나 지나가던 사람과 부딪히면 소스라치게 놀란다.
특히 상여가 나가는 날 평소의 상주는 물론 순영과의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영돈을 상여를 맬 사람 중 한 사람으로 뽑아 상여를 매게 되고 형식네와의 친분과 주위의 시선 때문에 못 메겠다고 할 수 없고 혹여 못 메겠다고 하면 의심받지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에 상여를 메게 된 영돈은 금방이라도 시체가 어깨 위에서 일어나 덮칠 것 같아 마음이 떨리고 몸이 떨려 발걸음이 천방지축이 된다. 그 때문에 상여가 잘 나가지 못하여 결국은 사람을 바꾸는 일까지 생겼다.
영돈의 그런 모습에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수해 때 몸살이 날 정도로 무리하여 아직 몸이 낫지를 않았고 또 그때 죽은 사람을 여럿 본 영돈이 아직 몸과 마음을 추스르지 못했고 특히 순영을 누나처럼 따르던 영돈이라 그런가보다 라고 사람들이 지레짐작하여 주어 의심받지 않았으나 영돈으로서는 참으로 얼른 피하고 싶은 자리였다.
더욱이 순영의 시체를 검사한 결과 순영이 타살로 판명되고 경찰의 수사가 시작되자 영돈은 금방이라도 체포가 되는 것 같은 공포에 얼마나 떨리고 무서웠는지 모른다.
그럴 때마다 자수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자수 후에 받을 형벌이 무서워 단념하곤 하였다
그런데 순영의 장례를 치르고 난 다음부터 더 심한 악몽에 시달려야 했으니
밤마다 꿈에 순영과 영애가 나타나고 꿈에 나타난 영애는 아무 말도 없이 영돈을 쳐다보며 처량하게 울기만 하는, 반면에 순영은 복수하겠다며 “이놈! 네가 나를 죽었으니 너도 죽어라!” 하며 달려들어 목을 조른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꿈속에 순영은 힘이 장사라 자기 힘으로는 도저히 당할 수가 없다.
목을 졸리어 캑캑거리며 숨이 넘어가는 것 같은 괴로움에 버둥거리다 제풀에 놀라 깨면 꿈이다.
꿈이 얼마나 생생한지 현실과 구분이 안 돼 꿈을 깨고도 한동안 숨을 제대로 쉴 수도 움직일 수도 없고 온몸은 땀으로 범벅이 되어있고 방안 어딘가에 순영이 서 있는 것 같아 벌떡 일어나 불을 켜고 방안을 살핀다.
그런 꿈이 밤마다 계속된다.
이렇게 되니 밤이 점점 무서워지고 밤에 잠을 잘 수가 없다.
밤에 잠이 부족한 영돈이 혹 낮에 졸기라도 하면 악몽은 거기까지 따라온다.
처음에는 자기가 심약하여 그런 꿈을 꾼다고 생각해 홍수가 지던 날 이후 그날 밤과 같은 잘못을 다시는 저지르지 않기 위해 작심하고 그동안 끊었던 술을 다시 먹어보았다.
그러나 술을 먹는 날은 술기운에 일찍 잠자리에 들게 돼 꿈꾸는 것이 빨라져 오히려 더 많은 꿈을 꾼다.
어렵게 수면제를 구하여 수면제를 먹어보았다.
수면제를 먹은 날도 약 기운이 강한 초저녁에는 꿈을 꾸지 않았지만, 새벽녘에는 더 무서운 악몽을 꾸게 된다.
그래서 조금씩 먹는 수면제의 양이 많아지게 되었는데 수면제의 양에 비례하여 악몽의 회수는 줄어도 길이가 길어진다.
이렇게 되어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는 영돈은 마를 수뿐이 없다.
영돈이 잠을 못 자고 마르는 것을 본 부모님은 영돈이 홍수 지던 날 여러 구의 시체를 보아 놀라고 또 귀신이 붙어 그런 것 같다며 처음에는 무당을 불러 푸닥거리를 해보고 그도 별 효과가 없자 병원엘 데리고 갔다.
병원에서 진찰 결과는 몸에는 아무 이상이 없고 불면증 증세가 심하다고 하며 불면증 처방을 해주었지만, 이것 역시 아무런 소용이 없다.
꿈을 꾸지 않으려면 잠을 자지 말아야 하니 의식적으로 잠자는 것 주리려고도 하지만 지친 몸에 잠이 와 잠이 들면 악몽으로 잠을 잘 수 없고 그 악몽은 나날이 더 심해지고 따라서 오랫동안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영돈은 이제 많은 신체적인 이상이 나타난다.
마르고 어지럽고 힘을 차릴 수가 없다.
이대로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다.
그냥 있으면 불면증과 악몽에 시달리다 기진맥진하여 말라서 죽을 것 같다.
이 악몽의 시달림에서 벗어나려면 자기의 죄를 자백하고 죄의 대가를 받는 것밖에 없다는 생각이 영돈에게 든다.
하지만 쏟아질 마을 사람들의 비판과 감옥에서의 생활 그리고 재판 후 사형당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영돈을 또 망설이게 한다.
밥맛이 없고 빈혈이 오고 힘이 빠져 나른하고 때로는 정신이 몽롱하고
그런 상태로 육 개월여가 지나자 영돈은 쇠꼬챙이처럼 말랐고 정신도 깜빡깜빡하고 서 있기도 힘든다.
죄의식은 점점 깊어진다.
결정을 하여야 한다.
이대로 악몽과 불면증에 시달리며 말라 죽어가든지 아니면 자수하여 죄의식에서 벗어나든지 아니 불면증에 시달려 죽더라도 죄의식에서나마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자기가 지은 죄로 사형을 받더라도
이런 생각을 하던 어느 날 밤
그날 밤에도 순영이 자기를 죽인다고 달려드는데 영애는
“엄마! 엄마!” 하며 다른 꿈 때와 같이 울기만 하는데 그 울음이 무척 슬프다.
참 이상한 일이다.
영애의 울음이 왜 그렇게 슬프게 생각되었을까?
그동안은 울면서 순영의 행동을 바라보는 눈물 어린 눈에는 원한이 가득한 했는데
자수하여 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고통 속에 지내는 내가 가여워서인가?
그만했으면 알아들어야 할 내가 망설이고 있는 것이 안타갑다는 의미일까?
그 꿈을 꾸고 난 다음도 여러 가지 생각하던 영돈은 마음을 결정했다.
자수하기로 그래서 죄의식에서나마 벗어나기로 이렇게 악몽으로 불면증에 시달리며 죄의식 속에 빠져 죽는 것보다 기왕에 죽을 것이라면 죄의식에서나마 벗어나서 죽기로 그리고 다음 날 경찰서를 찾아가 자수했다.
자수를 하고 나자 얼마 안 돼 영돈은 안정을 찾고 악몽도 더 이상 꾸지 않게 되었다.
순영과 영애의 영혼이 복수하기 위해 그렇게 잠도 잘 수 없게 밤마다 악령으로 나타난 것인지 아니면 마음이 약한 영돈이 깊은 죄의식으로 그런 꿈을 꾸었는지 영돈 본인도 알 수 없는 일이다.
마을을 떠들썩하게 했던 살인사건의 범인이 영돈이라는 것이 밝혀지자 마을은 벌집을 쑤셔 놓은 꼴이 되었다.
모든 사람들이 모이면 순영이 살인사건을 이야기하며 영돈을 비난한다.
살인죄를 지은 그것도 자기를 친 동생처럼 사랑하는 자기가 모시고 있던 계장의 처자를 죽인 영돈은 물론 죄인이지만 그의 부모도 같은 죄인이 되어 마을에서 고개를 들 수가 없게 되고 만나는 사람들마다 외면하며 죄인을 대하듯 한다.
영돈이 자수하고 영돈의 부모는 형식을 찾아와 백배사죄를 하였지만, 그것이 형식의 마음을 풀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마을 사람들에 원성을 낮추는 것도 못됐다.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무슨 더러운 것을 피하듯 그들을 피한다.
기분 같아서는 마을을 떠나고 싶지만 모든 생활의 근거를 버리고 다른 곳에 가서 다시 정착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 고개를 숙이고 죄인처럼 산다.
자식 하나 잘 못 둔 덕으로
첫댓글 즐~~~감!
잘 보고 갑니다
잘 읽고 갑니다~
무혈님!
구리천리향님!
초록캔디님!
감사합니다.
오늘은 성탄절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